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도 벌써 한다니까’ 말고,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이유요.
추석 잘 보내셨어요?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아이들 이야기를 하게 되지요.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키우는 시누이나 동서, 사촌을 만나면 더 그렇고요. 어느 학원에 다니는지, 요즘 무엇을 배우는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벌써 그걸 시작했어?”
“그런 것도 따로 배우는 거야?”

처음에는 궁금해서 듣다가, 어느 순간 우리 아이를 떠올리게 됩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느린 것 같고, 아이에게 맞춰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너무 느긋했던 건가 싶어요.

비교는 성적에서 끝나지도 않아요. 누구는 키가 많이 컸고, 누구는 인물이 훤해졌고, 누구는 어른들에게 싹싹하게 잘한다고 합니다.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혼자서도 알아서 하는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나면 우리 아이의 부족한 점이 하나씩 생각나요. 집에 돌아온 아이는 전과 똑같은데, 아이를 보는 내 마음은 조금 달라져 있는 거예요.

저도 얼마 전 세종시에서 ‘5세 고시’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지금이야 “아이고, 꼬마가 고생이 많네” 하고 웃으며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혜린이가 지금 다섯 살이었다면, 제가 그렇게 편하게 웃을 수 있었을까요.

겉으로는 “벌써 그런 걸 해?” 하면서도 집에 돌아와 찾아봤을 것 같아요. 무엇을 준비하는 건지, 언제부터 해야 하는 건지요. 나만 모르고 있다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놓치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지금 웃을 수 있는 것도 제가 그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이겠지요. 그 안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면 저도 마음이 바빴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없었던 걱정이에요. 아이가 무엇을 어려워해서 알아보기 시작한 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은 이미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내 아이에게도 필요할 것 같아지는 거죠.

저는 이 마음이 어디서 오는지 한번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우리는 더 배우고, 더 준비하고, 조금이라도 앞서가려고 애쓰며 살아왔잖아요.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자리를 잡은 뒤에도 계속 자기계발을 합니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할 수 있을 때 하나라도 더 해두는 것이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저도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요. 열심히 해서 전보다 나아지는 경험이 얼마나 좋은지도 압니다. 그러니 아이에게도 자연스럽게 같은 방법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미리 배우면 나중에 편하겠지.
하나라도 더 알면 도움이 되겠지.
남들보다 조금 앞서 있으면 안심할 수 있겠지.

아이를 위해 애쓰는 마음 안에, 내가 살아오며 믿게 된 기준이 들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키우는 사람의 말이 크게 들립니다. 같은 시기에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집은 벌써 다음 것을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그 엄마는 부지런한 것 같고, 나는 뭔가 놓친 것 같아요. 아이의 진도를 듣다가 어느새 엄마인 나에게 점수를 매기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익숙하게 믿어온 이 기준이,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도 그대로 정답일까요. 우리가 어릴 때 상상했던 어른의 삶과 지금 사는 모습도 꽤 다르잖아요. 아이들이 자라서 일하고 생활할 때는 사회가 또 달라져 있을 겁니다. 어느 학교를 나오고 어떤 직업을 가지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도, 지금과 똑같이 이어질지는 알 수 없어요.

아이들 자신이 바라는 삶도 아직 모릅니다. 어떤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에 시간을 쓰고 싶어 할지요. 우리가 부러워하는 삶을 아이도 똑같이 부러워할 거라고 정해둘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 먼 미래를 걱정하면서, 당장 옆집 아이가 어디까지 배웠는지로 안심하기도 하고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미래는 보이지 않지만 진도는 보이니까요.
앞날은 모르겠지만 남들만큼 해놓으면 조금 마음이 놓이니까요. 저도 그 마음을 알아요. 다만 엄마 마음이 놓이는 것과 아이의 미래가 준비되는 것을 같은 일로 생각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아이가 먼저 시작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우리 아이가 늦었다거나, 지금까지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잖아요. 우리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시키기로 했을 때는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아직 시작하지 않기로 했을 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요. 아이의 상태를 보고, 우리 집의 생활을 생각하고, 지금은 이것부터 하자고 정했을 테니까요.

다른 집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 선택을 다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만 남들이 이미 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그동안 생각해온 것들을 전부 틀린 선택으로 만들지는 않았으면 해요.

이번 추석에 다른 집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더 시켜야 하나 고민되셨다면, 결정하기 전에 이유를 하나만 더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남들도 벌써 한다니까’ 말고,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이유요.

아이가 수학의 기본 개념을 어려워한다면 그 부분을 도와주면 됩니다. 하지만 사촌이 두 학년 앞서간다는 이유로 우리 아이의 진도까지 당겨야 하는지는 별개의 일이에요.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과, 그 집의 계획을 우리 집에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다르니까요.

저도 다른 아이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릴 거예요. 그럴 때마다 ‘늦었나?’부터 묻기보다 ‘그래서 지금 우리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데?’ 하고 다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온 기준만으로 아이의 미래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지금 무엇을 어려워하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는 곁에서 살펴볼 수 있으니까요.

이번 추석에 들은 이야기들이 곧바로 아이의 새 시간표가 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의 하루에 무언가를 더 넣는다면, 다른 집을 따라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이유가 있어서였으면 해요.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