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회 (2023.10.11)

안녕하세요. 황인찬입니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셨는지요? 공기가 차가워진 것이 체감되는 요즘인데요. 저는 쌀쌀한 공기와 뜨거운 햇살을 동시에 느끼며 가을 날씨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봄과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이 기분을 저는 참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런 때는 산책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여러분도 틈틈이 산책을 하시며 가을 날씨를 만끽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나희덕 시인의 「그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었을 때」도 이러한 산책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산책길에 우연히 주워든 조약돌에 대해 생각하는 시죠. 아마 여러분도 이런 경험 있으실 겁니다. 강가나 바닷가에서 발견한 돌 하나가 너무 예쁘고 마음에 들어서 그걸 손에 쥐는 경험 말입니다. 그건 참 이상한 일입니다. 돌이라는 것은 정말 어디에나 널려 있고,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물건이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갑자기 어느 돌 하나에 눈이 가고 마음이 끌려서, 그 돌을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그렇게 손에 쥐고 돌아온 돌 하나는 며칠 정도 특별한 빛을 뿜어내다가 이내 그 빛이 꺼지고 선반 어딘가에 놓여 오래도록 잊히게 되죠.

산책길에 조약돌을 주워 왔다

 

수많은 돌 중에

왜 하필 그 돌을 주머니에 넣었을까

 

내가 돌을 보는 게 아니라

돌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고 느낄 때

돌을 집어드는 것은

돌의 시선을 피하는 방식인지도 모르지

 

특별할 것 없는 그 돌은

나에게로 와서 비로소 돌이 되었다

이름을 붙이거나 부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돌은 나의 바깥, 차고 단단한

돌은 주머니 속에서 조금씩 미지근해졌다

 

얼마 전 바닷가에서 그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었을 때 느꼈던 것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어떤 들쩍지근하고 메슥거리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불쾌한 기분이던지! 그것은 그 조약돌 때문이었다. 틀림없다. 그 불쾌함은 조약돌에서 내 손으로 옮겨온 것이다. 그래, 그거다, 바로 그거야. 손안에서 느끼는 어떠한 구토증.*

 

조약돌은 그곳에서 이곳으로 왔고

그곳의 냄새와 습기 또한 이곳으로 옮겨왔다

 

나의 돌이 아니라 그냥 돌이 될 때까지

나를 더이상 바라보지 않을 때까지

그때까지만 곁에 두기로 한다

 

방생의 순간까지

조약돌은 날개나 지느러미를 잃은 듯 거기 놓여 있을 것이다

 

_나희덕, 「그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었을 때」 (『가능주의자』)

 

* 사르트르, 『구토/말』, 이희영 옮김, 동서문화사, 2017, 27쪽

이 시의 화자 또한 그런 우연한 마주침을 통해 돌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일을 두고 “내가 돌을 보는 게 아니라/ 돌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고 느낄 때/ 돌을 집어드는 것은/ 돌의 시선을 피하는 일인지도 모르지”라고 덧붙이는데요. 여기에는 참 묘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연한 마주침이 애정이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견디기 어려운 마음을 이끌어낸다는 생각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상한 말이지요? 좋아서 주운 것이 아니라, 돌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돌을 주웠다는 생각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하지만 바로 그 묘한 비틀림이 제가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에서 한 연을 할애해서 통으로 인용한 바닷가의 돌멩이와 구토증에 대한 이야기는 작품 속 인용에서 밝히고 있듯, 사르트르의 글에서 가져온 것인데요. 이야기의 주인공 로캉탱이 돌멩이를 집어들었을 때, 그가 메스꺼움을 느꼈던 까닭은 자신이 저 돌멩이처럼 의미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로캉탱은 쥐고 있던 돌멩이를 떨어트리고야 말죠.

그런데 이 시에서는 돌을 집으로 가져오기로 했군요. 오히려 그 두렵고 메스껍고 불쾌한 존재를 가져오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불편한 돌을 환대한다거나, 받아들인다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가만히 두기로 하죠. 그 돌이 “나의 돌이 아니라 그냥 돌이 될 때까지” 말입니다. 저는 이 미묘한 동거가 정말 좋았습니다. 여기서 돌이 타자의 은유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나의 의미 없음을 드러내 보이는 저 타자를 이 시의 화자는 거절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그저 함께하기로 한 것입니다. 돌이 품고 있던 냄새와 습기 또한 받아들이면서요.

어쩌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고, 그 마주침을 견디기 위해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죠. 서로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사실이 나를 괴롭게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절하지 않는, 어쩌면 유보적이고 어정쩡하다고도 할 수 있을 이 태도야말로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지옥 그 자체인 타자에 대해 우리에게 가능한 최선의 방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의 제목이 『가능주의자』라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이 태도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요!)

저의 집에도 어디선가 주워 온 작은 돌이 몇 개인가 있었는데요. 그 돌들이 이제는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의 선반들 어딘가에는 돌들이 자리하고 있겠지요. 아마 돌도 제가 어디 있는지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이 어색한 동거는 아마 제법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습니다.

가을은 아름다운 하늘을 즐기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하늘이 너무 넓어서 쓸쓸해지는 계절이기도 하죠. 그 쓸쓸함을 우리가 완전히 털어내거나 이겨낼 수는 없을 테니, 그 가을의 쓸쓸함과 더불어 우리는 산책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가벼운 외투는 꼭 챙겨 다니시고요.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전해드리는 음악은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인 안토니 앤 더 존슨스의 <Another World>입니다. 이곳 아닌 어딘가를 그리는 음악인데요. 이 노래가 그리는 다른 세상은 평화롭고 아름답지만, 어쩐지 고독하고 쓸쓸한 세상인 것만 같습니다. 그 쓸쓸함이 오늘 전해드린 이 시와, 그리고 이 가을의 서늘함과 어울리는 것만 같습니다.

2023년 10월

황인찬 드림

📮 문학동네시인선167 『가능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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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 준비해왔던 문학동네시인선 200 기념 티저 시집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출간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지난여름부터 200번을 기다려주신 분들이 참 많은데요. 오래 공을 들인 만큼 많은 것들을 꽉꽉 채워넣었어요. 2023년 막 등단한 시인부터 시력 40년이 넘은 중진 시인까지, 앞으로 문학동네시인선에서 펴낼 시인 오십 명의 신작시를 미리 엿볼 수 있습니다👀 신작시외에도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오십 개의 답변도 함께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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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선을 펴면 처음 나오는 '시인의 말', 좋아하는 분들 많으시죠! 시인의 말은 시인과 독자가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는 글로, 하나의 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이어질 시집에 어떤 시들이 있을지 미리 알려주기도 하는데요. 문학동네시인선 200번을 기념하며 한정판으로 001번부터 199번 시집의 '시인의 말'을 묶어 펴내게 되었습니다. 시인의 고백적 육성이 오롯이 담긴 글을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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