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풀칠러님. 이번주 에세이 당번 아매오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저 이직했습니다. 채용 소식을 알게 된 날부터 입사일을 확정하기까지 딱 일주일 걸렸어요. 이렇게도 입사하는구나, 싶더라고요. 어떻게 그랬냐고요? 커피챗이 곧바로 채용으로 연결된 케이스거든요. 저도 신기합니다.


그러다 보니 커피챗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일로 만난 사이를 얼기설기 이어놓은 얕고 넓은 인간관계가 이런 식으로 작용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커피챗, 참 재밌는 문화예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커피챗, 해보셨나요? 어떠셨나요? 안 해보셨다고요? 그럼 저랑 커피챗 한 번 어떠세요?

나는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을 허투루 하지 않는다. 밥 먹자는 말도, 다음에 한 번 보자는 말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그런 말을 들었을 땐 ‘선택적 눈치없음 모드’를 시전한다. 예의상 하는 말이란 게 뻔해도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냅다 받는다. 물론 그렇게 성사된 만남이 모두 유의미했냐 하면 그렇지 않다. 보통 그런 말은 예의상 하는 거니까. 그러니 뭉개지 않고 만나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어디 보자…세 달 뒤에나 가능할 것 같다는 답을 들은 적도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실제 상황에서 마주하는 건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나의 인간관계는 대개 그런 식으로 형성됐다. 지인들이 내가 인싸 기질을 가졌다고 생각할 법하다. 하지만 좀 가까워지면 다들 같은 얘기를 한다. 생각보다 너는 주변 사람에 관심이 없구나. 처음엔 당혹스러웠다. 내가 그런가? 이젠 납득했다. 지금 와서 보니 이와 같은 성향 덕분에 여러 사람과 얕은 관계(일시적이진 않으나 그렇다고 영구적이지도 않은)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듯하다. 만남을 진지하게 여기는 태도와 사람에 관심없는 태도는 언뜻 모순돼 보인다. 다만 분명한 건 그 모순으로 인해 적정선이 맞춰진다는 사실이다. 자화자찬인가? 그냥 진술이다.


얕은 관계가 종합적으로 내 삶에 이득인지 손실인지 아직 모르겠다. 인간관계를 두고 이해손실을 따지는 게 속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것은 일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빼고 남은 극히 일부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 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며 가장 효율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 놔야 할 텐데. 내게는 얕은 관계가 너무 많다. 나이 먹으면 저절로 정리될 거라고.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 하지만 그건 싫다. 어중간하게 디졸브되는 것만큼 찝찝한 게 없으니까. 내 인간관계에선 내가 주도권을 쥐고 싶다.


‘일로 만난 사이’로 범위에 제한을 두면 나름대로 결론이 선다. 얕은 관계는 ‘이득’이다. 세상은 참 넓지만 딱 그만큼 좁기 때문이다. 다시 볼 일 없을 듯했던 사람의 이름을 뜬금없이 듣는 경우가 많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보고 싶은 사람이나 봐야 하는 사람만 볼 수 없다는 걸 다들 알고 있을 테다. 그렇기에 이러한 사이는 상호협력적이다. 가끔 만나는 것도,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수월하다. 숨겨진 목적따위는 없다. 가끔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니까. 결과적으로 추가 소득이 발생하지 않기도 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므로 ‘인맥’이나 ‘라인’과도 다르다.


그런데 이 공식은 어떤 식으로든 일단 관계가 맺어진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얕은 관계는 이득. 그럼 얕은 관계를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커피챗’이다. 커피챗은 내가 접한 ‘스타트업 문화’ 중에서도 긍정의 농도가 꽤 짙은 편에 속한다. 그 이름을 내세우면 얕은 관계를 만들려는 시도가 어렵지 않았다. 커피챗의 의미를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신청하는 사람도 신청받는 사람도 가볍게 여길 수 있다. 또 내가 가볍게 여긴다는 걸 저 사람이 알고 저 사람이 가볍게 여긴다는 걸 내가 안다. 덕분에 도저히 무거워질 틈이 없다.


가벼운 만남. 그 결과는 제각각이다. 가벼운 관계로 남는 게 제일 흔하다. 명함도 교환하고 페이스북 친구나 인스타 맞팔도 할 수 있다. 아, 요샌 링크드인이 핫하니 일촌도 맺어준다. 상대방을 태그한 게시물을 SNS에 업로드해 기존 지인들에게도 내 관계망에 새로운 사람이 추가됐다는 점을 알린다. 업계에 알고 지내는 사람은 (악명이 아니라면) 다다익선이다. 어디 가서 ‘어, 저 거기 아는 분 있는데…’라며 아이스 브레이킹하기 좋다. 서로가 서로의 스몰토크 소재가 돼 주는 것은 업계의 도리다. 소개팅 첫 만남에서 제일 먼저 꺼내드는 카드가 주선자 뒷담화인 것처럼.


