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여성 이슈 돌아보기
 Season 6  vol 33. 💡2025.12.26~2026.1.2.

키세스와 서부지법 그리고 탄핵
우리의 목소리는 어디로
끊이지 않는 교제폭력과 성폭력
올해의 승리, 그리고 희망들

입주자님들 안녕하세요, 저는 정말 오랜만에 플랫레터로 찾아온 남지원 기자입니다. 따뜻한 나라로 겨울휴가를 떠난 김서영 기자를 대신해 찾아왔어요!

벌써 올해가 일주일도 안 남았다는 게, 이제 다음주 주말은 2026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연말입니다. 다사다난이라는 말로 부족했던 한해, 올해도 입주자님들 덕분에 플랫은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입주자님들은 플랫과 함께한 한 해 어떠셨나요? 오늘은 연말 특집을 차려왔습니다. 플랫이 올해 어떤 이야기들을 전해드렸는지, 우리는 어떤 사건들 속에서 한 해를 보냈는지 돌이켜보는 시간을 마련했어요. 그럼 시작해볼게요😊

📌키세스, 서부지법, 그리고 탄핵까지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유독 올해 연말 분위기가 안 난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왜 그럴까, 지난 연말은 어떻게 보냈었나, 생각해봤는데.... 우리가 작년에 정말 스펙타클한 연말을 보내서 올해가 유독 심심(?)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해 연초에도 마찬가지였지요. 너무너무 추웠던 지난 1월 응원봉을 들고 은박담요를 몸에 두르고 키세스가 되어 서울 한남동 길거리를 지킨 여성들이 있었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체포되었고, 체포영장을 발부한 서울 서부지법이 습격당하는 것을 보기도 했어요. 여성혐오를 대표 상품으로 삼았던 신남성연대와 같은 세력이 어떻게 폭력적인 극단주의로 치닫는지를 우리 사회가 목격했던 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구속 상태로 재판받던 윤석열이 석방되었던 날도 혹시 기억하시나요? 윤석열이 서울구치소를 나와 당당하게 대통령 관저로 들어가는 모습을 봐야 했던 날이 하필 3월8일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한 4월4일까지 하루도 답답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란수괴 재판이 아직도 안 끝났다니 이래서 연말 분위기가 안 나는 걸까요😳)
 
📌우리의 목소리는 어디로

윤석열 정부의 짧은 임기는 백래시 그 자체였습니다. 성평등 정책이 후퇴했을 뿐 아니라, 성차별적 구조를 외면하고 축소하는 데 정부가 전력을 다하기도 했지요. 윤석열 탄핵을 요구한 주역이 여성이었고, 성평등 정책을 요구했던 건 그 때문이었을 거에요. 탄핵 이후 새 정치체제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백래시의 상흔을 회복하고 치유할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지난 6월 대선에는 여성 후보자가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비동의강간죄 도입, 교제폭력 대책, 차별금지법 마련 등 다양한 정책 요구가 쏟아졌지만 주요 공약에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됐고 예산도 기능도 강화되기는 했지만 대통령이 성평등가족부에 ‘남성 역차별’을 들여다보라고 여러 차례 주문하는 등 구조적 성차별의 존재를 축소하는 모습이 반복됐습니다.


광장의 의제들이 정책으로 살아남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광장을 지켰던 수많은 여성들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묻게 될 수밖에 없었어요. 많은 시민들이 분노와 배신감을 토로합니다. 응원봉과 빛의 혁명을 꼬박꼬박 언급하던 정치세력이 성범죄 대응처럼 중립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이슈조차 눈치를 본다는 언급을 해주신 분도 계셨고, 여성들이 정치권력을 갖길 기대한다기보다는 응원군으로만 바라보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어요. 


📌끊이지 않았던 교제폭력과 성폭력

교제폭력, 교제살인,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뉴스는 올해도 끊이지 않았어요. 지난 7월 말, 일주일 동안 여성 4명이 친밀한 관계에 있던 남성에게 살해당하거나 흉기에 찔려 크게 다쳤습니다. 세 차례나 스토킹 신고를 했는데도 잠정조치가 기각된 사건도 있었고, 접근금지 조치가 됐는데도 피해를 막지 못했던 사건도 있지요. 나를 보호해달라고 신고했는데도 살해당하는 결말을 피할 수 없다면 이 피해자들에게 국가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요.

