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강남•서초 주택의 70% 이상을 차지하여(2018년 지자체 기본통계) 주민에게 익숙한 주거공간입니다. 또한 입주민의 쾌적한 생활환경을 위해 일하는 경비, 청소, 시설관리, 주택관리사 등 다양한 노동자들의 일터이기도 한데요. 그런데 아파트가 어떤 이에겐 일하다 죽을 수도 있는 산업재해 현장이라는 사실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파트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경비노동자들의 경우는 어떨까요? KBS <시사기획 창>이 근로복지공단 자료를 분석해 최근 3년간 경비노동자 과로사 인정사례 74건, 과로사 질환자는 250여명이었고 이중 발생 근무지 80% 이상이 아파트였다는 충격적인 분석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열악한 시설에서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며 휴게시간에도 마음 놓고 쉬지 못하는 환경은 대다수가 고령인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건강에 치명적입니다. 작년 3월, 퇴근길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진 뒤 과로사 판정을 받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한 경비노동자는 맞교대 휴식시간이 실제로 4시간에 불과했던 사실이 드러났는데요. 이 아파트에선 지난 2월에도 과로사로 추정되는 경비노동자의 죽음이 이어졌습니다.

그뿐인가요. 오는 5월 10일은 입주민 폭행과 갑질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뜬 故 최희석 경비노동자의 1주기입니다. 얼마전 고인에겐 ‘업무상 사유에 의한 사망’이 인정되어 산재 판정이 내려졌는데요. 최 씨 사망을 계기로 서울시는 ‘경비노동자 노동인권 보호 및 권리구제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작년 9월에는 공동주택관리법이 개정되기도 했습니다. 

산재 외에도 아파트 일터는 숱한 노동권 침해가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퇴직 경비노동자들은 ‘휴게시간이 보장받지 못한 근로’에 대한 임금청구소송에서 승소하기도 하고, 평소 입주민들의 갑질과 개인용무 처리에 시달려온 도곡동 대림아크로빌 안내데스크 노동자들은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는 이유로 사실상 권고사직을 당한 뒤 이것이 직장내괴롭힘에 포함된다는 판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서울의 어느 지역보다 아파트가 많은 강남•서초에서부터 지역 주민•노동자의 관심과 연대로 이러한 ‘노동권 사각지대’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누군가의 안락한 거주를 위하여 다른 이의 희생이 당연하게 여겨진다면, 그곳은 언제든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