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경향신문엔 <투명장벽의 도시>(링크) 시리즈가 게재되었습니다. 편리한 최첨단 도시 안에 존재하는 ‘투명장벽’들을 그린 기획인데요. 그 중 네 번째 회차는 키오스크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비대면 시대를 지나오며 이미 키오스크가 어느정도 우리에겐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만, 노인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키오스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키오스크 이용법을 가르치는 강의까지 나왔는데요. 그래도 많은 노인들은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고 기차표를 예약하거나 은행 업무를 보지도 못하고, ‘투명장벽’인 키오스크 앞에 주눅들어 발길을 돌리곤 합니다.

고용주, 프랜차이즈 기업 입장에서는 키오스크에겐 주휴수당을 줄 필요도 없고 아프거나 다칠 일도 없으니, 인간 종업원을 고용하는 것보다 꽤 편리하다고 합니다. 인간 종업원은 근미래에 동전이나 버스 토큰처럼 사라지게 될지 모릅니다.

*

10월에 레터에서 다룬 주제는 ‘AI’와 ‘인구’였습니다. 어쩌면 이 두 주제는 굉장히 동떨어져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노동(일자리)’이라는 키워드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동의 종말’이라는 말은 이미 익숙합니다. 키오스크나 AI, 로봇은 인간에 비해 뛰어나고 비용도 적게 들고 ‘효율적’입니다.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궁금합니다. 노동은 정말로 종말할까? 그게 아니라 어쩌면, 단지 우리 모두 -노동자, 소비자 등의 입장에서- 어떤 것들을 제각기 감내하고 있을 뿐인 것은 아닐까?

오늘 에세이에선 ‘감내’라는 단어라든지 ‘키오스크’에 대해 간략히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야흐로 자동화의 시대입니다. 햄버거도, 커피도, 상담도, 은행 일도, 생산공정도 모두 ‘자동’입니다. 모두가 기계가 가져다 준 효율성에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돈마쓰고로의 독백 속 자동판매기 자리에는, 오늘날의 무인판매점이라든지 키오스크를 넣어도 대체로 문맥이 통할 것 같습니다.

코로나 이후 본격적으로 은행, 카페, 식당 등에서 키오스크가 도입되고 있는데요. 기계를 만지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주문을 하지만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법’ 강좌를 듣고 연필로 사용법을 빼곡하게 적어 갑니다. 그러고서도 많이 긴장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비교적 어르신들이 많이 사시는 편인데요. 근처에 재래시장도 있어서 카페에 현금(동전)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미 키오스크를 도입하면서 응대 직원을 많이 줄였기 때문에 ‘진짜 돈’을 들고 있는 손님은 한참 기다려야 주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계는 종종 고장이 납니다. 일전엔 자주 가는 집 근처 카페의 키오스크가 고장났기 때문에 제 앞에 서있던 손님과 저는 커피를 먹고 싶어하며 한참을 서있다가 결국 두손을 들었는데, 열심히 커피를 만들던 알바생 역시 카운터에서 나와 기계를 몇번 재부팅해보더니 결국 포기하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손님 두명과 노동자의 시간과 노력이 날아갔지만, 이는 직원을 줄인 가게나 기계의 탓이라기보다는 ‘사소한 오류’의 탓입니다.

저는 기계를 한참 만지다가 포기하고선 황급하게 제자리로 돌아가 밀린 주문 메뉴를 만들고 있는 종업원(키오스크가 도입되기 전엔 세명이었지만 지금은 두명인)의 바쁜 손을 보며 멍하니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계를 탓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가.

마약이라고 하면 통상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한때 호기심으로' '친구가 권해서'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 '길을 잘못들었다'...같은 표현들이 떠오르곤 하는데요. 실제로 이처럼 심각성을 잘 눈치채지 못하고 마약을 시작해 심각한 중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자신의 의지가 아닌, 마약을 했다는 인식조차 없는 채로 '마약-당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주로 클럽 등 술집에서 여성들을 유혹하기 위해 몰래 마약을 넣는 경우, 다이어트 약품에 포함된 마약에 나도 모르게 중독되는 경우 등입니다. 갈수록 마약 관련 범죄가 많아지고 있는 현실 속 감춰진 한 단면을 보여주는 기사를 소개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지워진 얼굴들이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들은 특정 질병들의 유병률이 낮습니다. 병원 문턱이 높아 진단조차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족이지만 어느 법에서도 가족으로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서로를 입양하는 방법으로 밖에 연결을 만들 수 없었던 이들이 있습니다.

이어서 키오스크는 많은데 정작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의 얼굴은 조용히 지워집니다. 일을 하면서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이들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놀이터가 사라진 사회에서 놀이터 말고도 지워진 것은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이는 에세이 본문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기획 <투명장벽의 사회>에서 소개된 사례들입니다.

지난 한달 동안 인상깊게 보았던 칼럼 및 기사들을 '지워진 얼굴들'이라는 키워드로 모아보았습니다. 

AI 회차를 쓰면서 계속 떠올랐던 회차였습니다. 위조 미술가들은 특정 화가의 스타일을 순식간에 학습해 원본이 없는 새로운 가품을 창조하기까지 합니다. 이를 보면서 AI의 사례와 공통점이 정말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좋은 책을 다시 한번 소개합니다. ‘특정 예술가의 스타일을 학습, 입력해 예술가보다도 더 멋지게 따라 그리는’ AI 프로그램(위조예술가)과 예술의 독창성, 진정성에 대해 한번쯤 깊은 해찰을 해보고 싶으시다면 해당 레터에서 소개했던 위작 감정 전문가 토머스 호빙의 <짝퉁미술사>(링크)를 읽어볼만 합니다. 예술에 대한 지식을 넘어, 다양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지난 회차 레터(‘인구 문제는 인구 문제일까?‘)에 대한 감상 및 피드백 노션 페이지는 아래 버튼을 누르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