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장의 여는 인사말 ]

안녕하세요. 편집장 장재열입니다. 우선 축하받고 싶은 일이 있어요! 실은 9월 4일이 제 생일이었거든요. 여러분께 제일 먼저 알려 드리고 싶어서 미리 써둔 원고인데... 정작 레터는 생일이 지나고 보내게 됐네요. 그래도 제가 직접 알린 건 정말 처음이에요. 제가 카카오톡 생일 알림을 지웠거든요. 


역설적이지 않나요? 카카오톡에는 생일 알림을 지워 놓고 여러분께 보내는 레터에는 생일을 얘기한다는 거. 저도 이게 왜 그랬는지? 제 마음을 들여다보니까 카카오톡 생일이 뜨면 사람들이 계속 선물을 보내게 되잖아요. '뭐라도 보내야 할 거 같은데. 내가 저 사람한테 받은 게 많은데.' 그리고 마찬가지로 저 역시 카카오톡에 주변인의 생일이 뜰 때마다. '저 사람이 나한테 선물을 늘 해 줬던 거 같은데? 내가 뭐라도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이런 마음으로 계속 생일을 숙제처럼 바라보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이 레터에서는 오로지 순수하게 여러분들은 제게 '축하한다는 마음'을 보낼 수 있는 관계. 물질이 아니라 마음 하나를 담을 수 있는 관계라는 게 좋았어요. 요즘 이렇게 적절한 거리 속에서 서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어디에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곤 한답니다. 


꼭 혈연·학연·지연으로 묶인 관계가 아니어도 때로는 먼 듯 느슨한 관계에서 진짜 마음이 오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이 편지도 여러분께 그런 느슨한 듯 진짜 마음이 오가는 친구 같은 글이기를 바랍니다. 자 시작해 볼까요?

👀 한 눈에 보는 오늘의 마음건강
① 책 | 나를 다독이는 가장 깊고 내밀한 목소리
② 칼럼 | 우리는 서로에게 외국어를 쓰는 존재니까
③ 이달의 마음건강 강연 및 교육 정보
나를 다독이는 가장 깊고 내밀한 목소리🗣️
『내면의 작은 방』 정용실
editor 강동훈

다양한 독서 모임을 꾸려가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책을 매개로 타인의 삶에 귀 기울이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시간은 늘 가슴 벅찬 감동을 줍니다.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분들의 마음속에는 타인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가장 가깝고도 중요한 존재인 '나 자신'과의 대화는 얼마나 자주 나누고 있을까요?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 봐 조심하면서도 내 마음이 다치는 것에는 무감각하고, 타인의 이야기는 밤새 들어주면서도 내 안에서 들려오는 신음은 애써 외면하곤 합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쉼 없이 달리다 보면,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디가 아픈지 묻는 내면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오늘은 이처럼 바깥으로만 향해 있던 시선을 내 안으로 거두어, 스스로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용실 작가의 『내면의 작은 방』을 소개합니다. 30년 넘게 타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듣던 베테랑 방송인인 저자조차, 지하철에서 갑자기 기절할 만큼 지독한 번아웃과 질병을 겪은 끝에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마주 앉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 몸에서부터 출발한 저자의 치열한 '자기 이해' 여정을 묵묵히 따라가 보시길 바랍니다.

🔖 책 속 한 줄

자신과 진실한 소통을 하려면, 용기 내어 자신의 상처를 먼저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리고 상처와 함께 저 가슴속 깊이 묻어버린 그래서 잊힌 '자신의 말'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 말을 입으로 뱉어내야 돌덩이처럼 목을 꽉 막고 있던 '억압'을 풀어내고 자신의 솔직한 말을 계속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에게도 진실할 수 없다면 이처럼 비극적인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상처란 가장 먼저 말해져야 할 소중한 것이기에.

- 정용실, 『내면의 작은 방』, 찌판사, 2026, 116쪽


제가 '자기 자비'라는 집단 상담에 참여했던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내면의 작은 방'을 만들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 그것은 제 중심부가 따스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기분을 타인의 평가, 업무 성과, 사회적 성취를 통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저 자신 안에서 느껴봤습니다. (...) 힘들거나 지칠 때 제 몸을 감싸안고 그 마음의 방으로 갑니다. 저 자신을 돌보러 말이지요. '고생 많았어. 세상살이가 힘들지. 여기서 잠깐이라도 쉬어. 내가 불을 지펴줄게. 눈이라도 좀 붙여봐.' 스스로에게 하는 이 위로의 말 한마디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힙니다.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제가 사랑으로 저 자신을 아껴주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 정용실, 『내면의 작은 방』, 찌판사, 2026, 161쪽

우리는 서로에게...👥
외국어를 쓰는 존재니까
editor 장재열

혹시 이런 경험 있으세요? 누군가에게 상처 주기 싫어서, 최대한 부드럽게, 최대한 돌려서 말했는데, 오히려 그게 상대를 더 아프게 했던 경험이요. 저는 몇 년 전에, 그걸 아주 뼈아프게 배웠답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린 적 있듯이, 저는 직설적으로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에요.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고, 그게 상대를 덜 아프게 하는 길이라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배운 게, 바로 연애였어요. 헤어지던 시기였는데, 하필 제가 이별을 통보해야 하는 처지였죠.

아마 ‘옛날 연애 얘기를 써도 되나?’ 하고 깜짝 놀란 독자분들 계실 텐데요. 참고로 이 사연의 주인공과는 이후로 좋은 친구로 잘 지내고 있고, 허락받고 쓰는 거랍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얘기해 볼게요. 그 친구는 아주 화통하고 직설적인 성격이었어요. 저랑은 정반대였죠. 그런 면에서 서로가 끌렸고, 또 그런 면에서 서로가 지쳤어요.

