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호 -
목차
1. 필자 소개

2. 2024 프린지 축제 비평
 1) 물
•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랑해>
 
2) 루디
•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해>

3) 지혜
• <프린지, 인디스트, 지혜>
3. 모두의 프린지

4. 비평이 뭔지

5. 우리는 물루지

6. 지혜의 우졔통
필자 소개
물루지가 소개하는 물루지
물이 바라본

지혜
동그랗고 단단한 사람.
투명하고도 쉽게 깨지지 않는 수정 구슬 같다.
역시 솔직함을 이길 수 있는 건 없더라.
지혜가 지혜로 존재할 때 반짝이던 눈빛을 자주 볼 수 있어 좋았다.

루디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도 춤을 출 줄 아는 사람.
엉뚱함과 재치로 무장한 루디의 세계가 궁금하다.
알면 알수록 미지의 세계가 끝도 없이 나온다.
진짜 너무 궁금하다.

루디가 바라본

프린지살롱에서 물이 이야기했던 대로 물은 아가미가 달린 사람인 것 같다.
어디서 숨을 쉴 수 있는지, 왜 숨을 쉬는지 알고 있다.
숨을 쉬는 이유를 찾고 있는 내게는 꽤 부러운 사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가장 큰 속성은 전염성이다.
뭐랄까, 내 눈으로 바라본 물은 프린지보다 큰 극장의 공연을 사랑할 것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예술을 사랑하기 때문에 프린지에도 그 사랑이 전염된 게 아닐까 싶다.
물의 예술 사랑이 어디로 이어질지 궁금하다.
내게도 아가미가 있으면 좋겠다.


지혜

지혜는 지혜
지혜는 지혜로 존재하고 싶어 하지만,

내가 본 지혜는 얼마든지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다.
프린지 이후의 지혜는 그 전과는 다른 모습일 것 같다.
대중예술이 어울리면서도 결국 프린지에 왔을 것 같은 사람.
앞으로 지혜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게 될까.
나도 다양한 모습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
그치만 프린지 말고는 어디에 사랑을 둬야 할까?


지혜가 바라본


어디에 담기든 형체 없이 알맞게 들어맞는 물.
하지만 비좁은 곳에선 과감히 넘쳐 흐를줄도 아는 용감한 물.
그런 물한테 스며들다 못해 그냥 첨벙 뛰어들기로 했다.

루디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루디에게 배웠다.
루디에게 솔직하게 말할 때,
부끄러운 감정은 온데간데 없고
빨리 루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듣고 싶은 마음만 있다.
루디도 물인가.
2024 프린지 축제 비평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랑해

이것은 사랑 고백이 맞습니다

<무해한 하루> 8.9-25 @서울프린지페스티벌 photo by.물, 은현

폐막 하루 전날, 사랑스러운 어떤 이의 ‘예술은 뭘까?’ 라는 질문에 아가미 같다는 대답을 했다. 어느 순간 닿지도 않는 어딘가에 몸의 일부로 돋아난 것일까. 예술 없이는 지금과 같이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행복할 때마다 숨을 아주 크게 들이마시는 버릇이 있는데 이번 여름은 폐의 가장 구석진 곳 아니, 손가락 마디의 끝, 발의 뒤꿈치까지 숨이 가닿은 계절로 기억될 것 같다. 이제 감각하지 못하는 삶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무감해질 바에야 어리고 유치한 사람으로 남고 말겠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일차원적인 설명은 ‘자유참가원칙의 독립예술축제’다. 대학로, 문화비축기지 등 여러 공간을 거쳐 왔지만, 올해는 신촌, 연남, 신수 일대의 여러 공간을 거점으로 3주간 축제가 이루어졌다. 축제에는 연극, 무용, 음악, 퍼포먼스, 시각, 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실험적인 공연들이 올라온다. 매년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자원활동가인 ‘인디스트’를 모집하여 함께 축제를 만들어 가며, 나 또한 올해의 인디스트 중 하나였다.


자, 이제 진짜 프린지를 소개할 시간이다. 축제를 비평하기 위해 모인 이후로 프린지의 특수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나눠왔다. 아직도 그 고민은 진행형이지만 이곳에는 뭔가 말로는 설명하기 부족한 특별함이 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듯 내게도 프린지는 안전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나’를 제외한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 나이, 성별, 학력 등 모든 사회의 꼬리표가 붙지 않는다. 혹여 알게 되거나 밝히게 되더라도 그것들이 ‘나’를 가리지는 못한다.

누군가를 만남에 있어서 상대방에 대한 여러 꼬리표와 말들이 그 사람보다 먼저 오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타인을 제 입맛대로 단정 짓고, 그 틀 안에서만 바라보려고 하는 사회. 그들은 진정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라 나의 껍데기, 그중에서도 일부를 보는 거겠지. 그래서 때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말해주기도 했다. 가면을 바꿔 가며.

