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빛인님! 길었던 겨울도 이제 끝 무렵에 다다랐네요.
한빛인님은 ‘봄’하면 어떤 게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새싹? 벚꽃엔딩?🌸😏 입학... 새로운 시작?!
봄은 파릇파릇 생명을 틔우는 시기여서 그런지 이런저런 도전이 하고 싶어지는 계절인 것 같아요.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참 좋은 계절이고요! 한빛인님이 겨우내 심어두었던 씨앗도 이제 곧 새싹을 틔울 예정 👀
우리 모두의 활기찬 봄을 기대하며, 아홉 번째 댓잎레터 시작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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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런 일을 하고 싶은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혹시 이런 생각이 드시나요?
여기, 이번 [프롬, 한빛]의 일곱 번째 주인공을 모셨습니다. 꾸준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7기 박선아님입니다.✨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분명히 있죠! 그리고 그건 오로지 자신만이 진심으로 알 수 있어요.😌 이번 [프롬, 한빛]을 읽어보면서 마음 속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고, 그 길을 따라가보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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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 안녕하세요. 한빛고 7기 졸업생 박선아입니다.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연약하고 어지럽던 시절에 만난 한빛
🎤: 재미있는 일화이기도 한데요, 주위 한빛고 출신 친구들이 선아님의 저서를 접하며 묘하게 익숙한 묘사나 정취를 발견하고 호기심을 가지고는 했어요. 덕분에 댓잎레터 인터뷰이로 연락을 드릴 수 있게 되었는데요. 선아님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줬던 ‘한빛’의 모습은 어땠나요?
🐥: 다음 달에 네 번째 책이 출간되는데요. 그 책에도 한빛에서의 일들이 조금 담겨 있어요. 의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빠질 수 없게 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한빛은 제게 여러 형태로 남아 있어서 ‘이런 모습이다’라고 짧게 추리긴 어려운데, 그곳에서 살았던 날들이 제 삶 곳곳에 여러 모양으로 남아 있어요. 얼마 전에도 친구가 “인생에서 어떤 시기가 제일 좋았냐” 물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고등학교 때”라고 답했어요.
🎤: 한빛, 혹은 대안교육이 선아님의 삶에 영향을 준 부분이 있나요? 커리어적으로나 아니면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서나 선아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어떤 의미였을지, 지금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합니다.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괜찮아요)
🐥: 있죠. 많죠. 연약하고 어지럽던 시절에 한빛고에 입학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선생님들의 지지와 보호가 큰 힘이 되었어요. 가족에게서도 받지 못 하는 응원이나 이해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그때는 제가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완벽히 어린 아이였고 제게는 좋은 어른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의 격려 속에서 제가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혹은 이상해도 괜찮다는 것)을 깨닫고 무엇인가를 찾아 나설 수 있는 채비를 한빛에서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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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한빛고에 편입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한빛고 시절, 선아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 저는 도시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자퇴하고 한빛고에 재입학했어요. 도시에서는 말썽을 많이 피우는 학생이었어요. 도시의 학교에서 선생님들이나 가족들에게 받은 상처가 있는 상태로 한빛고에 입학했었죠. 중학교 때나 인문계 학교에 다닐 때는 선생님들을 흘겨 보는 마음 같은 게 늘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빛에서 1학년을 다 보내고 나니 그런 마음이 사라졌더라고요. 1학년 1학기 때는 선생님이 지나가면서 친근하게 말걸면 ‘뭐야, 왜 친한 척이야?’ 생각했던 것 같은데요. 2학기가 되어서는 멀리 선생님이 보이면 반갑게 손 흔들고 자연스레 웃게 되는 그런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 같아요. 졸업할 때는 헤어지는 게 슬퍼서 엉엉 울었죠. 어떤 어른들은 나를 진심으로 대해준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가능하게 되는 신비로운 일인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저희 때는 전교 1,2,3등에게 방학식 날 상장을 줬었거든요. 제가 전교 3등인가를 해서 예배당에서 상을 받았는데 속으로 ‘애들이 정말 공부를 안 하나보다’ 하면서 공부로 상을 탄 게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나네요. 그러다가 2학년 때는 학생회 회장을 했었고, 어쩌다 보니 한빛고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르게 모범적인 학생으로 지냈던 고3 때, 제가 수시로 서울여대에 붙었거든요. 선생님들이 재수를 하라고 했어요. 제 성적으로 가기 아까운 대학이라고요. 그때 엄마가 전화와서 이랬어요.