또 다른 결과로는 ‘채용’이 있다. 규모가 작은 조직이 경력자를 채용할 때 특히 유용한 모델이다. 이런 조합일 경우 서류와 면접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데 일정 수준 이상의 리소스를 들이는 것이 피차 섭섭하기 때문이다. 찐한 커피챗 한 번은 서류의 일부(나머지는 채용이 확정된 뒤에 받아도 된다)와 면접의 대부분을 대체할 수 있다. 구직자에게 불리한 지형 아니냐고? 얼마 전까지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채용을 염두에 둔 커피챗은 대개 추천인을 한 명 이상 끼고 이뤄지기 마련이다. 보통 사측으로 기울어진 채용시장의 운동장이 커피챗에서는 꽤 보정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그렇게 이직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순식간에 진행됐다. 점심 얻어 먹으려고 만난 전 상사가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했다며 이러저러한 회사가 사람을 구하는데 커피나 한 잔 해보라고 했다. 알겠다고 연락처를 넘겼는데 그 날 저녁에 커피를 마셨다. 당일에 오퍼를 날리시더라. 앗, 제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나오지 않아서요. 휴가를 다녀와서 말씀드려도 될까요? 나는 휴가 2일 차에 합류 의사를 밝혔다. 처우 협의도 금방 끝났다. 휴가 복귀한 날 현 회사와 이야기를 나눴고 퇴사일과 입사일을 확정했다. 여기까지 딱 일주일(휴가는 4박 5일이었다).


이렇게도 입사를 하긴 하는구나, 싶다가도 한편으론 불안했다. 나도 회사를 다 알지 못하고, 회사도 나를 다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휘뚜루마뚜루 이직한 건 아닐까? 물론 2시간 넘게 떠드는 동안 회사의 장단점을 가감없이 들었고 나 또한 장단점을 소상히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고하기 위한 절대적인 시간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이 어쩐지 찜찜한 것이다. 그게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천천히 회사를 살피며(들은 것과 비교해가며) 할 일을 찾아가는(말한 것을 증명하는) 중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출근하는 요즘이다. 커피 한 잔이 만든 날들이다.

▲ 커피챗 하러 가던 날
파주 : 간단히 커피나 한 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할 거라더니, 바로 얼마 안 가 이직한다는 소식을 듣곤 꽤나 놀랐습니다. 제 주변에서 이런 방식으로 이직을 한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거든요. 아매오님이 묘사해 주신 커피챗을 보니 어쩐지 ‘공평하다’라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채용을 위한 과정이 질문과 답변보다는 훨씬 대화에 가깝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까요.


언젠가 커피챗이라는 걸 한 번 해볼 수도 있겠다 싶네요. 그런 상상을 하니 이내 괴로워지기도 합니다. 어색함을 참지 못하는 저는… 분명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곤 후회하게 될 것 같아서요. 여하튼 2시간이 넘는 대화로 초면인 상대에게 좋은 모습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부러운 능력입니다. 이직은 언제나 옳죠. 아매오님의 새로운 직장생활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아자아자!

마감도비 :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번의 커피챗을 해봤습니다. 커피 한잔하자는 제안을 받는 순간부터 이직 제안임을 직감하게 되는 게 대부분이죠. 그래서인지 커피챗을 가기 전에는 늘 긴장과 설렘이 공존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상대마다 또 시기마다 커피챗의 분위기는 상이했어요. 어떤 자리는 진중했고 어떤 자리는 한없이 가벼웠어요. 가장 중요했던 건 상대방의 태도였던 거 같아요. 나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혹은 알아봤는지) 같은 것들 말이에요.

상대의 태도를 보면 상대방 회사에서 나라는 사람을 정말 원하는 건지 그게 아니면 그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어서 적당한 연차인 나를 한번 찔러보는 것인지 유추할 수 있더라고요. 어떤 영화 속 대사를 빌리자면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고 잉크처럼 번지는 사람이 있는 법이죠.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는 우리 모습도 비슷한 거 같아요. 아매오님의 새 출근을 응원합니다.