그 모든 행위에 질려갈 즈음 프린지에 오게 되었다. 아직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사람도, 축제도 하나의 공간일 수 있구나. 모두의 존재가 온전히 용인되는 곳이 있을 수 있구나. 이 안온하고 안전한 공간 속에서 나는 ‘나’여도 될 것 같았다. 더 이상 나의 존재를 변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름마저도 여기선 내가 불리고 싶은 대로 불릴 수 있다. 재작년에 처음 인디스트로 참여했을 때는 적어낸 닉네임이 소리 내어 불리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물 마실 사람’ 같은 말에도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는 건 매 순간 나의 존재를 실감하게 되는 일이더라. 그렇게 나는 ‘물’이 되었다.



프린지를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인디스트 앞에 붙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자원활동가’라는 수식어가 잘 안 와닿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상식을 벗어나면 안 되겠지만 이곳에서는 NO가 없다. 아무리 무모하고, 유치한 아이디어에도 해보라는 말이 먼저 돌아온다. '물루지 비평 메일링 서비스'를 하게 된 것도 스텝들의 당연한 YES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렇게 전폭적이고도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아도 되는 것일까. 모두가 프린지를 안전한 공간이라 생각하는 건 스텝들이 우리를 온몸으로, 온 힘을 다해 감싸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올해 다시 인디스트로 참여하며 세웠던 다짐 또한 ‘도망치지 않기’였다. 이들의 환대에 환대로 응하겠다는 다짐. 나는 자기 객관화가 잘 된 나머지 오르지 못할 산은 쳐다도 안 보는 사람이었다. 그게 내가 내 손으로 나의 한계를 단정 짓는 일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래서 이번에는 일단 ‘좋아요’부터 했다. 그렇게 다짐의 첫날부터 덥석 <인디음악 붐은 온다, 인디덕후 수다모임> 살롱의 호스트를 맡게 되었다지. 다음으로는 <이토롱의 프러포즈> 결혼식의 사회를 맡게 되었고, 결국은 물루지에 닿았다. 여름의 뜨겁고도 무모한 걸음마다 응원과 칭찬을 딛고 나아갈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일은 때론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곤 한다. 전형적인 연극과 뮤지컬의 형식에 익숙했던 나에게 프린지는 매일 같이 충격을 선사했다. 편협한 시야의 귀퉁이를 누군가 손으로 잡아 사방으로 늘리는 기분이었다. 프린지에서는 가정집도 무대이고, 거리도 무대가 되며, 누가 봐도 공연장 같은 무대도 존재한다. 공간만큼 공연도 다채롭다. 스텝과 인디스트조차 당일까지도 예측할 수 없는 공연들이 대다수다. 이건 다시 말해 검열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직 이들이 하는 건 공연을 올리고자 하는 아티스트에게 기회의 장을 제공하는 일. 이곳에서는 돈이 되는 공연만이 살아남거나,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관객의 입장에서는 불친절한 공연 소개와 낯섦에 쉽게 공연을 고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말도 ‘그냥 일단 한 번만 봐주세요’ 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일단 발을 들이면 발길이 이끄는 대로 공연을 보게 될 것이라 감히 확신한다.

관객 없이 공연은 존재할 수 없다. 아니 완성될 수 없다. 봐주는 이가 있어야만 공연은 실재한다. 더 많은 이들의 삶에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실재했으면 좋겠다.

 

‘그냥 일단 보라’고 말했지만, 접근성에 대한 문제는 아직 과제로 남아있다. 모든 공연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건 아니다. 이동권과 접근성의 문제는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쉽게 간과되곤 한다. 올해 프린지는 구조상 휠체어의 진입이 불가하고, 좁고 가파른 계단이 많아 공연장 자체의 진입장벽이 높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배우며, 끊임없이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긍정적인 시작으로 보고 싶다. 많은 대화가 오간 것에 비해 실질적 대안을 찾지 못하여 무력하기도 하였으나, 이런 담론을 통해 앞으로 조금씩 장벽을 부술 수 있지 않을까.



행복해서 같이 엉엉 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자주 곱씹는 요즘이다. 언제든 이곳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음악에 맞춰 흐느적흐느적 움직이고, 서로의 손을 잡고 막춤을 추고, 눈만 마주쳐도 데굴데굴 구르며 웃고, 좋아하는 것에 눈을 반짝이며 대화를 이어가는 그런 삶. 이토록 찬란한 여름이 기억 속에서 영원히 반짝이기를. 모두의 매일이 축제이길 바란다.


  루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해

사랑을 할수록 사랑하는 이유는 단순해진다

  루디 <국립 프린지원> 8.9-25 @서울프린지페스티벌 photo by.물

너 뭐 재미있는 거 했더라. 세글자뭐였지?”

프린지

맞아 프린지! 근데 프린지가 뭐야?”

 

축제가 끝나고 프린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프린지는 뭘까요? 독립예술축제인가요?


