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장르로 묶을 수 없는, '시인 아닌 시인' 앤 카슨 
시, 에세이, 소설 넘나들며 장르 구속되지 않아
한 줄씩 읽다보면 있는 줄 몰랐던 상처도 아물게


(중략) 사실 카슨의 모든 글들은 시적인 에세이, 혹은 에세이적인 시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카슨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시라는 장르에 구속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훌륭한 작가들이 다 그렇듯, 카슨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장르인 것이다. 앤 카슨의 장르는 그냥 ‘앤 카슨’이다.


이런 사실을 더욱 명확히 인지하게 된 것은, 최근 몇 년간 카슨의 책을 여러 권 번역하고 나서다. 이를테면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이라는 책에는 흔히 카슨의 최고작이자 ‘시그니처 포엠’으로 불리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제목이 무려 ‘유리 에세이’다. ‘시그니처 포엠’인데 ‘에세이’라고? 그렇다. 그리고 원서 기준으로 무려 45페이지에 이르는 이 방대한 ‘구조물’은, 그 어떤 장르적 규정도 보란 듯이 비껴 나간다. 이를테면 실연당한 화자가 황야에서 혼자 사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에서 시작하더니, 거기에 서서히 에밀리 브론테의 생애 및 작품에 관한 온갖 이야기들, 언니였던 샬럿 브론테와의 복잡한 관계까지 작품의 일부로 끼어드는 식이다.


(중략) “당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라는 유명한 영화 대사를 흉내 내서 말하면, 카슨의 작품은 우리를 더 섬세한 사람, 더 지적인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갑자기 고대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싶게 만들고, 헤겔을 읽고 싶게 만든다. 그것은 분명 노벨문학상이라는 이름의 무게에 걸맞은 희귀하고 소중한 재능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덕분에 이러한 재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냥 기쁘고 설레는 마음이다. 카슨의 이번 수상은, 어쩌면 역대 노벨‘문학’상 가운데 가장 적절한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카슨의 작품은 장르에 얽매일 필요 없이 그냥 ‘문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아니 꼭 그래야만 할, 정말 흔치 않은 경우 중 하나니까.
노벨문학상 받은 앤 카슨
국내 번역 대표 작품들

올해도 어김없이 노벨문학상 특수가 시작됐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작가들도 이때만큼은 서점가 매대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캐나다 작가 앤 카슨도 올해 수상을 계기로 새로운 독자를 만나고 있다. 카슨의 국내 출간작은 총 9종. 9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카슨 책 판매량은 수상자 발표 전과 비교해 138배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평소 하루 약 두 자릿수로 책이 팔렸다면, 노벨상 발표 후 네 자릿수로 판매량이 늘었다고 한다.

카슨 책을 가장 많이 보유한 출판사는 난다(4종)였다. 초기작들이다. 1981년 박사학위 논문을 개작한 에세이 ‘에로스, 달콤씁쓸한’(1986·영문 초판)은 카슨의 문학 세계를 예고하는 작품이다. 그가 노벨상을 받은 이 시점에 다시 읽어볼 만하다. 카슨은 ‘에로스’와 ‘앎’을 겹쳐 놓으며 “사랑에 빠지는 것과 앎에 이르는 것이 왜 나를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싶다”고 쓴다.

카슨의 두 번째 시집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1995)은 에세이·산문시·비평·번역·극·일기·고전 다시 쓰기 등을 오가며 장르를 허문다. 특히 이 시집에 실린 장시(長詩) ‘유리 에세이’에 극찬이 쏟아진다. 시적 화자와 에밀리 브론테의 삶을 교차시켜 상실과 고독에 대해 쓴 ‘시소설’이다. 이 밖에 첫 시집 ‘짧은 이야기’(1992)와 시·산문·여행기·가상 인터뷰 등을 아우르는 ‘플레인워터’(1995) 등도 펴냈다.

난다 대표 김민정 시인은 출간을 결심했던 2017년 6월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 낭독회를 위해 황유원 시인과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김 대표는 “이거 한번 읽어 보라”며 ‘짧은 이야기들’과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영어 원서 두 편을 황 시인에게 건넸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 황 시인의 소감은 “이거 되게 재밌는데요?”였고, 이에 대한 김 대표의 답은 “그럼 (번역) 당신이 해보라”였다. 황 시인이 번역을 맡게 된 사연이다. 여기에 대학원에서 앤 카슨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송원경 편집자, 난다 내 세계문학 브랜드 ‘모호’를 론칭했던 권현승 편집자 등이 합류하면서 연달아 앤 카슨 책을 낼 수 있었다.

번역가인 황 시인은 “카슨의 지적이고 날렵한 문장은 옮기기 쉽지 않다”며 “‘에로스, 달콤씁쓸한’처럼 인용문이 특히 많은 책을 옮길 때는 책상 옆에 늘 책이 열 권 이상씩 쌓여 있었다”고 했다. 그는 “앤 카슨은 장르라는 울타리에 한 번도 갇힌 적이 없는 작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앤 카슨 자체가 장르죠. 예술가라면 누구나 다 자신이 한 장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카슨은 우리에게 그 선례를 보여줬어요.”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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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호 브랜드에서 출간된 책들

 『성적인 밤』

파스칼 키냐르

『사랑』

마르그리트 뒤라스

『문자 살해 클럽』

시기즈문트 크르지자놉스키

 『이야기의 끝』

리디아 데이비스

『초록 수첩』

필리프 자코테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

필리프 자코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