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자연이 그리워질 땐, GREENERY 향수

EDITOR'S LETTER

바쁜 도시 생활에 온몸이 개운치가 않을 때가 있지요. 그럴 때마다 한적한 시골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오직 풀벌레와 바람 소리만이 가득한 동네에서, 아스팔트가 아닌 흙을 밟아 가며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 창문을 활짝 열고 따뜻한 녹차 한 잔을 음미하고 싶어요.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시끌벅적하고 복잡한 도시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실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새로운 계획이 필요한 법. 자연이 그리워지는 날엔 부드럽고 싱그러운 그린 노트의 향수(Green Fragrance)들을 뿌려보는 것이 현명한 자의 차선책입니다. 은은하게 번지는 풀 향기는 매번 시간에 쫓겨 사는 우리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제공하는 안식처가 되어주기 때문이죠. 외출하기 전, 3초면 됩니다. 그린 향수를 뿌린 날이면 시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느릿하게 흘러갈 터이니.

GREEN fragrance

초록빛 정원이나 울창한 숲속에 들어섰을 때 어떤 향기가 나나요? 아침 이슬에 젖은 나뭇잎, 파릇파릇한 허브, 신록으로 우거진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풀 내음일 겁니다.

식물의 어린잎을 손으로 문질러 보면 특유의 생취와 함께 지극히 향긋한 자연의 향기가 나는데요. 이렇게 풀과 초원, 녹음의 이미지를 표현한 향기가 바로 그린(Green) 노트. 갈바넘(Galbanum), 그린티(Green tea), 아이비(Ivy), 로즈마리(Rosemary), 소나무(Pinewood) 등의 향조가 그린 노트에 해당되며, 주로 향수의 탑과 미들 노트에 쓰입니다.

그린 노트의 향수들은 맑고 긍정적인 녹색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1960년대 이래로 남녀 불문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비교적 무겁지 않고 순하고 부드럽게 전해지는 특유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내추럴하고 여유로운 무드를 품고 있어 사계절 내내 손이 가는 향이기도 합니다.

1. BULY1803 Eau Triple Lichen D'ecosse PEP

푸르름 뚝뚝 떨어지는

그윽한 숲의 품에 안기니

얼굴 내비치는 태양조차 잊어버리네

19세기 프랑스 파리 귀족들이 사랑했던 '장 뱅상 불리(JeanVicent Bully)'. 그녀는 조향사 겸 화장품 자조사였는데요. 장 뱅상 불리는 19세기 프랑스 귀족 사이에서 ‘식초 화장수’로 인기 있었는데, 1930년 7월 혁명으로 자취를 감추었어요.

그러나 불리의 신비로운 레시피를 파리의 한 부부가 2014년에 그대로 재현해냈습니다. 그 이름하여, ‘불리 1803’, 당시 장뱅상 불리 숍의 정신을 완벽하게 이어받아 탄생한 브랜드이죠. 부부의 이름은 람단 람단 투아미와 빅투아 드 타이악. 그들은 향 문화가 발달되기 시작한 19세기가 뷰티계의 황금기라고 여겨서 그 시대에 개발된 장뱅상 불리의 레시피를 중심으로 21세기식 화장품을 만드는 데 착수합니다.

그리고 장 뱅상 불리의 장인정신을 살려 자연에서 추출한 전통 유기농 원료 그대로를 사용하는 동시에, 알코올이 아닌 워터 베이스의 향수를 만드는 것이 특징. 현지 매장의 인테리어 또한 19세기 프랑스 파리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자랑하는데요. 바닥의 대리석부터 시작해서 나무 찬장, 소품, 유니폼 등 모든 것이 시간을 200여년 전으로 돌려놓는다고 합니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향기 브랜드, ‘불리 1803’, 시간을 넘나드는 브랜드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불리 오 트리플 리켄 데코스.

도시에 사는 이라면 반전을 꾀할 수 있는 풀과 이끼의 향. 적갈색의 풍성한 이끼가 그득히 피어난 땅 위에 강렬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갑니다. 새벽녘 언덕에 깔린 목초의 시큼함과 이슬이 맺힌 이끼, 그리고 그 위로 흩날리는 꽃가루들이 완성해 내는 환상적인 어코드. 지속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만, 이 향수가 ‘불리 1803’의 스테디셀러인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겠죠.

