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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이 좋아서! |  박찬은

히말라야 소금 불판 위에서 느낀 행복(Feat. 일체유심조)

등산도 화식(火食)도 포기할 수 없는 백패커들 사이에는 최근, 고산 트레킹 후 캠핑장으로 내려와 바비큐를 즐기는 게 유행이 됐다. 변산 캠핑장에 짐을 푼 후, 100대 명산인 내변산을 올라가보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운동하는여자 #오운완이 태그된 사진 속에서 ‘100대 명산’이라고 적힌 수건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니 비실비실 웃음이 새나왔다.

 

내변산 관음봉 424m. 지난번 관악산(632m), 도봉산(740m)에 비하면 이 정도는 껌이지. 하지만 그땐 몰랐다. 낮아 보이는 내변산엔 무려 ‘쇠뿔바위봉’ 같은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진 암릉과 오르락 내리락하는 1,000m급 산행 코스가 즐비하단 걸. 어릴 때도 진짜 싸움 잘하는 애들은 겉으로는 티가 안 났지. 난 그렇게 덩치 작은 내변산에게 레프트 훅, 라이트 훅을 얻어맞으며 관음봉을 올랐, 아니 기어갔다.

이 산을 곱게 내려가 다시 캠핑할 수 있을까


고밀도 등산으로 홀쭉해진 위장이 정상도 찍었으니 어서 캠핑장으로 돌아가 육고기를 먹자고 아우성이다. 가마소삼거리까지 2.9km의 둘레길 대신 1.2km의 지름길을 하산 코스로 택한 이유다. 그러나 그 나비효과는 매서웠다. 내 앞에 나타난 것은 하산하다 영원히 이 세상을 하산할 것만 같은 공룡 등뼈 같은 암릉 능선이었다. 겨우 한 사람 걸을 좁은 폭에다, 낭떠러지 양쪽의 칼바람. 등산로다운 길은 찾을 수 없고, 두 손 두 발을 다 이용해 네발로 기어 올라가야 하는 큰 바위들 사이로 산악회 리본이 묶여 있었다. 능선 길을 거의 구르듯 넘어가며, 산에선 직선거리가 아닌, 등고선과 지형이 중요하단 걸 내변산의 어퍼컷을 맞아가며 배웠다. 이때 찍은 사진들은 죄다 백내장 걸린 렌즈로 찍은 듯 뿌옇다. 이날의 내 운명처럼.

 

지름길을 택했건만 하산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고, 주위는 점점 어둑어둑해졌다. ‘심장 돌연사 예방 등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무리한 산행은 자제해주시고, 일몰 전에 하산을 위해 산행 소요 시간을 확인 바랍니다’라는 현수막과, “산에서는 절대로 자만하면 안 된데이”라던 등산 구루 아빠의 말도 떠올랐다. 갑자기 저 멀리 까마귀가 운다. “까악~까악~” 왜 하필 내 머리 위에서 우는 건데. 해도 떨어지고, 나도 암릉으로 떨어지게 생겼다. 내려간다 싶으면 다시 올라가고, 끝났다 싶으면 다시 나타나는 거대한 바위군을 만나기 1시간여. 드디어 사람이 다니는 흙길 등산로가 나타난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살았구나.

히말라야 소금 불판의 위무


이제 목을 축일까. 하지만 물병이 비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반나절이 넘는 산행에 행동식도 없이 500ml 물 한 병 갖고 오른다는 것 자체가 일단 말이 안 됐다. 총기를 분실한 신병처럼 입이 바싹바싹 말라오고, 설상가상, 폰 배터리마저 떨어져 간다.


그때 저 멀리 숲속에서 ‘반짝’ 햇빛에 반사되는 뭔가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니 등산객이 바위 옆에 놓아둔 물병이다. 남아서 버린 걸까, 혹은 나 같은 등산 애송이의 등장을 예상한 걸까. 크리스털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PET 물통을 영화 ‘인디애나 존스: 최후의 성전’ 속 성배처럼 거룩하게 집어 들었다. 물통에는 물이 절반 가까이 남아 있었다. 투명하니까 오줌은 아닐 거야. 누가 입을 댔을지도 모르고, 숲속에 얼마나 오래 방치됐을지도 모르는 그 물병에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게걸스럽게 입을 갖다 댔다. 그리고 무덤 옆 해골 물을 달디 달게 마셨던 원효대사처럼 꿀꺽꿀꺽 달게 마셨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마음 먹기 달린 일. 다리가 너덜거리고 마른 목구멍에서 피 맛이 나던 그때의 내게, 누군가 버리고 간 그 물은 천상의 감미료를 탄 맛이었다. 그 물 덕분에 난 캠핑장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고, 붉은 몸으로 날 기다리고 있던 마블링 가득한 살치살과 재회할 수 있었다. 원효대사처럼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가는 대신, 나는 선물로 받은 히말라야 핑크 솔트 불판이라는 비기를 꺼내 들었다.

