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배경에서 올해 미·중 관계가 해빙 분위기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중국은 한동안 접어둔 듯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카드를 만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태평양 등 12개국으로 이뤄진 다자간 무역 협상인 CPTPP는 중국이 당면한 핵심 통상 과제다. 수년 동안 관계를 끊다시피 해온 중국과 호주가 최근 관계 회복의 수순을 밟아가는 배경이기도 하다.
11월 초 베이징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호주에게 CPTPP 가입 희망 의사를 전달했고, 호주는 중국에 덤핑 관세의 철폐를 요구한 바 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 시기를 전후해 중국은 CPTPP의 2,300여 개 모든 조항에 걸쳐 전면적이고 깊이 있는 분석과 연구, 평가 작업을 진행했다. 중국이 취할 수 있는 개혁 조치의 범위와 깊이에 대해 정리하고, 국내 관련 법률 법규도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5개의 문턱 넘으려 ‘하이난 자유무역항’활용할 듯
중국이 이렇게 하는 것은 다자간 통상 분야에서 대외 무역의 돌파구를 연다면 단기간에 믿음직한 경제 엔진을 추가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물론 CPTPP 가입까지는 뛰어넘기 어려운 5개의 문턱이 있다는 것을 중국은 잘 알고 있다.
중국 앞에 놓인 5개의 문턱은 △데이터의 자유로운 흐름 및 인터넷의 자유로운 개방; △비시장적 행위 철폐; △정부조달 시장 원칙적 개방(외국 기업 비차별 대우); △독립 노조 설립; △지적재산권 보호 등이다.
일단 중국은 정책적 자세 측면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CPTPP 가입 신청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듯한 모양새다.
눈에 띄는 점은 중국이 일부 지역부터 점진적으로 개방하는 방식을 골자로 한 전략으로 협상 테이블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개혁개방 초기 일부 지역에 경제특구를 먼저 열고 이른바 ‘점선면(點線面)’ 전략을 통해 점진적으로 개방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예를 들면 ‘조건부 자유무역시험구’ 즉 ‘하이난(海南)자유무역항’ 카드를 CPTPP 협상 테이블에 내밀 수 있다. 하이난 자유무역항을 시범 지역화 즉 먼저 개방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모색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하이난 자유무역항의 네거티브 리스트는 이미 CPTPP의 일반적인 요구 수준에 근접해 있다. 중국 대부분 지역에서 서방의 일부 사이트에 접속되지 않지만, 하이난에서는 인터넷 개방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이난은 정부조달, 지재권을 포함한 시장경제의 포지셔닝 수준이 높아 ‘비시장적 행위’도 난제가 아니다.
다만 독립 노조는 간단치 않다. 이는 사회주의 제도의 법률에 관련된 문제다. 중국이 좀처럼 양보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앞으로 어떻게 정립해나가느냐가 관찰 포인트다.
중국이 ‘점선면 가입 전략’을 협상 테이블에 내놓고, CPTPP가 이를 수용한다면 이는 2024년 국제 통상 영역에서 최대의 이슈가 될 것이다. 지난 한 해 대중국 수출이 추세적으로 감소해온 한국으로서도 해외시장 확대라는 측면에서 기대를 걸어볼만한 부분이다.
(박한진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초빙교수·전 KOTRA 중국지역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