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 숏컷 | 페미니스트 미용사 “여자 커트 20,000원, 남자 커트 15,000원.” 이렇게 적힌 미용실 가격표를 보고 마음이 불편했던 위드 없나요? 머리를 짧게 잘랐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편견에 시달려 본 위드는요? 머리카락이 어째서 여자와 남자를, 또 페미니스트를 정의하는 말도 안 되는 기준이 되어버린 건지, 함께 들여다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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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련 쵸파, 현재 숏컷이라고 들었어요. 쵸파는 어떤 이유로 숏컷을 했나요? 저도 숏컷인데, 2021년 도쿄올림픽 당시 양궁선수인 안산 선수의 짧은 머리가 '이슈'가 됐을 때 홧김에 했거든요.
쵸파 저는 대학교 2학년 때까지 긴 머리였는데, 무거워서 잘랐어요. 짧은 머리를 하고 나서 출근을 준비하거나, 학교에 갈 때 준비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어서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러련 얼마 전 진주시의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던 여성이 폭행 당한 사건이 뉴스에 보도 되었잖아요. 자신을 '남성연대'라고 칭하는 사람이 "숏컷 여성은 페미다!"라며 폭행을 저지른 혐오범죄였죠.
쵸파 머리 짧다 → 페미니스트다 → 때린다. 무엇 하나 논리적인 흐름이 아닌데요. 뭐, 머리 짧은 페미니스트로서 조금 찔리기는 하지만요 🤔.
러련 사실 머리카락이 완전히 정치적 신념과 무관한 게 아니긴 하지요. 머리카락에 이미 부여된 사회적인 의미들이 있으니까요.
우리나라 페미니즘 리부트로 '탈코르셋 운동'이 한창일 때 숏컷하는 여성들이 많았던 것 기억하나요? 저만 해도 안산 선수에 대한 어떤 연대, 저항의 의미에서 머리를 잘랐고요.
미국에서는 흑인의 머리가 백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어 온 역사가 있어서, 흑인이 자연모 중 한 형태인 ' 아프로'를 하는 게 자긍심 운동의 일환이 되기도 했대요.
쵸파 '여성'의 머리카락, '흑인'의 머리카락. 이런 식으로 규정하는 힘이 있다 보니 정치와도 떼려야 뗄 수 없나 보네요. 저도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많이 벗어나기는 했지만, 어릴 때 여자는 무조건 가슴께까지 오는 긴 머리, 남자는 무조건 귀가 보이는 짧은 머리를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러련 우리가 자라온 환경이나 매체의 영향도 있었을 것 같아요. 틴탑의 '긴 생머리 그녀'처럼 '여성성'의 상징으로서 긴 머리를 찬양하는 노래나 머리카락만 자르고 감쪽같이 '남장'에 성공하는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의 주인공 고미녀(박신혜 분) 같이요.
쵸파 그래서인지 저는 숏컷 이후로 "너 남자 같아"라든가, "여자가 머리를 길러야지, 못나 보이게 왜 그렇게 하고 다니냐"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특히 회사에서는 머리카락 + 화장을 콤보로 엮어 꾸밈노동을 요구받는 경우가 허다해요.
러련 저는 아직 학교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기도 하고, 주변에 페미니스트이거나 퀴어인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지 숏컷 이후에 불편함을 따로 겪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번 일 보면서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나는 짧은 머리를 하고도 멀쩡하게 살아왔지만, 머리 모양 때문에 일자리를 못 구하는 여성도 있고, 몸을 다치는 여성도 있다는 사실이요.
쵸파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위드에게도 사연을 받아봤는데요. 보내 준 사연들 속에서 숏컷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 보였어요.