“선생님이 너를 자꾸 재수시키래. 나는 네가 서울에 있는 학교에 갈 수 있을 줄 몰랐거든. 졸업이나 무사히 하면 다행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네가 대학에 간다는 게 너무 기쁜데 선생님은 네가 그 학교에 가는 게 아깝다네. 이게 무슨 일이니.”
한빛고 3년이 그 이전과 이후의 삶을 얼마나 바꿔놓았는지, 이 반응에서 느껴져서 되게 즐거웠던 기억이 나요. 저도 제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간 것만으로도 만족해서 재수는 안 했습니다. ㅎㅎ
🎤: 선아님의 스토리를 살펴 보면, 단편적이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는 길을 쭉 걸어오신 것 같은데요. 고등학교 때는 어떤 걸 가장 좋아하셨나요? (시간이나 장소, 행위 다 좋아요!) 직접 쓰신 책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에서 산책을 좋아하신다고 봤는데, 한빛고 시절에 선아님의 최애 산책길도 살짝 여쭤봅니다!
🐥: 여러 가지가 동시에 생각나는데요. 저는 친구들과 가끔 예배당 옥상에 올라가는 걸 좋아했어요. 주말에 구름다리 쪽에 의자를 놓고 올라가곤 했는데, 제가 겁이 많아서 친구 둘이 받쳐주고 당겨주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마을 회관 옆 오솔길로 들어가면 무덤가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주말에 낮잠 잤던 기억도 나고요. 쓰다 보니까 정말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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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을 즐기는 현재
🎤: 에디터로 첫 커리어를 쌓으셨다고 들었어요. 문헌정보학과를 전공하셔서 자연스레 선택하게 된 일인가요?
🐥: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직업은 ‘사서’예요. 정사서 자격증이 나오는 학과거든요. 고3 때, 진로 고민을 하잖아요. 그때 ‘문예창작학과’ ‘국문학과’ ‘문헌정보학과’ 이렇게 세 가지 학과를 중심으로 여러 대학을 지원했었어요. 7개 학교에 지원했던 것 같은데, 지금 졸업한 대학만 붙고 다 떨어져서 그 학문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다만, 대학에 가고 전공 공부나 인턴을 해보면서 사서 일이 저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전공을 갖고 할 수 있는 일 중에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직업이 저와 더 맞을 것 같아서 대학원과 유학을 준비했었죠. 토플 점수 같은 서류를 다 준비해놓고 지원만 하면 되는 시점이었는데, 아빠가 쓰러지셨어요. 해외에서 살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유학보다는 취업을 선택해야 했죠.
비극적인 상황처럼 보이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아쉬움은 없는 게, 그것 아니어도 하고 싶은 게 많았거든요.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라디오나 드라마 작가’, ‘잡지 에디터’, ‘작가’, ‘포토그래퍼’ 등 겪어보고 싶은 직업이 늘 많았어요. 그냥 한 번 해보자, 하면서 잡지사에 에디터로 들어가게 되었죠.
🎤: 지금은 F&B 브랜드의 아트디렉터로 일하신다고요, 아트디렉터는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궁금해요.
🐥: 이게 분야마다 달라서 정의하기가 모호한 지점이 있어요. 광고 회사, 뮤직비디오 프로덕션, 브랜드, 에이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트디렉터라는 말이 쓰이고 각기 역할이 미세하게 다르거든요. 그래도 통상적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눈에 보이는 것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 디렉팅하는 역할이라는 점은 비슷한 것 같아요. 미술 감독(무대나 씬에 대한 디자인 및 연출)도 아트디렉터라고 부르는데, 저는 현재 F&B 브랜드에서 디저트 제품과 공간을 제외한 모든 영역들을 디렉팅하고 있어요. 온오프라인 콘텐츠나 마케팅, 패키지, 그래픽이나 오브제 디자인 등의 다양한 분야의 팀들을 맡고 있습니다.
