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충주 하면 사과, 전남 무안은 양파, 경북 상주는 곶감. 지명과 함께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역의 특산품들입니다. 그럼 강원도를 대표하는 특산, 뭐가 떠오르시나요? 단연, 옥수수와 감자입니다. 최근 강원도에 취재를 갔다가 지역 특산품인 감자를 활용해 맥주를 만들어 파는 젊은 스타트업 대표를 만났습니다. 왜 남들처럼 수도권으로 가지 않고 지역에 남아 창업했는지 물었는데, 뜻밖의 답을 들었습니다.
‘청년들이 지역에 정주하지 않고 떠난다’, ‘인구감소로 지역이 소멸하고 있다’고 걱정하는 요즘, “수도권보다 지방이 더 낫다”는 29살 청년 대표의 얘기는 지역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로컬이 가진 정체성, 고유함을 시대 감성에 부합하게 구현해 내면, 지역 안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강원도 춘천에서 시민들과 함께 그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Q. 춘천이 고향이라고 들었습니다. 나고 자란 춘천의 고유함은 무엇인가요?
바깥에서 볼 때 춘천은 자연도 좋고, 사람들도 멋진 것 같아 보이지만, 안에서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지역을 좀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춘천의 면적이 1,116 ㎢거든요. 서울의 한 1.8배 정도 되는 큰 행정면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구는 30만 명이 조금 안 되고요.

그러니까 이렇게 큰 면적에서 작은 규모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도시가 춘천인데, 춘천시 행정면적의 한 18% 정도가 물 환경 관련 규제 지역이에요. 또, 춘천 시내 한복판에 미군 기지가 있었어요. 거기에 작은 활주로가 있었는데, 전시(戰時)에 활주로를 써야 된다고 해서 춘천 시가지의 원도심 전체가 층고 제한이 있었어요. 도시로서는 밀집하거나 확장하는 데에 좀 제한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예전처럼 산업이나 제조업으로 지역 활성화가 되는 시절은 아니다 보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전에 위기였던 요인들을 기회로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지역에 계신 분들하고 같이 얘기하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 규제가 만든 좋은 자연 자원들을 새로운 자원으로 만들어내고, 지역이 가지고 있는 교육 인프라나 인력들을 가지고 새로운 실험들을 해보자, 그런 고민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래서 “춘천이 멋지다.”라고 아직까지는 얘기할 수 없지만, 멋지게 변화하는 중인 것 같고요. 그런 기회들을 다른 도시와 다르게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현재 몸담고 있는 사회혁신센터는 춘천 시민들 차원에서 지역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해 고민해 보니 뭐가 다르던가요?

사회혁신센터는 지역에 있는 문제들, 지역의 과제들을 주민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새롭고 효과적인 방법들을 고민하고, 주민들과 같이 활동하는 기관인데요. 행정안전부와 춘천시가 공동으로 협력해서 2018년 설립돼 6년째 사업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불평등이나 기후위기, 이런 문제를 시민들이 해답을 제시하기는 너무 어렵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지향하는 바는 시민들하고 같이 고민할 때는 큰 문제들을 작은 조각들로 나눠서 접근합니다. 그러니까 노인 빈곤 문제를 접근할 때도, 빈곤 노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 예를 들면, 폐지 줍는 어르신들로 이 큰 문제를 좁혀서 그분들이 운용하는 리어카나 이동 수단들을 어떻게 개량할 것인가?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 이렇게 더 작은 문제로 이어지거든요. 이렇게 작은 문제로 내려갔을 때 실질적인 해답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출처: 춘천사회혁신센터 홈페이지
Q. 센터가 입주해 있는 공간의 이름이 ‘커먼즈필드(Commonzfield)’더라고요. 공동의 공간, 이런 느낌의 이름인데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요?

‘커먼즈필드’라고 하는 공간 브랜드는 춘천만이 가지고 있는 건 아니고요. 저희는 커먼즈필드 춘천이고, 2018년부터 이러한 소통협력공간이 정책 사업으로 만들어졌어요. 소통협력공간 사업은 지역의 과제들을 시민들과 해결하길 원하는 지자체들이 공모해 커먼즈필드 춘천 이외에 커먼즈필드 전주, 제주, 대전, 청도, 군산, 이런 곳이 선정됐어요.


