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대단하게 뭘 딱히 바꾼 건 아닙니다. 하루의 시간 관리와 회고법을 손보고, 중요해 보이는 것들 때문에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미루는 현상과 싸우기로 한 정도에요.
그날 이후 6장의 주간 일정표를 넘기면서, 그리고 이렇게 님에게 편지를 쓰면서 다시 되돌아봅니다. 6주 전에 비해 마음이 느슨해졌나? 어쩌면요. 느슨하게 저한테 스며들었다고 할까요. 새벽 세 시 반에 죽죽 글을 적어 나가던 6월 16일의 감정을 그대로 간직할 수는 없으니까요. 불씨가 꺼지지 않게 아주 짧게라도 그때의 글을 돌이켜 보는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요.
그리고 그사이 새로운 일들이 줄줄이 생기고 있습니다. 열심히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아직 문이 열린 건 아니지만 인터폰에 얼굴이 비친 정도랄까요. 오, 대답하는 상대가 있긴 있었구나! 이런 느낌입니다. 문이 활짝 열리지는 않았지만, 작은 신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 움직일 힘이 생겼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날은 남은 리코타 소스를 처리하기 위해 파스타를 만들었습니다. 메뉴 큐레이션 업무를 하면서 샘플링을 하다가 리코타 치즈 소스가 너무 많이 남았거든요. 처음이라 양을 가늠하지 못하고 모자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또 너무 많이 만들어버린 거 있죠. 바로 차갑게 서브해야 맛있는 소스로 만든 건데, 또 집에는 마땅히 찍어 먹을 게 없어서 그냥 파스타에 넣어보기로 했습니다. 파스타는 뭐든 맛있잖아요.
마늘과 파를 약불에 볶아 향을 내고, 리코타 치즈 소스를 죽 짜서 파스타를 볶았습니다. 꾸덕한 질감으로 만든 거라 파스타와도 쫀쫀하게 엮일 줄 알았더니 웬걸, 열에 그대로 녹아버려서 묽은 크림소스가 되어버린 거 있죠. 어쩐지 느끼할 것 같아서 레몬 제스트를 올려봤는데 따뜻한 리코타 소스와 잘 어우러졌어요. 크림처럼 묵직한 맛은 없지만 그래도 파스타 면발에 착 감기더라구요.
생각해 보면 이번 파스타도 그랬습니다. 실패라고 하기엔 맛있었고, 성공이라고 하기엔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그저 남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이어 붙인 한 끼였을 뿐인데 의외로 만족스러웠어요. 요즘의 하루도 딱 그 정도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창하게 달라지는 것보다, 남은 마음을 그날그날 다른 방식으로 이어 붙이는 일. 어쩌면 결국 불씨를 지키는 일도 거창한 사건보다는 이런 사소한 반복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남은 소스로 파스타를 만들고, 짧게라도 예전의 글을 다시 읽고, 내일 해야 할 일을 적어두는 일.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지기보다 이런 것들 사이에서 조금씩 방향을 틀어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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