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초여름. 서른 살의 이슬아는 서른 살의 서새롬으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게 된다. 메일은 이렇게 시작하고


사랑과 우정의 대를 잇는 새롬과의 인터뷰
결혼, 출산, 육아를 통해 만들어갈 지속가능성

인터뷰이 : 서새롬
인터뷰어 : 이슬아
사진 촬영 : 곽소진

2021년 초여름. 서른 살의 이슬아는 서른 살의 서새롬으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게 된다. 메일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야. 너를 내 결혼식의 자문 위원으로 모시고 싶어.” 글자만 읽어도 귓가에 아른거리는 목소리. 동그랗고 부드럽고 옹골찬 새롬을 상상하며 슬아는 자문 위원으로서의 자세를 가다듬었다. 새롬이 말하는 자문 위원이란 든든한 친구로서 결혼의 앞뒤를 지켜보는 사람을 의미했다. 혼주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이었다. 새롬이 준비하는 결혼과 출산은 가족의 대를 잇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를 낳고 싶은 이유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내 사랑하는 친구들과 사귀며 이야기의 대를 잇기를 바라서야. 어쩌면 이 결혼식의 테마는 지속가능성이야. 결혼식에서 나는 ‘누구누구의 자식 서새롬’보다는 ‘누구누구의 친구 서새롬’으로 불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어. 나에게 결혼은 그런 거니까.”

새롬이 쓴 메일을 읽은 친구들에게 행복하고 뭉클한 책임감이 번졌다. 슬아는 작가로서 새롬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대를 이어갈 수 있도록 이 시절의 새롬을 기록하기로 다짐했다. 결혼식 며칠 전 새롬의 일터인 새롬케어웍스에서 세 사람이 만났다. 오래된 친구인 이슬아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보다 더 오래된 친구인 곽소진이 사진을 찍었다. 결혼식의 하객들뿐 아니라 먼 훗날 새롬과 재용의 2세에게도 읽히기를 바라며 쓰여진 인터뷰다.

슬아: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더라?

새롬: 아마 열여덟 살 때쯤. 고정희 청소년 문학상에서 만났을 거야. 

슬아: 그랬던가. 내 기억으로는 하자 센터 글쓰기 수업에서 만났던 것 같은데.

새롬: 아니면 어느 학교 축제에서 만난 것 같기도 하고… 그 무렵에 너는 길고 풍성한 파마머리 스타일이었어. 

슬아: 네 머리도 비슷했어. 

새롬: 이래서 너한테 인터뷰하자고 말한 것이기도 해. 지금 우리 어디서 처음 만났는지 기억하는 것만 해도 설왕설래하잖아.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기억도 금방 희미해지고.

슬아: 정말 그렇다니까. 

새롬: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내 기록을 가볍게라도 남기고 싶었어. 오랜 친구랑. 

슬아: 좋아. 이 결혼이 어떻게 성사되었는지부터 이야기해보자. 신랑을 확정하기 전에 식장 먼저 확정했다고 들었어. 사실이니?

새롬: 맞아.

슬아: 식장이랑 날짜를 너 혼자 잡고 재용에게 통보했단 말이지? 그 전에 결혼하자는 뉘앙스는 서로 있었어? 

새롬: 없었어. 재용은 완전 비혼주의자였거든. 

슬아: 그랬는데 네가 그냥 식장을 잡은 거야? 미친 거 아니냐.

새롬: 용산가족공원 예식장은 신랑 신부 중 한 명만으로도 예약이 가능하더라고. 그래서 내 이름으로 예약한 거야.

슬아: 그리고 재용은 예식장에서 보낸 웹 발신 문자로 알게 된 거구나. 웹 문자로 자신의 결혼 소식을 듣다니…

새롬: 그런 김에 프러포즈를 했지. 재용이랑 이미 같이 사는 중이었어. 

슬아: 너랑 재용, 너희 엄마와 조카 보원이. 그리고 고양이. 이렇게 다섯이서 함께 살고 있던 거지?

새롬: 응. 올해 초에 엄마한테 말했어. 아이를 갖고 싶다고. 우리 엄마 쿨하잖아. “그래~ 그럼 가져” 하는 거야. 다른 누구랑 가지면 더 좋을지 계속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난 로맨스를 엄청나게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육체적인 사랑을 막 좋아하는 편도 아니야. 늘 남녀 간의 사랑보다 우정이 더 중요했어. 

