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하면 어떤것이 생각나시나요? "픽션의 반대", "사실", "있는 그대로", "인터뷰", "실존 인물", "나레이션" 과 비슷한 맥락의 단어들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는 영화를 크게 보자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극영화"가 좀 더 주류를 차지하고 있죠. 하지만 영화의 시작은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영화를 탄생시킨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 <기차의 도착>(1895)도 생각해보면 다큐멘터리이며 영화사 초반의 영화들은 대부분이 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짧게 찍은 "다큐멘터리"의 일종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만큼 "다큐멘터리"는 현재 영화의 주류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매우 의미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영화사 초반의 영화들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실사 영화"(actuality)라고 불린다는 것인데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만들었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람은 로버트 J. 플래허티이며 그가 만든 첫 영화가 오늘 소개할 <북극의 나누크>(1922)입니다.
<북극의 나누크>(1922)는 첫 다큐멘터리 영화로 알려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재밌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북극의 나누크>(1922)에 나오는 모든 내용이 '있는 그대로'만을 찍은 영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주인공 '나누크'는 원래 이름이 '나누크'가 아니며, 그의 아내로 나오는 사람도 그의 실제 아내가 아닙니다. 또한 당시의 에스키모들은 이미 총을 사용하여 사냥을 하던 사람들이었는데요, 영화를 위해서 일부러 옛날 방식으로 사냥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스키모들이 당시 '현대 문명'의 물건들을 보며 신기해하는 모습을 영화속에서 보여주지만, 사실 그들은 플래허티의 카메라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수준까지 될 정도로 '현대 문명'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북극의 나누크>(1922)가 첫 "다큐멘터리"로 알려져있을까요? <북극의 나누크>(1922)를 통해 알수 있는 것은 "다큐멘터리"는 한톨의 거짓도 없이 있는 그대로만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만을 보여주는 영화는 "다큐멘터리"보다는 "시네마 베리테"(cinéma vérité)라는 장르에 더 가깝습니다. "다큐멘터리"의 정의는 "하나의 현실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정도로 표현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북극의 나누크>(1922)는 매우 많은 픽션을 포함하고 있지만, 에스키모들이 한때 살아갔던 삶의 방식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수 없을것 입니다. <북극의 나누크>(1922)속 유명한 장면인 바다표범 사냥 장면은 당연히 인위적인 설정이 들어가긴 하였지만 에스키모들이 전통방식으로 바다표범을 사냥한것은 거짓이 아닌 사실입니다. 한 영화 평론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바다표범이 시나리오를 미리 읽고 연기한것도 아니지 않은가"라고 할수 있죠😁
이러한 점을 고려할때에 우리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범위가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는 접점이 없는 양극단의 장르가 아니라 서로 얽히고 설켜있는 형태로 보는것이 더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큐멘터리는 관객의 흥미유발을 위해 영화내용을 극영화의 포맷속에 끼워넣는 경우가 자주 있는 동시에 극영화는 관객의 흥미유발을 위해 더욱더 영화내용이 사실인것처럼 포장하려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점 또한 재밌는 점이라고 느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