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래 라디오PD로 일을 하다가 지난해 <시사IN>에 입사하였습니다. 사회와 가까이 맞닿아있는 기자라는 직업은 자신을 연마하고 이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님은 이 생각에 동의하시나요(웃음)? 이 세상에는 기자도 많고 기사도 많습니다. 굳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기자가 된 사람이다 보니, ‘기자가 되는 일’ 혹은 ‘기자가 할 수 있는(해야 되는) 일’ 에 대해 여전히 고민합니다. 그러다 제가 좋아하는 슬램덩크에 생각이 이르렀습니다.  

최근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이 주목받았습니다. 슬램덩크의 어떤 점이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 걸까요? 어쩌면 슬램덩크에 ‘있는’ 것 말고 ‘없는’ 것들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청춘들의 고군분투에는 요즘 콘텐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투나 복수, 계략이나 냉소가 없습니다. 사실 이런 감정과 반응들은 쉬운 것들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냥 두면 약한 방향으로 흘러가니까요. 그것을 억지로 거슬러가며 더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기위해 노력하고 그런 삶을 살기로 선택하는 의지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감동을 느낍니다. 이 풋풋한 10대들은 정직한 규칙 안에서 조금 더 뛰고, 조금 더 연습하고, 조금 더 땀 흘리며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리고 승부와 상관없이 한걸음씩 더 멋진 사람이 되어갑니다. 

이 작품에 없는 다른 것은 주인공의 성장을 위해 쓰고 버려지는 인물입니다. 전국최강 산왕공고와 북산고의 치열한 승부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이지만, 북산고 스타팅멤버 5명 외의 다른 캐릭터들도 주연만큼 눈부십니다. 작가가 이들을 허투루 다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벤치 멤버들도, 산왕공고를 비롯한 이전에 북산고와 겨뤘던 다른 학교 선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의 서사 안에서 이들은 ‘악역’없이 경쟁합니다. 누구도 쉽게 지금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을 작가는 거듭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패배 후에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힘을 주며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만화책에서 북산고 5인 중 서사가 가장 빈곤했던 송태섭을 영화 속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작가가 작품에서 유지해온 태도의 확장일 겁니다. 

빛나는 누군가를 벤치에서, 관객석에서, 책 밖에서 응원하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저는 주인공의 마음 말고 그런 마음들이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지길 바랍니다. 그렇게 누군가를 기꺼이 응원하는 마음을 통해 우리는 내 삶의 한 부분이 같이 환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아주 순수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고, 그래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됩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어떤 이들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 자기 마음에 빈자리를 넓히는 일이라니 말입니다. 슬램덩크는 저에게 이런 마음을 떠올리게 해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기자들마다 쓰고자 하는 기사는 다를 테지만 저는 이런 마음들에 대한 기사를 쓰고 싶다고 늘 생각합니다. 벤치에 앉아있지만 지금까지 성실하게 자신의 몫을 해온 사람들. 누군가 그들의 현재만을 보고 재단하려고 할 때 그간의 역사를 말해 주는 기사가 그래서 반갑습니다. 혐오나 낙인 같은 빠른 판단 대신 타인이 속한 맥락을 숙고하고 판단을 유보하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기사에서는 힘이 느껴집니다. 기자도 그만큼 집요하고 성실하게 고민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록들을 통해 독자들의 마음속에 어떤 이들이 초대받을 때, 우리 사회에 빈 의자가 더 많아 질 거라 믿습니다. 누군가를 밀어내야 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의자놀이’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일 겁니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그저 공동체에 대해 냉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저는 <시사IN>에서 여전히 그런 기사들의 가능성을 만납니다. 

<시사IN>을 응원해주시는 님과, 이곳의 동료들이 ‘조금 더 뛰고, 조금 더 매달리고, 조금 더 땀 흘리며’ 공동체에 대한 저마다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힘이 됩니다. 이것 참, 여전히 저는 이런 것들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사회를 움직이는 무대 위의 플레이어로, 때로는 관객으로, 때로는 팬으로(!) 마음을 모아주시는 후원독자 님께 감사합니다. 

아차, 슬램덩크에 없는 마지막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완성’입니다. 주인공들이 속한 북산고는 전국대회에서 산왕공고를 이깁니다. 영화로도 제작된 에피소드죠. 하지만 만화책에는 이후의 이야기가 이렇게 이어집니다. 북산고는 다음 경기에서 패배하고 전국 최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합니다. 강백호는 재활병원에 가고, 3학년이었던 채치수와 권준호는 대학을 준비하기 위해 농구부를 탈퇴합니다. 이들은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요? 작가는 답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좋은 농구선수가 되었을 테고 누군가는 평범한 이웃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과 동료를 믿으며 한껏 뛰었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그들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나 역시, 내 이웃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라는 당연한 사실에 덤으로 마음도 설레고 말이지요. 그런 이웃시민들을 만나는 일에 경력직 ‘풋내기’ 기자인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누군가 제게 ‘당신의 영광의 시기는 언제였가요?’라고 묻는다면 그 답에 <시사IN>이, 그리고 <시사IN>이 존재하도록 해주는 님이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마감하러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