🎤: 기존에 텍스트를 주로 다루는 일을 하다가 이미지를 주로 다루는 일로 직종을 변경하셨는데요. 이직을 결심하게 된 사건이 있나요? 이직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지금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6개월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다고 했는데요,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와 용기를 얻었나요?
🐥: 제가 잡지사, 출판사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회사에 다니지 않을 때는 프리랜서로 광고 일이나 뮤직비디오 PD 일을 겸했거든요. 그 사이에 책 몇 권을 출간하기도 했고요. 그렇다 보니 텍스트를 주로 다뤘다고 보긴 어려워요. 잡지사 에디터는 지면의 기사를 총괄하는 담당자예요. 지면에 들어갈 기사의 주제를 기획하고 그에 걸맞는 그림이나 사진, 레이아웃, 텍스트 등을 준비해서 여러 협업자들과 같이 지면을 채워나가죠.
출판사에서 에디터로 일할 때도 비슷했어요. 텍스트를 조금 더 세밀하게 다루지만, 자신이 기획한 책을 주도해서 만들어나가는 직업이죠. 뮤직비디오를 만들 때도, 광고 콘텐츠를 만들 때도, 텍스트는 제 업에서 부수적인 역할이었어요. 다만, 책을 출간한 뒤로는 원고 청탁이 많이 들어와서 특정 시기에 텍스트 일이 많아진 적은 있었죠. 그래서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매체들이 바뀌었다고 여겨요.
제가 지금 회사에 입사를 결심했던 것은 이전에 만들던 이미지보다 더 세련되고 패션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어요. 그땐 G브랜드가 국내에서 그런 이미지를 가장 잘 하는 곳으로 비춰졌고, 들어가고 싶은데 이전에 해온 일들과 톤앤매너가 달라서 입사를 못 할 것 같으니 이 회사가 저를 뽑을만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했었죠. 그러다 보니 6개월이 걸렸고요.
이건 한빛고 때, 대학 면접 볼 때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150명 중에 3명을 뽑는다고 하는데 그 3명이 되려면 면접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한빛고 생활을 사진 파일에 포트폴리오로 만들어서 면접 보고 나올 때, 제출했거든요. 회사 입사할 때도 그것과 비슷한 마음으로 눈에 띌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했죠. 저 사람들이 나를 뽑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이런 아이디어와 용기는 욕망에서 출발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다’는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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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무에서 ‘권태’를 느껴 이직을 하셨다고요. 그래서 이직한 지금 회사에서도 초반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으셨다고 하던데요. 선아님은 어떻게 ‘확신’을 얻으시는지요. 이직에 대한 확신이든, 남아야겠다는 확신이든, 이 직무를 계속 해야겠다든 말이죠..!
🐥: 프리랜서로 일하던 시기에 들어오는 일들로는 제 눈에 멋진 결과물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화장품이나 기저귀, 생활용품 같은 브랜드의 광고 콘텐츠를 만들 때는 완성한 결과물이 제 눈에 아름답지 않았고, 원고를 여러 개 쓸 때는 자신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팔아서 돈을 번다는 죄의식 같은 게 있었죠.
거기서 벗어나려고 이리저리 세상을 둘러보니 세련된 이미지를 만드는 G브랜드가 있었고, SNS에서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찾아보니 동료애나 라이프스타일이 흥미로웠어요. ‘여기에 소속되면 나도 내 눈에도 멋진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브랜드에서 새로 론칭한 브랜드가 지금 일하는 F&B 브랜드인데요. 처음에 G브랜드로 입사했기 때문에 그 브랜드가 가지는 미학과 제 취향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제가 가진 역량이 회사가 추구하는 세련됨의 갭과 커서 생기는 어려움이었죠. 입사까지도 힘들었는데, 입사하고 나서는 더 큰 산이 있기에 몇 달간 미친듯이 업계에 대해 공부하고 선배 쫓아다니면서 일을 배웠어요.
제가 확신을 갖고 움직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지금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뻔한 얘기지만 자기 마음에 제대로 귀기울이고 있는 상태가 ‘확신’에 가깝지 않을까요. 내가 지금 행복한지, 여기에 더 있고 싶은지, 어딘가로 이동하고 싶은지, 그런 것을 계속 자기에게 물어보다가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게 되는 순간이요. 그게 확신에 가까운 감정인 것 같아요.
