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뭐 재미있는 거 했더라. 세글자… 뭐였지?”
“프린지”
“맞아 프린지! 근데 프린지가 뭐야?”
축제가 끝나고 프린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프린지는 뭘까요? 독립예술축제인가요?
“예술가의 자유로운 시도와 그들의 주체성을 지지하는 독립예술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프린지 홈페이지에 있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소개 문구입니다. 프린지를 독립예술축제라고 소개하는 건 사과를 과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찜찜합니다. 하지만 프린지를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축제 비평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프린지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프린지 속 루디는 누구인지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종 작가의 생애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글이 있지요. 프린지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축제 비평을 위해서는 제가 누구인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연남 섹터 인디스트 루디입니다. 인디스트라는 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가장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자원활동가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 이름에 걸맞게 아주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인디스트라면 공연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저는 밥 먹는 시간마저 아껴가며 악착같이 공연을 보고 글을 썼습니다. 오히려 인디스트의 도움을 받았지요. 열혈 관객이라고 소개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열혈 관객 루디
<공연 어떻게 고르지?>
관객의 입장에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최대 난제는 ‘어떻게 공연을 고를 것인가’입니다. 홈페이지에서 포스터, 공연 시간, 장소, 작품 내용, 작품 의도, 예술가 소개 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꽤 많은 정보가 담겨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관객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아주 제한적입니다. 공연에 대한 설명이 전혀 쓰여 있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나름 프린지 2년 차 관객(?)이지만 아직도 공연을 고르는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프린지에 처음 참여하는 예술가가 많은 것이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홈페이지의 공연 소개에만 의존해야 하는데, 그 정보만으로는 공연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공연 사진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초연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진도 전무합니다.
관객의 후기가 있다면 공연을 고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를 고를 때 한줄평을 보고 고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것도 찾아보지 말고 일단 봐야 하는 영화. 그냥 봐라.”라고 적혀 있다면,
“네! 믿습니다!”하고 보는 편입니다.
하지만 프린지 공연은 후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실시간 리뷰라도 있다면 내일 당장이라도 예매할 텐데 공연이 끝나고 후기가 들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프린지 공연은 초연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후기를 모아두는 건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처음 참가하는 팀에게 역차별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요. 다만, 실시간으로 감상평을 공유할 방법이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공연을 많이 보고 싶은 열혈 관객의 넋두리)
물론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 프린지 공연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공연을 잘 선택해서 보고 싶다는 욕망은 버릴 수 없지만, 그렇게 된다면 독특한 매력을 가진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분명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에서 큰 울림을 느끼기도 했으니까요.
<작고 귀여운>
아담한 무대와 적은 객석은 프린지 공연의 아주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경우도 많고 구분이 되어있더라도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아주 가깝습니다. 현장감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객이 공연자가 되는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산지 직송 이머시브 공연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소한 맞닿음으로 사랑이 시작되듯 많은 이들이 프린지와 사랑에 빠지는 건 이렇게 작고 귀여운 객석 덕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귀여운 고양이가 먼저 손을 내민다면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매진이다 매진!!>
객석이 적다는 것은 꼭 장점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올해는 금방 매진되어 버린 공연이 많았습니다. 좋은 공연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매진되어서 볼 기회조차 없었던 공연이 꽤 됩니다.
물론 저는 지금 프린지의 크기가 마음에 듭니다. 관객이 너무 적은 것도 아니거니와 표를 구하지 못할 만큼 많지도 않습니다. 프린지의 매력이 널리 알려져 관객이 늘어나 예매하기 힘들어진다면 아쉬운 마음이 클 것 같습니다.
하지만 프린지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프린지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아마 관객은 점점 늘어날 것이고 예술가도 많아지겠지요. 변화하는 프린지를 지켜보고 싶은 동시에 이대로 나만의 프린지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피어오릅니다.
아, 이건 비평이라기보다는 사랑 고백인가요. 혹은 나만 사랑해달라는 집착인가요.
<나도 보고 싶어요>
저는 지금은 비장애인이지만 앞날은 알 수 없습니다.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프린지 공연을 볼 수 없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습니다.
프린지 공연 공간은 휠체어가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원래 공연장이 아닌 공간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요.
