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잘 보냈어? 이제 연말까지 공휴일이 없다는 사실… 이게 진정한 호러 아닐까? 직장인들 힘내자.. 프리랜서들도 틈틈이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길 응원해! 연휴가 끝나니 본격적으로 겨울이 된 것 같아. 가을이 스쳐 지나갈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얼굴도 못보고 가버리다니 속상해. 10월 초에 벌써 겨울타령이 너무 설레발이라고? 이해해줘. 출근할 때 온도가 9~10도여서 낮에 사무실에 갇혀있는 직장인에게 가을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날이 추워지면 마음에도 괜히 찬 기운이 스미곤 해. 때때로 허전해지면 눕방일기가 추천해준 콘텐츠들을 보며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길 바라. 겨울잠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미리 든든한 마음의 식량들을 모아두자😋
#웨스앤더슨x로알드달 #요약

인생 영화를 묻는 질문만큼이나 어려운 게 제일 좋아하는 감독인 것 같아. 좋아함의 기준은 모호하지만 나는 일단 쿠엔틴 타란티노, 짐 자무쉬, 폴 토마스 앤더슨, 그리고 웨스 앤더슨을 말하곤 해. 이제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로 업데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야. 웨스 앤더슨의 최근작 <프렌치 디스패치><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사실 기대를 배반한 영화였어. 세상 모든 일에 심드렁한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팔짱을 끼고 보게 되더라고. 하지만 넷플릭스에서 로알드 달의 단편을 영화화한 웨스 앤더슨의 단편 4편이 공개되었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안볼 수 있겠어? 로알드 달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마틸다>의 원작자로 유명해. 두 사람의 만남은 치트키 같달까.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백조><><쥐잡이 사내>는 동화를 가장한 어른들의 우화를 그리는 웨스 앤더슨과 로알드 달의 장점만 만나 시너지가 극대화된 영화 같아. 이번 단편에서 웨스 앤더슨의 강박적인 프로덕션은 아예 연극무대가 되길 자처했어. 잠들기 전 머리 맡에서 들려주는 옛 이야기처럼 영화라기보단 책의 시각화에 가까운 독특한 포맷이야. 로알드 달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담은 헌정이라고 느껴져.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파고 들어갔다가 다시 이야기 바깥으로, 바깥의 바깥으로, 바깥의 바깥의 바깥으로 돌아오는 이 기이한 이야기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결핍 없이 살아온 헨리 슈거(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인생을 그리고 있어. 그는 악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선하지도 않은, 유산을 나누고 싶지 않아 결혼하지 않는 남자야. 어느 날 우연히 눈을 가리고도 앞을 볼 수 있게 된 한 남자에 대한 비밀을 담은 책을 읽은 후 자신도 그 수련에 빠지게 돼. 카지노에서 재산을 불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한거야. 하지만 수련을 마친 헨리 슈거는 더이상 수련 전의 목표에 의미를 느끼지 못해. 영적 수련은 그의 삶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끈거지.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사랑스러운 외형과 달리 시니컬한 캐릭터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억양 없이 로봇처럼 말하거나 내일 죽어도 상관 없다는 표정을 한 인물들에게 내비치는 연민이 매력이야. 그의 영화를 예상 외로 차가운 영화, 시니컬한 줄 알았는데 따뜻한 영화 두 가지로 분류해본다면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는 후자야. 웨스 앤더슨의 전작들은 주로 찌질하지만 사랑스러운 루저들에 관한 이야기였어. 입체적인 인간성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을 긍정하긴 했지만 그 맥락에 덧붙이기에 이 영화는 더 큰 담론, 인류애를 긍정하는 이야기같아서 신선해. 감독에게 심경의 변화가 생긴걸까?

#백조

이번 단편 4편 중 가장 여운이 길게 남았던 작품이야. <문라이즈 킹덤>의 샘과 닮은 왜소한 소년 피터 왓슨은 망원경으로 새를 구경하고 있어. 새를 좋아하는 소년 앞에 덩치 큰 어니와 레이먼드가 총을 들고 나타나 그를 위협하고 가해하는 과정을 어른이 된 피터 왓슨이 들려줘. 아름답게 구현된 프로덕션 위로 얹어지는 차분한 목소리는 참혹함을 극대화해. 하지만 놀라운 건 이 영화의 결말이야. “어떤 이들은 궁지에 몰려 더 감내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그대로 꺾이고 무너져 포기한다. 하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아도 어째선지 절대로 꺾이지 않는 이들도 있다.”라는 대사가 나와. 가해를 받았다고 해서 피해자의 존엄은 사라지지 않아. 그리고 포기해야 할 순간에 다시 몸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무엇이 다를까? 이런 질문의 연장으로 최근 읽었던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에세이가 생각나기도 했어. 그것이 무엇이든 무너지지 않는 숭고함, 그것을 해내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돼. 로알드 달이 실제 사건을 신문에서 읽고 소설로 썼다고 해.

#타고난 이야기꾼

<독><쥐잡이 사내>도 <백조>와 마찬가지로 17분의 단편이야. 두 작품은 예상 외로 차가운 영화에 가까워. 끝나고 씁쓸한 맛이 남거든. 이번 단편 시리즈의 매력은 끝없이 열리는 액자식 구조에 있어. 호불호를 가를 연출방식이기도 해. 하지만 책의 모든 문장을 말로 옮기는 배우들의 대사를 정신없이 듣다보면 웨스 앤더슨이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는 사실, 왜 그의 세계관에 매혹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다시금 상기하게 돼. 동화를 영화화한 영화 중에 너무 정직해서 가장 파격적인 영화야. 웨스 앤더슨의 최근작들은 자기 복제 안에서 통제가 더 강해지는 방식으로 변화해서 형식만 남아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어. 이번 시리즈는 강박에 가까운 웨스 앤더슨의 시그니쳐를 연극무대와 책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극단까지 밀어붙이면서 로알드 달의 메세지를 끌어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것 같아. 이제 다시 웨스 앤더슨의 다음 영화를 궁금해 해도 될 것 같아. 

#관람포인트01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웨스 앤더슨 영화 1, 2위를 다투는 <판타스틱 Mr.폭스>도 로알드 달 원작이야.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정말 사랑스러워서 치가 떨릴 지경인데, 또 존재 자체의 쓸쓸함과 뭉클함도 담겨 있어.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를 소개했을 때도 관람포인트로 추천했었어.(제발 봐줘😍) 난 1년에 한번 씩 주기적으로 보는 영화거든. 올 해는 지금이 때인가봐. 비교적 다른 작품들보다 호불호가 가리지 않는 영화이기도 해. 귀여운 건 답이 없잖아? 디즈니플러스, 왓챠에서 볼 수 있어.

#관람포인트02

이번 단편에서 책을 들려주는 화자가 등장하는데 바로 로알드 달 역할이야. 랄프 파인즈가 연기했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이어 웨스 앤더슨 감독과의 두번 째 작업이야. 웨스 앤더슨 사단이라 해서 늘 같은 배우들과 작업하곤 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베네딕트 컴버배치도 출연했어. 다음 작품에서도 볼 수 있게 될까?

레이지 카우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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