야망백수 :  안 읽은 카톡을 500개, 안 읽은 메일을 5천개 정도 쌓아두고 사는 사람인 저는 아매오님의 커피챗 이야기가 그저 굉장합디다. 어떻게 낯선 이에게 그리 쉽게 마음을 여십니까.


제가 왜 커피챗을 엄두도 못내는 지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광장에 나갈 수 없는 이유는 부끄럽거나,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겠죠. 저는 아직 지금 다니고 있는 곳에 품은 애정이 충분치 않거나, 여기서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깔끔한 정의를 못 내렸나 봅니다. 그래서 여태 커피챗을 할 기회가 없었나 봅니다.


그래도 눈 떠서 자기 전까지 하는 거라곤 일밖에 없으니 언젠간 저도 귀인에게 커피 한 잔 얻어 마실 날이 오겠죠? 정 안되면 아매오님이라도 제게 커피챗을 신청해 주세요. 아아, 커피챗으로 이직까지 하는 ‘인싸’(부인해도 소용없습니다)와의 커피챗이라. 생각만해도 멋진 직장인이 된 기분이 차오르네요!


▲ 애프터 커피챗
풀칠러A : 괜히 긴장됨
풀칠러B : 근데 별 일 없음
풀칠러C : 별 얘기도 안 함
풀칠러D : 커피 기프티콘이라도 보내주고 커피챗이라고 해라
풀칠러E : 담배챗은 어떻습니까
풀칠러F : 안 해봐서 모름
풀칠러G : 앱 아님?
풀칠러H : I는 하기 힘들 듯
풀칠러I : 소개팅 같음
풀칠러J : 따지고 보면 이도저도 아닌 것
풀칠러K : 간잽이의 향연
풀칠러A

오늘의 0순위: 엄마에게 전화하기

파주
명절 때나 본가에 간다는 친구들을 보며 ‘향수병이 없나?’라거나 ‘저 불효막심한…’이라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는데요. 찾아뵙기는 고사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전화드리는 것도 가까스로 해내고 있네요. 풀칠러님의 우선순위를 보고 오늘 어머니께 전화 한 통 드렸습니다. 고맙습니다.

풀칠러B

저도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 심어주신 우선순위를 품고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릴적부터 고집해온 이른 아침 기상도 그 중 하나 같아요. 아침 일찍 일어나 야망백수님의 풀칠을 읽고 오늘의 우선순위를 정리하게 해주신 부모님의 노력에 감사드리며, (야망백수님께도 감사드리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야망백수

요즘 일도 어렵고 통 불안해서 잠이 안온다고 토로하니 친구가 짤방을 보내주더군요. 짤방엔 ‘인생이 불안하면 일찍 일어나라’라는 얘기가 적혀있었습니다. 30평생을 늦잠맨으로 살아왔지만 속는 셈치고 일찍 일어나서 꼭 해야 하는 일과 안해도 될 일, 어차피 못하는 일을 정리해봤는데, 꽤 큰 도움이 되더군요. 언젠간 하고 싶은 일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지낼 시절도 오겠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설정해둔 우선순위들이 마음에 쏙 드는, 행복한 하루 보내셨길 바랄게요!


풀칠러C

저는 직업 특성 상 연봉 협상을 해 본 적이 없어 참 신기하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답정너', '통보' 등과 같이 표현하는 걸 보니 형식 상 하는 겉치레일 뿐이군요. 저는 연봉 협상이라고 하면 많은 대화가 오고 갈 지 알았거든요.


거기서 협상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네이버에 검색 해보니 협상이란, 어떤 목적에 부합되는 결정을 하기 위하여 여럿이 서로 의논함. 이라는 뜻인데요.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이 정반대되는 목적을 가지고 의논하고 있으니 참 어려울 수 밖에 없겠네요. 물론 상대적으로 훨씬 약자의 위치인 사람의 경우만 그렇겠죠.


저도 회사와 계약을 체결할 때, 제가 받게 되는 수수료 협상을 할 때가 있는데 저도 제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지는 못 했네요. 다음 협상 때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상황을 배려하기 보다는 나를 최우선으로 두는 마음가짐으로 협상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협상에 챙겨 갈 준비물은 회사와 헤어질 결심이겠네요.

마감도비

연봉협상이라는 게 회사마다 달라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열심히 일한 걸 회사도 알아주겠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면 손해 보게 되더라고요. 때론 강한 자기주장과 자기 PR이 필요한 거 같아요. 협상 준비물이라는 표현이 참 마음에 드네요. 우리, 큰 결심 해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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