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oo 로고
2호
아무 말

혹시 기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아무 때나 아무 말이나 아무거나 보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는 않습니다. 이번 아무 2호는 보너스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같습니다. 아무는 독자들을 위해 큐레이팅을 하지 않습니다. 이미 세분화되고 전문적인 정보들은 널려 있기 때문에, 그냥 때가 되면 즐거울 만한 적당한 이야기를 담아 보내드립니다. 기약은 하겠지만, 기다리고 계시면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아무거나 선보이겠습니다.

  1. 네임드롭: 아이메시지를 잇는 새로운 “파란색 말풍선”
  2. 요즘 듣는 애플 뮤직 플레이리스트 (1)
  3. 광주 비엔날레를 다녀왔습니다.
네임드롭: 아이메시지를 잇는 새로운 “파란색 말풍선”
NameDrop
매년 여름 열리는 Apple의 소프트웨어 행사인 WWDC(Worldwide Developer Conference, 세계개발자회의)의 메인 이벤트는 바로 같은 해 9월 무렵에 공식 릴리즈되는 소프트웨어를 공개하는 키노트이다. 이번 발표에서 애플은 소통을 컨셉으로 하여 자사 OS의 전화, 메시지, FaceTime 앱의 개선 사항을 발표했는데, 그중 iOS와 watchOS에 탑재될 예정인 NameDrop(네임드롭)이라는 기능이 특히 주목받았다.
두 아이폰을 맞대어 서로의 연락처를 NameDrop하는 모습
이미지 출처: Apple Newsroom
네임드롭은 iPhone이나 Apple Watch를 서로 맞대었을 때, 연락처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이다. 사용자는 자신의 연락처에 등록된 항목 중 원하는 정보(전화번호, 이메일 등)만 선택하여 전송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기기를 가까이 두었을 때 즉시 공유되는 것은 아니며, 받기만 할지 공유할지 미리 선택할 수 있다.
파란색 말풍선
네임드롭이 왜 iMessage(아이메시지)를 잇는 새로운 파란색 말풍선인지를 알아보기 전에, 파란색 말풍선이 의미하는 바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11년 iOS 5부터 애플은 애플 기기 간 사용되는 메신저인 아이메시지와, SKT와 같은 통신사를 통해 타사 기기로 전송되는 문자 메시지(SMS/MMS)를 하나의 메시지 앱 안에서 함께 제공하고 있다. 애플은 같은 앱 안에서 아이메시지 대화는 파란색 말풍선으로, 문자 메시지 대화는 초록색 말풍선으로 표시함으로써 사용자가 현재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지 구분하여 표시한다.
특정 메시지에 답장, Tapback (리액션), 전송한 메시지 수정, 특수 효과 전송
똑같은 메시지 앱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메시지에 답장, 리액션, 전송한 메시지 수정과 같은 기능을 아이메시지에서만 작동하게 함으로써 애플은 문자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아이메시지보다 모자란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는다. 게다가 애플은 이러한 아이메시지 전용 기능이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인 RCS(Rich Communication Service)를 의도적으로 자사 제품에 탑재하지 않으면서 iOS와 Android 사용자 간 메시징 경험을 계속해서 악화시키고 있다.
이 두 색상 간 메시징 경험의 차이는 주변 친구들과 영향을 많이 주고받는 청소년들에게 특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5명의 그룹 채팅에서 4명이 아이메시지, 1명이 문자 메시지를 사용한다고 하자. 4명은 자신들이 평소에 다른 사람들과 사용하던 아이메시지의 다양한 기능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아이메시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한 명은 “애플 기기를 구입하여 아이메시지로 참여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거나 아예 그룹 채팅에서 열외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시작으로 하여 이와 같은 문제가 제기되면서, “파란색 말풍선”이라는 용어는 애플이 자사 기기에만 배타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부르는 대명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카카오톡과 같은 타사 메신저가 아이메시지보다 널리 사용되기에 그룹 채팅에서 누군가 배제되는 가능성은 작겠지만, AirDrop(에어드롭)과 같은 애플 생태계 전용 기능이나 iOS에서만 동작하는 소셜 미디어 앱으로 인한 우리나라 청소년의 아이폰 선호 현상의 경우 이미 언론에 보도되기까지 했다.