예술가의 자유로운 시도와 그들의 주체성을 지지하는 독립예술축제서울프린지페스티벌


프린지 홈페이지에 있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소개 문구입니다. 프린지를 독립예술축제라고 소개하는 건 사과를 과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찜찜합니다. 하지만 프린지를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축제 비평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프린지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프린지 속 루디는 누구인지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종 작가의 생애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글이 있지요. 프린지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축제 비평을 위해서는 제가 누구인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연남 섹터 인디스트 루디입니다. 인디스트라는 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가장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자원활동가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 이름에 걸맞게 아주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인디스트라면 공연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저는 밥 먹는 시간마저 아껴가며 악착같이 공연을 보고 글을 썼습니다. 오히려 인디스트의 도움을 받았지요. 열혈 관객이라고 소개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열혈 관객 루디

 

<공연 어떻게 고르지?>

관객의 입장에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최대 난제는 어떻게 공연을 고를 것인가입니다. 홈페이지에서 포스터, 공연 시간, 장소, 작품 내용, 작품 의도, 예술가 소개 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꽤 많은 정보가 담겨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관객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아주 제한적입니다. 공연에 대한 설명이 전혀 쓰여 있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나름 프린지 2년 차 관객(?)이지만 아직도 공연을 고르는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프린지에 처음 참여하는 예술가가 많은 것이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홈페이지의 공연 소개에만 의존해야 하는데, 그 정보만으로는 공연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공연 사진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초연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진도 전무합니다.

관객의 후기가 있다면 공연을 고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를 고를 때 한줄평을 보고 고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것도 찾아보지 말고 일단 봐야 하는 영화. 그냥 봐라.”라고 적혀 있다면,

! 믿습니다!”하고 보는 편입니다.


하지만 프린지 공연은 후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실시간 리뷰라도 있다면 내일 당장이라도 예매할 텐데 공연이 끝나고 후기가 들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프린지 공연은 초연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후기를 모아두는 건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처음 참가하는 팀에게 역차별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요. 다만, 실시간으로 감상평을 공유할 방법이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공연을 많이 보고 싶은 열혈 관객의 넋두리)

 

물론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 프린지 공연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공연을 잘 선택해서 보고 싶다는 욕망은 버릴 수 없지만, 그렇게 된다면 독특한 매력을 가진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분명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에서 큰 울림을 느끼기도 했으니까요.



<작고 귀여운>

아담한 무대와 적은 객석은 프린지 공연의 아주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경우도 많고 구분이 되어있더라도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아주 가깝습니다. 현장감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객이 공연자가 되는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산지 직송 이머시브 공연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소한 맞닿음으로 사랑이 시작되듯 많은 이들이 프린지와 사랑에 빠지는 건 이렇게 작고 귀여운 객석 덕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귀여운 고양이가 먼저 손을 내민다면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매진이다 매진!!>

객석이 적다는 것은 꼭 장점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올해는 금방 매진되어 버린 공연이 많았습니다. 좋은 공연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매진되어서 볼 기회조차 없었던 공연이 꽤 됩니다.

물론 저는 지금 프린지의 크기가 마음에 듭니다. 관객이 너무 적은 것도 아니거니와 표를 구하지 못할 만큼 많지도 않습니다. 프린지의 매력이 널리 알려져 관객이 늘어나 예매하기 힘들어진다면 아쉬운 마음이 클 것 같습니다.

하지만 프린지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프린지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아마 관객은 점점 늘어날 것이고 예술가도 많아지겠지요. 변화하는 프린지를 지켜보고 싶은 동시에 이대로 나만의 프린지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피어오릅니다.

, 이건 비평이라기보다는 사랑 고백인가요. 혹은 나만 사랑해달라는 집착인가요.



<나도 보고 싶어요>

저는 지금은 비장애인이지만 앞날은 알 수 없습니다.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프린지 공연을 볼 수 없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습니다.

프린지 공연 공간은 휠체어가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원래 공연장이 아닌 공간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요.

접근성 문제는 비단 휠체어를 탄 관객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이번에 개방형 자막을 제공하는 공연을 봤는데, 자막이 무대 구석에 있어서 자막을 보면 공연을 볼 수 없었습니다.

모두를 환대하는 축제인 만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면 좋겠습니다. 접근성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나는야 인디스트

 

<우리 회사는 직급이 없지만 압존법을 써야 하고…>

겉으로만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회사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직급이 없지만 압존법을 써야 하고 기둥 뒤에 명백한 위계가 존재하는 회사처럼 말입니다. 프린지를 겪어보기 전에는 완벽히 수평적인 관계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고작 한 살 차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에서 나고 자랐으니까요.


하지만 프린지에서는 나이도, 경력도, 성별도, 역할도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모두가 서로를 존중합니다. 게다가 어떤 의견도 무시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해도 안되는 이유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합니다. 가끔은 이런 세상이 정말 실존하는지 의심이 될 정도입니다.

 

저는 두려움이 많습니다. 용기를 내는 법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프린지에서는 용기를 내지 않아도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어디서도 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프린지에서는 합니다. 안타깝게도 프린지 밖 세상에서도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 결계인가>

결계 혹은 경계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가가 보니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2023년에 프린지를 할 때까지만 해도 작고 낮은 벽은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역시 결계가 있었나!” 싶었지요. 하지만 그것은 이동을 돕기 위한 계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디스트, 아티스트, 스탭 등 분명 이름과 역할 구분은 있지만 뫼비우스의 계단처럼 원한다면 어디로든 옮겨갈 수 있습니다. 프린지에서는 위아래라는 개념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세상이 있던가요? 참 신기한 일입니다.