각자 모양도 다르고 하고 있는 사업도 조금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지역의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지역을 활성화하려는 과제를 갖고 있다 보니, 이런 활동에 시민들이 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과제를 해결한다는 뜻에서 커먼즈필드라고 하는 공통 브랜드를 만들어서 쓰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커먼즈필드는 시민들과 같이 하는 공간, 시민들하고 같이 해결하는 지역, 그런 뜻을 담고 있다고 이해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춘천 시민들의 소통협력공간 ‘커먼즈필드 춘천’의 모습 >
출처: SBS 미래팀
Q. 6년 간 지역에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 왔는데, 그중에서도 미래세대를 위한 특별한 프로젝트가 눈길을 끌더라고요.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이건 어떤 취지의 프로젝트인 건가요?
지역에 있는 중간지원조직이 같이 모여서 고민을 하다가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그러니까 누군가가 나를 응원해 주는 음료 한 잔을 마주친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이런 단순한 생각이었고요. 저희가 둘러보니까 청소년들이 지역에 있는 카페들을 많이 이용하는데, 실제로 카페의 운영자들은 청소년들을 환대하고 있는가? 그건 약간 미지수였던 것 같아요. 춘천뿐만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많은 청소년들이 카페를 이용할 텐데, 카페가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지역사회의 공간으로서 환대하고 응원하는 메시지와 문화가 만들어진다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시작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지역에 있는 많은 카페들에 동참해 주십사 캠페인을 벌였고, 지금은 한 30개 정도의 카페들이 참여를 하고 계세요.

운영 방식은 간단합니다. 취지에 공감하는 선배 시민분들이 음료를 기부해 주시고요. 지역에 있는 청소년들은 어떠한 차별이나 구분 없이 자유롭게 이 음료를 이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1년에 1천7백 잔 정도를 춘천 시민분들, 방문자분들이 기부를 해 주시고요. 지역에 있는 청소년들이 1천7백 잔을 1년에 다 소진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시민들이 음료를 기부하면서 응원 메시지를 남기면,
청소년들은 기부된 음료를 마시며 감사 메시지를 남겨 화답한다.>
Q. 많은 지역들의 큰 고민은 청소년들이 자라 청년이 되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빠져나간다는 점인데요. 춘천은 지역 내에 대학도 여럿 있어서 청년층 비중이 비교적 높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는 어떤 상황인가요?

춘천시가 한 30만 명 정도의 인구 규모를 가지고 있는데, 이 30만이 조금 안 되는 인구 중에 5만 명 정도는 지역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있는 대학생들이에요. 춘천이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여러 가지 규제나 환경에 대한 이슈들 때문에 산업 기반이나 제조 시설들이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자리가 많지는 않은데요. 대신에 문화, 교육 인프라들이 좀 많이 들어왔고, 그 결과 대학이 6개나 있습니다. 중소규모의 도시 중 대학이 많은 편인데요. 재학생 수만 한 4만 명 정도 되니까 인구 29만 정도의 도시에서 4만 명의 청년들,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있다는 건 대단히 큰 중요한 자원이죠.


그런데 일자리가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다 보니 졸업을 하면 일자리를 찾아서 수도권으로 나가야 돼요. 4학년이 졸업하고 나가면 또 1학년이 채워집니다. 그래서 항상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지역에 있지만, 좋은 일자리가 없다 보니 계속 유출되고, 또 새로 유입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지역에 있는 20대 초반의 대학생 그룹들이 유학 오는 친구들도 많기 때문에, 전부 다 주소지를 춘천에 옮겨 놓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청년 그룹들을 어떻게 활용해서 지역소멸이나 지역 활성화에 대응할 것이냐, 춘천시가 고민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대학 졸업 후에도 청년들이 떠나지 않고 머물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계세요?