우리가 간과한 것
아이메시지 그룹 채팅에 참여하여 전용 기능을 사용하고, 함께 찍은 사진을 에어드롭으로 공유하며, 애플 뮤직에 있는 같은 플레이리스트를 듣는 일은 일종의 공유된 경험을 형성한다. 나는 올해 애플이 발표한 연락처 공유 기능인 네임드롭이 애플이 만들고자 애를 쓰는 이 공유된 경험을 형성하는 데에 또 한 번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네임드롭이 공유된 경험을 제공하는 다른 많은 기능과 특별히 다른 부분이 있다면, 누군가와 처음 만났을 때 첫인상을 형성하는 데에 영향을 주는 기능이라는 점이다. 전화 앱의 다이얼 화면을 켜서 친구에게 휴대폰을 주고, 다시 받아서 이름을 적고 적은 이름이 맞는지 확인하는 번거로운 과정 없이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는 기능은 보다 매끄럽게 친구/비즈니스 관계를 형성하는 경험을, 그것도 두 사람 모두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그 매끄러운 경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중학교에서 학년이 바뀐 후 학기 초에 새로운 반 친구를 사귀고자 내 자리 주변에 앉은 친구들과 연락처 교환을 하는데, 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이 모두 네임드롭을 활용하여 연락처를 교환하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것은 그렇게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닐 것이다. 특정 회사의 휴대폰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그 기술로 만들어지는 공유된 경험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은, 또래 간의 소속감을 중요시하는 청소년들에게, 잠재적으로 소외감이나 주변 집단과 단절된 기분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수년에 걸쳐 사람들의 일상에 깊게 자리 잡게 된 스마트폰이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커졌다. 스마트폰과 스마트폰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는 사회적 상호작용 과정에 깊숙이 통합되어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식을 새롭게 형성하고 있다. 네임드롭과 같은 특정 소프트웨어가 어떤 집단 전반에 걸쳐 널리 사용될 경우 그 집단에 속하기 위한 일종의 장벽이 생기고, 이는 해당 집단 안팎에 배타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원인은 다르지만, 디지털 기술을 통해 누군가가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키오스크 및 현금 없는 버스 문제와 같은 노인의 디지털 소외 문제와도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연속성을 넘어 경험의 공유로
애플이 자신들의 생태계(Apple ecosystem, walled garden) 안에 사용자들을 가두고자 노력하는 기업 중 하나라는 점은 이미 유명하다. 이전까지는 아이폰에서 복사한 내용을 맥에서 붙여 넣을 수 있는 공유 클립보드나 아이패드를 맥의 모니터로 활용하는 Sidecar와 같은, 개인이 가진 다양한 기기 사이의 연속성을 극대화하는 기능을 통해 사용자들을 가두었다면, 최근에는 공유 메모나 공유 사진 보관함과 같은, 주변 애플 기기 사용자 간에 공유된 경험을 제공하는 기능들을 강화함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노력의 일환인 네임드롭이 성공할지는 올해 가을부터 지켜봐야 하겠지만, 성공한다면 아이메시지와 비슷한 방향으로 사용자들을 자신들의 생태계 안에 가둘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번외: Bump는 왜 사라졌을까?
Bump 앱을 켠 아이폰 두 대를 양손에 들고 가까이 둔 모습
이미지 출처: VentureBeat
두 기기를 가까이 가져와 정보를 전달하는 아이디어를 애플이 처음 제시한 것은 아니다. 아이폰 3GS가 등장할 때쯤엔 이미 Bump(범프)라는 앱이 있었고, 이 앱을 통해 사용자들은 서로의 연락처뿐만 아니라 사진 등도 전송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워낙 기능적인 측면이 강조된 앱이다 보니 수익 모델을 찾기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어떻게 보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앱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진 공유도 잘 하지 않던 때에 앱을 켠 뒤 휴대폰을 부딪쳐 전화번호를 전송하는 일은 “굳이 안 해도 되는 경험”이지만, 수 기가바이트의 동영상을 몇십 초 만에 에어드롭으로 보낼 수 있는 시대에 휴대폰 번호를 불러주는 대로 서로 받아적고 있는 모습은 어쩌면 “뒤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10년 전과 지금의 데이터 전송 속도 차이 역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 3G 인터넷을 통해 범프 서버를 거쳐 사진, 연락처가 전송되던 속도는 지금의 아이폰에서 기기 간 Wi-fi 연결을 통해 에어드롭(네임드롭)되는 속도보다 훨씬 느렸을 것이다.
