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시대라 꽃향기로는 힘이 X

1월에 면허를 따고 차도 샀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링크) 오늘은 그후 약 두 달 동안 열 시간의 연수와 자체 운전 연습을 진행하며 생각한 운전에 대한 이야기예요. 운전을 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더 아무 세상 안 열리던 걸요… 이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 것으로 하고 지금까지의 감상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나중에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 한심함과 참회의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 없죠. 

어떤 장소, 더 정확하게는 공간을 점유하는 몸에 대해 생각하던 때가 있습니다. 한참 집회에 많이 다닐 때였는데, 누군가 어떤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이 때로는 얼마나 힘이 되고 때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때만큼 실감했던 적이 없습니다. 머릿수 하나를 채운다는 게, 각자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같은 주장을 하러 모인다는 게 얼마나 미치게 귀찮고 힘든 일인가요. 그때 저의 기준은 경찰 추산 1만 명 이상일 것 같은 집회는 나가지 않는다는 거였는데 그런 기준이라도 있어야 ‘아이고 0.01% 하러 가볼까’ 하면서 방바닥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어이없지만 지금 생각해도 괜찮은 기준 같습니다. 
아무튼 운전을 한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다른 어딘가로 이동할 때 내 몸을 포함한, 꽤 넓고 거추장스러운 한 공간을 점유하는 일이더라고요. 안경만큼 사소한 몸의 확장도 귀찮아서 시력 0.1인 눈에 아무것도 안 끼고 다녔었는데 (지금은 라섹하고 광명 찾음) 언젠가는 이 공간을 제 몸의 확장이라고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을 때가 올까요? 그건 얼마나 거추장스럽고 죄스럽고 하지만 신기한 기분일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아 물론 그전에 이 공간이 대체 얼마만 한 공간인지… 그러니까 정확한 차폭감을…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또 운전하니까 재밌고 신기하고 좋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이 들었는데요. (얼마나 떠벌리고 다녔으면 이렇게 많은 코멘트와 질문들을 들었을까요? 새삼 저의 주변인들께 감사하고 죄송하고 근데 나는 이 얘기를 여기서 또 하고 있고) 물론 나에게 없던 기술을 익히고 그걸 써먹는 일은 즐겁지만, 썩 그렇게 재미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반대로 엄청 하기 싫고 어렵다고 느껴지지도 않고 그냥 걸어다니는 거나 버스, 택시를 타는 것과는 다르니까 조금 신기할 뿐이죠. 
한편으로 나는 이 기계장치 안에 앉아서 손발만 까딱거리면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이동이 너무 힘들고 어렵고 요원한 일이라는 게 떠오르면서 찜찜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당장 1인 1 전용택시를 지급하라는 것도 아닌데 지하철에 엘베 설치하라는 게 그렇게 안 들어처먹을 일인가? 까지 생각하다가는 차선 변경 타이밍을 놓치기 때문에 화를 내지는 못합니다.
저의 수제 '초보' 딱지. 왜 '보초'라고 안 썼냐는 지적 200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명확하게 좋은 점도 있습니다. ‘초보’ 딱지를 붙였다는 거요. 저는 아주 아주 오랜만에 무언가의 초보가 되었습니다. (아닌가? 사실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초보가 된다는 건 즐거운 일이구나! 운전이 익숙해지면, 아마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또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면 어떨까? 아예 뜬금없는 악기는 어떨까? 예를 들면 첼로라거나. (지금까지 찍먹해본 악기들에 대해서는 이 레터를 참고해주세요: 링크) 이런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또 갑자기 뛰쳐나가 면허를 땄던 것처럼 갑자기 뭔가 계시를 받아서 뛰쳐나가 배우게 돼도 즐겁겠죠. 
누군가에게 뭔가를 배우고, 특히 엄마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답을 듣고 긴 이야기를 듣는 일도 그 자체로 아주 행복했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엄마한테 뭔가를 배웠던 게 언제일까요? 엄마는 요리도 못하고 살림도 잘 못하고 세상 물정(?)도 잘 몰라서 생활의 지혜나 이런 걸 가르쳐준 적이 거의 없거든요. 제가 처음으로 자취방을 보러 다닐 때 저는 변기 레버도 내려보고 물도 틀어보고 하는데 엄마는 멀뚱히 서 있더라고요. 그러더니 나와서 하는 말이 너는 그런 걸 어떻게 아냐며 나는 창 밖 뷰만 봤다고… 
조금 딴 이야기긴 하지만 최근에 세탁기를 사면서 저는 통돌이를 사겠다고 했는데 엄마가 자꾸 무조건 드럼을 사라는 거예요. 하 그래도 나보다 거의 30년은 더 살았으니 가전에 대해서는 엄마 말이 맞겠지 하고 드럼을 샀는데 전 역시 통돌이가 더 나은 것만 같고 드럼은 불편하고… 그때 왜 드럼 사라고 했냐 이유가 뭐냐고 투덜댔더니 엄마 하는 말 “살면서 한번은 드럼 세탁기 써봐야 하지 않니?” (특: 본인도 평생 통돌이만 썼음) 아무튼 이런 엄마입니다. 조금 웃기고 귀여운 에피소드라 뜬금 없이 자랑해보았습니다. 
아무튼 근 6년은 외벌이 6년은 맞벌이로 직장 생활을 했고 운전 경력이 약 30년에 달하는 엄마를 조수석에 앉히고 여기저기를 운전해 달리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라, 저럴 땐 어떻게 해라 가르쳐주는 모습이 신선하기도 했고요. 이모들한테 전화가 오면 응 나 지금 딸이 운전하는 차 타고 드라이브 중이라고, 운전 아주 잘해서 난 그냥 카톡하고 경치 구경하고 하는 거지 뭐~ 하면서 자랑하는 것도 뿌듯했어요. 4월에는 엄마랑 꼭! 가보고 싶었는데 제가 운전을 못해서 지금까지 못 갔던 리조트에 갈 예정입니다. 제가 가자고 하는 건데 '근데 엄마가 왕복 5시간 운전해야 됨' 하긴 좀 그렇잖아요. 이번엔 제 생일 기념으로 멋지게 운전해서 여행갈 거예요. 짱이죠. 
'운전 뭐 별거 아니고 난 딱히 좋은지 모르겠는데?'로 시작해놓고 그런 사람 치고는 너무 행복해 하는… 그러네요… 이럴 거면 잘 모르겠는데? 하지 말 것을… 하지만 저는 이런 사람… 반복하다 보면 여러분이 저에게 익숙해지실 날이 올 것이라고 믿으며 뻔뻔하게 마칩니다. 내일 서울은 또 엄청 춥대요! 아마도 마지막일 추위 조심하세요. 안녕!
이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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