🎤: 선아님은 좋아하는 일을 좇아가다보니 지금에 도착했다고 하셨는데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지치고 무너지는 과정도 분명 있었을 것 같아요. 슬럼프를 이겨내는 선아님의 방법을 소개해주세요. 좋아하는 일을 지켜내며 삶을 꾸리는 것에 필요한 마음가짐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그렇죠. 지치고 무너지는 과정은 무한반복되는 것 같아요. 뭔가를 좇아서 원하는 것을 이뤄내고 나면 잠시 좋았다가 권태로운 순간들이 찾아오죠. 그러면 또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면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요즘도 ‘나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이런 류의 질문을 자신에게 하는 시기인데, 이럴 때는 좀 차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요.
어제는 출근 한 시간 전쯤에 카페에 가서 혼자 커피 마시며 일기를 썼는데, 그 시간만으로도 무엇인가 좀 정리되더라고요. 한빛에 있을 때는 도서관 구석 자리 같은 곳에서 이런 시간을 가졌던 것 같아요. 구름다리 위에도 자주 앉아 있었고요.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나만 알고 있으니까, 나를 잘 돌봐줘야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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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회사에서 팀장으로서 리더의 역할을 감당하고 계시는만큼 커리어 측면에선 단단히 자리매김하신 것 같은데요. 혹시 앞으로 또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다음 스텝은 어떻게 고민하고 계신가요?
🐥: 현재는 작년 초에 진급해서 파트장이고요.ㅎㅎ 팀장으로 맡았던 책임보다 더 넓고 단단해야 하는 역할이라 묵직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제 결정이나 판단에 의해 여러 사람들이 고생을 할 수도, 기뻐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조금 서글프기도 하지만 지금은 도전보다 안정을 즐기는 시기 같아요. 예전에는 늘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고, 호기심도 많고 그랬는데 이제는 새로 도전해보고 싶은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더라고요.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고요. 회사 규모가 크다 보니, 제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일을 해볼 수가 있기에 그런 부분이 참 좋아요. 올해도 회사에서 계획하고 있는 여러 일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 성실히 해나가면서 지금 상황을 최대한 질릴 때까지 즐겨보려고 합니다. 자리에 맞게 경영이나 경제를 더 공부해서 조금 더 넓은 눈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생각도 하고 있고요.
기록하는 삶
🎤: 책뿐만 아니라 개인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기록에 진심이신 것 같아요. 기록이 선아님의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주는지, 선아님의 꾸준한 기록의 이유가 궁금해요.
🐥: 본능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저는 한빛 시절에도 뭔가를 늘 기록하고 있었어요. 수첩이 여러 권 있었는데(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었고, 컴퓨터도 컴퓨터실이 열려 있는 시간에만 할 수 있었답니다ㅎㅎ) 좋아하는 이미지를 스크랩하는 용도, 일기쓰는 용도, 영화나 책 리뷰하는 용도 등 다양한 방식으로 뭔가를 기록했어요. 목적이 있었다기 보다는 그 과정이 제게 즐거움을 줬거든요. ‘미래의 내가 봤으면 좋겠다.’ 그런 단순한 바람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그걸 쓰고 오려 붙이고, 그런 과정을 좋아했어요. 그런 기질 때문에 잡지사도 들어가고 지금하는 일들도 할 수 있는 것 같고요.
그때는 저 혼자 보고 즐겁기 위한 용도였다면, 20대에는 인터넷이 익숙해지면서 블로그도 하고, 인스타그램도 하고, 내가 믿는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도 공감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됐죠. 반응이 오면 좋기도 한데, 싫기도 해요.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으면서 계속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전하고 싶어요. 회사에 평생 다니지는 않을 것 같지만, 할머니가 되어서도 제가 보고 느낀 것을 여러 형태로 만드는 일은 끝없이 하고 있을 것만 같거든요. 꾸준히 해봐야죠.