전화 수신 화면에 연락처 포스터가 표시된 아이폰 세 대
이미지 출처: Apple Newsroom
iOS 17의 네임드롭에서의 연락처 공유가 범프와 달리 단순 전화번호 교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도 주목해 볼 만하다. iOS 17을 설치하면 사용자는 자신의 사진이나 애니모지(캐릭터)을 이용하여 연락처 포스터를 만들 것을 제안받게 되는데, 네임드롭을 사용할 때 이 연락처 포스터가 상대방에게 전송된다. 보통 연락처에서 빈 칸으로 남겨지는 사진 필드가, 네임드롭으로 받은 연락처의 경우 얼굴 사진을 포함한 멋진 포스터로 표시된다는 뜻이다. 전화를 받는 상대방에게 네임드롭으로 보낸 쿨한 연락처 포스터를 띄워주는 것과 오직 이름 석 자만 표시된 화면을 보여주는 것은 막 울리고 있는 휴대폰을 보며 전화를 받을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작지 않은 차이를 가져다줄 것이다.
요즘 듣는 애플 뮤직 플레이리스트 (1)
Episode 3 : Romy
영국의 밴드 The xx 멤버들이 만드는 플레이리스트 시리즈이다. 다른 시리즈의 음악들도 좋지만, 댄스음악을 좋아하는 내겐 최근 로미의 곡들과 더불어 이 플레이리스트가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편안한 재즈 (Jazz Chill)
나는 플레이리스트를 음악보다는 분위기에 집중해서 듣는 편이다. 이 플레이리스트에는 보컬이 없는 재즈 곡만 모여 있고, 너무 시끄럽지 않으면서 너무 잔잔하지도 않아서 아침에 뉴스레터들을 읽으며 듣기 좋다.
What Can Music Do During Climate Collapse?
사실 음악이 크게 실질적인 것을 할 순 없다. 그러나,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과 행동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고, 무너지는 환경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담긴 음악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모두가 즐기는 팝 (Every1)
일상 BGM으로 틀어놓기 좋은, 적당히 자주 업데이트되는 플레이리스트이다. 인기 팝송 중 ‘나름’ 무해하고, 처지지 않는 음악만 골라둔 플레이리스트이기에 별 생각 없이 일하거나 공부하면서 자주 듣는다.
광주 비엔날레를 다녀왔습니다.
광주 비엔날레는 이렇습니다.
올해 4월 6일부터 7월 9일까지 열렸던 14회 광주 비엔날레에 대한 글이다. 이미 올해 광주 비엔날레는 끝났지만, 내년 광주 비엔날레를 기대하며 다시 한번 복기하고자 작성했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는 <도덕경>의 유악어수를 풀어낸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Soft and Weak like water)’ 라는 대주제와 4가지의 소주제로 전시장이 이루어져 있다. 가장 약한 것이 물이지만 그 아무리 강한 것이라도 물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뜻을 가졌다. 흘러가고, 순환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물의 속을 이번 전시의 큰 테마로 잡았다고 생각했다.
이미지 출처: 광주비엔날레 홈페이지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하고, 그것은 분열과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물의 은유를 사용한 것은 이런 이유였습니다.” 비엔날레의 전시총괄을 맡은 이숙경 감독이 생각한 물의 의미는 아무래도 포용의 의미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일전에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큐레이터를 역임한 적이 있는 이숙경 예술감독은 영국 테이트 모던의 국제 미술 수석 큐레이터이며 광주 비엔날레의 총괄을 맡는 17년 만의 첫 한국인이다.
전시 장소는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과 회전축, 그리고 파빌리온으로 나뉜다. 회전축은 광주의 문화가 담긴 공간으로, 환기를 시켜주는 새로운 교집합의 공간이며, 파빌리온은 국가별 전시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총 9개국이 참가했다.
