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다시 벤처대출을 이야기하는 핀테크 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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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를 탐구합니다
2024년 벤처대출을 다시 이야기하다

2017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미국의 벤처 대출

2023년은 실리콘밸리 벤처 금융의 상징으로 불리던 벤처대출(Venture Debt)이 2017년 이후 최저 수준의 집행 금액을 기록한 한 해가 되었습니다. 벤처대출의 터줏대감 역할을 했던 실리콘밸리은행 (Silicon Valley Bank, SVB)이 뱅크런 사태로 공중분해되며 시장 충격을 피해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벤처 투자 혹한기는 벤처 대출의 약한 고리를 노출시키며 인기를 시장이 축소되는 모습입니다. 구조에 따라 상이하지만 기본적으로 스타트업의 라운드와 라운드 사이의 브릿지 역할을 하는 벤처대출은 스타트업 펀딩이 어려워지고 어떤 스타트업도 성공적인 다음 라운드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자 기존의 벤처대출 공급자들도 한도를 줄이고 집행 요건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7년 이후 반기 기준 벤처대출 집행 규모 (미국 기준)
하지만 벤처 대출이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상품이 가진 독특한 구조, 포트폴리오 구성을 통해 중위험 중수익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이점, 그리고 여전히 일반 금융 기관 입장에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진입 장벽 등 상품 그 자체가 가진 매력도를 무시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작년 상반기 실리콘밸리은행과 퍼스트리퍼블릭이 나란히 유동성 위기를 맞았지만 짧은 기간 내에 각각 퍼스트시티즌과 JP모건이라는 인수자를 찾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벤처 금융 기관이 가진 이점은 충분하다는 평가입니다. 

그리고 균열이 생긴 벤처대출 시장에 새롭게 도전장을 낸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바로 2021년 'SaaS를 위한 은행'을 외치며 등장한 Arc Technologies (이하 Arc) 입니다. 지난 9월 벤처대출 서비스를 처음 출시한 Arc는 지난주 벤처대출 마켓플레이스를 내세운 Arc Capital Markets를 선보이며 벤처대출의 '우버 블랙'이 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Arc가 벤처대출에 뛰어든 까닭

2022년 뉴스레터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 Arc는 팬데믹으로 인해 집에서 온라인 강의만 듣던 스탠포드 MBA 재학생 돈 무어 (Don Muir), 닉 롬바르도 (Nick Lombardo), 그리고 레이븐 장 (Raven Jiang)이 의기투합하여 2021년 설립한 스타트업입니다. 당시에는 SaaS 붐에 힘입어 반복 매출을 일으키는 기업에게 단기간 심사를 통해 대출을 제공하는 매출기반대출 (Revenue-Based Financing, RBF)이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Arc는 이를 한 층 발전시켜 SaaS 기업을 위한 종합 금융 서비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대출, 자금관리 및 법인카드를 포괄하는 사업을 시작한 바 있습니다.


Arc의 초기 성장세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2021년 9월 법인 설립 후 2022년 1월 시드 라운드, 2022년 3월 와이콤비네이터 데모데이를 거쳐 2022년 8월 Lafe Lane Capital의 주도로 270억 원에 가까운 시리즈 A 유치까지 모두 1년 안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당시 2022년 3월 기준 월 대출 실행액이 150억 원 수준이었는데 빠른 성장성에 힘입어 시리즈 A에서는 1천억 원($85 million)에 가까운 기업가치를 인정받기도 하였습니다. 
스타트업 금융의 미래를 표방한 Arc Technologies

회사가 발표한 2023 Review에 따르면 Arc는 지난 한 해 12배의 고객 예치금 성장 및 4천 개 이상의 신규 고객 어카운트가 생성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작년 3월 발생한 실리콘밸리은행 사태 당시 스타트업에게 신용을 제공할 수 있는 대안 기관으로도 소개되며 상당한 고객 유입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입니다.