 

저는 경계가 없다는 게 프린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중과 환대의 분위기는 여기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만,,

 

<이야기 듣고 가세요~ 하고 싶으면 하고요~>

저는 프린지살롱이 없었다면 프린지를 이만큼 사랑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프린지살롱을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을 만날 때마다 살롱을 가야 프린지가 완성된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습니다. 길거리에서 인상이 좋아 보인다며 말을 거는 사람들도 비슷한 마음이었을까요? 외국인인 척 쏘리하고 지나간 게 미안해질 뻔했네요. (진심으로 미안한 건 아닙니다.)

 

프린지살롱에 갈 때만큼은 나그네의 마음이었습니다. 살롱이 그저 거기에 있으니까 갔을 뿐입니다. 물이라도 한 잔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도 매번 물 한 잔, 아니 사막에서의 물 한 잔보다 훨씬 소중한 것을 얻어서 돌아왔습니다.

 

예전에 작은 절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크테릭스 반팔을 입은 스님과 포동포동한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둘 다 여유가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요. 친구가 실수로 고양님의 발을 만졌는데 화를 내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제가 불상을 한참 동안 바라보자, 스님은 저 불상을 마구 부숴버려도 화를 내지 않을 거라 하셨습니다. 제 내면의 폭력성을 들켜버린 걸까요?


그리고 제게 포도를 나눠 주셨습니다. 저는 꽤 마른 체형입니다. 그리고 저를 보는 이들이 실망하지 않을 정도로 음식을 많이 먹는 편도 아닙니다. 하지만 과일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스님은 그런 제 먹성을 파악하기라도 한 걸까요? 포도 한 송이가 아니라 가지고 있는 포도를 전부 주려고 하셨습니다. 너무 과분한 대접입니다.

 

프린지 살롱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모든 게 과분했습니다. 때로는 공연계에 대한 저의 무지 때문에, 때로는 별 볼 일 없는 제 모습 때문에 모든 게 분수에 넘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생(저는 전생을 믿지도, 안 믿지도 않습니다만)에 얼마나 좋은 일을 했는지 몰라도 저는 항상 과분한 도움을 받고 살았습니다. “삶은 선물이다라는 말처럼 선물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프린지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비평을 써야 하는데 사랑 고백만 하고 끝나버렸네요. 사랑하면 모든 게 다 좋아 보이고 좋아하는 이유가 단순해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사랑하기에 사랑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지요. 저는 프린지페스티벌 비평을 쓰기에는 이미 늦어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끝마쳐도 되나 싶지만, 프린지 사랑합니다 :)



  지혜

프린지, 인디스트, 지혜

프린지는 뭐고, 인디스트는 뭐고, 지혜는 지혜

 <아.꾸. (아이디 카드 꾸미기 라는 뜻)> 8.9-25 @서울프린지페스티벌 photo by.지혜

[ 나는 프린지가 처음이다. 게다가 어떤 축제인지도 모른 채 인디스트를 지원했다. ‘가장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자원활동가’라는 한 줄을 보고 말이다! 그동안 내가 알던 축제는 넓은 공간에 캐노피가 길게 늘어서 있고 지나가는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였다.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공공기관에서 개최하는 지역 축제 혹은 퍼레이드나 불꽃놀이 등 메인 공연을 중심으로 부가적으로 즐길 거리가 있는 큰 축제만을 접해왔기 때문에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24는 나에게 너무나 색다른 축제로 다가왔다. ‘나 축제 자원 활동 하기로 했어~’하고 자랑했는데 “그거 무슨 축제야?”로 돌아온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인디스트가 되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정작 어떤 축제인지는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략) 원래 한 장소에 여러 공연이 모여있던 축제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머릿속에 꼬여있던 의문점이 풀리긴 했지만, 프린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알려주는 게 좋을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중략) 프린지 페스티벌은 독립 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축제겠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축제라는 것에 대한 아쉬움, ‘내가 지금껏 프린지를 몰랐다니.’ 하는 아쉬움이 제일 컸다. 올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지속할 가능성’이라는 키워드로 축제를 고민했다. 프린지의 상징성은 앞으로도 ‘지속할 수 있는 독립예술 축제’를 위해 우리가 함께 고민해 볼 문제가 아닐까. ]

 

여기까지가 바로, 프린지 1주차 활동을 마친 나의 축제 비평이었다. 축제를 모두 마치고 난 지금 읽어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저 글을 쓰던 내가 떠오른다. 아직 공연도 안 보고, 볼 계획도 없었고, 오로지 축제 비평으로 물루지를 채우려 했던 과거의 지혜 (바보)... 지금도 프린지를 아주 잘 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저 때의 지혜보단 확실히 잘 안다고 확신하며 축제의 구성원으로서 마지막 비평을 써보고자 한다.

