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언의 일기
2024.8.14 여전히 폭염경보 @까페여름, 아이스 귀리라떼

초등학교 4학년이었나,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숙제로 동그라미를 선생님이 열 개 그려주면 한두 번 치다 말고 열 개의 동그라미 위에 선을 쫙쫙 긋고는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피아노에 흥미가 없었던 건-내가 재능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솔직히 피아노 선생님과 마음이 맞지 않아서였다. 그 선생님에 대해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것은 '레가토' 뿐이다.
레가토는 피아노 악보에 종종 등장하는 주법으로 알고 있다. 스타카토는 끊어 치는 거고, 포르테는 강하게 치는 거고, 피아노는 작게 치는 건데, 레가토는 조금 달랐다. 음과 음 사이를 은근하게 이어지게 치는 것이다. 괄호를 눕힌 듯이 무심히 표기된 레가토는 괄호에 넣어도 될 것처럼 있으나 마나 하게 느껴졌다.
레가토 선생은 별명처럼 레가토를 아주 중요하게 여겨서 학생들이 레가토를 무시하고 지나갈 때면 ‘레가토! 레가토!’하고 옆에서 소리치곤 했다. 그 선생님께 얼마나 자주 레가토를 지적받았던지 문득 기억 서랍에 잠자고 있던 ‘레가토!'의 기억이 돌아온 것이다. 나는 자꾸만 레가토를 놓쳤다가 손등을 자로 맞곤 했다. 그는 마음이 약해서 기분 상할 정도로 때리긴 했어도 아프도록 때리지는 않았다. 자로 맞은 날이면 소심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학원을 나설 때 인사하지 않았다. 흥. 그놈의 레가토!

이 기억이 떠오른 것도, 레가토가 뜻하지 않게 내 삶의 화두가 되어서였나. 기억에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언제부터인지 일과 일 사이가 분절된 것이 불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일 특성상 일정과 일정 사이에 틈이 있고 불규칙적이다 보니 여러 종류의 일들이 갑작스럽게 시작되고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글을 쓰다가 수업하고 앱 기능 테스트를 하다가 미팅에 나를 내던졌다. 마음이 정돈되지 않은 채로 특히 수업에 들어갈 때면 은은한 죄책감이 들었고, 수업에서 사람들의 멀뚱한 표정을 보면서 그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갑자기 수업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썩 마음이 차지 않았다. 저 앞에 큰 트럭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걸 피하려고 순간 반강제적으로 시동을 켜는 것 같달까. 막상 수업에서 좋은 피드백이 있었거나,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통찰이 있었어도 그것에 대해서 충분히 곱씹어보지 않으니 그다음 날만 되어도 까마득해졌다.
경험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툭툭 끊어지는 듯한 느낌, 내 마음이 지금 이 시점을 정확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은 시간 단위가 반나절, 하루, 일주일, 한 달로 커질수록 더 극대화됐다. 나에게 던져지는 공을 쳐 내듯이 살아가는 하루는 그다음 날도 비슷하게 흘러가도록 만들었다. 일과 일 사이가, 하루하루가 끊어지는 느낌은 한 주 단위로 넘어가게 되면 미묘하게 그 틈이 커졌다. 토막 나 있는 일주일이 이어지면 한 달이 됐고, 그럴 때는 전달과 이번 달 사이의 틈이 작년과 올해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 해가 다 간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다음 해 2월, 3월이 될 때까지 지난해를 열어둔 채로 보내기도 했다.


삶이라는 악보에 쓰인 레가토를 계속 놓치고 있을 때 작심하듯 ‘매일 마음 마감’이라는 제목의 페이지를 만들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적고, 그때의 마음과 지금까지 남아 있는 마음을 정리하고, 오늘의 경험이 나에게 무슨 의미였는지에 관해 썼다. 길어봐야 다섯 줄이었다. 그리고 내일을 잠시 미리 살아봤다. 내일 있을 일과 그 일을 하기 위한 마음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것들을 썼다. 내일 아침에 마실 커피, 내일 차릴 한 끼, 내일 볼 산책길의 장면과 내일의 수련.

공이 나에게 날아오기 전에 잠시 떠올려 보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왜 이렇게 공을 기다리며 서 있는지를 말이다. 특히 하기 싫은 일일수록 연결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일을 하기 전에 내가 이걸 왜 하는지를 떠올려 보면, 신기하게도 예열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만 해도 발가락 사이사이에 땀이 차게 하는 운전 연습을 나는 왜 하는 것인가 떠올려보면 '이동의 자율성'이었다. 누구에게 부탁하지 않고서도 어디든, 언제든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집 앞 가파른 언덕에서 심호흡하며 주차 연습을 했다. 반복되는 잡무를 하기 전에도 왜 하는 것인지 떠올렸다. 하고 난 다음에도 갑자기 그 일을 곧바로 집어던지지 않으려고 참도 애썼다. 잠시 그 일의 여운을 느끼고, 그 경험이 내게 준 것을 한 줄이라도 메모했다.
어제 잠들기 전 생각해 뒀던 산책길로 자네와 함께 나섰다. 맑아진 정신으로 돌아와서는 수업을 위한 줌을 미리 켜둔 채 이 수업의 목표와 지난 회기 나눴던 대화를 복기했다. 그가 혼란스러움에 빠져 자신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바랐다. 수업 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가 나를 인정해 줄까?’ ‘그가 나를 미워하지는 않을까?’ 대신에 ‘어떻게 그가 해내고 있는 일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인지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 ‘그의 목소리에 좀 더 잘 접촉하도록 도울까?’ ‘이번 주에 그와 다른 갈등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가 오늘 밥을 챙겨 먹고 들어올까?’로 다시 마음을 채웠다.
일상의 레가토를 충실하게 연주하는 기쁨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가고 싶게 하는 방식으로 나를 돕는다. 아침 눈을 뜰 때와 처음 컴퓨터를 켜고 화면이 밝아진 순간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시간이 흘러 그때 레가토 선생의 나이쯤에 와 있다. 이쯤 되니 그의 레가토 사랑을 조금 이해할 것도 같다. 좋은 연주는 적절한 연결에서 오는 것일 테니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레가토가 전혀 다른 음악을 만드는 힘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 카페 여름
차별 없는 가게. 주차에 정신이 팔려서 전전긍긍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펴보니, 영화 <괴물>에서 튀어나온 듯한 바가지 머리 꼬마가 훌쩍 높은 의자에 앉아서 두 다리를 흔들며 앉아 있었다. 엄마는 카페 사장님과 친구인지 나란히 창가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올해 여름의 한 장면. 커피는 말할 것도 없고, 토스트를 시키면 함께 나오는 살구잼이 기가 차도록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