지난 4월1일에는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는 2015년 당시 비서였던 A씨를 강간한 혐의로 지난해 고소돼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수사기관은 사건의 실체를 상당부분 파악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하급자에게 성폭력을 가하고, 위력으로 진실을 틀어막고, 10년만에 진실이 드러나려 하자 죽음으로 도피한 가해자를 보며 참담했습니다.

연말, 정희원 저속노화연구소 대표가 함께 일했던 여성 연구원에게 위력에 의한 성적 폭력을 자행했다는 주장이 나오며 또다시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라는 단어가 수면 위로 올랐습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마땅한 보호를 받고,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는 모습을 우리 사회가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었던가요. 이제는 그런 선례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벌어진 젠더폭력에 대해 언급하면서 지난 5월 대선 토론 중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생방송 TV토론에서 성폭력 행위를 묘사한 발언을 한 사건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최근 이 발언에 대해 무혐의 판단을 내렸고, 국회의원직 제명 청원에 60만명이 동의했는데도 징계가 논의도 되지 않았습니다. 내년에는 부디 합당한 조치가 되길 바랍니다.

📌올해의 승리와 희망들

1964년, 18세였던 최말자씨는 길을 알려달라며 접근해 성폭행하려던 남자에게 저항하다가 그의 혀를 깨물었습니다. 깜깜한 밤길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저항의 전부였지만, 피해자인 최말자씨는 ‘가해자’로 낙인찍혔습니다. “창창한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다”고 비난받으며 6개월 넘게 구치소에 갇혀 재판을 받았고 결국 유죄 선고를 받았죠.

사건 발생 56년만인 2020년 최말자씨는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그 길도 순탄치 않았어요. 법원이 증거가 없다며 두 차례나 재심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70대 후반의 최말자씨는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9월, 부산지법은 최말자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성폭력 피해자가 재심에서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최초의 사례입니다.

판결 후 최말자씨를 대리한 김수정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을 구하기를 멈추지 않은 사람이 결국은 세상까지 구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2018년 미투 운동을 계기로 용기를 얻어 부당한 일을 바로잡은 최말자씨처럼, 누군가는 최말자씨를 보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플랫은 포기하지 않고 싸워 결국 부당함을 바로잡고 자신과 세상을 구한 최말자 선생님을 '2025년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했습니다. 최말자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올해의 마지막 날, 플랫에서 만날 수 있어요. (2024년 플랫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은 이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여성 정책에서 진일보라 부를 만한 점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성평등가족부의 내년 업무보고에서는 교제폭력 관련 법제화와 임신중지 약물 합법화 등이 공식적으로 언급됐어요. 교제폭력의 특수성에 맞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은 ‘교제 관계’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아직 법제화되지 않고 있는데, 새해에는 교제폭력법 도입이 속도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착취물 유통 차단을 위한 부처 간 협업, 임신중단 약물 합법화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2026년에는 성과가 있기를 기원하며 플랫도 열심히 취재하고 전하겠습니다.


김연서 인턴기자가 준비한 올해의 마지막 [플랫한 문화생활] 입니다. 연말을 맞아 겨울 영화를 소개해요.


🍀🍀🍀🍀🍀


📕 <여행과 나날> 미야케 쇼 감독/각본, 심은경 주연 


어딘가 표류하고 있는 느낌. 연말은 늘 확실하고 선명한 감각 대신, 모호하고 흐린 감각이 지배하는 시기였습니다. 한 해 동안 이루었던 성과와 기뻤던 순간보다 아쉬움이 더 또렷해지곤 합니다. 이런 편향은 해마다 반복되어, 내년에는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습니다.


“고향을 떠난 이후 계속 여행 중인 것 같아요.”


여행과 나날 속 주인공 이(심은경)가 말합니다.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한 그는 일본에서 각본가로 일하고 있는 한국인입니다.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느끼던 중, 한 사람에게서 카메라를 선물 받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낀다는 그의 말은 이의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이는 그 감각을 찾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떠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은 어디에서 올까요? 이는 눈으로 뒤덮인 마을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새하얗게 쌓인 눈을 손으로 만져보고, 흐르는 강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낯선 골목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화려한 절경이나 극적인 장면 대신 이는 평범한 순간에 셔터를 누릅니다. 마치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듯이요. 어쩌면 살아있다는 감각이란 그 순간에 온전히 머무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슬럼프에 빠진 한 각본가의 여행은 표류 끝에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이었습니다. 영화 초반,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글을 쓰던 이는 마지막에 이르러 즐기는 얼굴로 원고를 작성합니다. 여행 중 뜻밖의 에피소드를 겪으며 그는 “이렇게 즐거웠던 건 오랜만이에요”라고 말합니다. 순수하게 즐기고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찾은 후에야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 담담한 여행을 보며, 여성이 보내는 ‘고독한 시간’이 유난히 인상 깊었습니다. 그동안 여성에게 고독은 결핍이나 문제로 해석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이의 여행은 그 고독을 스스로 만든 것이며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합니다. 혼자 머물고, 걷고, 바라보는 시간을 조용히 허락하면서 말입니다.


