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가까이 살아볼까?
하지만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로망이 곧바로 무지개집이라는 주거공간의 마련으로 이어질 수는 없었다. 무지개집 입주자 중 일부는 지근거리에 모여 살며 대안적인 가족·공동체를 실험하기도 했고, 주변 성소수자 지인들의 경험을 보고 들으며 나름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의 배경으로 자리한 서울시 북아현동은 대안 주거 공동체의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재우를 포함한 친구사이* 회원들은 북아현동으로 이사하기 시작했다. 마을공동체나 퀴어타운을 만들겠다는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고, "의도치 않게" 북아현동 인근에 모여 살게 되었다는 게 정설로 보인다.
북아현동에 살 때가 [주거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이었죠. 그때는 훨씬 더 젊었고 혼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기댈 곳이 더 필요했어요. 외롭고, 커밍아웃한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고요. 그래서 하소연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재우)
비슷한 고민을 가진 젊은 게이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재우의 집에 몇 명이 같이 살고, 몇 발자국 떨어진 집에, 또 그 옆에, 2012년 즈음에는 "숫자가 꽤 되는 마을 공동체"라고 부를 만큼 커졌다. 정작 북아현동 주민들은 알지 못하는 이 감추어진 마을공동체를 당사자들은 "북아현동 부녀회"라고 부르며 수시로 모이고 친목을 다졌다.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일상 속에서 예전에 느꼈던 고립감은 많이 해소되었다. 1인 가구뿐만 아니라 커플이 함께 사는 경우에도 이 공동체의 역할이 컸는데, 적지 않은 커플들이 깨지지 않고 장기간 함께할 수 있었던 배후에 북아현동 부녀회가 있었던 것이다. "싸우고 짐을 싸서 나왔더라도 이 둘의 안전망 역할을 해주는 것은 부부라는 형식이나 제도가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를 지지해주는 주변의 친구들"이었다.
북아현동은 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지금은 언론에서 "강북권 알짜 재개발 사업지"라는 타이틀로 소개되는 동네이지만, 2012년 당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약간 지저분하긴 했어도 사람 냄새가 났던 곳으로 기억한다. 재우는 "그때 그 동네를 정말 좋아했"다며, 나눠 먹을 게 있으면 출근길에 북아현동 부녀회 회원 집 앞에 놓아두고 가고, "치맥하자, 나와"라는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삼삼오오 슬리퍼를 신은 편안한 차림으로 모였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 동네에 살면서 "북아현동은 우리가 사는 곳이야"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말에서 사는 동네에 대한 소속감을 넘어 마을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며 살았다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당시 경험 때문인지, 재우는 처음 무지개집 모델을 구상하던 때에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우리 집에 한두 사람이 같이 살고, 몇 발자국 가면 이 사람, 또 몇 발자국 가면 저 사람이 살고. 그래서 그때 그 동네를 정말 좋아했어요. 여기 북아현동은 우리가 사는 곳이야! 이런 생각을 많이 했죠. ······ 그 경험들이 조금 있기 때문에 이집[무지개집]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재우)
북아현동에 게이들의 마을공동체가 있었다면, 마포에는 비혼/퀴어페미니스트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마레연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북아현동 부녀회가 아는 사람들만 아는 은밀한 성격이었다면 마레연은 2013년 당시 어느 시사주간지를 통해 "한국에서 유일한 성소수자 지역모임"이라고 인정(?)받았을 정도로 꽤 유명세를 탔다. 마레연은 '마포레인보우유권자연대'의 줄임말로, 본래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마포구의 페미니스트, 퀴어활동가들이 유권자운동을 벌여보자는 취지에서 연대한 모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은 선거 이후로도 이어지며 "보다 일상적인 주민 조직"으로 그 의미와 활동을 전환했고, 모임의 이름 역시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로 바꾸었다.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는 운영진이라는 개념 대신 '잡다한 일을 도맡는 사람'을 정해 1년 임기 당번 체제로 운영하면서,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10명 중 1명은 성소수자입니다' 현수막을 통한 성소수자 인권운동에서부터 '퀴어 밥상' 모임과 같은 친목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2010년 4월에 열린 첫 오프라인 행사에 5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2014년 3월에는 온라인 카페 가입자가 450명에 이를 정도로 만만찮은 규모였다. 이처럼 마포구에는 비슷한 "세대적·문화적·정치적 특성을 공유하는 비혼/퀴어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수적으로 많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그 안에 사는 누군가에게 "사실 이미 마포는 어떻게 보면 퀴어타운"이었다. 2010년부터 활성화된 마레연 지역공동체는 친구사이 회원들이 퀴어타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다음은 2011년 친구사이 소식지와의 대담에서 재우가 한 말이다.
집에 밥이 없을 때, 술이 한잔 마시고 싶을 때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친구가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 우연히 같은 동네에 모여 살았던 경험 정도였는데 그걸 정식으로 한번 이야기해보자고 한 거다. 다들 조금씩은 생각하고 있었으나 막상 하려니 겁이 날 수도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마레연 같은 경우는 이미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것 같더라.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모형도를 만들어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친구사이가 주축이 되어 2011년(시즌 1)부터 2013년(시즌 2)까지 이어진 퀴어타운 프로젝트는 장기적 삶의 전망으로 대안공동체를 꿈꾸는 성소수자들이 그간 상상만 해오던 주거환경을 실제로 함께 디자인해보는 작업이었다. 친구사이 회원뿐만 아니라 대안공동체에 관심 있는 여러 퀴어들이 다양하게 참여했다. 시즌 1에서는 퀴어타운의 가치와 비전을 세우고 구체적인 공동체마을/공동주택 모형을 디자인했다. 이 작품들은 퀴어문화축제 기간 동안 전시되었다. 퀴어타운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후 직장과의 거리 때문에 북아현동을 떠나야 했던 재우를 비롯해서 동하와 가람(철호의 표현에 따르면 이들은 소위 무지개집 "빅3"다) 그리고 이들과 친한 레즈비언커플까지 총 4가구는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과 연남동에 걸쳐 모여 살기로 했다.
모여 살자는 그런 생각들을 조금씩 해왔으니까, 그래 마포로 가자, 하고 간 거죠. 연남동, 서교동까지 집을 알아보고, 재우형네 집이랑 아주 가까운 집도 보고 그랬어요. 일단 좀 모여 살자는 생각을 했던 게 [무지개집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이전의] 과도기 단계였고, 살다보니 가까우니까 일단 좋네, 이런 생각을 했죠. (가람)
마음 편한 공간을 찾던 사람들이 한 동네 혹은 가까운 동네에 거주하며 만든 소규모 마을공동체와 마레연과 같은 지역커뮤니티를 통한 퀴어타운 실험까지, 성소수자들에게 '일단 가까우니까 좋다!'는 경험은 괘 오랜 기간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서 더 과감한 실험을 상상하게 됐다. 그럼, 한 집에 사는 건 어떨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