 

 

나는 엄마한테 프린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독립 예술 축젠데 서울 곳곳에서 3주 동안 하는 거야. 나는 신수 담당인데 여기 말고도 신촌, 연남 이렇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어. 축제 운영이 메인이라 공연하는 거 돕는 게 축제 근무하는 거고 이거 말고 요즘 줌으로 회의한다고 그런 건 동아리 활동 같은 거야.”

 

그렇다. 인디스트의 활동은 ’섹터 활동‘과 ’TF 활동‘ 두 가지로 나뉜다. 본 활동은 섹터 활동으로 자신이 담당한 공연 운영의 전반적인 일을 도맡는 것이고 TF활동은 인디스트가 하고 싶은 TF를 직접 골라 서로 다른 섹터 인디스트들이 모여 진행하는 활동이다. 프린지가 학교라면 섹터는 반, TF는 동아리가 되는 셈이다. 인디스트는 이 두 가지 활동을 병행하며 축제를 더 알차게 즐길 수 있다.

 

나는 신수 섹터 인디스트이자, 에코프린지TF, 배리어프린지TF, 축제비평단TF, 프린지특공대TF를 하는 ’지혜‘로 알찬 8월을 보냈다. 지금 하는 물루지 비평 메일링도 축제비평단TF 속 글쓰기 소모임 속 셋이 모여 만든 모임이니 이 역시 TF 활동인 셈이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프린지를 알고 싶었고 그 노력이 나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알아가고, 함께 힘을 합쳐 하루 공연을 문제없이 끝마치고 드는 뿌듯함까지. 이게 어떻게 축제가 되지? 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축제가 끝난 뒤, 내 기억 속에 남은 프린지는 너무나 축제였다.

 

 

이해한 만큼 보인다. 프린지도 그렇다. 인디스트가 되어 축제를 운영하다 보니 프린지와 다른 축제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는데, 내가 느낀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관객 대부분이 축제의 관객보다 공연의 관객으로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축제는 주로 한 공간에서 진행된다. 공간에 방문한 관객들은 그 자리에서 프로그램을 선택적으로 즐기거나 분위기 자체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프린지는 공연이 주가 되는 축제로 공연장이 서울 곳곳에 흩어져있다. 그렇다 보니 축제를 즐기는 관객보다 공연을 보기 위한 관객이 많을 수밖에 없다. 프린지엔 공연을 제외하고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많은데 알지 못하는 관객들이 많아 아쉬웠다.

 

프린지 대빵 쿄가 그랬다. 프린지는 스태프와 예술가, 인디스트, 관객이 모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거라고. 축제는 곧 사람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나는 인디스트가 되어 스태프와 교류하고, 예술가와 소통했다. ’축제의 시스템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축제를 이야기하는 건 참 즐거운 일이구나.’를 몸소 느끼며 프린지에 온 관객들도 이 즐거움을 가져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축제의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관객이 축제에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을까? 이전엔 떨어져 있는 축제 공간이라는 특수성이 한계로 작용했다 생각했지만, 이젠 그러한 특수성을 가지고도 실행할 방법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정말 말도 안 되게 관객과의 마니또라도 진행해서라도 말이다.... (농담입니다.)

 

 

내가 느낀 프린지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프린지에서의 나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보려 한다. 맨 처음으로 돌아가 ’가장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자원활동가‘라는 말에 혹했던 나를 떠올려본다. 내겐 이 한 줄이 방 탈출 단서를 찾은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그래. 축제보다 사람이 더 중요한 축제 같이 느껴졌다. 보통 축제 인력이 필요할 때 올라오는 공지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들어 자연스레 프린지에 끌렸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겪어보니 자신감 가져도 된다...) 축제 자원 활동 지원서에 ’저는 젠더, 환경, 퀴어 이슈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홀린 듯이 적었고 스탭과 인디스트가 만나는 첫 인터뷰에서 이 문장을 콕 집어 말해준 쿄 덕분에 프린지에서 안전함을 처음 느꼈다. 새로운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뭐든 즐겁게 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이토록 내가 나일 수 있었던 공간이 있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프린지를 알기 전, 내가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수 있었던 곳이 없었다. 인간관계에서 솔직하게 말하고 표현하다 보면 늘 불편한 상황들이 생겨나곤 했으니까. 하지만 프린지에선 조금 달랐다. 같이 공연을 보고 공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되고 타인의 감정을 경청하며 솔직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내가 어떤 것을 느끼든 그대로 존중해주는 프린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도 모두를 존중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프린지를 경험하고 나면 아마 금방 더 나은 세상으로 바뀌어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더 이상 비평이 아닌 글이 되었지만 이마저도 최선의 비평이었을 거라고 이해해 줄 모든 프린지 사람들에게 미리 감사 인사를 드리며 마무리를 지어볼까 한다.



<당신이 몰랐던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대한 5가지!>

  • 프린지는 모두를 환대합니다.
  • 프린지는 당신이 이야기하게 만듭니다.
  • 프린지는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 프린지는 당신이 하는 (합법적인) 모든 일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 당신은 결국 프린지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린지가 궁금한 당신,

올해는 관객이었던 당신,

내년엔 인디스트가 되어보는 거 어때요?!


