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젠더 이분법을 타파하는 퀴어한 감상
• 혼란과 공존하는 동시대의 온라인페미니즘

여자 아이돌과 여성 감상자의 얽히고설킨 사이

K-pop, 뉴미디어, 그리고 온라인 페미니즘

논문의 저자는 여자 아이돌 그룹들의 위와 같은 변화가 지금처럼 일반적이지 않았던 2019년도의 한 여자 아이돌의 무대를 소환했습니다. 바로 2019년 Mnet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 <퀸덤>에서 여자 아이돌 AOA가 공연한 <너나 해> 무대인데요, 당시 섹시한 여성 아이돌로서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던 AOA가 예상을 깨는 무대를 선보이자 센세이션을 일으켰었죠. 해당 무대가 방송된 이후 온라인 상에서 이슈가 되었던 점들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이 세 가지가 대표적입니다.

• 핫팬츠를 입은 남성 댄서들의 보깅

무대에서 AOA는 어두운 빛깔의 바지 정장과 단화를 착용한 채 등장한 반면, 남성 댄서들은 끈 나시에 핫팬츠를 입은 채 등장해 대비를 이뤘습니다. 또한 남성 댄서들은 부드럽고 젠더리스한 느낌의 보깅 춤을 추었어요. 이런 대비는 즉각적으로 ‘섹시한 여자 아이돌’이 행한 ‘미러링’ 작업으로 의미화되어 트위터, 유튜브, 각종 여초 커뮤니티의 열광적 호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 유리 깨지는 소리

<퀸덤>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무대 영상에서는 3분 23초 무렵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요, 이는 실제 현장에선 들리지 않았고 후시 녹음으로 사후적으로 덧입혀진 소리라고 해요. 그럼에도 위와 같은 무대의 이미지상 재현의 특성과 함께 이 소리를 ‘유리천장’을 깨뜨리는 행위로서 소화시키며 온라인 상 여성 감상자들의 격한 호응을 받았습니다.

• 그 후 AOA 왕따 논란

그러나 이후 AOA의 전 멤버 민아의 왕따 경험 폭로를 계기로 그룹의 활동은 사실상 중단되었고, 이후 <너나 해> 무대에 열광했던 이들은 혼란을 겪게됩니다. ‘여성인 멤버가 같은 여성을 왕따시켰다’는 댓글과 해당 무대에 열광했던 과거를 부끄러운 일로 인식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이죠. 해당 논란을 기점으로 온라인 공간에는 한쪽에선 긍정적인 반응을 했던 것을 후회하는 ‘냉소’가, 다른 한쪽에선 감상자들이 호응했던 ‘맥락에 대한 강조’가 공존하게 되었습니다.

💡 젠더 이분법을 타파하는 퀴어한 감상

저자는 <너나 해>의 미러링이 보깅 댄스로 이어짐으로써 이분법적인 젠더 체계에 균열을 가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남성 댄스들이 춘 보깅은 패션지 ‘보그(Vogue)’의 모델이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본떠 만들어진 스트릿 댄스의 한 종류로, 부드러운 곡선 형태의 퀴어한 춤이라는 특징을 가져요. <너나 해> 무대 위 남성 댄서들에게 단순히 야한 옷을 입혀 기존(여성)과 다른 성별의 신체를 야하게 전시하는 미러링이 아니라는 겁니다. 

논문은 또한 당시 무대에 섰던 남성 댄서들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해 함께 다루고 있는데요, 한 댄서는 “춤을 통해 표범이 되고 싶기도 하고, 인어가 되고 싶기도 해요”라고 말합니다. 이때 저자는 몸짓 언어를 통해 ‘나’를 설명하고 표범이나 인어와 같은 비인간 존재로 자신의 신체 변화를 상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인간 중심주의를 타파하고, 소수적인 것이 ‘되기(becoming)’를 통해 페미니즘적으로 새로운 존재론을 구상하는 방법론을 엿보고 있는 것이죠.

