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더코만도의 이야기, <사울의 아들>
안녕하세요!
스물 여섯 번 째 레터를 발행하게 된 리드나잇입니다.

리드나이터,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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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노력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오늘은 새로워진 굿나잇 레터와 함께,
영화 <사울의 아들> 을 통해
나치의 대학살과 존더코만도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바로 만나볼까요?
죽음을 처리하는 사람들
오늘의 이야기, <사울의 아들>
<사울의 아들> 스틸컷/ ⓒ네이버영화 

우린 이미 예전에 죽었어


<사울의 아들>  中

🚗 <사울의 아들>, 무슨 내용인데? 
<사울의 아들> 포스터/ ⓒ네이버영화 

영화 <사울의 아들>은 2015년 헝가리에서 개봉했습니다. 국내에서는 2016년에 개봉했어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시체 처리반인 사울. 어느 날 아들의 시체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랍비'를 찾아 나서고, 아들의 시체를 빼돌려 수용소를 탈출합니다.


이 작품은 매우 독창적인 영상 문법으로 유명합니다. 오직 주인공만을 비추는 카메라와 제한된 사운드, 화면을 전부 보여주지 않는 4:3 영상비 등. '수용소에서의 인간의 경험은 정보 부족과 제한에 기초한다. 누구도 많이 알거나 볼 수 없다.' 라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와 형식이 완벽히 일치하고 있어요. 제68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제88회 아카데미 외국여영화상 노미네이트, 제73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등 다수 영화제에서도 엄청난 호평을 받았습니다.

*본 아티클에는 <사울의 아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 나치당의 등장과 반유대주의 
왜 유대인인가?
사울이 *랍비를 찾아나선 이유, 그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돌프 히틀러, 나치. 다들 한 번씩은 들어보셨을 것 같아요. 히틀러를 주축으로 한 나치 독일은 1933년 정권을 잡으며 사울과 같은 유대인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고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왜일까요?

*유대교에서는 최고 지도자/선생인 '랍비'가 장례를 지도하는 문화가 있음
 유대인 박해 문구/ Holocaust - Enzyklopädie

이 근간에는 반유대주의가 있습니다. 반유대주의는 나치 이데올로기의 세계관이자 기본 교리였어요. 쉽게 말해, 근본적으로 나치에 대한 편견과 증오가 있었기에 유대인을 표적으로 삼은 것이죠. 나치는 특히 인종적 이론을 기반으로 반유대주의를 조장했습니다. 나치는 세계가 인종 별로 나누어져 있고, 다른 인종보다 우월한 인종이 있다고 믿었어요. 이들은 독일 게르만족이 우월한 인종인 아리아인(Aryan) 민족이라고 주장했고, 유대인은 열등한 인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나치가 반유대주의를 만든 건 아닙니다. 반유대주의는 유럽에서 아주 오랫동안, 여러 형태로 전해지고 퍼진 편견이었어요.

*내용 이해를 위해 영상 시청을 권장합니다
 💬 홀로코스트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유대인 반대 보이콧 서명/ Holocaust - Enzyklopädie

홀로코스트(Holocaust)는 나치 독일 정권이 600만 유럽계 유대인들을 제도적으로 탄압하고 조직적으로 대학살한 사건을 말합니다. 이 기간은 히틀러와 나치당의 집권이 시작된 1933년부터, 이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게 패배한 1945년까지로 정의됩니다. 홀로코스트는 히브리어로 ‘재앙'을 뜻하는 쇼아(shoah)라고 부르기도 해요.


나치 독일의 유대인 탄압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서서히 변화했습니다. 처음 정권을 잡고는 경제, 정치, 사회 및 문화생활에서 유대인을 배제하기 시작했어요.

 나치 독일의 영토 확장(1939-1942)/ Holocaust - Enzyklopädie

1939년 9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반유대주의 정책은 급진전하게 됩니다. 나치가 영토 확장을 통해 유럽 대부분을 점령하며,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지배 하에 두게 됐기 때문이죠. 이에 1941년부터 나치 지도자들은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하기로 합니다. 그들은 이 계획을 최종 해결책 (Endlösung der Judenfrage)이라고 불렀어요.

최종 해결책
수용소로 가는 유대인들의 모습/ Holocaust - Enzyklopädie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시행된 이 계획은 홀로코스트의 마지막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전에도 이미 많은 유대인이 살해됐지만, 대다수의 희생자들은 이 기간에 학살됐다고 해요. 이러한 대규모 인종 말살은 지난 십 년 동안 점점 심해진 박해 정책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죠.


이들은 대량학살을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썼습니다. 바로 1️⃣대량 총살 2️⃣학살을 반복적으로 할 수 있는 현장 구축 인데요. 2️⃣를 위해 세워진 것이 바로 절멸 수용소 입니다.

*유대인 전멸 계획을 '최종 해결'이라 지칭한 것처럼, 나치는 자신들의 실제 범죄 행위를 위장하기 위해 완곡 어법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 유대인 학살의 중심지, '죽음의 수용소' 
베르제크 수용소로 이송되는 유대인들의 모습/ Holocaust - Enzyklopädie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한 유대인들의 모습/ Holocaust - Enzyklopädie

나치가 효과적인 대량 학살을 위해 설립한 집단 학살 수용소절멸 수용소(Extermination camps) , 혹은 죽음의 수용소(Death camp)라고 불립니다. 억류나 노동을 주로 하는 집단 수용소와 달리, 이곳은 그야말로 죽음의 공장이나 다름없었죠.


나치는 동맹국과 협력자들의 도움으로 유대인들을 유럽 전역에서 수용소로 이송했습니다. 이를 재정착 조치, 대피용 차량, 추방 등으로 부르며 그 의도를 위장했어요. 보통 이송은 기차로 이루어졌는데, 유대인들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며칠 동안 서 있어야 했습니다. 음식, 물, 화장실, 의료 등이 전혀 제공되지 않아 이송 중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해요.