러련 머리를 짧게 자른다고 하니 "부모님 허락을 맡았냐"고 묻는 미용사, "페미니스트라고 '오해'받는 게 싫으니 자르지 말라"고 하는 남자친구. 유독 '허락'이라는 키워드가 많이 보였어요. 여성의 머리카락은 왜 이렇게 자주 '허락'의 대상이 되는 걸까요? '내' 머리카락인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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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파 미용실에서 지불하는 비용에 관해서도 얘기해 보고 싶어요. 남성과 여성의 머리 관리 비용이 다른 걸 보면 당황스러워요. 흔히 핑크택스(pink tax)라고 하죠.
러련 맞아요. 또 여성에게 더 가혹한 외모 관리의 기준은 돈뿐만 아니라 시간이라는 비용도 더 쓰게끔 만들어요.
쵸파 머리카락도 그저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잖아요. '저 사람은 머리가 짧은 여자니까 이런 사람', '저 사람은 긴 웨이브 머리니까 저런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쉽게 단정 짓기보다는,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러련 네, 머리 짧다고 다 '페미'인 것도 아니고, '페미'라고 다 머리 짧은 것도 아니고, '페미'인 것도 머리 짧은 것도 문제가 아니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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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사이지만 페미니스트입니다
- 오늘의 콘텐츠 | 인터뷰 '해인정' 미용사 정시경 -
글 | 에디터 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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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정'(@haein.jeong_salon)은 핑크택스 프리와 비건 &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미용실이에요. 여성들이 편안하게 나만의 분위기, 나만의 스타일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드물고 특별한 미용실을 찾아가 보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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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정' 미용사 정시경
"헤어 스타일이든, 뭐든,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어요."
'미용'과 '페미니즘'이라는 말, 어쩌면 양립 가능한지도 모르겠어요. 이곳, 해인정에서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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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반갑습니다!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시경 10년차 미용사 정시경입니다. 2017년 5월부터 '해인정'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내 미용실을 열게 되면 당연히 '핑크택스 프리'(모든 성별에 동일한 커트 비용)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리사 제가 '해인정'의 단골 손님이 된지도 어느덧 2년이 됐어요. 머리하면서 선생님과 페미니즘 얘기, 비거니즘 얘기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요전에 선생님이 "(나는) 거의 활동가나 마찬가지, 여기(해인정)는 그냥 도구..."라고 말씀하신 것도 기억에 남아요.
시경 농담처럼 한 얘기지만 사실이에요. (웃음) 저처럼 헤어 제품을 많이 소비하는 전문가들이 비거니즘과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이 사용하는 만큼, 큰 효과와 영향력을 줄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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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조금 걱정도 돼요. 1인 여성 사업자로서 '미용실'이라는 불특정 다수에게 오픈된 공간을 운영하는 게 무섭진 않으세요?
시경 미용실은 워낙 '스몰 톡(small talk)'이 많은 곳이다보니,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는 성희롱이요. 자기가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서 독서실에 가는데 남녀를 분리해놔서 여자 보는 맛이 안 난다"고 한다든가. 중년 남성 손님이 "20대 여자를 만나면 무슨 선물 줘야 되냐"고 묻는다든가. 근데 그런 사람은 예약제 등의 장치로 어떻게든 밀어낼 수 있었어요.
리사 그럼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는 부분도 있으신 건가요?
시경 2021년 도쿄 올림픽 때 안산 선수 헤어 스타일이 '숏컷'이라 논란된 적 있었잖아요. 그때 안 선수에 연대하는 마음으로 저도 숏컷을 했거든요. 그러다 머리를 다시 좀 길렀더니, 여성 손님들께서 "머리 기르니까 여성스럽고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선의로 한 ‘칭찬’인 건 알지만...
또 "우리 남편은 딸들 머리도 못 자르게 한다"든가, "아들이 남자애여서 그런가 엄마 머리가 긴 걸 좋아한다"고 말씀하시는 손님도 있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 조금 절망적이에요.
리사 그럴 땐 어떻게 대답하는 편이세요?
시경 농담처럼 "아, 그러면 남편이 머리를 기르시면 되겠네요~" 하죠.