🎤: 4권의 책을 발간한 작가이기도 하신데요. 혹시 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 한빛 때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문예창작이나 문학 시간을 가장 좋아했고요. 그렇다 보니 혼자 싸이월드나 수첩에 뭔가를 끼적이고 그런 습관이 있었어요. 어렴풋이 언젠가 내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했을 법도 한데 그때는 그게 되게 불가능한 일인 것 같아서 상상조차도 안 했던 것 같아요. 그저 누군가 만들어놓은 것을 보고 즐기기에 바빴어요. 그런데 좋아하는 것들을 반복해서 하고 있다 보니까 기회가 오더라고요. 잡지사 에디터로 일할 때, 연재하던 에세이 반응이 좋았어서 편집장님이 단행본으로 엮자고 제안을 주셨어요. ‘어? 내가 책을?’ 하면서 얼떨결에 내보게 되고, 그게 꼬리를 물고 또 다음 책들로 이어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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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선아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뭐가 있을까요? 관심사나 취미, 일상에 대한 것 모두 좋아요!
🐥: 요즈음은 몸을 움직여서 마땅한 장소에 가 앉아 있는 일만으로도 영감이 되는 것 같아요. 20대 때는 노력하지 않아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게 익숙했거든요. 쉴 틈 없이 이것저것 보러 다니고, 항상 분주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회사 일로 바쁘고 그래서 그런지 여가 시간에는 집에서 쉬기 바빠요. 인스타 릴스나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것을 보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죠. 거기서도 영감 비슷한 것을 구할 수 있기는 한 것 같아요. 하지만 농도가 다르달까요. 어디 가기 귀찮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어디론가 향하게 되면 조금 더 짙고 깊은 무엇인가를 얻게 되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관현악단의 음악회를 보았는데요. 한두 시간을 움직이지 못하고 앞만 보고 앉아 있어야 하잖아요. 핸드폰도 쓸 수 없고요. 그런 상황에서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헤드폰으로 듣던 음악을 누군가 앞에서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요런조런 생각도 하고요. 맨 뒷줄에서 트라이앵글 연주하는 분을 유심히 관찰했어요. 그런 과정 틈에 영감 비슷한 무엇인가가 새어 들어오는 것 같아요.
🎤: 작가, 아트디렉터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계신데요. 선아님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 사람마다 일을 생각하는 태도가 다를 것 같아요. 저는 애초에 제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감히 생각하지 않았어요. 잡지사에 어시스턴트로 처음 들어갔을 때, 월급으로 38만원 받았었고요. 에디터가 되었을 때의 연봉이 1800만원(대학 친구들은 3000~4000만원이던 시절)이었죠. 나는 평생 가난하게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다 죽을 운명이겠거니, 하면서 일을 취미처럼 즐겼던 것 같아요. 적은 월급을 받던 때에도 불평이 없었죠. “이렇게 재밌는 일을 하는데 돈도줘? 좋다!”였죠. 그러니까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여기저기 유랑할 용기도 쉽게 났던 것 같고요.
그런데 그 시간들이 잘 쌓이고 나니까 기대하지 않은 일들도 생기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쌓아둔 시간 덕분에 더 많은 돈을 요청할 수 있게 되었어요. 회사에도 마땅히 제 노동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고, 원고 청탁이 들어오거나 광고 일이 들어와도 제가 원하는 금액에 상대가 맞춰주는 상황이 오더라고요. 20대 때는 친구들 만나면 제가 돈을 적게 버는 것을 알기에 항상 밥값을 내주곤 했는데, 이제는 고마운 친구들에게 망설이지 않고 밥도 사주고, 때에 맞춰서 좋은 선물도 할 수도 있어 기쁘죠.
내가 잘 하고 좋아하는 노동을 하고, 돈도 번다? 이 사실이 아직도 신기한 것 같아요. 그런 것을 욕심낸 적이 없는데 욕심내본 적 없는 것들이 주어질 때 ‘우와 이거 괜찮은 삶인데?’ 이런 생각을 해요. 일을 하며 살아갈 날이 아직 꽤 남아있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더 알아내고 싶은데, 지금까지 제게 일이란 좋아하는 것을 잘 해내고 대가를 얻는 것이에요.
🎤: 최종적으로 선아님은 어떤 삶을 살아내고 싶으신가요?