접근성 문제는 비단 휠체어를 탄 관객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이번에 개방형 자막을 제공하는 공연을 봤는데, 자막이 무대 구석에 있어서 자막을 보면 공연을 볼 수 없었습니다.
모두를 환대하는 축제인 만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면 좋겠습니다. 접근성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나는야 인디스트
<우리 회사는 직급이 없지만 압존법을 써야 하고…>
겉으로만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회사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직급이 없지만 압존법을 써야 하고 기둥 뒤에 명백한 위계가 존재하는 회사처럼 말입니다. 프린지를 겪어보기 전에는 완벽히 수평적인 관계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고작 한 살 차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에서 나고 자랐으니까요.
하지만 프린지에서는 나이도, 경력도, 성별도, 역할도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모두가 서로를 존중합니다. 게다가 어떤 의견도 무시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해도 안되는 이유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합니다. 가끔은 이런 세상이 정말 실존하는지 의심이 될 정도입니다.
저는 두려움이 많습니다. 용기를 내는 법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프린지에서는 용기를 내지 않아도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어디서도 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프린지에서는 합니다. 안타깝게도 프린지 밖 세상에서도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칫, 결계인가>
결계 혹은 경계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가가 보니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2023년에 프린지를 할 때까지만 해도 작고 낮은 벽은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쳇, 역시 결계가 있었나!” 싶었지요. 하지만 그것은 이동을 돕기 위한 계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디스트, 아티스트, 스탭 등 분명 이름과 역할 구분은 있지만 뫼비우스의 계단처럼 원한다면 어디로든 옮겨갈 수 있습니다. 프린지에서는 위아래라는 개념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세상이 있던가요? 참 신기한 일입니다.
저는 경계가 없다는 게 프린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중과 환대의 분위기는 여기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만,,
<이야기 듣고 가세요~ 하고 싶으면 하고요~>
저는 프린지살롱이 없었다면 프린지를 이만큼 사랑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프린지살롱을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을 만날 때마다 “살롱을 가야 프린지가 완성된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습니다. 길거리에서 인상이 좋아 보인다며 말을 거는 사람들도 비슷한 마음이었을까요? 외국인인 척 “쏘리”하고 지나간 게 미안해질 뻔했네요. (진심으로 미안한 건 아닙니다.)
프린지살롱에 갈 때만큼은 나그네의 마음이었습니다. 살롱이 그저 거기에 있으니까 갔을 뿐입니다. 물이라도 한 잔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도 매번 물 한 잔, 아니 사막에서의 물 한 잔보다 훨씬 소중한 것을 얻어서 돌아왔습니다.
예전에 작은 절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크테릭스 반팔을 입은 스님과 포동포동한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둘 다 여유가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요. 친구가 실수로 고양님의 발을 만졌는데 화를 내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제가 불상을 한참 동안 바라보자, 스님은 저 불상을 마구 부숴버려도 화를 내지 않을 거라 하셨습니다. 아… 제 내면의 폭력성을 들켜버린 걸까요?
그리고 제게 포도를 나눠 주셨습니다. 저는 꽤 마른 체형입니다. 그리고 저를 보는 이들이 실망하지 않을 정도로 음식을 많이 먹는 편도 아닙니다. 하지만 과일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스님은 그런 제 먹성을 파악하기라도 한 걸까요? 포도 한 송이가 아니라 가지고 있는 포도를 전부 주려고 하셨습니다. 너무 과분한 대접입니다.
프린지 살롱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모든 게 과분했습니다. 때로는 공연계에 대한 저의 무지 때문에, 때로는 별 볼 일 없는 제 모습 때문에 모든 게 분수에 넘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생(저는 전생을 믿지도, 안 믿지도 않습니다만)에 얼마나 좋은 일을 했는지 몰라도 저는 항상 과분한 도움을 받고 살았습니다. “삶은 선물이다”라는 말처럼 선물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프린지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비평을 써야 하는데 사랑 고백만 하고 끝나버렸네요. 사랑하면 모든 게 다 좋아 보이고 좋아하는 이유가 단순해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사랑하기에 사랑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지요. 저는 프린지페스티벌 비평을 쓰기에는 이미 늦어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끝마쳐도 되나 싶지만, 프린지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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