2. HEELEY L'amamdiere EDP

이 드넓고 푸르른 미로에서

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향로는

결국 나를 놓아버리는 것

‘니치(Niche)’향수라고 말들 한다지만 사실 국내에서도 충분히 쉽게 구할 수 있는 ‘대중적’인 향수들이 많은데요. 틈새'의 의미를 가진 '니치(Niche)'의 의미가 무색할 정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힐리(Heeley)’는 백화점, 온라인 샵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가히 ‘니치’향수라고 불릴만한 브랜드에요. 워낙 물량이 없어서 마니아들도 어렵게 구매한다고 할 정도.

‘힐리(Heeley)’는 영국인 ‘제임스 힐리(James Heeley)’가 2006년에 런칭한 퍼퓸 브랜드입니다. 런던의 킹스 칼리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졸업 이후 파리에서 제품 디자인 일을 하다가 자신만의 향수 브랜드를 런칭한 인물인데요.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오직 그만의 집념을 따라 향수를 제작한다는데, 그의 말을 증명하듯 다른 향수 브랜드들처럼 거대 화장품 기업에 매각되거나 대량생산 체제나 유통체제를 갖추고 있지 않아요. 투자자를 아예 두고 있지 않은 유럽에서 몇 안 되는 독립 향수 브랜드인 셈. 향잘알들에게 조차 ‘힐리’라는 브랜드가 생소하게 다가오는 이유죠.

힐리는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아 프랑스 전통 향료법으로 향을 제조하는데요. 첫번째 향수 라인 중 하나인 'Menthe Fraîche'는 심플하지만 다루기가 복잡한 원료인 민트(Mint)를 웨어러블하고 우아하게 풀어내어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역사를 넘어 히피, 봄, 숲, 바다와 같이 일상의 모든 소재를 자유롭게 향의 원천으로 삼는 ‘힐리’. 깨끗하고 심플한 향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 브랜드는 비록 구하기는 어렵지만, 그래서 더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힐리 라망디에르.

꽃집 문을 열면 살짝 꼬릿하면서 파릇하고 물기 어린 향기가 느껴지죠. 어쩌면 화려한 꽃다발보다 더 아름다운 향. 이름을 붙인다면, 바로 이 ‘라망디에르’일 것.

그린 아몬드 나무 사이에 내려앉은 따사로운 햇살과 이슬을 머금은 그라스, 그리고 그 속에 피어난 수많은 야생화들. ‘라망디에르’는 그린 아몬드와 민트, 히아신스, 블루벨, 린덴 블로썸 등 다양한 봄꽃들과 그린 노트들의 향을 상쾌하고 입체적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그린, 그린, 그린.

3. NONFICTION Forget Me Not EDP

잎사귀를 사랑했네

바람에 나부끼고 햇살에 지저귀던

그 자유와 싱그러움을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애정하는 향수도 이 브랜드 출신인데요. 코리아 라이프스타일 뷰티 브랜드, '논픽션(NONFICTION)'입니다. 론칭과 동시에 세계적인 뷰티 편집숍 세포라에 입점했고, 감도 높은 해외 직구 플랫폼 센스(SSENSE)와 함께 미국, 캐나다로 진출하며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워가는 중인 브랜드이죠.

매일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란 매우 어려운데요. 그러나 짧게라도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꼭 필요하죠. 논픽션은 그들이 제조하는 향이 그러한 시간을 갖게 해주는 매개가 되길 바란다고 전합니다. 좋아하는 향을 입는 시간을 ‘내면을 돌보는 소박한 의식’이라고 해석해요. 논픽션의 향을 매개 삼으면, 어떠한 허구도 걸치지 않은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제품의 퀄리티가 좋다’는 구체적인 칭찬을 좋아한다는 논픽션의 차혜영 대표. 그래서 최상의 원료와 섬세한 조향을 바탕으로 신비롭고 독특한 무드를 빚어내는 향수를 비롯하여, 하루의 시작과 끝을 더욱 정성스럽게 만드는 바디케어 제품군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습니다. 제품만큼이나 감각적인 논픽션의 쇼룸은 성수와 한남에 위치한다고 하니, 꼭 한 번 들려서 시향해 보시길!

논픽션 포겟미낫.

바질 잎을 띄운 상쾌한 샴페인. 청량함이 차오른 잔 속에 이내 가벼운 첫인상을 걷어 내듯 톡 쏘며 긴장감을 주는 페퍼와 크리미한 앰버의 향이 등장해 어우러지기 시작합니다. 잊고 싶지 않은 과거를 더욱 강렬하게, 잊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함께하는 현재를 더욱 관능적으로 만들어줄 스파이시 그린 향이에요. 보이지 않지만 얼핏 느껴질 싱그러운 초록빛. 축 처진 기분에 톡 쏘는 생기를 불어주는 기분좋은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