애착을 가지고 지역에 남거나 정주를 해도 좋고요. 외지에 나가서 사는데, 생활인구나 관계인구(참고: SDF 다이어리 EP.195 '관계인구', '생활인구'를 아시나요?)로서 이 지역에 자부심이나 호기심을 가지고 유입될 수 있도록 하는 사업들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그 사업 중에 하나가 춘천에 있는 원도심 마을을 ‘로컬 메이커 마을’로 변화시키는 사업들을 하고 있어요. 거기에 이제 청년 그룹들, 지역의 감자를 가지고 맥주를 만드는 기업들, 지역의 영감을 담은 비누를 만드는 기업, 지역의 나무를 가지고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굿즈를 만드는 팀들. 이런 팀들이 계속 관심을 가지고 들어오고 있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저희가 지역에 있는 청년들이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도 지역 안에서도 재미있고 의미있고 흥미로운 일들을 할 수 있는 계기들을 만들어서 계속 관계 맺게 하도록 하는 사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춘천사회혁신센터가 진행하고 있는 'Made by 약사천' 홍보 포스터. 춘천 시내 하천인 약사천 주변 생활인구와 관계인구를 늘려 보려는 프로젝트로, 춘천의 고유성을 담아낼 로컬 메이커 그룹을 모집해 운영 중이다.>
Q. 지역과 관련된 논의들을 보면, 거점 도시를 많이 얘기하고, 지역 간 통폐합처럼 행정구역과 관련된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한국 사회는 지역의 위기, 지역의 혁신, 지역의 변화를 얘기하면서 정책이 전부 중앙 주도로 운영이 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중앙부처 또는 수도권에 있는 대기업들을 좇아가고 추격형으로 따라가다 보면 우리 방식이 만들어질 것 같지는 않거든요. 또 지역의 입장에서도 좀 개방적으로 다른 지역하고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왔다 갔다 하고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야 되는데, 일종의 ‘잠금 효과’[1]들을 가지고 있는 지역들도 많은 것 같아요. 그냥 아는 사람과 우리끼리, 타 지역 사람들은 배척하거나 배격하고, 그러다 보니 또 혁신이 만들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수도권이나 중앙을 좇고 추격해 나가는 방식에서 어떻게 좀 다른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다음 다른 지역이나 다른 사람들, 다양한 시도들을 어떻게 개방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이 두 가지가 ‘로컬다움’을 만드는 데에 핵심적인 중요한 태도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 잠금 효과는 특정 물품이나 서비스를 한 번 이용하면 그것에 익숙해져서 다른 서비스를 선택하는 것을 스스로 제한하는 현상을 말한다.
Q. 지역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아야 할까요?

‘지방이 사라지고 있다’, ‘지역이 위기다’라고 하는 경고들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잖아요. 어떤 분들은 ‘지방’이라고 하는 건 서울을 중심으로 놓고 나머지를 변방으로 보는 권위적인 개념이니까 이걸 ‘지역’으로 바꿔야 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그런데 ‘방’을 ‘역’으로 글자 하나 바꾼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잖아요. 여전히 기업의 80% 이상의 본사가 서울에 있고, 대학의 50% 이상이 서울에 있고, 인구의 50%도 서울에 있고. 수도권 중심이면서 또 과밀의 문제를 품고 있는 현실이 그렇게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전에는 이사라고 했잖아요. 학업이든 직장이든 자기 생활 거처를 옮기는 걸 이사라고 했는데, 요즘은 ‘이주’라는 말을 쓰는 것 같아요. 저는 이사와 이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이사는 물리적 공간을 옮기는 거라면 이주는 정체성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아요. 저 지역이 너무 살고 싶은데? 잘 모르지만 되게 매력적인데? 저 지역에 가면 환대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것이 충족됐을 때 이주를 결정하는 것 같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지역의 정체성과 환대, 또는 새로운 시도들을 반기는 문화와 태도들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가, 사실은 그게 지역소멸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방식이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요즘은 ‘로컬’이라는 말을 쓰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지방이나 지역이 권력의 문제나 지리적인 문제를 다룬다고 한다면, 로컬이 다루는 문제는 방식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방식을 분명하게 만들 때, 다른 지역에 계신 분들은 호기심을 갖고 찾아볼 거고, 지역 안에 있는 분들은 떠나지 않고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게 로컬이 갖고 있는 지방과 지역과는 다른 관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로컬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자원을 어떻게 잘 보여줄 것인가, 춘천에서 그 사례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특산품인 감자로 맥주를 만든 청년들은 완성품을 만들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감자로 맥주를 만든 선례가 귀하다 보니, 수차례 자체 실험을 진행해 데이터를 모으고, 업계와 연구기관을 발로 뛰며 노하우를 전수받았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숱한 도전을 통해 성공을 거뒀지만, 청년들의 시도는 실패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성공보단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았죠. 

춘천을 비롯해 각 로컬에서 추진되고 있는 사회혁신 실험들도 비슷합니다. 처음 가보는 길이니 쉽지 않고, 변화는 더딜 겁니다. 로컬의 숱한 시도와 실패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것인지. 로컬을 살리기 위한 청년들의 도전과 실험에 어떻게 용기를 북돋아줄 것인지. 이런 문화적 환경이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매력적인 로컬’, ‘고유한 로컬’이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보며 이번주 뉴스레터 마칩니다.
글: 이혜미 기자 par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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