또다른 남성 댄서의 “보깅 때문에 이렇게 입고 다니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게 아니라 저흰 사실 보깅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랬어요. 이건 그냥 저희 스타일이랍니다”라는 인터뷰도 인용합니다. 이를 통해서 옷차림, 화장과 같은 ‘기호’가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않고 있음을 포착해요. 특정 기호(수트 차림, 성애적이지 않은 가사, 파워풀한 안무)가 페미니즘의 핵심적 기호로 자리 잡았지만, 이것이 다시금 기호 밖의 몸, 이미지들에 대한 과도한 비난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퀴어한 독법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 혼란과 공존하는 동시대의 온라인페미니즘

저자는 그러나 온라인 팬덤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낭만화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온라인 공간 상에서 아이돌 팬덤과 아이돌이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음에 주목할 것을 요청합니다. <너나 해> 무대와 그 후 AOA 왕따 논란으로 형성된 ‘(해당 무대에 열광했던 행동을 후회하는 '냉소'와 감상자들이 호응했던 '맥락에 대한 강조'라는)혼란스러움’이야말로 현재 온라인 페미니즘의 분위기 속에서 여성 감상자들이 취하는 태도의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들은 여성 아이돌을 마냥 신성시하지도 않고, 동시에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것도 경계하고 있습니다. 

동시대의 온라인페미니즘은 또한 뉴미디어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이슈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성 감상자들이 여자 아이돌의 이미지를 향유하는 문화, 역으로 여자 아이돌이 동시대 여성들의 반응을 읽고 무대 기획에 반영하는 문화 속에서 여자 아이돌과 여성 감상자들은 쌍방향의 비선형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요. 저자는 이러한 관계성 인식을 통해 여성의 몸이 단지 재현된 형태로만 의미를 획득한다는 인식을 깨뜨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 동시대 한국 페미니스트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인 여자 아이돌 감상문화에 주목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여성의 몸, 이미지와 재현에 관한 새로운 사유 방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여자 아이돌의 행위를 '수동적' 혹은 '주체적'이라는 이분법적 진단에서 벗어나고, 신체와 이미지가 이미 서로 얽혀있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할 때입니다. 이를 통해 '제 4물결 페미니즘'이 정체성의 정치 또는 세대론과는 다른 대안적 논의를 생성해나갈 수 있을 거예요.

• K-pop은 무대, 의상, 메이크업 등에서 기존의 서구 팝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다채로운 이미지를 연출해온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안에는 젠더의 경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재현의 시도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K-pop에서 퀴어한 감성과 퀴어한 감상이라는 사회-문화적 가능성을 좀 더 쉽게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기 위해 한편에서는 K-pop 감상자들은 기존에 코드화된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향유하며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하고, 다른 한편에서 엔터 기업과 아이돌 그룹들이 그런 다양한 감상 의견을 기획과 콘셉트에 반영하여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한 문화적 선순환이 쌓여서 언젠가는 젠더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혹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아진 사회의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겁니다.

• 팀원이 되면? 

1. 두 달에 1~2번 폴리버리레터를 직접  작성해요.
2. 매달 정기적으로 한 차례 회의를 가져요. 소개할 논문을 선정하고, 작성해온 레터에 대한 의견을 나눠요.
3. 폴리버리레터는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라 금전적 보수는 따로 지급되지 않아요. 그러나 지원받는 소정의 활동비로 매달 회의를 마치고 맛있는 음식을 팀원들과 함께 즐기고 있답니다. 비슷한 관심사에 대해 읽고, 쓰고, 대화하는 작지만 알찬 커뮤니티에 소속되는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 팀원이 되려면?

1. 젠더/청년/노동/정책이라는 키워드에 진심어린 관심을 가진 분들이 지원하시길 추천드립니다.
2. 글쓰기를 좋아하시고, 글에 대한 피드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실 수 있는 분을 찾고 있어요.
3. 현재는 사회학과 대학원생들로만 구성되어 있어요. 그러나 학력이나 전공이 같지 않아도 관련 주제의 논문을 찾고, 독해하고, 풀어쓸 수 있다면 누구든 환영합니다.

• 지원 방법: poliveryletter@gmail.com 으로 지원해주세요. 마감 기한 따로 없으나, 적절한 팀원이 선발되면 자동으로 마감될 예정입니다. 예상 충원 팀원 인원은 약 1~2명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