슬아: 재용이랑도 일단 좋은 친구겠구나. 재용은 어떤 사람이야? 

소진: 난 재용이랑 새롬이랑 잘 맞는다고 생각해. 유머 감각이 통하잖아. 그거 진짜 흔치 않은 일이야.

슬아: 재용 웃겨?

새롬: 내가 보기엔 웃겨. 

소진: 둘이서 배꼽 잡고 깔깔 웃는다니까.

새롬: 비슷한 걸 웃겨할 수 있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 재용이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 웃긴 지는 잘 모르겠어. 우리가 같이 살면서 많은 일을 함께하는데 스탠드업 코미디 팀까지 같이 하니까 너무 피곤한 거야. 그래서 둘 중 하나만 이 팀에 남기로 하자고, 한 사람만 밀어주자고 농담도 했었어. 

슬아: 그럼 재용 말고 네가 남았으면 좋겠어. 나는 재용보다 네가 더 웃기단 말이야. 물론 재용도 첫 공연보다는 웃겼어.

새롬: 맞아. 나아졌어. 재용은 뭘 하나를 하면 진심으로 임해. 진짜로 뭔가를 매일 꾸준히 하는 사람이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매일 달리기를 하러 가. 나는 하다가 안 되면 금방 관두기 때문에 재용같은 사람을 동경해. 걔가 뭔가를 지속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떤 편안함이 느껴져. 재용의 ‘요동치지 않음’이 좋아. 

슬아: 훌륭한 분이시다. 재용이 코미디 무대에서 매일 1%씩 나아지는 얘기를 한 것도 그래서구나.

새롬: 완전 세바시였지. 

슬아: 코미디 아니고 세바시 같아서 너무 웃겼어. 

새롬: 암튼 재용은 나랑도 그렇고 우리 가족이랑도 오래 같이 산 사람처럼 잘 지내. 보원이랑도.

슬아: 너는 고모로서 보원이랑 많은 시간을 보냈잖아. 거의 네가 키웠던 시기도 있었고. 그래서 이미 알지? 육아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새롬: 어렸을 때부터 집에 항상 어린이가 있었어. 어린 사촌 동생들도 늘 들락거렸고, 나 20대 때부터는 보원이가 태어났지. 가까이에 아이가 없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 거야. 아이랑 지내는 게 늘 재밌었던 것 같아. 

슬아: 직접 출산과 육아를 하고 싶은 이유가 궁금해. 나도 하고 싶지만 너의 이유를 듣고 싶어. 

새롬: 내가 10대 때 조금 강성인 대안학교를 나왔잖아. 말하자면 좋은 세상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활동하는 공동체였고, 거기에선 우화적인 은유 속에서 핵 발전소 반대하는 운동같은 걸 했어. 핵 발전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한다는 구호도 쓰고. 그런 운동을 할 때 난 미래의 아이들을 빼놓고선 상상이 잘 되지 않더라고. 근데 주변의 좋은 어른들이 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는 거야. 그게 정상인 줄 알았어. 내가 속한 사회에서는 아이를 가지는 게 더 소수였어. 이렇게 살다 보면 나도 고양이랑 같이 지내다가 늙어 죽겠지 싶었어. 
그 후 20대를 쭉 지내보니 몇 가지 중요한 지점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됐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자아 실현보다 누군가를 돌보는 것에 더 가깝다는 걸. 그리고 누군가가 더 나아지는 걸 지켜보고 도움을 주는 일이라는 걸. 그걸 알게 되니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싶었어. 내 친구들한테 아이를 소개해주고 싶고. 그 아이가 좋은 어른들을 보면서 상호작용하면서 사는 게 좋은 삶이라고 나는 생각하게 된 것 같아. 

슬아: 우리의 큰 질문은 그거잖아. 환경적으로 더 나빠질 게 확실한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미래의 아이들이 맞이할 기후재난의 시대는 선조들이 안 겪어본 종류의 어려움으로 가득할 거야. 그런 세상에 아이를 낳는 건 이기적인 선택이라고도 얘기하잖아. 그래서 나는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하는 게 눈치가 보이기도 했어.

