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토종쌀은 아니지만, 밥맛 최고 이세히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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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달인'에 나오는 이세히카리 이야기. 이세신궁에서 제사 지낼 때 쓰던 고시히카리쌀이 어느 해(1989년) 태풍에 전부 쓰러졌는데 단 한 포기가 꼿꼿이 서있었고, 그 벼를 재배하게 된 것이 이세히카리라는 이야기다. 이 만화 자체가 현지취재를 바탕으로 한 팩션이니만큼 이세히카리의 이야기도 과장만 약간 보탠 수준이다 (실제로 서 있었던 것은 두 포기라고 한다네).
이세히카리는 농사 짓기가 쉽지 않고 수확량이 적은 편이라 일본 현지에서도 생산량이 많지 않고 국내에서도 몇 사람이 시도하다가 지금은 창원 주나미 농장의 우봉희 농부만이 농사를 짓는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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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세히카리 논의 모내기 직후의 사진이다. 일반 논의 네 배 이상의 간격으로 벼를 심는다. 심은 벼도 비리비리한 것이 이게 제대로 자랄까 싶은 상태다. 이러고 농약도 비료도 주지 않는다. 제초제는 물론 안 쓴다. 처음에 사람이 풀을 좀 잡아주는 것, 그리고 자라면서 물관리 해주는 것이 전부다. 농약비료는 화학성분 없는 유기농약이나 비료도 쓰지 않는다. 이것은 토종쌀과 완전히 같은 방법이다.
농사짓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오히려 관행농 방법으로 농사지어서 그런 것 아닐까? 일본에서도 이세히카리의 마츠모토 가즈히로(松本一宏)라는분이 이세히카리 재배자로 유명하다. 마츠모토 농원도 자연재배법으로 이세히카리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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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도 올해 초까지만도 유기농과 자연농을 구분 못하던 까막눈이었는데 우봉희 농부를 만나고 자연농, 자연재배에 눈을 떴다. 짧게 말해서 유기농은 화학성분이 아닌 것은 무엇이든 쓸 수 있는, 사실은 고투입농법인 경우가 많다. 반면 자연농법, 자연재배는 기본적으로 무투입 농법이다.
농업은 농업기술센터에서 주는 종자로, 정해주는 날짜 안에 농약과 비료를 정해진만큼 주고 추수 때는 몇 개의 등급에 따라서 무게로 파는 것이 농사, 특히나 벼농사인데 자연농 농부들은 스스로의 궁리가 있고 환경에 맞추어 농사를 지어간다. 농약도 비료도 필요 없고, 오로지 땅과 작물의 힘으로 키워내는 자연농. 그렇다보니 자연농법은 딱히 정해진 방법이 없고, 농부와 작물과 환경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발달한다. 하나의 작물을 중심으로 생태계를 조성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 것이다. 인생에 답이 하나가 아닌 것처럼.
이런 창의성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는 무한한 존경과 감사가 생겨난다. 이 땅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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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듬성하게 심어도 다 자라면 이렇게 빽빽하게 논을 채운다. 밀식하는 관행농에 비해서 분얼(가지치기)이 많고 간격도 넉넉하다. 그래서 병충해에도 강하다. 사람도, 공장식 축산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최대한의 아웃풋을 뽑아내려면 스트레스로 병들고, 그 병을 잡는다고 약을 치고 하는 악순환이다.
반면에 이렇게 자연재배로 여유있게 키운 벼들은 병충해가 거의 없고 무엇보다 밥맛이 환상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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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알은 좀 작은 편이다. 투명도는 높은 편인 멥쌀. 그 외에 외관상 큰 특징은 없지만, 쌀을 씻는 그 순간부터 밥이 입에 들어갈 때까지, 아니 그 후까지 놀라움의 연속이다.
우선 쌀 씻을 때 소리부터 다르다. 쌀알이 부서질까 곱게곱게 조심조심 쌀을 씻는 편이지만 그래도 이 쌀은 촤르륵 촤르륵, 무슨 빨래판에라도 굴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 쌀알은 작지만 단단해서 오래 씻어도 깨지거나 하는 쌀알이 적다. 작은 쌀알들은 손 감각에도 느껴지는데 소리만은 거세다. 작은 쌀알은 손에 쥘 때의 감각도 어딘가 유혹적이다. 표면은 윤기가 돌아서 더욱 그런 기분이다. 참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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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보통의 밥물로 압력솥에서 표준적인 밥짓기. 특별히 물을 많이 주고 짓지는 않았지만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밥이 나온다.
밥맛은? 놀라 넘어갈 수준이다. 평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타일인 귀도와 비교하자면 이쪽은 찰기가 살짝 적기는 하나 쌀의 향이 고소하면서도 은은한 단 향이 오르는 듯 하고, 쌀알의 탄력이 뛰어나다. 귀도가 솔직하고 직선적인 밥맛이라면 이쪽은 미묘하고 은근하다.
흠잡을 데 없이 맛있는 밥이 나온 오늘의 밥짓기는 90점.
일본 팔만 신들의 본고장이라는 이세신궁에 바치는 공미라서 그런지 참 일본 스타일로 정점을 찍었다 싶은 쌀이다. 일본에서는 스시용으로도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작은 쌀알과 탄력이 스시용 쌀로는 더할나위 없긴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소식 빠른 고급 스시오마카세에서 납품을 받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자연재배나 토종쌀도 관행농 쌀보다 몇 배나 비싸지만 이세히카리는 희소성도 있어서 그보다도 더더욱 비싸다. 그래도 밥이 중요한 스시집에선 그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정말 바람직한 마인드의 젊은 셰프분들이 이세히카리를 차지했다. 생산량이 적어서 다른 식당에는 올해는 웃돈을 준다해도 공급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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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또다른 놀라움. 솥에 남아있는 누룽지를 물 부어 숭늉을 끓이겠다고 불에 올려두었다. 물의 양은 숭늉이라고 했으니 결코 적지 않았는데 십여분만에 쌀이 그 물을 다 습수해버린 것이다. 이것도 또 놀라운 특징.
이세히카리는 토종쌀은 아니지만 그 밥맛 때문에도 그렇고, 자연재배의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해서 꼭 소개하고 싶었다. 좋은 쌀, 좋은 농업은 국경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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