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입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위주로 꽃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백석 시에 딱 맞는 갈매나무를 만나다 🌳
며칠 전 계방산 탐방을 위해 강원도 홍천과 평창 경계에 있는 운두령에 섰을 때 산행 중 갈매나무를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나름 갈매나무를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고, 6년전쯤 이 코너에 ‘모르는게 더 좋았을 갈매나무와 시인 白石의 삶’이라는 글을 쓴 적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계방산(1577m)이 한라산·지리산·설악산·덕유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평창 한국자생식물원에 있는 갈매나무. 가시와 열매를 볼 수 있다.
‘남(南)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시인 백석(1912~1996)이 1948년 남한 문단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이 해방 직후 만주에서 신의주에 도착했을 즈음 쓴 시인데,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제목은 백석이 머문 곳 주소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석은 이 시에서 절망적인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외롭게 눈을 맞고 서 있는 갈매나무로 표현했다. 신경림 시인은 책 ‘시인을 찾아서’에서 “이 갈매나무야말로 백석의 모든 시에 관통하는 이미지”라고 했다.

갈매나무가 대체 어떤 나무이기에 백석이 드물다, 굳다, 정하다 등 형용사를 세 개나 붙였을까. 갈매나무는 그리 크지 않은 나무로, 국가표준식물목록에도 높이 5m까지 자란다고 소개하고 있다. 암수가 다른 나무인데, 5~6월 작은 황록색 꽃이 피고 가을에 콩알만 한 검은 열매가 달린다. 작은 가지 끝이 뾰족한 가시로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갈매나무 열매와 가시

갈매나무 꽃
이 시를 읽은 다음 수목원에 갈 때마다 갈매나무가 있는지 알아보고 살펴보았다. 갈매나무는 구분이 쉽지 않아 야생 상태에서는 전문가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갈매나무가 있는 수목원은 안면도수목원이 대표적이다. 아예 갈매나무원을 만들어 여러 종류의 갈매나무를 모아 놓았다. 하지만 아직 나무들이 작은 것이 아쉬운 점이다. 전주수목원에는 상당히 큰 갈매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그런데 이 갈매나무조차 좀 꾀죄죄한 모습이다. 이밖에 인천수목원, 오산 물향기수목원, 평창 한국자생식물원 등에서도 갈매나무를 보았다. 그나마 상당히 큰 전주수목원 갈매나무가 내 머리 속 갈매나무 이미지였다.  

전주수목원에 있는 갈매나무
갈매나무가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어서 드문 것은 맞다. 하지만 나무 가지가 구부러져 있는 경우가 많고 가지도 제멋대로 뻗어 그저 그런 나무 중 하나로 보였다. ‘나무가 청춘이다’의 저자 고주환씨는 “갈매나무는 땔감 말고는 쓸모가 없고, 뾰족한 가시가 달려 그마저도 그리 여의치 않은 나무”라며 “어떤 연유로 백석의 시상에 ‘굳고 정한’ 이미지로 등장하는지 알 길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고씨처럼 갈매나무에 관심을 갖다가 실제로 갈매나무를 보고 실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필자도 그중 하나여서 6년전 ‘모르는게 더 좋았을 갈매나무…’라는 글을 쓴 것이다.

갈매나무가 꾀죄죄하니 백석이 다른 나무를 갈매나무로 착각한 것 아닐까하는 추측까지 있었다. 해방 전후 나무 이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때여서 백석이 다른 나무를 갈매나무로 혼동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들메나무는 갈매나무와 이름도 비슷하고 높이 30미터까지 시원하게 자라는 나무여서 백석이 말하는 갈매나무가 들메나무 아닐까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남 나주 전남산림자원연구소에 있는 들메나무
계방산 정상 좀 못가서 드디어 갈매나무를 만났다. 그런데 첫 눈에도 백석의 시 이미지에 딱 맞는 나무였다. 우선 높이가 10미터 안팎으로 보이는 큰 나무였고 가지도 정갈하게 자란 나무였다. 이날 비가 내리고 안개까지 끼어서그런지 신령스러운 느낌마저 주었다. 이 정도면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계방산 갈매나무.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이라는 수식어에 손색이 없다.
같이 간 수목 전문가는 “이 나무처럼 큰 갈매나무는 주로 고갯마루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설악산 서북능선에도 높이 8미터에 이르는 근사한 갈매나무가 있다고 한다. 계방산 갈매나무를 보면서 세상 일을 함부로 재단하면 안되겠다는 것을 다시 한번 통감했다. 시인의 고향(평북 정주)에 ‘갈매나무고개’가 있다는데 그 고개 갈매나무는 계방산 갈매나무보다 더 곧고 정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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