다만 실리콘밸리은행 상태는 Arc 입장에서 상당히 아쉬운 시점이기도 하였습니다. 회사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고려할 때 실리콘밸리은행을 떠나 새롭게 거래 은행 또는 유사 서비스를 찾던 스타트업들을 신규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이미 서비스 수준 및 자금력 측면에서 앞서있던 머큐리나 브렉스와 같은 기업에 밀려 그다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SaaS에만 특화된 포지셔닝 전략을 취해온 Arc 입장에서는 2022년의 빠른 성장세가 2023년에는 확장성의 제약으로 다가온 측면이 컸습니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 사태 당시 수혜를 입은 주요 기관 - 핀테크 분야에서는 머큐리와 브렉스가 최대 수혜자

작년부터 Arc는 SaaS에 대한 언급을 줄이고 '스타트업 전용 금융기관', '실리콘밸리 금융의 미래'와 같은 보다 넓으면서 모호한 비전을 전파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포지셔닝 변경의 배경에는 대규모 자금 투자가 현저하게 줄어든 SaaS 산업의 정체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상장 SaaS 기업들의 기업가치가 대폭 하락하고 AI 등장 이후 SaaS 기업들의 트렌드가 외부 자금 없이 회사를 성장시키는 부트스트랩(Bootstrap)과 대규모 자금을 유치하여 경쟁력을 쌓는 AI 기업으로 양분되면서 중간 지대가 사라진 점 또한 Arc 입장에서는 악재인 상황입니다.


결국 Arc는 신규 성장 동력을 찾으면서 자신들의 강점인 핀테크-소프트웨어 기반 금융을 십분 활용하고 실리콘밸리은행과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붕괴 이후 생겨난 빈 공간을 선점할 수 있는 분야로 '벤처대출 마켓플레이스'를 선정, 올해부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성공 사례로 들고나온 것이 SaaS도 이커머스도 아닌, LMFP 배터리 용 양극재를 개발하는 딥테크 분야 스타트업 미트라켐(Mitra Chem)입니다.



Mitra Chem이 Arc로부터 벤처 대출을 받은 이유

미트라켐은 테슬라 프로그램 매니저 출신인 비바스 쿠마(Vivas Kumar)가 2021년 스탠포드 MBA 졸업 직후 설립한 배터리 소재 관련 스타트업입니다.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 및 음극재에 대한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줄인다는 미션을 내세우고 있는 미트라켐은 리튬인산철(LFP) 기반 배터리에 들어가는 양극재 소재를 개발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미국 유일의 양극재 대량 생산 기업을 목표하고 있는 스타트업 미트라켐 (Mitra Chem)

"미트라켐은 시리즈 B 클로징 이전 단기 유동성 공급을 위해 Arc와 협력했습니다. 당시 여러 거래 상대방이 얽혀있는 상당한 복잡한 거래 구조에도 불구하고 Arc는 2주라는 기록적인 시간 내에 2백만 달러의 벤처 대출을 제공하여 미트라켐 현금 이슈 없이 협상에 유리한 위치에서 시리즈 B를 마감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Arc는 미트라켐의 시리즈 B 라운드와 관련한 실사 및 투자 협상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시리즈 B 펀딩 이전 현금 보유고를 보충하기 위해 스타트업 대출 상품을 알아보았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2023년 4월은 실리콘밸리은행 사태 직후라는 특수성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벤처대출 자체가 원활하지 않던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rc는 자신들의 핵심 서비스인 API를 통한 자금관리 자동화 솔루션을 활용, 짧은 시간 안에 미트라켐의 자금 현황 및 사업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불과 48시간 만에 벤처대출을 위한 텀싯을 발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다양한 담보 조건을 이야기하는 타 벤처대출 실행기관과 달리 Arc는 순전히 시리즈 B 클로징 여부에 따른 담보 조건만을 제시, 굉장히 스타트업 친화적인 조건으로 대출을 실행하였다고 평가합니다. 

(왼쪽부터) Arc의 창업자 돈 무어, Mitra Chem 시드 투자자 차마스와 창업자 비바스
결국 미트라켐은 작년 8월 GM의 리드 투자자로 참여한 시리즈 B 라운드를 목표 금액 이상인 $60 million으로 마감하며 본격적인 양산 과정에 돌입할 수 있었습니다. 미트라켐은 지난달 첫 LMFP(리튬망간인산철) 배터리 전용 양극재 공급 소식을 알리며 사업은 순항하는 모습입니다.


Arc가 그리는 벤처대출의 미래

Arc의 벤처 대출 프로그램은 자신들이 직접 대출의 주체가 되는 형태가 아닌, 차주와 대주를 연결해 주는 마켓플레이스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해당 플랫폼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의 경우 Arc가 제공하는 AI를 활용한 데이터룸을 통해 투자 관련 정보를 확인한 후 자유롭게 투자에 참여할 수 있으며, 대출을 희망하는 스타트업은 회사가 제시하는 기본 요건을 충족할 경우 자금 관리 기능을 Arc의 시스템과 API로 연결한 후 심사를 진행하고 48시간 이내에 가부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입니다.