저는 여길 다녀왔습니다.
나는 당일치기로 광주를 다녀왔고 본 전시관인 광주 비엔날레 포함 총 5곳을 방문했다. 아무래도 광주 전역에 있는 모든 전시관을 둘러보기엔 시공간적인 한계가 존재했다. 다음 비엔날레를 가게 된다면 최소 2일을 지내면서 천천히 보고 싶다. 내가 방문했던 전시를 짧은 감상과 함께 순서대로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짧게 써놨던 메모와 사진들을 기반으로 다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추천하는 작가는 따로 적어 놓겠다. 나중에 더 찾아…보세요.
1. 무각사
무각사는 5.18 기념공원 안에 자리 잡은 절로 1971년 창건된 이후 광주 전역의 시민들에게 수행과 참선의 장소를 제공해 왔다. 절 안에는 ‘로터스 아트스페이스’라는 이름의 전시 공간이 있었으며, 총 여섯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전형적인 ‘미술관’이라는 장소를 탈피하여, 공간만으로도 지역성과 주제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비엔날레의 묘미라는 생각이 드는 장소였다. 특히, 아침 특유의 살짝 가라앉은 공기와 김현수 작가의 ‘백련’은 절의 분위기를 한층 오묘하게 만들었고, 개인적으로 처음 보는 형태의 법당은 그 웅장함에 감탄만 나왔다. 무각사를 첫 번째 행선지로 정한 것이 이번 비엔날레를 통틀어서 가장 잘한 일 아닐까 싶다.
찾아보세요: 류젠화
2. 광주 비엔날레 본관
첫 방문이라 그런 걸지 모르겠지만, 비엔날레 본관 건물이 아파트 단지-주거 지역 바로 옆에 존재한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본 전시는 총 4가지 소주제로 나뉘어져 있는데, ‘은은한 광륜 - 조상의 목소리 - 일시적 주권 - 행성의 시간들' 순으로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불레베즈웨 시와니
전시를 여는 제1전시장은 ‘들어서며’라는 이름으로 앞으로 전개될 작품과 전시의 방향에 대해 보여준다. 관람객이 최소한의 불빛과 함께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물을 스크린으로 삼아 남아프리카와 광주를 잇는 듯한 영상작품이 이번 전시가 어떻게 전 세계적인 문제를 하나의 흐름으로 담고자 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나선형의 통로를 지나면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인생은 은은한 광륜처럼 첫 각성의 시간부터 마지막까지 우리를 감싼다’는 말에서 영감을 받은 제2전시장 ‘은은한 광륜’ 이 시작된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에 기반한 지역성과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이번 전시관은 광주 출신의 원로작가부터 해외 작가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팡록 술랍(Pangrok Sulap)과 오윤 작가의 목판화와 같이 민주화 운동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작품도 있지만, 강연균 작가의 ‘화석이 된 나무’ 추상화 연작과 같이 아픔에서 시작하여 광주라는 넓은 지역에 관해 이야기하는 듯한 작품들도 있다.
좌(상): 엄정순 / 우(하): 유지원
이번 비엔날레의 대표작품이라고 불리는 엄정순 작가의 ‘코 없는 코끼리’와 광주 출신의 유지원 작가의 ‘한시적 운명’을 통해서는 광주 정신이 어떻게 미래에 다변화되고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제3전시장은 ‘조상의 목소리’라는 소주제로 전시장이 구성되었고, 말 그대로 전통과 주술적인 작품이 돋보였다. 각 지역의 방식만으로 제작된 작품, 혹은 한 가지 주제 아래 여러 지역의 전통을 혼합한 작품 등 새로운 시도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주제에 대한 흥미도가 조금 떨어졌지만, 다른 전시관보다도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이 매우 많았다. 주제에 대한 편견을 깨는 전시 방식 덕분에 지루함을 느끼진 못했다.
