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금주의 에세이 당번 파주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덕업일치'입니다.

세상에 스트레스 안 받는 직장은 없다지만,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면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요? 덕업일치에 성공한다면 매일 행복한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네, 저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처참하게 실패했죠. 

저의 짧고도 처절한 덕업일치 실패담을 여러분께 공유합니다.

엄마의 오랜 말버릇 중 하나는 '너 좋은 대로만 살 수는 없다’라는 말이다. 이것저것 간만 보다가 끈기 없이 그만두는 아들내미가 아무래도 위태로웠는지, 그 배려심 깊은 이인숙 여사는 내가 무언가를 그만둔다고 말할 때마다 핀잔을 주었다. 나는 엄마가 뭘 몰라서 그런다며 항변했다. 아웅다웅하던 우리의 대화는 늘 '저 좋은 거만 하려 한다’는 이인숙 여사의 수미쌍관씩 일갈으로 마무리됐다. 나보다 곱절의 세월을 더 살아온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사회에 발을 들이고 나면 무엇 하나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하기란 불가능하다는걸.

어린 시절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되려 제대로 심통이 나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들으면 냅다 연필을 내던지듯이 청개구리 기질을 십분 발휘해 늘 좋아하는 것만 하려 했다. 그렇게 피아노도 쬐끔, 글쓰기도 쬐끔. 문제는 어느 것 하나 끈덕지게 좋아하질 못한다는 거였다. (심지어 드럼은 귀가 아프다는 핑계로 고작 두 달 만에 그만두었다.) 그렇게 기나긴 허송세월을 보낸 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그저 애매하게 좋아하는 것만 많은 어설픈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다. 이내 나이에 등을 떠밀려 사회에 진출(당)하고 말았다.

어영부영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이인숙 여사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어느 것 하나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는 없었다. 빌어먹을 출근길과 그보다 괴로운 야근을 반복하며 어떤 날은 차라리 지금 타고 있는 버스에 작은 사고가 나서 부득이한 이유로 출근하지 못했으면,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회사의 업무라는 게 마치 좋아하는 것 외의 일만 딱 떼어놓은 여집합을 해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면 조금 달라질까. 그렇게 나는 덕업일치를 좇아 도망쳤다.

돈 깨나 쓰는 게이머들은 자기가 넥슨 본사 기둥을 하나씩 세웠다며 허풍을 떨곤 하는데,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취미로 이 회사에 쓴 돈을 헤아리면 기둥 두어 개는 너끈히 세웠을 거라며 내심 자부했다. 두 번의 면접을 거쳐 쟁취한 덕업일치를 동네방네 자랑했다. 한 선배는 '지금보다 월급이 더 낮아질 수가 있어?'라며 황당해 했지만, 해맑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덕업일치를 이룬 그때의 나는 쌍팔년도 시절 스포츠스타라도 된 거처럼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상태였으니까. 좋아하는 일이라면 대가리를 처박은 채로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멍청하게.

덕업일치의 행복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풍비박산이 났다. 새로운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한강공원에서 5m 높이의 사다리에 안정장비 하나 없이 올라야 했고(심지어 사대보험도 가입하지 않았을 때다), 택시 할증으로부터 자유로운 새벽 4시 이후의 퇴근도 잦았다. 또 어떤 날은 출근 30시간 만에 퇴근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끝을 모르는 업무로 몸도 마음도 망가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건 좋아하는 일을 만드는 회사에서 정작 내가 좋아하는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는 거였다.

기세등등했던 덕업일치는 7개월 만에 싱겁게 끝이 났다. 즐겨 듣던 노래가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트리거로 전락했고, 좋아하던 것들을 더이상 좋아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제서야 '너 좋은 대로만 하고 살 수 없다'라는 이인숙 여사의 말버릇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덕업일치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바보 아들에게 에둘러 말한 거라는 사실을. 그렇게 개박살이 나고 다시 한번 도망쳤다.

새로운 곳에서 조금씩 상처를 회복할 무렵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과 만날 기회가 생겼다. '일은 어때요?'라는 안부에 나는 '재미있지만 힘들어요'라며 별생각 없이 너스레를 떨었다. 분명 1년 전 동일한 질문에 나는 '힘들지만 재미있어요'로 대답했던 것 같은데. 고작 어순만 바뀌었는데도 그 두 가지 말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 힘들지만 재미있다는 말이 아직 충분히 버틸만하다는 뜻이라면, 그 반대는 '재미와 힘든 노동을 저울질 하고 있지만 언제든 내던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기'라는 의미일까.

그날 맞은 편에 앉아있던 덕업일치의 현신은 새롭게 맡게 된 업무를 두고 '재미있지만 힘들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생각지 못했지만 회사일이라는 게 모두 그렇듯,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그의 업무도 덕업일치와 크나큰 간극이 있지 않았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힘든 것을 꾹 참고 이겨내는 애정과 노력, 그 정도의 정성이 내게는 부족했던 걸까.