이의 여행을 따라가며 그의 옷차림이나 목적지 대신 설경 속에 함께 놓인 감각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인물을 관찰하기보는 그와 나란히 여행하고 있는 기분까지 느끼게 되었는데요. 한 해가 아쉽게 끝난다는 생각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조금 옅어졌습니다. 아쉬움에 붙잡혀 지금 이 순간을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눈 내리는 풍경으로 가득 찬 이 영화는, 연말에 담담한 마음으로 보기 좋습니다. 여행을 통해 자신을 마주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경험. 영화로 대신 체험해보시길 바랍니다.



👤 기자님들의 일거리를 늘리는 과도한 요구이기는 합니다만 ㅎㅎㅠㅠ 플랫에서 종종 하는 모임을 확대시켜서 여성학 강좌 같은 것을 열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플랫이 주최 하기 어렵다면, 의견남기기 코너를 통해서 여성학 관련 강좌나 모임 소식을 받아 무료광고나 협력의 형태로 관련 링크나 포스터만 첨부해주셔도... 여러 좋은 자리들이 있는데 보통 홍보가 잘 되지 않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 양공주 대신 기지촌 여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어떨까요! 양공주는 단순히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멸칭이라고 생각합니다.
  
👀 From.Flat 

📣 ‘양공주’라는 단어는 멸칭이 맞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했던 역사, 국가로부터 미군을 위한 성매매를 요구/강요받은 여성들이라는 구조적 맥락을 지우고 그 여성들을 도덕적으로 타락해 성매매에 종사한 것처럼 낙인찍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죠. 하지만 이 같은 멸칭을 (피해)당사자가 전유할 때에는 다른 효과가 생겨납니다. 기지촌에서 ‘국가가 승인한 성매매’에 종사한 여성이라는 사실에 더해, 사회가 그 여성들을 ‘양공주’라고 호명하면서 피해자성을 지우고 타락한 여성으로 낙인찍었다는 사실까지 드러내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유령 연구>의 저자 그레이스 조는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문자 그대로 ‘서양 공주’를 의미하는 양공주는 미국인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한국 여성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대개의 경우 이는 미군을 상대하는 매춘 여성을 일컫는 멸칭으로 사용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번역되는 이 용어는 특정한 역사적·정치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해왔다. 너무 많은 의미로 가득한 이단어는 그와 동시에 한인 디아스포라에게는 발화할 수 없는 ‘유령 같은’ 단어다. 수치심과 비밀을 통해 유령을 길러내는 그 과정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안에서 양공주를 중심적이면서도 동시에 예속적인 상태로 만들었다.]

지난주 레터를 쓰면서 책에 나오는 ‘양공주’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맞을지 저희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책이 시종일관 이 여성들을 ‘양공주’라고 호명하고 있고, 이는 당사자성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전복적인 전유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저희가 임의로 다른 말로 바꿔 쓰는 것이 오히려 저자의 취지를 해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작은따옴표(‘’)를 쳐서 거리를 둔 인용임을 강조하려 했습니다.

그럼에도 설명 없이 다가온 단어에 불편함을 느끼실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지난주에 해설을 덧붙일까 하다가 레터가 지나치게 늘어질까 걱정되어 그러지 않았는데, 결국 이렇게 길게 설명드리게 되었네요. 앞으로 조금 더 고민하는 플랫팀이 되겠습니다.

📣여성학 강좌 모임 비슷한 것(?)을 준비해보고 있다는 소식 살짝 알려드립니다. 어떤 형태가 될지는 날씨가 따뜻해지기 전에 알게 되실 수 있을 거예요!

📣 올해의 마지막 레터, 어떠셨나요? 새해를 맞아 플랫레터는 한 주 쉬어갑니다. 모두 올 한해 고생많으셨고 새해 복 가득 받으시길 바랍니다. 새해에는 더욱 알찬 레터로 돌아올게요. 내년에도 플랫과 함께해요❤️

🌹1월에도 플랫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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