모두의 프린지
여러분의 프린지는 어떤 모양으로 남아있나요?
피키
“더워 죽더라도 여름엔 프린지, 축제를 enjoy!”

아랑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다정하고 사랑스러웠던 시간들”

사회상규
“즐거움”

밍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이 아닌 프린지와 함께한 여름으로 기억될 2024년 여름”

이태태
“따뜻하고 자유로운 공간!”

이온
“프린지라는 해변에서 한 달간 꿈같은 휴가를 보냈어요.
낯설고 어색한 것들 투성이라 긴장도 많이 하고 굳어 있었는데,
모든 걸 품어주고 내어주는 프린지의 너그러움에
어느 순간 마음이 녹진하게 풀려버렸던 것 같아요.
아쉬움은 파도에 떠나보내고 좋았던 기억만 간직하겠습니다.
언제라도 다녀갈 수 있게 늘 그곳에 있어줘요.”


“희고 깨끗하고 동그란 진주 모양이길 바랐지만
다 끝나고 보니
얼룩덜룩하고 움푹 패인 게
마치 달 같은 것
환하게 빛나는 달!”

익명의 예술가
“언제나 필요이상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프린지는 정말 연습 때도 공연 때도 놀러가는 기분이었어요.
불안해질 때마다 이건 프린지니까, 내가 즐거워야 하니까 이 두 말을 되내며 털어냈는데요.
그 시간이 어찌나 큰 힘으로 남았는지
다른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아주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누구든 다정히 반갑게 반겨주시던 프린지 관계자 분들 덕이어요.
환대와 경청의 소중함을 아주 충만히 느꼈던 시간!”
비평이 뭔지
비평에 대해 물루지가 나누었던 대화
왜 비평을 쓰게 되었나요?

저는 비평이 아티스트도, 관객도 아닌 사람들에게 가닿았을 때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궁금했어요. 영화와 달리 공연 예술은 찰나에 존재하고 사라지니까요. 비평을 읽고 작품이 궁금해졌다 해도 바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르고요. 그렇다면 비평은 왜 필요한 것인지, 어떤 의미를 새롭게 가질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공연의 내용과 구성을 잘 알아야만 공감할 수 있는 비평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보다는 글 자체로써 비평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의미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제 비평이 조금은 불친절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공연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거나 대사를 복원해 내려는 노력을 최소화했거든요. 대신 공연을 보며 느꼈던 감정, 감각, 생각들을 풀어내려 했습니다. 공연이 제게 남긴 물음표가 독자들에게 이어지기를 바라기도 했구요.


아, 최종적으로는 프린지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싶기도 했어요.

공연을 보는 것이 공연 관람의 끝이라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어요. 영화는 다시 볼 수 있지만 공연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제가 본 공연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고 싶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어요.


그리고 ‘내가 이 공연을 그냥 봐도 되나?’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예술가, 특히 프린지를 찾아온 예술가에게는 응원이나 피드백이 필요할 텐데, 뭐라도 선물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하지만 의미 없는 응원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공연을 보기 전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혹시 공연이 너무 별로면 어떻게 하지?' '나한테 너무 어려우면 어쩌지?' '의도와 내 생각이 전혀 다르면 어쩌지?’같은 생각들이 막 날아다녔어요. 다행히 도저히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는 공연은 거의 없어서 편하고 자유롭게 “여기 이런 시선을 가진 관객도 있어요~”라는 느낌으로 비평을 썼어요.


마지막으로 프린지를 더 열정적으로 하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요. 축제는 기간이 정해져 있잖아요. 끝을 알고 있기 때문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열심히 해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뭐든 좋으니 저에게 일거리를 던져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인디스트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자원활동가잖아요! 일을 받기 전에 일을 만들어버렸죠 :) 덕분에 8월은 프린지로 가득 찼어요.


물루지 하길 잘했다!! 😊

내가 나일 수 있는 곳에서 솔직한 글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어요. 그리고 그런 프린지를 여기저기 소개하고 싶었고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는 마음에 비평을 쓰고싶다고 했는데 다들 글 쓸 마음을 먹은 목적이 다 달랐다는 게 신기했어요.

자의적으로 글을 써본 것도 오래 전 일이고, 책을 읽은 건 더 오래 전의 일이라 걱정도 많고 겁도 났지만 정말 프린지라서 할 수 있었어요! 영감을 준 멋진 예술가 분들께 고맙고, 용기를 준 글쓰기 소모임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프린지 비평을 마무리하며, 지금 물루지에게 비평이란?

아직도 비평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첫 호를 발행하고 비평이 마치 유리병에 담아 바다에 띄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 같았다는 엠케이의 말이 너무 인상 깊었어요. 독자의 폭을 넓히는 것이 목표였으나 어쨌든 가장 먼저 아티스트에게 비평이 전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더라구요.