최근 코딱지만 한 연봉을 조금 인상하여 낯선 업계로 이직할 기회를 얻었다(그래봐야 조금 큰 코딱지지만). 충분히 쉬었으니 망설일 것도 없었지만 괜한 거북함이 발목을 잡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부터 너무 멀리 가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인상된 금액을 무엇에 소비할지 빈 종이에 몇 가지를 끄적이곤 이내 결론을 내렸다. 이인숙 여사의 표현을 빌리면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새 회사에서 평소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외신을 뒤적이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끄적이는 게 아무래도 못할 일 같았다. 미련 없이 입사를 반려한다는 메일을 전송했다. 아무래도 나는 요령부득 구제불능의 인간인 걸까. 이미 덕업일치에 실패했으면서, 아직까지도 저 좋은 것만 하려는 미성숙의 애새끼맨인 걸까.

메일을 보내고 나자 이인숙 여사님의 착신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렸다. 한 줌도 안 되는 스마트폰이 왜이리도 무거운지. 엄마, 미안해요. 저는 글렀나 봐요.

“도망갈 데가 없어진 느낌이야” 언젠가 파주님이 술자리에서 해준 얘기를 제 맘대로 요약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일로 받은 스트레스를 취미로 풀곤 했는데, 취미가 일이 되어버리니 스트레스가 쌓이기만 한다는 하소연이었죠.

덕업일치의 실패에 따른 괴로움은 아마 기대와 현실 사이의 낙차에서 오는 것이겠지요. 무책임하게 괜찮다고 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낙차 이전에 높이가 있었고, 그 높이를 만들어 낸 건 분명 파주님의 역량이었을 거예요.

‘힘들지만 재밌어요’와 ‘재미있지만 힘들어요’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자신의 경험에서 건져 올려 풀어놓은 게 인상적입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이 두 문장을 나란히 놓고 비교할 줄 알게 된 파주님이 진심으로 부러워요.
파주님의 고민에 깊이 공감합니다. 제목부터 심금을 울리네요. 파주님의 고민은 아마 90년대생(세대 갈라치기 좀 하겠습니다) 또래들이 얼마씩은 가슴에 품고 있는 고민일 거 같아요.

덕업일치. 대학생 때는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미디어에서도 그런 심리를 부추겼죠. 롤 모델이니 산업의 변화니 갖은 이유를 대며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은연중에 부와 명예 같은 옵션이 따라올 거라고 말이죠. 현실은 기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좋아하는 일 한 줌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한 가마니 져야했어요. 이게 현실이고 사회인가 싶다가도 더 나은 길은 없을지 항상 고민하게 되네요.

그래도 파주님의 마지막 문단을 보고 힘을 얻습니다. 우린 모두 글러먹었어요. 곧 글러먹은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재미있지만 힘들어’와 ‘힘들지만 재밌어.’ 이 둘 사이를 오가는 파주님과 풀칠러들 모두를 응원합니다.
저는 덕업일치의 '업'이라는 글자를 아주 복잡한 3차방정식으로 이해한답니다. 일의 형태(x) 강도(y), 보상(z)을 전부 구해야하는 고난이도 문제죠. 우리는 험난한 밥벌이 전선에서 이 방정식을 풀기 위해 매일 구르고 있는 거구요.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저는 파주님이 덕업일치에 실패한게 아니라 오답을 하나 걸러낸거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안다는 건 적어도 x값 하나만큼은 확실히 쥐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문과생에겐 너무 어려운 3차방정식이지만...수능처럼 시간제한 있는 것도 아니니...우리 한번 천천히 풀어보기로 해요. 처음보단 분명히 답에 가까워졌을테고, 어차피 피할 수도 없는 문제니까요.

풀칠러A
공감이 많이 가네요. 저도 제 연봉협상은 그저 통보라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으면서 주변인들의 연봉협상기에 훈수만 두었습니다. 돈얘기를 껄끄러워하는 양반님네들의 문화가 악영향을 끼치는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공감합니다. 연봉협상이라는게 우리나라에선 거의 유명무실하죠. 연봉을 올리고 싶으면 그냥 이직하는 수밖에 없다고들 하니까요..
야망백수
맞아요. 저는 이런 류의 기만에 굉장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답니다. 진짜 연봉협상을 하든지 대놓고 연봉 통보라고 하든지 하나만 골라줬음 좋겠어요
풀칠러B
풀칠러들은 연말 정산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요!
파주
집단지성을 발휘해 보려 했으나 연말정산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 하나 없네요. 올해도 어김없이 유튜브와 블로그에 '연말정산하는 방법'을 검색해 보고 있습니다(벌써 몇 년째인지). 역시 부지런한 사람이 치킨 값이라도 버는 건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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