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웠던 국가관 - 프랑스, 레바논 무니라 알 솔, A Dance with her Myth, 2023. 캔버스에 오일, 차콜, 콜라주, 200 x 210 cm. 사진 작가 제공; Sfeir-Semler Gallery Beirut/Hamburg. © LVAA. Photo: Quinn Oosterbaan. |
|
|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방대한 세계관을 이어가고 있는 ‘스타워즈’.
첫 트릴로지의 마지막 편인 ‘제다이의 귀환’을 발표한 1983년 조지 루카스 감독은 자신의 집으로 79세의 학자를 초대해 영화를 보여주는데요.
그는 ‘20세기 최고의 신화 연구자’로 꼽힌 조지프 캠벨(1904~1987). 루카스는 캠벨이 해석한 신화들 덕분에 ‘스타워즈’를 쓸 수 있었다며 캠벨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고전이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탐구와 시대를 뛰어 넘는 공감으로 살아남는 것이라면, 신화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예술 작품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번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눈길을 끈 두 국가관의 모습, 그 속에 드러난 신화의 끊임없는 생명력에 관해 소개합니다. |
|
|
프랑스관 줄리앙 크루제 개인전, ‘아틸라 폭포. 녹색 봉우리 발치에 있는 그 시작은, 차고 지는 달의 눈물로 우리를 담그었던 푸른 심연의 큰 바다로 흘러 가리라’(Attila cataracte ta source aux pieds des pitons verts finira dans la grande mer gouffre bleu nous noyâmes dans les larmes marées de la lune). 베니스비엔날레 제공. |
|
|
지난 번 뉴스레터에서 독일관을 소개했는데요. 사실 베네치아 자르디니 공원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감각적으로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프랑스관 이었습니다.
전시장에 입장하면 부드러운 형광색의 설치 조형물이 곳곳에 매달려 있고, 귀로는 리드미컬한 타악기가 중심이 되는, 그러나 어딘가 현대적인 음악이 흘러 나옵니다. 그리고 코로는 말린 라벤더를 재료로 한, 향수와 약재 그 사이쯤에 있는 향이 느껴졌습니다. |
|
|
브론즈로 만들어진 왼쪽 조각 속에 말린 라벤더를 재료로 한 물이 담겨 있고, 이 물의 향은 실을 타고 번져나갔다. 사진: 김민 기자 |
|
|
이 전시는 카리브해 출신 흑인 최초로 프랑스관을 대표하게 된 예술가인 줄리앙 크루제(38)의 개인전입니다.
크루제는 비교적 젊은 나이로 프랑스관 대표 작가가 되었는데, 이미 2021년 마르셀 뒤샹상 후보에 오르며 프랑스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크루제는 이번 전시에서 아프리카와 유럽, 과거와 미래, 자연과 도시 등 여러 상반되는 요소를 섞어 어딘가 익숙하지만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
|
|
오른쪽 보이는 목조각. 사진: 베니스 비엔날레 제공 |
|
|
이를테면 전시장 속 나무 조각은 어떤 면으로 보면 아프리카 목조각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감각적인 마무리로 토속적 요소를 제거해 대도시 어딘가에 놓인 세련된 조각으로도 보이죠. 향과 음악이 내뿜는 이미지도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전시의 제목은 ‘아틸라 폭포, 푸른 봉우리 발치에 있는 그 시작은 푸른 심연의 큰 바다로 흘러 가리라’. 프랑스어로 읽으면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시적인 문구입니다.
|
|
|
이렇게 젊은 작가 크루제는 자신이 자란 카리브해의 환경과 유럽에서의 예술 교육을 감각적으로 활용해 시각, 후각, 청각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런 감각이 단순한 기교나 흥미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요소 중 하나가 신화와 사회에 대한 관심입니다.
크루제는 영상 작품에서 그리스 조각상이 위 아래가 뒤집힌 채 눈물을 흘리며 물 속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의 주제가 유럽 중심의 예술관에서 벗어나보자고 제안한 것에 호응하는 대목입니다.
이 영상을 보고 전시장을 돌아보면 전체가 물 속에 잠긴 듯 연출됐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스는 물론 수많은 신화와 문화적 모티프를 흐르는 물 속에 담그고 유연하게 보려는 목소리가 읽혔습니다. |
|
|
프랑스관 줄리앙 크루제 개인전, ‘아틸라 폭포. 녹색 봉우리 발치에 있는 그 시작은, 차고 지는 달의 눈물로 우리를 담그었던 푸른 심연의 큰 바다로 흘러 가리라’(Attila cataracte ta source aux pieds des pitons verts finira dans la grande mer gouffre bleu nous noyâmes dans les larmes marées de la lune). 베니스비엔날레 제공. |
|
|
신화 속 요소를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것은 아르세날레 전시장에 마련된 레바논관 작가 무니라 알 솔(46)이었습니다.