절뚝일지언정 계속 나아간다


파키스탄 소금 광산의 천연 암염 중에서도 1%라는 소금 불판 위에 몸을 뉘인 투뿔 한우 살치살은 겸허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염분을 빨아들였다. 82가지 미네랄이 함유된 소금이 특수요원처럼 고기에 자연스럽게 침투했다. 히말라야 핑크 솔트와 전북 투뿔 한우의 만남이라는 남아시아와 동아시아의 콜라보는 혼자 감내했던 암릉 트레킹의 공포와 피로감을 삽시간에 씻어 내렸다. 살치살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니 비로소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온 땅과 바다, 갯벌과 하늘을 물들인 해가 도로마저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변산 8경에 든다는 부안 낙조다. 영화 <변산>에서 “개완허다”라고 말했던 김고은의 말간 얼굴처럼, 하루치의 놀란 가슴도 개완해졌다.

 

다음 날 아침, 내소사 전나무숲을 걸었다. ‘다시 살아나다’는 내소사(來蘇寺)의 뜻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앞마당의 소나무와 대웅전의 꽃살문을 바라보며, 벼랑 트레킹에서 날 안내한 산악회 리본들과 누군가의 물통을 생각한다. 꽃살문의 꽃들이 ‘어제는 마니 놀랐죠? 괜찮아요’ 하듯 봄바람을 걸러낸다. 암능 트레킹의 후유증인지 자꾸만 발걸음이 느려진다. 등산도, 휴식도 숙제처럼 바삐 해내 온 내 삶의 속도를 조절해주는 기분 좋은 근육통이다. 백패킹을 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15kg에 육박하는 박배낭(대형 야영배낭)을 메고 백패킹을 할 때도 ‘걷는다’, ‘고기가 기다린다’는 생각에 집중하다 보면 별 거지 깽깽이 같은 속세의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절뚝일지언정 계속 나아간다. 때론 타인이 남겨 놓은 친절이라는 물통에 입을 축여가면서 말이다. 2억 5,000만 년의 역사를 지닌 히말라야 소금 불판과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던 내변산의 공룡 능선은 내게 그걸 알려주었다. ✉️  

박찬은은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캠핑과 스쿠버다이빙, 술을 사랑한다. 삐걱대는 무릎으로 오늘도 엎치락뒤치락 캠핑과 씨름하며 퇴사 욕구를 잠재우는 중이다. 그의 캠핑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camping_cs을 따라가 보자.

✏️ Words |  자신을 사랑합시다


나는 수영에 재능이 없고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인데, 수영을 잘하는 사람을 보며 그를 미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신 수영을 즐기며 달리기를 잘하는 자신을 사랑해주면 된다. - alone&around

📄 1일 3매 |  최갑수

어느 훗날, 분홍빛 저녁 앞에서

작고한 올리버 색스는 2015년 2월 19일 자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칼럼 「나의 인생」(My Own Life)에서 이렇게 썼다.


“이것이 내 삶의 끝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음을 강하게 느낀다. 내게 주어진 시간에 우정을 더욱 깊게 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글을 더 많이 쓰고, 힘닿는 대로 여행도 하고, 새로운 수준의 이해와 통찰을 성취하련다.


평생 다른 이를 치료하면서 살아온 노 의사. ‘의학계의 문인’으로 불리는 미국의 신경학 전문의. 어느 날 그는 남은 날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칼럼에서 “내 운은 다했다. 몇 주 전 암이 간으로 전이된 것을 알았다. (…) 암이 확산되는 것을 늦출 수는 있을지라도 결코 멈추게 할 수는 없다”라고 썼다.

 

봄비가 내리는 어느 날, 카페에 앉아 그의 글을 읽고 또 읽는다. 봄은 벚꽃의 개화와 함께 느닷없이 오고, 벚꽃의 낙화와 함께 별안간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또 한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우리는 서로가 늙어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 매일 저녁, 세월이 하루만큼 흘러갔다는 사실을 서운해하며 술을 마신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나빴던 것만은 아니다. 십 대 시절보다는 이십 대가, 이십 대 시절보다는 삼십 대가 나았다. 그리고 지금이, 과거 어느 때보다  낫다.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다. 내가 여든 살이 되더라도 이런 마음일 거라는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그때보다는 지금이 낫다.

 

죽음을 몇 달 앞둔 여든한 살의 테라스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 같은 건 들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돌아가 봐야 최선을 다하지 않으리라는 걸, 최선을 다해 봐야 그다지 바뀌는 것이 없다는 걸 그때쯤이면 알고 있을 테니까. 다만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고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플 것이다. 즐거움과 사랑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인데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놓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올리버 색스는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우리와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어떤 다른 사람도 결코 나와 같을 수 없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은 결코 채울 수 없는 구멍을 하나씩 남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왜, 그 사람과 즐겁게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어느새 비가 그쳤다. 그 틈을 타 저녁이 왔다. 서쪽 하늘이 복숭앗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노을 지는 창가에 앉아 나는 가책 받은 얼굴로 앉아 있다.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들,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오늘 저녁부터 즐겁고 사랑하는 일에 집중해보자.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조금 더 힘을 써보자. 어느 훗날의 분홍빛 저녁 앞에서 나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행성, 지구에서 지각력을 갖춘 존재였고 생각하는 동물로 한평생을 살았으니, 그 사실 자체만으로 나는 대단한 특혜를 누리고 모험을 즐겼다.” ✉️

최갑수는 시인이며 여행 작가다. 오늘은 3년 만에 비행기를 타는 날이다. 내일 뉴스레터 '1일 3매'는 '어쩌면' 보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그의 인스타그램 @ssuchoi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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