나치가 세운 5개의 절멸 수용소


1) 헤움노(Chełmno)

2) 베르제크(Bełżec)

3) 소비보르(Sobibór)

4) 트레블링카(Treblinka)

5)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Auschwitz-Birkenau)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 Holocaust - Enzyklopädie

수용소의 주요 학살 도구는 가스실이었습니다. 나치는 이곳에서 독가스를 이용해 사람들을 한 번에 질식사시켰어요. 가장 최대 규모의 학살 수용소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였습니다. 이송이 절정에 달할 때에는 하루 최고 6,000명의 유대인이 아우슈비츠에서 질식사했어요.


이처럼 수용소에 이송된 후 대다수의 유대인은 곧장 가스실로 보내졌습니다. 하지만 이 중, 특수 임무를 위해 선발되어 살아남은 이들이 있습니다.

 💬 유예받은 자유, 존더코만도 
유대인 수감자로 구성된 시체처리반

Sonder (특수한, 기이한) + Kommando (특공대) = 존더코만도 = 특수부대



독일어 문자 그대로 하면 '특수부대'. 이들이 맡은 특수 임무란 수감자들의 시신을 소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존더코만도는 유대인 포로로 구성된 시체 처리반을 일컫어요. 이들은 살해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진 않았습니다. 1순위 책무가 시체를 처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죠. 

시체를 처리하는 존더코만도의 모습/ Holocaust - Enzyklopädie

독일 관리들은 겉으로 보기에 충분히 건강한 일부 유대인들을 선발했습니다. 존더코만도가 되는 것은 선택이 아닌 강요였어요. 존더코만도로 지목된 포로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살 혹은 복종이었습니다. 임무 수행 기간은 짧게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들은 다른 수용자에 비해 그나마 덜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비교적 편한 잠자리를 가졌고, 가스실로 보내졌던 사람들의 음식물이나 다양한 물품을 비치해두고 사용하는 것이 허락됐어요. 독일군이 닥치는대로 살해하는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시체를 처리하는 존더코만도의 모습 (자체 확대)/ Holocaust - Enzyklopädie

하지만 이들도 결국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유효기간이 다 된 존더코만도는 다른 포로들처럼 독가스로 사살됐기 때문이에요. 나치는 '최종 해결책'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이들을 살해하고 새로운 존더코만도를 뽑았습니다. 후임 존더코만도의 첫 임무는 전임자의 시체를 소각하는 것이었죠.

좁은 수용소에 모여 자는 수감자들/ Holocaust - Enzyklopädie

특히 SS는 집단 학살 수용소를 일급 비밀로 여겼기 때문에, 존더코만도 또한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일체 금지되었습니다. 다른 수감자들과 격리되어 생활한 것은 물론, 가스실과 소각로의 실체를 모르는 다른 SS 대원들의 접근 또한 차단됐어요.

 💬 나치 수용소의 해방 
막을 내린 홀로코스트
나치 수용소에서 해방된 수감자들의 모습/ Holocaust - Enzyklopädie

홀로코스트는 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주요 연합국(영국, 미국, 소련)에 패배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연합군이 살아남은 수감자들을 해방했을 때 대다수는 유대인이었어요. 그러나 해방을 했다고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많은 생존자가 새로운 삶을 찾았지만, 계속되는 반유대주의적 폭력과 강제 이주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어요. 가족과 공동체를 잃거나,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수년 간 헤매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사울의 아들> 스틸컷 / ⓒ네이버영화

많은 사람이 홀로코스트를  기간에 이득을 얻었습니다. 비유대인들은 유대인의 집으로 이사하고, 사업체를 인수하고, 소유물과 귀중품을 훔치기도 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대인 이웃이 처한 곤경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홀로코스트에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홀로코스트의 여파로 세계는 대량 학살의 공포를 이겨내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나치의 책임을 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노력은 오늘날까지 진행되고 있어요. 같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두가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참고: Holocaust - Enzyklopädie
🌙 무자비하고 무의미한 학살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어. 진정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실수를 깨닫고 책임을 다 하는 거야. 무관심, 방관, 외면. 뼈 아픈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난 날을 돌이켜보고, 현재를 점검하고, 앞으로를 다짐해야 할 거야.

<사울의 아들>, 재밌게 읽으셨나요?

세줄 요약을 보며 정리하는 시간을 마련했어요✌️


💁 나치 정권이 반유대주의를 근간으로 집권을 시작한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유대인을 탄압하고 학살한 기간을 '홀로코스트'라고 합니다.


💁 나치는 '최종 해결책'이라는 명목으로 절멸 수용소를 설립했고, 그 안에서 가스실을 이용해 대량 학살을 저질렀어요. 


💁 가스실에서 사망한 수감자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특수 작업대, 즉 시체 처리반을 '존더코만도'라고 합니다. 유대인 포로였던 이들 역시 노역을 다 하고 나면 나치에 의해 사살됐어요.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작가가 들려주는
그날의 참상, <이것이 인간인가>
함께 정주행하고 싶다면?
아우슈비츠 피해자였던 아버지의 경험을
쥐에 빗대어 풀어낸 그래픽 노블, <쥐>
함께 정주행하고 싶다면?
리드나잇이 준비한 스물 여섯번 째 아티클은 여기까지 입니다.⭐️🌙
그럼 오늘도, 굿나잇 리드나잇!
 리드 나이터 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오늘의 아티클은 어땠는지,
별이와 달이에게 하고 싶은 말,
에디터에게 전하고 싶은 피드백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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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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