하지만 상대는 아직 마음이 조금 남아 있었고, 저는 그 지침이 조금 더 빨리 왔었나 봐요. 그래서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제가, 어렵사리 먼저 말을 꺼내게 됐죠. 그 친구가 조금이라도 상처를 덜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계속 드는 거예요. 나쁜 사람이 아닌데. 너도 좋은 사람이고 나도 좋은 사람인데, 단지 우리는 기질이 다를 뿐인데. 그래서 늘 그렇듯, 쿠션어를 잔뜩 깔기 시작했어요. “너도 참 좋은 사람이고, 나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가 기질이 너무 다르잖아. 너도 알다시피.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점점…” 뭐 이런 식으로요. 근데 한참 제 말을 듣고 있던 그 친구가, 딱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만 만나자는 거 아니야?” 그래서 저는 또 얼버무렸죠. “그래 맞아. 맞는데. 맞기는 한데, 그게 이제 뭐랄까, 좀 너무 일방적으로 들렸을까 봐 걱정이긴 한데…” 그랬더니 그 친구가 저를 똑바로 보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미안한데. 그렇게 설명을 계속하는 게 배려가 아닌 거, 너 아니?”

그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이 친구는 저를 오래 만났기 때문에, 제가 배려의 마음으로 그런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늘어놓는 말들이 오히려 이별의 시간을 훨씬 더 길게 늘리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거죠. 저는 말을 길게 늘어놓는 게 상대도 안 다치고 나도 안 다치게 하는 다정함일 거라고 믿으며 살아왔는데요. 그때가 서른여섯쯤이었나.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30몇 년간 저를 가로막고 있던 편견이 와장창 깨지면서, ‘아…’ 하고 깨우쳤어요. 상처 주지 않으려고 기울인 그 노력이, 누군가에게는 더한 무례가 될 수도, 잔인함이 될 수도 있다는걸요.

그 일이 있고 나서, 저는 관계라는 걸 좀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무결함’을 꿈꿨거든요. 아무도 안 다치고, 아무 오해도 없는, 그런 깨끗한 관계, 그런 소통이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압니다. 왜냐면요. 우리가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건, 결국 가장 여리고 약한 면까지도 그 사람한테 내어준다는 거잖아요. 그러니 조금씩 상처를 주고받는 건, 사실 관계를 시작할 때 이미 서로 합의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심리학자 친구가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상처를 하나도 주고받지 않는 관계라는 건, 그러니까 없는 거야, 재열. 우리는 어느 정도는 서로를 그냥 견디는 거야.” 그 말이 참 와닿았습니다. 그런데 그 ‘견딘다’라는 게, 꼭 고통스럽다는 뜻은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그 순간, 저는 과거를 돌아보게 됐어요. 저를 좋아해 준 사람들은, ‘네가 이렇게 말이 길고 답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참아가면서 널 좋아해’가 아니었던 거예요. ‘너는 원래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고, 그건 그거고. 하여튼 난 네가 좋아.’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너는 이런 특징이 있고, 나는 네가 좋고’, 이 둘이 나란히 놓인 병렬 관계였던 거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신기하게 머릿속이 확 정리가 되더라고요. 길게 말하는 게 배려라고 느꼈다가, 또 길게 말하는 게 누군가에겐 상처니까 고쳐야 하나 싶었다가, 왔다 갔다 하던 그 마음이요. 결론은 이거였어요. 우리는 저마다 다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는 거. 네덜란드어, 덴마크어처럼 이름이 다른 게 아니라, ‘한국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에 서로 전혀 다른 언어들이 숨어 있는 거예요. 같은 언어를 쓰는 것 같아도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들 전혀 다른 세계의 언어를 쓰고 있는 거죠. 그러니 서로에게 ‘번역’이 필요한 거고요.

예전엔 제가 길게 마음을 담아 보낸 카톡에, 상대가 “오키” 하나만 딱 보내면 그렇게 서운했거든요. 근데 그것도 사실은, 그 사람의 언어로는 이미 제 말을 충분히 다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는, 더 반박하거나 수정할 게 없다는 최선의 답변이었던 경우도 있더라고요. 저는 제 언어로만 번역하려다 혼자 서운했던 거고요.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요. 제가 이렇게 길고 돌려 말하는 걸 좋아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게 자기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까 다 알고, 다 겪으면서도, 그냥 저를 좋아하고 있는 거예요. 결국 우리는 말투보다, 그 말투 너머에서, 마음과 마음으로 훨씬 더 많은 걸 주고받고 있더라고요.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누군가와의 대화 속에서 결이 달라 오해가 생기거나 상처받았다 하더라도, 그걸 너무 애써 바꾸려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결국 저마다의 고유한 언어로 대화하고 있고, 그 대화가 조금은 엇갈릴지라도 서로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존재들이 곁에 있으니까요. 언어라는 건 내 안의 다정함을 건네기 위한 ‘배송의 형태’일 뿐이잖아요.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분들을 떠올려 보세요. 저마다 다르게 말하겠지만, 중요한 건 그 모든 것과 무관하게 그들이 지금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에요. 오랜 시간 저는 제 말투를 두고 고쳐야 하나 헤맸는데요. 겨우 닿은 자리는 이거였어요. 고치더라도 누군가는 나를 좋아해 줄 것이고, 고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나를 좋아해 줄 것이며, 어떤 형태로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은 늘 언제나 존재하고, 떠나고, 또 새로 생겨난다는 것. 여러분은 지금, 어떠세요?
editor 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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