🐥: 이야기 보따리가 풍부한 할머니로 늙고 싶어요. 늙어서도 뻔한 얘기 안 하고, 어린 사람들도 귀기울일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줄 알고, 그만큼 또 잘 들을 줄도 알고, 좋은 질문도 던질 수 있는 그런 노인이요. 그때도 제 이야기를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고, 저는 또 이리저리 관찰하고 돌아다니면서 들려줄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이가 되고 싶습니다.
🎤: 에디터나 아트디렉터를 꿈꾸는 사회초년생 한빛인에게 조언해주고픈 게 있나요?
🐥: 한빛에 있을 때, 아름다운 것들 많이 보셨나요? 저는 아직도 그 시절에 기숙사나 학교 언저리에서 보았던 것들의 힘을 많이 받아요. 그때는 졸업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돌아보니 오히려 거기에서 바라봤던 세계가 더 넓고 풍성했던 것 같아요. 부디, 그곳에서의 시간들로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장 말랑하던 시기에 그런 곳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가 갖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 시간이 저희에게 앞으로 큰 힘이 되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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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댓잎레터를 구독하는 한빛인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 얼마 전에 졸업하고 처음으로 만난 동기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는 예술의 전당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데, 일적으로 서로 할 얘기가 있어서 만났죠. “우리 15년 만에 처음 보는 거야!” 하는데 그 세월이 얼마나 무색한지. 함께 술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저희는 한빛에서 동고동락하며 3년을 보냈잖아요. 그 시간을 같은 곳에서 겪었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동질감이 생기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인 것 같아요. 어디에서든 마주치게 된다면, 그리운 반가움으로 인사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 P.S.
🎤: 처음 저희 댓잎레터 연락을 받고 어떠셨는지, 인터뷰에 응해주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 진짜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이제 마땅한 대가를 받지 않는 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건방진 이야기일 수 있지만 현재의 제 상황이 그래요. 예전에는 ‘나에게 인터뷰를? 영광이다!’ 하면서 열심히 하곤 했는데, 횟수가 많아지면서 이런 것도 일이더라고요. 서면이든 대면이든 인터뷰 답변하느라 쏟는 시간이 있잖아요. 평일에 회사 일하고 집에 가면 겨우 저녁 먹을 시간이 있고, 주말에는 사랑하는 사람들도 만나야 해요. 회사 밖에서 하는 일들도 몇 있어서 그것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여유가 부족해지죠. 계산기를 잘 두드려서 제 시간을 쓰는 것과 맞바꿀 수 있는 대가가 있는 일만 받아서 하고 있어요.
그런데 댓잎레터는 정말 오랜만에 아무 대가가 없어도 순수한 마음으로 진행하고 싶은 인터뷰였어요. 만드는 분들이 그렇게 하고 있잖아요.다들 자기 생업이 있고, 일상이 있을텐데 후배님들이 이 일을 해서 얻는 게 뭐가 있겠어요. 모교에 대한 애정 하나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게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이 레터를 받으신다면, 제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었고요. 첫 책이 나왔을 때만 해도 책도 학교로 보내드리고 소식 전하고 했던 것 같은데 찾아 뵌 지가 너무 오래되었네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실 것 같아서 ‘선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계신데요. 아트디렉터의 시선에서 봤을 때, 한빛고에서 탐나는 콘텐츠가 있으신가요? 댓잎레터 창작자들로서 궁금하네요ㅎㅎ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댓잎레터를 운영하시는 점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댓잎레터 외에는 한빛고를 인스타그램에 검색해본 적이 있는데, 어느 후배가 올린 체육제 영상이 있더라고요. 저희 때처럼 다같이 같은 옷을 입고 응원을 하고 우르르 뛰어다니고 하는데 웃으면서 보다가 코 끝이 찡해졌어요. 그때 했던 연극이나 응원, 자잘하고 사소하게 만든 결과물들 있잖아요. 그게 지금 돌아보면 다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어요. 그게 뭐라고 몇 달을 치열하게 연습하고, 그러다가 친구랑 싸우기도 하고 부둥껴 안고 화해하고 울고 웃던 순간들이요. 지금은 머리가 크고 영악해져서 그때처럼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물어요. 그 시절에 저희들이 함께 만들어낸 것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콘텐츠들이 있을까요. 아, 쓰고 보니 또 그립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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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이 돋아나는 3월의 첫날, 들뜬 마음으로 가득한 한빛을 기억하시나요?