새롬: 모든 일엔 양면성이 있는 것 같아. 위기 속에서도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나오고 싶을 수도 있잖아. 살고 싶을 수도 있잖아. 어떤 인간이 태어날지도 모르고 말야. 나쁘기만 할 거라고 단정 짓고선 기회를 안 주고 싶지 않았어. 너한테 전에 얘기하기도 했지만 지구 반대편에서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텍사스 어딘가에서 애를 막 열 명씩 낳고 그러고 있는데, 진심으로 우리가 수적으로 너무 밀리지 않나 싶은 거야. 내가 결혼하는 이유, 그리고 2세를 낳는 이유는 지속가능성을 위해서야. 기후 위기와 재난의 시대에 아기를 낳는 것이 오히려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지이자 행동일 수 있다고 생각해. 물론 내 자식이 나중에 뭐라고 할 수도 있어. 

슬아: 왜 대의를 위해 나를 낳았냐고.

새롬: 응. 근데 정말로 수적으로 내 편이 필요해. 재생산을 해서라도 그렇게 해야겠다 싶었어. 그리고 다 떠나서 그냥… 어린이는 희망인 것 같아.

슬아: 맞아. 어린이는 희망이야. 그런데 어린이가 자라서 너랑 많은 것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게 될 수 있잖아. 결과적으로 네 편이 아니게 될 수도 있고 말이야.

새롬: 그럴 수 있지. 일곱 살 이후부터는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지도 몰라. 

슬아: 그래도 어린이는 희망이지.

새롬: 그래도 희망이야.

슬아: 너는 분명 엄청 잘 해낼 거야.

새롬: 나도 그렇게 생각해. 

슬아: 믿어져. 

새롬: 몸을 최대한 좋게 다스리고 있어. 매일 운동하고, 좋지 않은 거 안 먹고, 명상하고, 피곤하면 쉬고…

슬아: 저번에 밤 아홉 시 반엔가 너한테 문자했었는데 그때부터 벌써 잘 준비를 하고 있더라. 그것도 임신 준비의 일환이야?

새롬: 나는 아홉시만 되면 졸려. 일찍 일어나니까. 최소한 여덟 시간은 자야 하잖아. 

슬아: 임신과 출산을 앞두고 경제 활동이 끊기는 것에 대한 불안은 없어? 나는 아이를 생각하면 행복해지고 강해지면서도 내 왕성한 경력이 끊길까 봐 걱정돼.

서새롬: 사실 서른 살부터의 생애주기를 고려해서 ‘새롬케어웍스’를 창업한 것이기도 해.

이슬아: ‘새롬케어웍스’라는 이름 참 예뻐. 여기라면 아기 낳고도 금방 돌아올 수 있는 일터라고 생각했어?

서새롬: 응. 요가를 가르치는 일은 아기 낳고도 할 수 있고 임신 중에도 살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내 공간이 작게라도 있으면 더 자유로울 것 같았어. 출장 수업을 다니는 건 진짜 피곤한 일이거든. 아이가 생긴 뒤에 그렇게 돌아다닐 자신은 없는 거야. 나에게 공간이 있어야겠더라고. 
그래서 여길 열었어. 아이 낳고 얼마 정도 쉰 뒤엔 여기에 아기 침대 가져다 놓고 수업할 수 있으니까. 집에서도 가깝고. 혹은 다른 선생님을 이 공간에 모실 수도 있지. 
출산 이후 한동안은 일을 못 한다는 건 잘 아는데 거기에 대해선 큰 조바심은 없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만으로도 너무 큰 일이라고 생각해. 
두 가지를 병행하지 못할 수 있지. 아이가 어떤 아이 일지도 모르고 우리가 세운 계획들이 다 틀어질지도 몰라. 그래서 재용한테 말해놨어. 내가 2년 정도는 한 푼도 못 벌 수 있다고. 

슬아: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네가 했던 농담 중 이 말이 특히 기억나. “혼자 낳을 수 있다면 혼자 낳고 싶어요.”

새롬: 진심이야.