아무도 상처받지 않길 바란다는 이유로 좋은 말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습니다. 비평에서는 솔직한 것이 미덕일까요. 이러한 고민 속에서 끝맺지 못한 비평도 있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언제나 말랑말랑한 비평을 쓸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해요. 뾰족하더라도 아프지 않은 비평을 쓰는 법을 고민해 봐야겠어요.


비평에 답장이 오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공연에 관객이 필요하듯이 글도 독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겠더라구요. 잘 읽었다는 말부터 자세한 감상과 후기, 그리고 우졔통과 물음표에 남겨준 답변들을 소중히 읽고 또 읽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해요. 사랑해요!

제게 비평은 제3의 눈이에요. 비평을 쓰기 전과 후에 공연을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비평을 쓰기 전에는 ‘공연을 보여주세요. 저는 볼게요.’ 정도의 생각만 하는 관객이었어요.
하지만 비평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는 ‘뭘 보여줄 거죠? 무슨 말을 할 건가요? 저는 어떤 걸 느끼게 될까요? 공연을 보여주세요. 저는 온몸으로 느낄게요.’라는 생각을 해요.
두 눈으로 보지 못했던, 기존의 마음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들을 제3의 눈으로 보고 느끼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공연이 훨씬 풍성해졌고, 제 마음에 더 오래 남게 됐어요. 어쩌면 비평은 방부제 같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미라로 만들어서라도 두고두고 보관하고 싶어요. (이건 좀 무서운 상상이려나요)
한편으로 비평은 열심히 공연을 준비해 준 예술가에게 드리는 사소하고 작은 선물이에요. 공연에 비하면 시간과 노력이 적게 들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한 선물.
저는 남이 필요한 것보다 제가 너무 가지고 싶은 걸 선물하는 편인데, 비평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냥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자! 대신 열심히!

동시에 비평은 제게도 선물 같은 존재였을지 모르겠네요. 제3의 눈을 얻었으니까요 :)
오늘 제 비평에도 여러번 등장했던 쿄가 어느 날 살롱에서 했던 말인데요. "프린지 비평은 응원과 지지를 기조로 삼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예술이든 비판은 필요하지만, 독립예술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응원하는 마음이 더 많이 전해져야 하니까요.

여전히 비평은 잘 모르겠어요. 저는 '말랑말랑한 비평'이란 말 뒤에 숨어 메일링을 하는 내내 비평이 아닌 글을 쓰고 있었을 거예요. 저는 저라는 사람이 정~말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주변에 영향력을 미치기는 참 쉬운 존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좋은 영향력만 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게 제 마인드예요. 이번 비평을 통해 '좋은 비판을 담은 비평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 물루지가 호스트로 진행했던 프린지 살롱 대화 발췌 *
예술가의 입장에서 비평은 어떤 느낌인가요?
“공연을 팀 안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마무리하는 느낌이에요.
작품 그 자체를 관객들과 함께 만든다고 생각해요.”
“다시는 볼 수 없는 공연, 일회성 예술인 만큼 공간에서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 공연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비평이라는 건 예술가가 뻗어놓은 것을 결정화하는 것. 공연 비평이 공연의 멀티버스인 개념이라고 해야 할까요.”
“작은 규모, 적은 자본으로 시작된 것이 결국 비평으로 남아 계속 존재하기 때문에 공연이 생명력을 가지는 것 같아요.”
“제가 의도한 것과 다른 해석을 계속하던 관객이 있는데요. 그가 완벽한 해석을 해냈을 때 아쉬움이 드는 동시에 관객과 끝장을 본 느낌이 들었어요.”
“제게 비평이라는 건 유리병에 편지를 넣고 바다에 띄웠는데, 답장이 온 느낌이에요. 답장이 올 줄 몰랐는데!!”
“비평은 또 다른 예술인 것 같아요.
관객도, 비평가도 함께 창작해 나가는 존재가 아닐까요.”
"공연예술이 공론장을 연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냈을 때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그걸 비평으로 이야기함으로써 공론장이 열리죠.”
“저는 뭔가 먼 미래보다도 비평은 지금 당장 힘이 돼요. 비평가도 결국 창작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비평가도 저희를 보지만 저희도 비평가를 보고 있답니다.”
* 물루지가 호스트로 진행했던 프린지 살롱 대화 발췌 *
비평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비평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다른 관객에게도 닿을 것!!”
“악평도 너무 재밌어요. 악평을 다른 관객이 반박해준 것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저는 문제 장면, 아쉬운 점을 일부로 더 적었어요. 그것이 예술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한국에서 잘 쓰이지 않는 레퍼런스를 사용했을 경우 비평가들이 읽어주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에요. 공연을 온전히, 그대로 다 알아주는 관객은 어차피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도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비평가는 나쁜 비평가라고 생각해요. 가치관이나 환경의 변화 등으로 우리는 언제나 변하고 있으니까요. ‘내가 고정값이야, 내가 다 맞아’이런 생각을 가지고 비평을 하는 건 나쁜 비평이에요.”
“비평을 경합하는 언어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평가의 비평을 비평하는 예술가처럼, 비평에 예술로 답변하고 반박하기도 하죠.”
“예술가에게 비평은 함께 살아있다는 감각.”
“비평가는 내가 놓쳤던 것을 찾아주는 멋진 사람들. 공연 비평은 그 수가 참 적은데,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아, 있구나!!! 하는 느낌.”
“비평이 2차 창작으로 읽히는 경우도 있어요. 복제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라 비평이라는 장르의 창작물인 셈이죠.”
“작품 스포일러? 신경 안 써요. 그냥 다 써줘도 괜찮아요.”
우리는 물루지
비하인드 스토리