프랑스관보다 규모는 작지만 드로잉부터 가면을 모티프로 한 조각, 천정에 걸린 캔버스 회화, 그리고 가운데 배를 활용한 설치까지 약 40여 점으로 알차게 구성한 전시입니다. |
|
|
레바논관 무니라 알 솔 개인전, A Dance with her Myth. 베니스비엔날레 제공 |
|
|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회화 작품에서 바닥에 누운 여인이 소가 그려진 항아리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그림은 레바논과도 연관이 있는 그리스 신화 속 ‘에우로페의 납치’를 작가가 자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입니다.
‘에우로페의 납치’는 페니키아의 공주 에우로페를 흰 소로 변신한 제우스가 꼬드겨 바다를 건너 크레타섬으로 데려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소의 등에 올라탄 채 바다로 향하는 에우로페의 모습은 티치아노, 렘브란트 등 미술사에서 수많은 거장들이 다루었던 소재입니다.
|
|
|
레바논관 무니라 알 솔 개인전, A Dance with her Myth. 사진: 김민 |
|
|
알 솔은 이런 에우로페를 납치를 당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소의 머리를 갖고 노는 과감한 인물로 표현합니다.
그녀의 발에는 하트 모양이 그려진 깃발이 꽂혀 있고, 바닥에 편히 누워 관객을 응시하고 있죠. 영상 작품에서는 ‘멋진 소를 찾은 줄 알았더니 염소였네’라는 대목이 나오기도 합니다. |
|
|
레바논관 무니라 알 솔 개인전, A Dance with her Myth. 사진: 김민 |
|
|
또 가면 모양의 조각 작품은 신화 속 등장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귀걸이로 플라스틱 줄자가 걸려 있거나 테이크아웃 커피 잔, 바람개비 등 현대의 오브제들이 매달려 현재와 과거를 섞고 있습니다.
알 솔 역시 크루제처럼 유럽인들이 익숙한 신화에 기대면서 그것을 낯설게 만들며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
|
레바논관 무니라 알 솔 개인전, A Dance with her Myth. 베니스비엔날레 제공 |
|
|
신화가 이렇게 현대 미술가들에게도 끊임 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은, 그것이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다듬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결말이 있는 교훈적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 탐욕, 좌절, 희망 등 여러 가지 단면을 수수께끼처럼 신화는 풀어내죠.
그 틈새를 파고들어 다르게 만들거나 비틀기를 하면서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
|
|
※ 의견 보내기를 클릭하시면 답변 폼으로 연결됩니다. |
|
|
😊: 지난 뉴스레터를 보고 보내주신 의견을 소개합니다.
🔸선구자들이 서로 알아본다는게 놀랍네요. 자기와 다른 분야라도 인정하고 지지해주는 부분이 존경스럽습니다..
👉 예술가 커뮤니티가 살아남는 방식에 대해 저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인상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타데우스 로팍은 자주 지나는 길이라 오픈 바로 다음 날 전시를 보게 되어 기뻤는데요, 이 갤러리는 지난 라우센버그 전시도 그렇고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의 중요한 작업을 종종 볼 수 있어 좋더군요. 요셉 보이스의 초상만으로 꾸려진 전시가 이렇게 멋지다니, 앤디 워홀은 물론 너무나 중요하고 유명한 예술가이지만 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전시였습니다. 게다가 보이스-워홀에서 로팍 대표-바스키아까지 이어지는 네트워크라니! 읽어내려가다 '장 미셸 바스키아'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정말 놀랐는데요, 멋진 이야기까지 더해 전시를 더 잘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예술인들의 네트워크가 지금도 어디에선가 형성되고 있을거라 생각하면 즐겁습니다. (임지현)
👉 전시 감상과 더불어 뉴스레터까지 깊이 읽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저도 창의적인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무언가 든든한 힘을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 일찍 뉴스레터를 읽으며 출근했는데 첫 이미지가 7000그루의 오크나무 사진이라 너무 쾌청하고 좋았어요:) 조화롭기 어려울 것같은 두 작가의 예상못한 콜라보가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뉴스레터를 읽고 곧바로 보이스와 그의 작품에 대해 구글에서 검색해보았네요!
👉 보이스의 다른 멋진 작품을 만나는 시간이 되셨길 바랍니다 😊
🔸아주 좋아요. 감사
|
|
|
오늘의 '영감 한 스푼'이 전해드릴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저의 인스타그램(@mini.kimi)으로도 감상, 의견, 공유 등등의 이야기 나누어주세요.
김민 드림.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