Arc 벤처대출 지원 자격

  • 최근 매출: 지난 12개월 동안 매출이 50만 달러 이상이고 매년 성장하는 기업
  • 최소 운영 기간: 2개월 이상의 재무 기록
  • 런웨이: 12개월 이상의 런웨이
  • 설립 구조: 모든 경영진이 미국 시민권자인 미국 설립 기업
  • 기존 부채: 미결제 부채 없음
  • 소송 등: 기업 또는 주요 직원에게 미결 파산, 소송 또는 기타 중대한 불리한 영향이 없음.
Arc의 벤처대출 웹페이지

"명확한 목적에 맞게 부채를 사용할 수 있고 회사가 달성하고자 하는 마일스톤이 명확하다면 대출은 에쿼티 대비 희석 효과가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강력한 자금 조달 수단입니다."


Arc의 창업자 돈 무어는 2024년 벤처대출의 수요와 공급 불균형이 가장 극심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벤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현금 이슈에 직면하는 스타트업은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자금을 제공해왔던 전통적인 벤처대출 실행 기관들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기 때문입니다.

급격한 시장 붕괴를 겪은 벤처대출 (출처: FT)

반면 돈은 2024년이 벤처대출 실행을 위한 최고의 해가 될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지금처럼 스타트업들이 자금 관리에 민감하고 현금 확보, 수익성 달성 및 긴축 살림에 진심인 경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금 상환과 현금흐름의 예측 가능성이 중요한 대출 기관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대상만 잘 선정하면 사업을 키울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선 것입니다. 게다가 기업가치 상승이 제한적이니 자금 조달 시 기존 주주가 상당한 지분 희석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창업자 입장에서도 벤처대출의 매력도가 더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감지한 Arc는 지금까지 쌓아온 API 기반 스타트업 자금 관리 및 금융서비스 제공 역량을 결합한 48시간 이내 심사 가능 벤처대출 서비스를 출시, 스타트업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진학 전 보스턴컨설팅과 아폴로글로벌에서 경력을 쌓은 돈 무어는 재학 중 창업을 준비하면서도 학업에 매진, 매년 MBA 졸업생 중 재무 수업 관련 성적이 가장 우수한 단 한 명에게 수여하는 The Alexander A. Robichek Award in Finance를 수상한 인물입니다. 재무광이라고 할 수 있는 돈에게 에쿼티와 부채를 넘나들며 기업의 자금 조달 이슈를 해결하는 일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업무인 것입니다. 과연 Arc의 이번 벤처대출 사업 도전이 신규 수익원 확보를 넘어 Arc에게 당면한 시리즈 B 라운드까지 해결해 줄 수 있을지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Editor's Note


Arc가 내세운 소프트웨어 기반 벤처대출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입니다. 최근까지 인기를 끌었던 매출기반대출의 경우 반복매출이라는 강력한 펀더멘털과 사업의 예측가능성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초단기 심사 및 집행이 가능하였지만, Arc가 진출하는 전통 벤처대출의 경우 과연 12개월의 현금흐름이 회사의 미래 자금 조달 가능성에 대한 신뢰성있는 지표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입니다.


Arc의 돈 무어와 미트라켐의 비바스는 스탠포드 MBA 동기 사이입니다. 2021년 MBA 졸업 직전 나란히 창업에 나서 성공적으로 스타트업을 이끌어오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원래부터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단순히 지표로만 드러나지 않는 회사 현황 및 펀드레이징 성공 여부에 대한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스타트업이 사업 및 신규 서비스 초기에 창업자의 개인기와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핵심은 벤처대출과 같은 금융서비스는 개인이 가진 지식이나 회사에 대한 비공개 정보가 아닌, 철저히 자료와 데이터에 기반한 심사가 가능할 때 확장성이 있다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 Arc의 벤처대출 서비스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시장의 후발 주자인 Arc가 끊임없이 새로운 서비스를 빠르게 출시하고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사업을 키워나가는 모습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시장 환경의 변화에 움츠러들지 않고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에 나서는 모습에서 스타트업의 실행력이 의미하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고 평가합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도 재미난 '지금의' 실리콘밸래 벤처 투자 이야기와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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