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두 번째 책은 김중혁 작가의 『모든 게 노래』예요. 작가는 71년생이고, 이 책은 2013년에 출간됐습니다. 읽을 때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독서 모임에서 다음 순서로 읽을 책을 소개하며 굳이 작가의 나이와 책의 출간 시점을 덧붙여 알린 이유는 그것이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책이기 때문이다. 무슨 상관이냐고? 노래에 대한 이야기 위에는 늘 두 개의 타임라인이 겹쳐 놓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노래 자체의 타임라인이고 나머지 하나는 감상자의 타임라인이다. 그것들이 조합되는 방식에 따라 노래에 대한 감상의 경우의 수는 무한대로 늘어난다. 이것을 고려하며 읽으면 더 재밌는 독서가 가능하다.

예컨대 작가는 드렁큰타이거 8집에 실린 랍티미스트의 'Skit(음악에 미친 Loptimist는 오늘도 밤을 새워)'과 'True Romance'를 언급하며 "준수한 청년"이 쓴 "이십 대의 목소리"에 대한 글을 적었다. 이 앨범이 나온 건 2008년. 작가는 이미 30대 후반이었고 그런 감상을 느낄 만한 사회생활 경험을 쌓았을 터였다. 그러나 역시 2008년에 이 노래를 들었던 나는 10대 후반이었다. 그와 같은 감상을 느꼈을 리가 없지. 게다가 2022년 지금은 30대가 됐다. 오, 다채로와.

과연 책에서 언급되는 노래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부부터 엇갈렸다. 그게 단지 세대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가는 언뜻 봐도 음악 취향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최신곡도 성실하게 업데이트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예상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노래는커녕 가수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누군가는 거의 모든 노래들을 잘 알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몰랐지만 알게 돼서 좋은 노래가 많다고 했다. 세대와 취향을 넘나드는 대화의 장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독후감을 써 올까? 몇 가지 예상해 봤다.

①특정 시기에 자주 찾았던 노래(들) 얘기하며 썰 풀기

②즐겨 듣는 노래들의 공통점을 찾아 자기 취향을 정의하기

③좋아하는 노래 몇 곡 소개하기. 

나는 ①에 가까운 형태로 썼다. 에픽하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한 아티스트가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A님은 듣는 노래가 아닌 부르는 노래에 대해 쓰셨다. 버즈와 SG워너비, 엠씨더맥스를 거쳐 슈퍼스타K와 쇼미더머니 경연곡들을 부르곤 했던 나보다는 살짝 앞선, 그러니까 내가 노래방을 열심히 다닐 때는 이미 '불후의 명곡' 반열에 오른 노래들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고 쓰셨다. 그때만큼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것은 그만큼 나이를 먹었음을 알려주는 기준이라고.

나도 언제부턴가 노래방에 가지 않는다. 쉬는 시간에 들이는 수고로움을 덜고 싶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사실 노래방에서 내가 하는 건 노래 부르기보다 소리 지르기에 가깝다. 육체와 마음 모두를 수고롭게 만드는 일이다. 그런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사람이 돼 버리고 만 것이다. 친구들도 다 같이 바뀌었다. "노래방이나 가자."고 하던 애들이 이젠 "집이나 가자." 혹은 "카페 같은 데나 가자."고 한다. 우리는 그냥 그렇게 됐다.

②의 형태로 쓴 독후감 중 가장 신선했던 것은 즐겨 듣는 노래들을 추리고 보니 드라마 OST였다는 이야기다. <궁>이나 <커피프린스 1호점>의 OST에 학창 시절 기억이 담겼다는 B님은 "그 이후로는 한국 드라마를 많이 안 봐서 한국 노래는 잘 모른다."라고 쓰셨다. 노래에 대한 접근이 이런 식이라니. 재밌었다. 중국과 대만 드라마에 꽂혀서 "K-pop 시대의 한국에서 외로이 C-pop을 듣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게 흥미로웠다.

노래를 수집하는 통로가 드라마인 것은 B님이 이야기에 민감한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OST는 드라마의 장면 각각이 품고 있는 특정한 감상에 풍미를 더하기 위해 삽입된다. 그러니까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야만 이 노래를 들어야겠다고 설득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B님이 쓴 드라마에 대한 에세이가 궁금해졌다. 정작 내가 물어본 건 "중국어로 노래할 때 성조는 어떻게 하나요?"였다. 좋은 질문과 답변은 늘 타이밍이 지난 뒤에 떠오른다.

노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어렵다. 대부분 '좋은데... 정말 좋은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로 흘러간다. 노래의 만듦새를 설명하기도 어렵고, 그때 느꼈던 나의 감상을 구체적인 언어로 묘사하기도 어렵다. 어쩐지 음악평론가들의 언어를 빌려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그건 내가 쓰는 게 아니라서 영 어색하다. 설명하는 게 맞긴 한데, 뭔가 거짓말인 듯하다.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애썼는데 오히려 밋밋한 기분이다. 내가 느꼈던 건 이게 아닌데? 

하지만 노래와 관련된 내 이야기를 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일상에는 항상 노래가 흐르고 있으므로. 삶에서 이야기를 건져낸 다음 그때 마침 흐르던 노래를 가져다 붙이기만 하면 된다. 모든 노래는 본질적으로 OST인 셈.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때 우리는 취향 밖의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넣게 된다. 디테일한 삶의 이야기가 들러붙으면 노래는 특별해지니까.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너의 노래는 나의 노래가 된다. 이날 모임에서도 나는 새로운 노래들을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