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외편 EP.4 성실하게 보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던 날들
Q. 당신의 주주 서한과 인터뷰를 보면 항상 유머 감각이 빛납니다. 이런 유머 감각을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버핏: 유머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나옵니다. 세상은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우스꽝스러운 곳입니다. 유머 감각은 나보다 찰리가 더 좋습니다. 찰리는 유머 감각을 어디에서 얻는지 들어봅시다.

멍거: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면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터무니없으니까요.

버핏: 멍거의 멋진 답변으로 Q&A를 마무리하겠습니다.

- 워런 버핏, 리처드 코너스, 『워런 버핏 바이블』
1. 요즘 사는 이야기
3주 만에 다시 스티비를 열고 글을 씁니다. 업무 이야기도 채팅도 아닌 나를 위한 무언가를 쓰기 위해 키보드를 두들기는 것이 무척이나 오래간만입니다. 그사이에도 무척이나 다양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붙잡고 있는 일 중 일부에는 조금씩 진전이 있었고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기도 했고 생각해봄직한 것들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쉽사리 이야기 꺼내기가 어렵습니다. 조금은 서글프고 반대로 조금은 안도스럽기도 합니다. 쉽사리 이야기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이야기한들 이해받기 어렵다고 느껴 서글픕니다. 반대로 이렇게 생각될 만큼 난이도 있는 일들과 고민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붙잡고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또 안도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버겁고 도전적인 과제는 나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다주곤 하니까요. 이 게임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2. 성실하게 보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던 날들
30분 단위로, 내가 어떤 30분을 보내었는지를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기입해둡니다. 이렇게 해온 지 2년을 넘어 3년 째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시트의 빈칸에 업무 / 미팅 / 이동 / 독서 / 운동 / 글쓰기 / 식사 / 커피 / 음주 / 샤워 등의 객관식 문항들을 채워 넣다 보면, 내가 오늘 몇 시간 업무에 몰입했는지 몇 시간을 미팅이나 채용 인터뷰에 할애하는지, 얼마나 멍을 많이 때렸는지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지요.

그런데 한 주를 다 채우고 다음 한 주에 채울 빈칸을 늘리려 시트를 열다가 돌이켜보면 조금은 당황스러워집니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일주일에 80시간은 일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나름대로 열심히 오랜 시간 일한 것 같은데 다 합쳐보면 대단보다는 평범에 더 가까운 업무 시간이 나오곤 합니다. 괜스레 의식적으로 노력해봐도 일주일에 80시간은 좀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하하. 

이런 측정이 나 자신을 조금 더 성실하게 살게 하기도 또 덜 억울하게 만들기도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새 자정이고 새벽일 때, 혼자 사무실 불을 끄고 문단속을 하고 나갈 때,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결과물이 부족해서 피드백을 받을 때, 또는 반대로 나만 이렇게 일하는 것 같을 때, 뭔가 억울할 때, 이 시트를 들여다봅니다. 순간순간 치밀어오르는 억울한 감정들은 사라지고 다시 냉정을 찾을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실은 아침 열한 시에 출근했고 밖에서 저녁도 길-게 먹고 수다 떨다 온 날도 있었고, 이번 주를 돌이켜보니 그날 하루 빼고는 사실 꽤나 적당히 편하게 일했었고, 세어보니 가장 중요한 일에 충분히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었고. 뭐 이런 사실들을, 이 시트와 그간 체크해온 투두 리스트들을 돌이켜보면서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는 아직 충분히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억울한 마음이 들고 부아가 치밀 때야말로 오히려 나를 냉정하게 돌아볼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침착하자 되뇌며 스스로를 돌이켜보다 보면, 언제나 부족한 것도 내가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내 자신이었습니다. 성실하게 보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던 날들을 돌이켜보고 복기하는 주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뭐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p.s. 열심히 하는 것의 가치를 칭송하기 위해 글을 적은 것이 아니고 주변인에게 이러한 것들을 (또는 이 정도의 기준을) 강요할 생각도 없습니다. 혹여 오해가 있을까 염려되어, 미리 덧붙이는 말!

3. 어떻게 재치 있게 농담할 것인가?
몇 달 전에 강렬한 분홍색의 표지가 인상적인 키케로의 『어떻게 재치 있게 농담할 것인가?』라는 책을 샀습니다. 딱 봐도 노잼일 것 같은 로마 시대의 철학자 키케로가 이러한 제목의 책을 쓰다니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재치 있게 농담하는 방법이라는걸 책으로 쓴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노잼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해서 더더욱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제가 간과했던 것은 이 책을 구매했다는 사실도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제 사무실 책상에 올려진『어떻게 재치 있게 농담할 것인가?』표지 사진이 찍혀 돌아다니고 수군수군 "쟤 저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거였다니", "근데 저 정도로밖에 안 웃기다니" 같은 이야기가 들린다거나 (...) 결국 저는 키케로를 조금은 한심하게 여겼던 벌을 고스란히 돌려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은 이 책이 필요한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4. 오늘, 4월 16일
사진첩을 보다가 2017년 4월 16일에 갔던 콜드플레이 콘서트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이날의 Viva La Vida 떼창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5만 명이 함께 모여 공연을 즐겼습니다. 동시에 이날 이곳에서만의 방식으로 슬픈 사건을 추모했었습니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또 각자만의 크기로 슬픔을 추모하는 동시에 즐거움을 추구할 수도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괜스레 사진첩을 뒤지다 등장한 대체로 즐거웠던 동시에 엄숙하고 서글프기도 했던 5년 전 오늘의 사진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이 메일을 읽으시는 여러 분도 오늘 하루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내셨길 바랍니다.
5. 다음 에피소드 예고와 마무리 인사
오늘 에피소드는 어떠셨나요? 언제나 그러하듯, 계속 이어나가면 좋을 점, 아쉬운 점, 그리고 새롭게 시도해보면 좋을 것들에 대해 가감 없이 말씀해주세요. 이 메일에 답장으로 의견을 보내주시면, 꼼꼼히 읽고 더 나은 뉴스레터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 여러분의 피드백은 큰 힘이 됩니다.

다음 정기 에피소드는 내일(!) 022년 4월 17일(일) 성장 곱하기 성장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과 발제문, 그리고 떠올린 생각들을 소개하는 'EP.4 하버드 사랑학 수업'입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4월 23일(토)에 발행됩니다. 다음 에피소드를 더 즐겁게 읽기 위해, EP.4 에서 다룰 책 『하버드 사랑학 수업』을 미리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만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도서 소개 링크)

다시 한 번, 구독과 답장, 그리고 지인에게의 추천은 큰 힘이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

- 육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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