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으로 별로인 말과 행동의 명맥을 지키는 비밀결사단체’ 같은 게 존재한다면 어떨까요. 그들은 아마도 이런 미션을 갖고 있을 것 같습니다.
“별로인 말과 행동을 꾸준히 계승하고 보존한다. 무신경·무례·자기중심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아카이브하고 실천하며 그로부터 비롯되는 미묘한 불쾌함을 후대에 전수한다.”
전형적으로 별로인 말과 행동의 명맥을 지키는 비밀결사단체(별로단)에게 ‘별로인 말과 행동’은 고쳐야 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옛날식 무신경을 문화유산처럼 보호하죠.
이들은 소셜미디어 댓글이나 회사 메신저 내 대화, 가족 모임에서 나오는 발언 등 보통 사람들이 별로라고 합의한 말과 행동을 수집하고 분류합니다. 이를 통해 불쾌함을 패턴화하고 그것을 실제 대화에서 습관적으로 복원 및 재연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어땠냐면…”라며 대화를 풀어갑니다. ‘불행 배틀식 잘난 척’ 정도로 명명할 수 있겠네요.
이때 ‘애매하게 불편한 말과 행동’을 넘어 ‘대놓고 폭력적인 말과 행동’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상대가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불쾌함이야말로 ‘별로’의 진수이기 때문입니다.
별로단의 비전은 아마 이런 게 아닐까요.
“무의식적 민폐의 완전한 자동화. 인류가 반성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한다.”
별로단이 추구하는 이상 사회는 자기반성이나 성찰, 배려가 불필요한 사회입니다. 다시 말해 모두가 자신이 별로인 줄 모르고 살 수 있는 세상이죠. 모두가 무례하면 누구도 무례하지 않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를 기반으로 한 핵심가치는 5개 정도를 뽑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핵심가치는 ‘안일’입니다. 불쾌함을 느끼더라도 ‘귀찮음’의 이름으로 무력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별로인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 회피와 무관심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두 번째 핵심가치는 ‘합리적 무례’입니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며 현실적이라는 프레임으로 무례를 포장하는 것이죠. 세 번째 핵심가치는 ‘전통’입니다. 사회생활은 모두가 같이 하므로 변화 이전의 옛것에 대한 존중을 보이라고 강요하는 태도입니다. 네 번째 핵심가치는 ‘무반성의 지속가능성’입니다. 소위 ‘사과하면 더 이상해진다’는 말의 기반에 깔린 생각이죠. 마지막 다섯 번째 핵심가치는 ‘집단의식’입니다. 서로를 불편하게 하면서도 묘하게 편안한 관계를 유대감으로 보는 접근입니다.
다섯 가지 핵심가치는 모두 별로인 말과 행동을 개인의 결함이 아닌 시스템의 규범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입니다. 이로써 불쾌함은 ‘필요악’과 같은 지위를 획득하게 됩니다.
별로단에는 나름의 의식 절차가 존재합니다. 입단식은 간단합니다.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면접관의 표정을 굳게 만드는 데 총 3회 성공하면 됩니다. 합격자는 “아, 나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요.”라고 선언하며 정식 단원이 되죠. 이 짧은 문장은 별로단의 지향을 함축하는 구호입니다. 상처를 주되 책임은 끝까지 회피하는 능력이야말로 별로단이 갖춰야 하는 기술입니다.
총회가 열릴 때면 단원들은 늘 20분 늦게 등장합니다. 그들에게 시간은 타인의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발언권은 늦게 온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집니다. 모든 안건은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라는 한 문장으로 폐기되죠. 합의는 무의미해지고 대화는 단절됩니다. 하지만 별로단에게 있어 그것은 존재의 목적을 달성하는 순간과 같습니다.
별로단에도 바이블이 존재합니다. 구성원들은 매주 그것을 공부하죠. “나는 솔직한 편이야.”, “그냥 내 생각은 그래.”,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요즘 애들은 말이야.” 이런 문장들은 그야말로 기본 초식입니다. 상대가 반박할 틈을 주지 않는 완성형 문장들. 별로단의 언어는 공격보다는 방어에 능하고 대화보다는 단절에 가까우며 그 안에서만 작동하는 묘한 유대감을 만들어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런 노력을 지속할까요. 별로단의 운영 철학은 명확합니다. 지나친 공감과 이입은 사회를 피곤하게 만든다는 믿음. 그들은 스스로를 ‘정서적 과잉의 시대를 교정하는 사람들’이라 부릅니다. 배려가 피로를 낳고 사과가 위선을 부른다고 믿습니다. 최종 목표는 공감이 사라진 자리에서의 평화입니다. 모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불편이 일상이 되도록.
오늘도 별로단은 곳곳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방심하지 마세요. 당신도 그 일원일 수 있으니. 물론 이 편지를 보내는 저 또한 그렇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