물루지 결성 계기

에코프린지TF, 배리어프린지TF, 축제비평단TF 소속인 물루지. 축제 개막 전부터 매주 줌 회의를 통해 서로의 얼굴을 익혔다. 모두가 I라서 말은 못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물루지 셋만 모여 글쓰기 회의를 하게 된 날, 또 이 세 명이 모이게 된 것이 웃겨서 내내 웃다가 줌을 4번이나 다시 켰고, 그렇게 메일링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무의식중에 쌓여온 내적 친밀감 때문이려나)



물루지는 어쩌다가 물루지가 되었나

<이토롱의 프러포즈> 공연 시작 5분 전에 (조)이(망)토(영)롱을 붙잡고 메일링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나왔던 게 '비평 대체 물루혜?'. 소리 내어 읽으면 '비평 대체 뭘로 해' 같아서 재밌었는데 문자로는 무슨 뜻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다시 아이디어를 받았다.

그러다 현세가 지어준 ‘비평이 뭔지 우리는 물루지’로 확정.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현세 최고 !



물과 지혜의 뉴런 공유

메일링 5회차면 뉴런을 공유한다고.. 찌찌뽕이란 말을 안 쓴지 정말 오래됐는데 아마 요즘도 계속 그 단어를 썼다면 물이랑 10번은 넘게 찌찌뽕을 외쳤을지도..

(루디도 오늘 드디어 뉴런 공유에 성공했다)



노루 이야기

루디만 알고 물, 지혜는 모르는 이야기. 루디가 이 이야기를 하다 어제 밤을 새웠다고 해서 물지의 기대치를 높여놓았다. 빨리 마감해야 하는데 잊을만하면 노루 이야기를 꺼내서 웃느라 마감이 더 늦었다. 아직도 노루 이야기가 뭔지는 모르겠다. 아, 사랑 이야기란다. 아아, 아직도 얘기 중이다.



물루지의 한강 나들이

망원에 있는 비건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텀블러에 음료를 포장해서 한강으로 향했다. 걸어 가는 길 내내 하늘이 예뻤고, 한강에 도착했을 때 노을이 가장 예쁘게 물들어서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그리고는 울타리를 넘어 돗자리를 피고 한참 수다를 떨었다. 완벽함에 사랑을 느끼냐는 대화부터 당장 물루지 왓챠파티를 해야 한다는 대화까지. 물루지가 영원했으면 좋겠다.

지혜의 우졔통
📮 독자분들질문과 답장을 기다립니다 ! 📮
Q1. 물루지 비평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저희 팀 작품은 없나 기웃대고 있는데...
비평작은 미리 신청을 받았던걸까요...?
- 따로 신청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물루지 메일링에 실린 비평은 물, 루디, 지혜가 본 공연에 대한 비평입니다. 각자 인디스트로 활동하며 근무하다 보게 된 공연, 예매해서 본 공연 등 공연을 고른 방법은 다양했습니다. 매진 되었거나 인디스트 활동 시간과 겹쳐 보지 못한 공연이 많았답니다. (ㅠㅠ)
저희 물루지는 프린지 구성원들의 무한한 응원과 홍보 덕분에 무려 130분의 구독자가 모였는데요. 사실상 인디스트끼리 시도한 작디작은 도전에 가까운 활동이었습니다. 모든 공연 비평을 쓰자는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에, 보지 못한 공연, 비평을 쓰지 못한 공연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내년에도 또 프린지에 찾아와주신다면 물루지가 다시 등장할지도 몰라요! 

Q2. 내년에 어떤 섹터 가고 싶어요?
- 물: 저는 다음에도 신수 ! 고양이가 나를 구한다..
- 루디: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공연이라는 마을을 찾아 돌아다니는 나그네가 되고 싶다,,,
- 지혜: 여전히 신수... 신수가 아니라면 저는 사과와 치즈가 있는 곳으로 갈래요... 

안녕하세요. [비평이 뭔지 우리는 물루지]의 '물루지' 물, 루디, 지혜입니다.
다들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을 마지막으로 [비평이 뭔지 우리는 물루지] 발행을 마칩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메일링 서비스였지만
총 130명의 구독자 분들 덕분에 마지막호까지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물루지에 대한 질문과 피드백, 답장은 마지막까지도 환영입니다 !!
지금까지 [비평이 뭔지 우리는 물루지]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24 비평 메일링 서비스
비평이 뭔지 우리는 물루지

😘 수신거부 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