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7 - 2025.11.23 / 기쁨의 황제, 몸을 두고 왔나봐, 위키드: 포 굿
01. (광고) 오션 브엉 《기쁨의 황제》
02. 전성진 《몸을 두고 왔나 봐》
03. 위키드: 포 굿

 01. 

기쁨의 황제

© 인플루엔셜ㅣ2025년 11월 17일 출간


1.

 가보지 않았지만 선명하게 보이는 풍경이 있다. 《나를 부르는 숲》의 빌 브라이슨이 내내 투덜거리면서 애팔라치아 트레일을 횡단하는 동안 미국의 동부를 알게 되고, 《와일드》의 셰릴 스트레이드가 엄마의 부재 이후 영원히 걸을 것처럼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위를 걸을 때면 미국의 서부를 알게 된다. 그런가 하면,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델리아 오언스 덕분에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갈라진 해안선 사이에 자리 잡은 습지의 아름답지만 쓸쓸한 분위기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직접 가보지 않고도 미국의 구석구석을 가깝게 느낀다. 그러다가, 정이삭 감독의 눈을 통해 미국 남부 아칸소주에 부는 바람의 결을 맛 보게 된다. 정이삭 감독이 영화 <미나리>를 만들지 않았다면, 나는 영영 아칸소주라는 땅에 관심을 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된다. 내가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백인들이 허용하는 상상력의 범위를 넘어서, 다른 이의 눈으로도 미국을 바라보는 경험을 종종 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유년기를 보낸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오션 브엉이 하는 일도 바로 그런 것이다. 오션 브엉은 모든 걸 풍경부터 시작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자란 강과 계곡이 있는 마을에 대해 먼저 9페이지에 걸쳐 손으로 써 내려갔고, 그것이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 《기쁨의 황제》로 완성됐다. 그는 2020년 대선 다음날부터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자신과 같은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배척하는 트럼프의 시대를 지나, 그제야 그는 이민자로서 ‘미국’이란 어떤 곳인지 진심으로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오션 브엉은 19세 소년 하이를 통해 자신이 자랐던 그 도시가 “우리는 당신이 탄 기차나 미니밴이나 시외버스 창밖으로 흐릿하게 스치는 풍경이다. 차창 너머 우리 얼굴은 난파된 뭉크 그림처럼 바람과 속력에 망그러진다.”( p.14-15)라고 묘사한다. 이곳은 인천에서 직항으로 갈 수 있는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가 아니다. 그럼에도 《기쁨의 황제》를 끝까지 읽고 나면, 난파된 뭉크 그림과도 같았던 도시의 풍경이 다비드 조각상처럼 선명한 이목구비로 변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소설은 가상의 도시인 ‘글래드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여러 인터뷰를 보면 오션 브엉이 유년기에 거주했던 지역을 소설에 묘사해 두었다고 봐도 좋다.)


2.

 1988년생인 오션 브엉은 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그들의 가족은 베트남 전쟁의 자장권 내에서 살아왔다. 베트남계 미국인인 이 소설에서 그는 자전적인 인물인 19세 청년 ‘하이’를 등장시킨다. 주인공은 베트남 전쟁이 종전되고 10년이 훌쩍 지나 태어났고 가족 중 유일하게 고등 교육받았다. 하지만, 전쟁은 하이의 일이 아니다. 80년대생인 오션 브엉이 그렇듯, 비슷한 연배의 하이 또한 직접적으로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고 언제나 듣기만 했다.

 

 이처럼, 제2차 세계대전이나 유럽, 세계사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고 봐도 무방한 하이가 어느 날 제2차 세전대전을 겪고 살아남은 리투아니아 출신인 노년의 여성 ‘그라지나’와 한집에서 살게 된다. 알츠하이머를 겪고 있는 할머니가 기억을 잃을 때마다 하이가 미국 보병 2사단의 ‘페퍼 병장’이 되기를 선택하는 건, 그게 할머니를 돕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 할머니의 환각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완전히 다른 세계(전시 상황의 유럽)에 속해 할머니를 안심시켜 주는 것이다. 하이는 그녀와 함께 실내에서 가상의 모의 총격전을 하거나 가상의 어수선한 바깥소식을 전해준다. 조금만 있으면 위협적인 군인들이 이 마을을 빠져나갈 것이고 당신은 안전할 거라고 말한다. 기억이 돌아온 그라지나는 이렇게 말한다. “오래전에 너를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그랬다면 서로를 도울 수 있었을 거야. 안 그래?”(p.240)

 

3.
 하이가 한 사람을 위해 그렇게까지 성심성의껏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라지나를 만나기 전까지 하이에게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이는 “실수의 조각들 속에서 살아 있을 뿐이었고 중력은 그 조각들을 모아 현재라는 이름의 구명정을 지었다.”(p.178) 그러느니 차라리 코네티컷강에 빠져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다리 위까지 올라갔다가 우연히 그라지나를 만나서 죽음을 유예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이가 하루 종일 노년의 여성을 돌보는 건 아니고, 곧 동네 대형 마켓에서 일을 한다. 그런데 그 일터가 다소 너저분하다. 그것은 하이가 “모든 것이 깔끔했고 예의가 질서가 묻어”나는 다른 마켓에 들렀다가 “웨스앤더슨 영화의 등장인물처럼 지나치게 활짝 웃고 있는 남자와 여자”에게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다시 그 너저분한 세상에는 “아름답고 키 작은 패배자들”이 있다.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에서 오션 브엉은 ‘Circumstance family(상황적 가족)’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의미한다. 그렇게 자신의 말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노인이나, 노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일터의 상황적 가족들이 하이를 계속 살게 한다.