세 번째 소주제는 ‘일시적 주권’이다. 주제에서 그대로 드러나듯, 제4전시장은 탈식민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비서구권 비엔날레로써 탈식민주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른다. 앞선 전시관과 다르게 탁 트인 공간으로 이루어졌으며, 설치물에 가까운 작품들도 많았다. 바다가 여러 강줄기를 품듯, 현대사회 역시 이젠 한 가지 민족성으로 대표될 수 없는 혼합된 정체성이 너무 많다. 디아스포라 혹은 권력-식민주의로 인해 뒤집힌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일본인 고이즈미 메이로(Koizumi Meiro)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고려인의 삶을 조명한 ‘삶의 극장’은 일본인의 관점인 것도 독특했지만, 실제 고려인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고려극장을 재해석해 기록한다는 점에서 뜻깊게 다가왔다.
좌(상): 유마 타루 / 우(하): 압바스 아크하반
마지막 ‘행성의 시간들’ 전시가 담긴 제5전시장은 미래를 담고 있다. 전시를 보고 나니, ‘정치적인 부분이 사라졌다. 비엔날레의 의미가 퇴색되었다.’라고 평가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웬만한 담론을 다 담고자 하여 조금 부족해진 감이 있긴 했지만, 작품 각각을 보았을 때가 오히려 재밌었다. 서로 다른 직조방식의 천 조각을 연결한 유마 타루(Yuma Taru)의 ‘천과 같은 혀’ 작품이나, 인공 폭포와 그린 스크린을 조합한 압바스 아크하반(Abbas Akhavan)의 ‘루프’는 작품 소재도 재밌었지만, 직관적인 주제 역시 흥미에 한몫했다.
찾아보세요: 킴 림
3. 광주시립 미술관 (네덜란드 파빌리온)
기후 범죄 재판소라는 주제로 라다 드 수자(Radha D'Souza)와 요나스 스탈(Jonas Staal)이 기획한 전시이다. 재판정을 직접 만들어 놓은 전시장과 더불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흥미로웠다. 누가 환경오염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법으로 제정한다면 환경오염과 미래 세대의 권리는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가. 기후 위기와 전쟁 등의 문제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자본주의와 권력에 다다르게 된다. 라다 드 수자가 한국에서 모의 법정을 열었을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여러분들은 먼저 살인하고 나중에 보상하는 법을 허용하겠느냐. 정부와 기업이 환경을 파괴한 후에 이를 고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는 모습에 질문해야 한다.
찾아보세요: 요나스 스탈
4. 이이남 갤러리 (스위스 파빌리온)
이이남 갤러리는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며, 폭염을 피해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스위스와 한국의 젊은 사진작가 8명으로 이루어진 이 전시는 앞선 전시들 보다 설명 접근성 측면에서 불친절했지만, 가장 인상깊게 남았다. 도시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사진이 담아내는 순간의 한계, 디지털 전환에 적응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방식을 사진과 영상작업으로 풀어냈다. 김도영 작가의 작품은 문화역 서울 284에서도 봤는데, 사진 작업으로 다시 보게되어 반갑게 느껴졌다.
찾아보세요: 김도영
다녀온 후기입니다.
광주에 가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동시대 미술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비엔날레는 언제나 가보고 싶은 곳이다. 개인적으로 비엔날레는 전 세계의 작가들과 그들의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축제이면서 미술을 통해 사회적 의제를 던질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왔다. 또,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규모보다 훨씬 크기도 하고, 내겐 생소했던 비서구권의 작가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특히 동남아권 작가들에 대해 최근 들어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고, 작품 형식,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내겐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광주라는 곳이 갖고 있는 지역성이 어떻게 해외작가에게도 표현이 될지 궁금했었다.
굳이 아쉬운 점을 뽑자면, 전시의 메시지가 두루뭉술하다는 점이다. 많은 작품을 보기 위해서 왔다지만, 정말 큐레이팅이 잘 된 전시를 보는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미래에 대한 큰 비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과거의 무언가를 깊게 파고든 느낌도 아니었다. 뭐 의도한 것이라면 정말 잘된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도, 섬세함이 정말 많이 느껴졌다. 이번 비엔날레의 작가-작품 정보 부자재들은 모두 친환경적인 소재로 만들어졌고, 작가 역시 그들의 국적으로 정의 되지 않고, 활동하는 곳으로 소개되었다.
내년에도 광주 비엔날레가 열린다고 한다. 비엔날레와 광주 모두 정말 흥미로운 곳이고 아직 많이 가보지 못한 곳에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내년에 다 같이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