리사 그러네요. 긴머리가 좋으면 자기가 기르면 되죠! 미용사는 꾸밈노동과 밀접하고, 감정노동도 섞인 직업이다 보니 이렇게 페미니스트로서 소진되는 순간이 많으시겠어요. 그렇지만 반대로, 에너지가 채워지는 순간도 있다면요?
시경 저는 돈보다 뿌듯함, 성취감이 가장 중요한 사람 같아요. 그날 만들어진 스타일에 만족하는 반응도 저에게 정말 힘이 되지만, 손님이 재방문 하셨을 때 "저번에 그 머리 주변에서 잘 어울린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손질 안 해도 예쁜 스타일 잘 나와서 좋았다" 이런 말씀 해주실 때가 가장 뿌듯하죠. 제가 해드린 머리 덕분에 그동안 잘 지내오셨다는 얘기를 한번 들으면, 힘든 마음이 조금 맑아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오트 라떼인데 한번 드셔보세요~"라고 손님께 슬쩍 비건을 권하기도 하는데요. 덕분에 비건을 실천하게 됐다는 손님도 계세요. "이제 우유 안 마시고 다 식물성으로 바꿨어요. 오트나 아몬드 밀크로 마셔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정말 힘이 나죠.
리사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알리거나 공유하고 나면, 더 친밀해지는 것 같아요.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유난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예민한 사람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어서 더 그런 걸까요.
시경 그렇죠. 그만큼 내가 가진 어떤 정체성을 오픈해서 사람들과 연결되는 게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용기를 냈으면 좋겠어요. 그냥 가까운 사람들한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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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해인정'에는 손님뿐만 아니라 연대할 수 있는 이웃 가게도 있죠. 같은 건물에 있는 서점 '리브레리아Q'에는 페미니즘과 비거니즘 관련한 책이 많잖아요. 서점원님도 채식주의자시고요. 어쩜 이렇게 닮은 두 가게가 딱 붙어있을 수 있는지 참 신기합니다.
시경 서점원님이 정말 큰 영향을 주셨어요. 비거니즘도 덕분에 깊이 알게 됐고요. 서점원님 아니었으면 저는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해인정'을 하면서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어요. 저는 인복이 좋은 것 같아요.
리사 저도 이 동네에 '해인정'이 있는 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보이시하다', '여성스럽다' 같은 표현을 쓰지 않고 상담하셔서 언제나 즐겁게 오고가고 있어요. 스타일 상담할 때 특별히 여성주의 관점에서 신경 쓰는 부분이 있을까요?
시경 여기 오는 여성 분들이 세상의 잣대로부터 자유로웠으면 하거든요.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성별이나 나이에 구애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머리잖아요. 그냥 단순하게 접근하는 편이에요. 지금 스타일에서 불편한게 뭔지, 마음에 안 드는 게 뭔지 알아보는 거죠. 제 역할은 손님이 원하는 걸 잘 찾도록 돕는 것이라 생각해요.
리사 마지막으로 위드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시경 여성들이 스스로 의심하지 않길 바라요. 그냥 원하는 거, 하고 싶은 거, 생각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숨을 터주고 싶어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세상 어딘가에 어떤 여성들이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고. 그렇게 전하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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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내가 하고 싶은 머리 모양을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그림 실력을 뽐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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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성과 유행' 레터에 위드가 보내준 피드백을 살펴보았어요.
- 이번 레터를 보고 반성을 많이 했어요. 남들과는 다른, 기존 관념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이효리를 포함한) 다른 여성들을 또 어떤 잣대로 평가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마녀는 기꺼이 될 수 있지만 촌스러운 여자는 되기 싫다'는 내용의 인용구에 마음이 뜨끔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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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터를 함께 만든 사람들 👪
꾸물🐛 따개🖇 라노🦖 러련 🪁
리사🤿 장소조🐭 짱콩🐥 쵸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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