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28호를 발행합니다. 

심아정 선생님이 또 다른 ‘불편한’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에서 제기된 일본인이 하는 ‘일본혁명’ 이 아닌 ‘반일’에 대해. 선주민에 대한 수탈과 억압 위에서 가능했던 각종 혁명이라는 이름이 놓쳐온 것에 대해. 도망자와 함께한다는 것은 ‘도망하는 삶’이 ‘안주하는 삶’을 향해 던지는 물음들을 마주하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 한편 지원그룹 여자들의 법 언어를 뛰어넘는 상상력은 법 기술자조차 당황하게 만들고 구체적인 승리를 만들어냄을 보여줍니다.

리영희 아카이브를 작업하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채우기가 난감한 것이 리영희와 장일순 관계였습니다. 리영희 본인이 “그 많은 좋은 벗들 중에서도 내가 벗으로서 사귀게 된 것을 하늘이 내린 축복이라고 고마워해 마지않는”(<대화> 561쪽) 장일순과의 교우는 장 선생 사후 몇 번에 걸친 리영희의 대담을 통해 리영희의 얘기를 들을수는 있지만 두 분이 사귀어 온 면면을 말해줄 분은 이미 다 돌아가신 후이기 때문입니다. 이 어려운 작업을 자료에 기초해서, 얼마전 장일순 평전을 쓰신 한상봉 선생님이 해주셨습니다. 장일순 선생님은 소매치기 당한 둘째딸 혼사비용이 든 주머니를 찾아달라고 애원하는 아낙네를 위해 역 주변의 모든 포장마차를 동원해 탐문해서 소매치기를 찾아내 남은 돈을 돌려주게하고도 그와 소주잔을 나누면서 당신의 영업을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하는 분이었으니 그 깊이가 알수 없는 분이셨겠지요. 한편 새삼스럽게 발견되는 건 리영희의 흠모하는 능력입니다. 리영희를 ‘말갈’ 이라 칭하는 박현채를 두고 두 분을 잘 아는 어떤 분 조차 저어하는 심정이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리영희는 ‘소년 빨치산’ 박현채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했지요. 후기 김지하를 두고 여러 소리가 오갈 때도 여기 있는 우리 중에 지하한테 돌 던질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 했습니다. 흠모할 수 있는 능력 이건 또다른 ‘능력’이라는 생각입니다.

귀한 글을 보내주신 심아정, 한상봉 선생님 고맙습니다.
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

리영희재단 특별상영회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 ‘호응’하는 주체, 감옥 안팎의 공투(共鬪) 


심아정 / 독립연구활동가

도망자와 함께한다는 것은 ‘도망하는 삶’이 ‘안주하는 삶’을 향해 던지는 물음들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도망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당신들의 아파트, 백화점, 도로, 지하철역… 모두 우리가 지었다. 당신들의 식탁 위에 올라가는 물고기도, 채소들도 우리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가 한꺼번에 간병 일을 그만두면 병원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필요로 하면서도, 왜 우리를 잡아들이고 가두고 쫓아내는 것에 열을 올리나?” 이러한 문제 제기는 다름 아닌 법과 시민사회에 기대어온 안온한 국민의 일상을 떠받치기 위해 비국민을 노동력으로 끊임없이 유입하고 추방하는, 즉 배제와 포섭의 기제를 동시에 작동시키면서 비국민들의 ‘단기순환 노동’으로 지탱되는 한국 사회의 존재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이러한 물음은 50여 년 전 ‘무장전선’이 식민기업을 문제 삼으며 일본 사회를 향해 던진 물음과도 긴밀히 이어져 있다.

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

리영희, 한겨울 매화의 봄마음-리영희와 장일순에 관하여


한상봉 / 가톨릭일꾼 편집장 겸 도로시데이영성센터 코디네이터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평생 없을 수 없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내내 ‘우정’을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이는 저이에게 흠결 지닌 그대로 친밀한 동무요, 뜻을 나누어 가진 동지요, 먼길을 마저 걸어가는 도반이요, 마침내 내 귀한 걸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연인이어야 한다. 리영희 선생과 장일순 선생은 드러난 몇 마디 이야기 밖에는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 치악산 계곡에서 물에 발을 담그고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억하는 다른 이 없고, 두 사람만의 은밀한 비밀로 간직한 채 이승을 떠났다. 리영희 선생과 장일순 선생 사이에 개입된 것은 이해관계가 아니었고, 다만 이런 통정(通情)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따름이다.

발행인: 김효순(리영희재단 이사장) 


리영희 재단 카카오채널 추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