한빛의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입학식이 매해 삼일절🇰🇷 진행되는데요. 낯선 장소와 사람들, 크고 따뜻한 환영, 학교 생활에 대한 걱정 혹은 기대,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근거림과 같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혹시 담임 선생님과의 첫인사도 기억이 나세요? 한 명, 한 명에게 장미꽃을 건네시며 '잘 지내보자🌹' 하셨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저는 지금도 생생해요.
'입학식 장미꽃'에는 한빛과 '나'의 첫 만남이자 인사,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한 응원과 책임이 담겨있던 것 같아요. 꼭 어린왕자의 장미꽃처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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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 기억나시나요? 출처=한빛고등학교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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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 새내기로 돌아가고 싶은 한빛인님을 위해 2023 ver. 한빛 빙고를 만들어봤어요. 다시 입학식 장미꽃을 받는다면 이 빙고를 다 색칠할 수 있을 텐데!
여러분은 몇 개의 빙고를 만들 수 있나요? 댓잎레터에게 자랑해 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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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알림
📌 17기 조민서 학우님이 보내주신 소식! <작년인 2022년 초, 저를 포함한 열댓 명의 사람이 모여 창작집단 '알맹이'를 창설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영화와 연극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전공 공부를 계속하고 학교 안에서 작품을 만들어 갈수록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상미나 장비, 온갖 기술들이 아닌 이야기 속 알맹이다, 라고 생각하게 된 저는 저와 동일한 의견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알맹이가 중요한 작품들을 창작해 보자는 다짐과 함께 창작집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첫 프로젝트로 단편 뮤지컬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는데 학생들로 이루어진 집단이고 또 학교에 소속된 수업이 아닌 오로지 창작집단 알맹이의 힘으로 만들게 되었기 때문에 제작비에 있어 어려움 겪고 있어요😢 그래서 영화 제작을 마무리 짓기 위한 일환으로 텀블벅 펀딩💵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성공괴담! '성공하면, 과연 행복해질까요?🤔' 알맹이팀이 만들어낼 영화🎬가 기대되네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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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기 이주승 학우님과 풋살하실 분?⚽ <저희 11기에 이강은 선배를 필두로 호호fc라고 서울에서 풋살을 하고 있는데 서울이나 서울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동문들 계시면 같이 풋살이나 축구하고 동문끼리 교류하며 지내면 좋겠습니다!>라고 보내주셨어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거나 참여를 원하신다면 아래 오픈카톡방으로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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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자주 가지 못해 친구들이 그립고 미안한 15기 박세인 학우님이 15기를 위한 랜선 동문회를 여신다고 해요!🎉 <15기 친구들이 보고 싶은 사람 누구나 참여 가능하고 일정 조율을 위해 질문지를 만들었어요. 최대한 참여 가능한 인원이 많은 날에 구글 미트(Google Meet)에서 만나려고 합니다. 투표는 2월 27일 부터 3월 6일까지 가능하고요.🗳️ 3월 7일에 투표 결과 및 미팅 링크를 댓잎레터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지📢하려고 합니다. 랜선 동문회는 약 2시간 진행할 예정이고, 자유롭게 입퇴장 가능합니다. 준비물은 각자 마실 음료나 술🍷, 잔 🥂 입니다. 부담 없이 스몰톡하고 근황 공유하는 게 목적이에요. 먹고살기 바빠서 친구들을 볼 수 없는 한빛인들에게 좋은 리프레시가 되면 좋겠습니다!> 15기 여러분, 당장 구글 폼으로 달려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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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잎레터 [프롬한빛]에서 삶을 나눠주실 인터뷰이를 구합니다. 한빛고 졸업생이라면, 누구든지 가능합니다. 한빛고 시절의 기억을 나눠주실 분, 함께 진로를 고민하실 분, 한빛인들에게 인생경험을 들려주실 분 등등 모두 환영합니다! 언제든지 여기로 찾아와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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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링크에 접속하셔서 '익명 송금하기'를 통해 후원을 진행해주세요.
토스가 없으신 분도 ‘가상계좌’를 통해 송금하실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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