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바빠요.”
내년 4월이면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올 5월부터 10주기 위원회를 만들어서 활동 중인 박래군 회원의 근황을 물으니 역시 예상대로였다. 박 회원은 4.16재단의 상임이사이기도 하다.
“60이 되면 은퇴해서 소설을 쓰겠다고 하셨었잖아요?”
“책(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에까지 썼는데 결국 ‘그짓말’한 꼴이 됐어요.”
호언장담했지만 자업자득이란다. 여기저기 조직을 만들며 발목이 잡혔다고. 하지만 소설을 쓰겠다는 꿈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열심히 구상하고 조금씩 끄적이고 있다고. ‘소설은 꼭 낸다, 언제 낼지는 모르겠다’는 박 회원. 역시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는 나와 누가 먼저 쓰게 될지, 난 내가 먼저 쓸 거 같다. 시간 면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16일의 기억을 물었다. “생생하게 기억하죠. 박근혜 이런 사람들 권력자들만 기억 안 나고, 시민들은 다 기억하고 있죠.” 남영동 대공분실을 안내하던 날이었다. 모여서 점심을 먹고 대공분실을 돌아보는 일정. 사무실에서 나갈 때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걱정하며 나갔는데 식당에서 전원구조 소식을 접했다. ‘우리가 조선 강국인데 당연히 구해야지’ ‘다행이야’ 얘기를 나눴다. 2시간 남짓 안내를 마치고 이동전화기를 다시 켜니 모든 것이 오보였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에어포켓이니 뭐니, 희망 고문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 죽어 나올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일이 손에 안 잡혔다.
“며칠 동안 정말 남들 안 보는 데서 울고, 계속 걱정하고 그랬어요.” 1명이라도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자발적 촛불 행렬에도 참가했지만 답답하긴 매한가지였다. 팽목항에도 가고, 진도 체육관에도 갔다. 무겁고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면서 시민단체 활동하는 후배를 모았다. ‘그냥 둬선 안 되겠다. 대책위라도 만들자’ 4월 말부터 논의를 시작했고, 5월 22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를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