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의 첫 배낭여행


안동 스타벅스에서 쓰고 있습니다.


아이와 배낭여행을 가고 싶었어요.

우선 가까운 국내로 떠나보자. 30L 배낭도 하나 샀습니다.

줄이고 줄여도 짐이 많더라구요. 배낭을 매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아, 이게 이렇게 무거운 거구나.


아빠와의 여행은 편합니다.

남편은 미리 동선을 다 짜놓습니다.

몇 시에 어디서 밥 먹고, 어느 관광지를 몇 시에 들어가고, 돌아오는 길에 어떤 카페를 들를지까지. 파워 J의 여행 계획은 빈틈이 없어요.

가족들은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차에 타고 내리기만 하면 되요.

심지어 사진도 잘 찍어줘서 인생사진도 남겨줍니다.

편하고 좋습니다.

근데 완벽한 여행엔 “빈틈”이 없어요.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말이 나올 틈도 없어요.

계획대로 흘러가는 여행은 편하지만, 그 편함 속에서는 이상하게 깊은 이야기가 잘 안 나와요.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으신가요.

완벽하게 잘 굴러가는 하루인데, 정작 기억에 남는 게 없는 날.


그래서 저는 아이와 둘만의 여행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대전, 도쿄, 교토, 제주도, 안동까지.

이번에는 난이도를 올려 배낭을 메고 왔어요.

오기 전에 우리는 박웅현 작가 《여덟 단어》 를 한 권씩 사서 미리 읽고,

여행하면서 책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엄청난 식견의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니에요.^^

배낭을 메고 걷다가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너무 무거워.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해요.

그렇지? 근데 말이야. 좀 걷다 보면 적응이 돼.

인생이 그래. 아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또 좀 지나면 몸이 적응을 하거든.

배낭도 그렇고, 살아가는 것도 그렇고.

아이가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 얼굴이 좋았어요.


그리고 이런 말도 했습니다.

엄마가 왜 너랑 이렇게 힘들게 여행을 다니는 줄 알아?

살다 보면 반드시 힘든 시간들이 있어. 그때 꺼내 쓰라고.

엄마와의 따뜻한 기억들을, 그때 꺼내 쓰라고.

그리고 다시 살아가는 거지.

엄마가 네 뿌리 단단하게 내려서 가득가득 채워줄 테니까, 마르지 않게.

앞으로 살아가면서 잘 꺼내서 써.


물론 현실은 또 금방 돌아옵니다. ㅋㅋ

저도 배낭이 무거운 건 마찬가지거든요.

아이가 힘들다고 하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도 엄마 배낭이 무거운데, 너 배낭은 네가 어떻게 좀 해보겠니?

그럼 아이가 웃으면서 또 걷습니다.

같이 무겁고, 같이 걷고, 같이 투덜대는 것. 그게 이 여행의 전부예요.


이번 여행은 아이 컨디션도 좋지 않아서 가려고 했던 관광지를 절반도 가지 못했어요.

계획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냐고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정말로 많이.


개학한 아이의 학교 이야기, 대부분은 뒷담화입니다. ㅋㅋ

도대체 이해가 안 돼, 왜 그러는 거야? 그 친구도 널 이해 못 할 거야. ㅋㅋ


그렇게 웃다가, 제 어릴 적 아픈 이야기까지 나왔어요.

살면서 잘 꺼내지 않던 이야기들이 여행지에서는 술술 나왔습니다.


심지어 연애사까지 나왔네요.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한 거야?

어쩌다 보니. ㅋㅋ

엄마 아빠, 이혼할 수도 있어. 인생이란 모르는 거 아니겠니?

이런 이야기에 아이가 웃는 거 보니 많이 컸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불안해했을 텐데.


저도 사실 처음 해보는 것들이었어요.

차 없이 돌아다니기, 다음 일정은 지금 세우기,

아이한테 나도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하기.

다 알고 있는 어른이 아니라, 같이 헤매는 사람으로 보였을 거예요.

그게 오히려 말을 더 꺼내게 한 것 같아요.


완벽하게 준비된 엄마 앞에서는 아이도 완벽하게 있으려고 합니다.

근데 엄마가 나도 무겁다, 나도 힘들다, 나도 모르겠다 하면, 아이도 솔직해져요.

학교에서 있었던 진짜 이야기, 친구한테 상처받은 이야기, 요즘 고민들.

그런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이쯤 되면 제가 아이를 키우는 걸까요.


요즘은 모르겠어요.

살아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아이와 함께 처음 해보면서,

저도 자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재밌습니다.

완벽하지 않아서, 완벽했습니다.


쿨한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