슬아: 너무 웃기고 공감됐어. 나도 사유리가 했던 것처럼 혼자서 엄마가 되는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상상해보거든. 넌 사유리의 방식을 고려하지는 않았어?

새롬: 스탠드업 코미디 대본에도 썼지만 나는 사실 삽입 섹스를 별로 안 즐겨. 근데 인공 수정하고 시험관 아기 낳으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거야. 주사도 많이 맞아야 하고 난자 채취하고 배아 골라서 이식하고… 이 과정이 쉽지 않아. 일단 국내에선 정자 기증을 통한 수정은 불법이기도 하고. 한국은 여성의 몸에 관한 결정권이 제한이 많은 것 같아. 낳을 권리나 낳지 않을 권리. 그 둘 다 말이야. 혼자 낳을 수 있으면 그것도 쉽지 않았을 테지만 낳아보려 했을 것 같아. 그치만 아이를 낳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은 그냥 남자랑 하는 거지.

슬아: 남자랑 하는 게 제일 저렴하구나.

새롬: 제일 경제적이고 덜 번거로워.

소진: 아이러니한 게 모든 기계화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 인간의 임금이 제일 싸니까 기계로 돌릴 수 있는 일도 인간 노동자들이 하는 공장도 많아. 

슬아: 이상하고 놀라운 시대야. 

새롬: 나처럼 재용도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해. 밥 먹으면서 이렇게 얘기해. “새롬 씨, 저는 우리의 2세가 나오면 집안 모든 곳에 포스트잇으로 6개 국어를 적어 놓고 싶어요. 벽이랑 컵 같은 곳에 붙여서 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나는 언어 교육을 강요하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어. 근데 재용이 그러는 거야. 자기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그렇게 해줬으면 지금 많은 게 달라졌을 거라고. 훨씬 덜 괴로웠을 거라고. 

슬아: 아니, 재용 이미 6개 국어 하잖아.

새롬: 더 잘할 수 있었대. 

슬아: 그 정도면 됐다고 해. 너는 뭘 가르치고 싶어?

새롬: 내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해주고 싶어. 그리고 내 친구들이 아이를 만나는 것도 그들에게 좋을 것 같아. 

슬아: 당연하지. 내가 글쓰기 선생님 할게. 

소진: 난 산책 선생님 할게. 잘할 수 있어.

새롬: 하루는 소진이한테 보내고 하루는 슬아한테 보내고. 우리 조카 보원이가 그런 식으로 컸거든. 나랑 내 주변 친구들이 돌아가며 키웠어. 보원이는 어떤 이모들이랑, 어떤 삼촌들이랑 만나서 뭘 했는지 다 기억해. 그런 기억들이 갈수록 좋게 작용할 것 같아. 

슬아: 좋은 이모가 될게. 

새롬: 고마워.

슬아: 결혼이 코앞으로 다가왔어. 뭐가 제일 걱정돼?

새롬: 어차피 걱정은 하기 시작하면 해도 해도 끝이 없잖아. 

슬아: 응.

새롬: 그래서 안 해.

슬아: 정말 훌륭하네 너는.


새롬 때문에 친구들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기억해낸다. 새로운 생명은 희망이구나. 어린이를 중심으로 희망이 드나드는구나. 나도 한때는 어린이였는데 그런 내가 희망을 품고 자라 어른이 되었구나. 새롬은 친구들에게 말한다. “너는 아직 수정되지 않은 아이의 지혜로운 친구야.”
친구들은 새롬의 낙관을 순진하다고 말하는 대신 강인하다고 말하며 부지런히 움직인다. 미래의 누군가와 좋은 우정을 맺을 준비를 한다. 까뮈의 문장처럼 우리는 결혼식에서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것은 거리낄 것 없이 사랑할 권리.” 이 사랑과 우정이 오래오래 이어질 수 있도록 새롬도 친구들도 힘껏 살아갈 것이다.

사랑과 우정의 대를 잇는 새롬과의 인터뷰 

- 끝 -



글: 이슬아 @sullalee
사진: 곽소진 @sojin.rabiya.kwak
녹취록 작성: 양다솔 @kakmsic 
제작: 서새롬, 박재용 
@saeromsuh @publicly.jaeyong
장소: 새롬케어웍스 @saerom.care.works 

인터뷰 발행일: 202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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