 

 너저분한 일터와 강이 흐르는 집,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의 마음, 그 모든 것에 대하여 소설가이기 전에 시인으로 먼저 데뷔한 오션 브엉의 묘사는 정말 탁월하다. 마지막으로 오션 브엉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줄 두아 리파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나는 시인으로 데뷔했지만, 시에서 배운 도구들을 소설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시인으로서 소설을 쓰는 걸 뮤지션이 앨범을 만드는 작업에도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한 앨범에 슬픈 노래, 춤추고 싶은 노래가 들어 있는 것처럼. (...) 나는 소설에 시를 가져오고 싶었고, 소설에 맞게 나를 변형하고 싶지 않았다.”

-오션 브엉



 02. 

몸을 두고 왔나 봐

© 안온북스ㅣ2025년 10월 29일 출간


 체육 시간에 단체 줄넘기를 하다가 줄에 걸려 등으로 손을 깔고 앉은 적이 있었다. 태권도 3품 보유자였지만 수없이 연습했던 낙법은 어설펐다. 전성진 <몸을 두고 왔나 봐>를 읽으면서 순식간에 “인대가 늘어났네요” 라는 선고를 받던 초등학교 시절의 첫 정형외과 공기가 떠올랐다. 그 때 나는 아프기보다는 뿌듯했다. 저도 기브스를 하나요? 기브스를 한 사람이 멋져 보이던 시절이었다. 아쉽게도 선생님은 기브스까지는 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친구들이 유성펜을 들고 옹기종기 모여 하얀 붕대 위에 그림을 그려주는 기브스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이 몸이 일백번 다치면, 일백번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성인이 되어 손목 힘줄에 생긴 염증으로 정형외과에서 누적 40방 정도의 주사를 맞은 나는 그 시절의 마음을 조금은 비웃는다. 몸은 자산이야. 몸을 아껴. 그러다가 “몸의 반절을 부숴놓고”도 자주 웃고 동시에 우는 게 인생의 미션이 된 전성진의 에세이를 읽는다. 전작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에서 독일 생활 중, 엘리베이터의 잦은 고장으로 컴플레인을 걸며 “틀린 그림 찾기 게임 속 힌트처럼 혼자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던 그는, 편안한 집은 편안한 옷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신조를 고집하며 삼각팬티를 입고 돌아다니는 독일 중년 남자 룸메이트의 “불룩한 배를 덮은 펑퍼짐한 티셔츠 아래 얇고 앙상한 다리”를 보고도 못 본 체 하던 바로 그 전성진이 이제 자신의 몸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4m 높이의 볼더링장(로프 없이 진행되는 실내 암벽 등반장)에서 추락해 왼쪽 팔꿈치 인대가 파열되고 왼쪽 발목이 골절된 이후, 정맥, 골밀도, 염좌, 회전근개 같은 독일어로 된 의학용어를 따라갈 수 없어 어리둥절해진 아시안 여자의 흡인력 넘치는 회복기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로서 가장 많이 감각하게 되는 몸은 미간이다. 부서진 몸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가늠해보려고 미간을 잔뜩 구기다보면 마지막에는 이런 산뜻한 선언을 만나게 된다. “관성에 쓸 힘을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고통을 위해 기꺼이 아끼겠다. 이건 남은 삶을 기가 막히게 잘 살아보겠다는 거창한 선언이다.”(p.196)




 03. 

위키드: 포 굿

© 유니버설 픽처스ㅣ2025년 11월 19일 개봉


ㅎㅇ: <위키드> 시리즈를 보내는 소감을 들려주신다면요?

윤이나: 사실은 미국은 지금 엄청난 홍보 기간인데요. 기자들 중에서는 <위키드> 1편이 워낙 잘 됐으니까, 3편에 대해서 물어보는 경우도 있는 거예요. 이후를 이어갈 생각이 있는지. 근데 보웬 양이요. 영화에서 글린다 친구로 나오는 안경 쓴 남자 캐릭터죠. SNL 작가이자 코미디언인 보웬 양이 딱 잘라서 "이 이야기는 여기서 떠나야 한다. 여기서 끝난 이야기다."라고 대답을 했더라고요. 저는 너무 옳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할리우드가 뭐 만든 다음에 계속 2절, 3절, 4절 이렇게 하고 있는 것들, 저는 정말 잘못 됐다고 생각하고. <위키드>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고요. 좋은 이별이었고요. (이 영화의 엔딩송인 'For Good' 에서) "우리 다시 만날 수 없다 하여도 너는 이미 심장의 일부가 되어." 가사가 이렇게 이어지거든요. 제 심장의 일부가 되었어 되었으니까요. 이렇게 영원히 남는 것이고, 여기까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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