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 연예인 | 청년여성
떠나간 여성을 돌아보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다

위드, 가끔 여성의 죽음이 우리를 흔들 때가 있어요. 사람들은 무엇 때문인지 이야기하기 바쁘죠. 때로는 고인 모독이 아닌가 염려될 만한 폭력적인 언어를 내뱉기도 해요. 그들이 생각하는 원인은 항상 죽은 여자 당사자에게 있어요. 극단적 선택을 두고 열애설과 연결짓거나 그가 ‘약한 멘탈’을 가졌다고 보는 식이죠. 여성 자살을 납작하게 만드는 사회적 시선을 멈춰세워야 해요. 왜냐면 한 사람이라도, 한 여성이라도 더 잃고 싶지 않거든요.

 이끼   구월은 자살한 여성을 어디서 본 적이 있나요? 저는 주로 TV에서 여성 연예인의 죽음을 많이 보았어요.


 구월   역시 TV에서 많이 본 듯 해요. 가깝게는 고등학생 때 같은 학년의 친구가 자살한 적이 있어요. 방학이었는데 학교에서 단체 문자로 학생과 부모에게 “학생들의 부적절한 선택을 방지하기 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여성의 자살이 ‘관리’의 영역인가 싶더라고요. 사실 문자 안내에는 ‘자살’이나 ‘죽음’이라는 언급조차 없었어요. 개학 이후에 알음알음 소문이 퍼졌고, 학교에서는 예정에 없던 자살 예방 교육 시간과 고위험군 학생을 대상으로 한 상담 시간이 생겼어요.

 이끼   구월에게 힘든 시간이었겠네요. 생각해보면 제가 다닌 학교에서도 자살한 학생들이 몇 명 있는데 그것에 대해 쉬쉬했던 기억이 나요. 물론 자살이 전파되는 경향이 있고, 그때 저희가 학생이었으니 청소년들에게는 죽음 이야기를 더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 어른들이 쉽게 나서지 못한 것도 이해해요. 그래도 저는 죽음에 대해, 여성의 자살에 대해 더 이야기해야 한다고 보아요. 그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생각하는 것도 추모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구월   이게 어려운 거 같아요. 자살에 대해 터놓고 말하되 너무 가볍게 이야기하지 않게 선을 지키는 것 말이에요. 자살의 이유를 생각할 때도 “그 사람이 충분히 강하지 못해서”라고 말해선 안 되고요.


 이끼   여성 연예인이 자살하는 이유를 이야기할 때 성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여성이기에 악플이나 성희롱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당사자가 이 문제에 대해 사회나 대중에 호소해도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여성 유명인의 죽음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인데도 그 사실을 말하는 순간 ‘페미니즘 묻히지 말아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싫어요. 특히 설리 씨나 구하라 씨의 이야기를 할 때는 페미니즘을 떼놓을 수가 없는데도요. 설리 씨의 경우,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았고 나이 많은 남성 연예인에게 말을 편하게 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았죠. 구하라 씨는 불법 촬영 영상으로 고통받았고요.


 구월   그가 왜 죽었는지를 고민하는데 ‘왜 그의 죽음을 더럽히느냐’고 따지는 게 더 나쁜 거 같아요. 중요한 주제를 계속 무시하고 가벼운 이야깃거리로 그들의 죽음을 소비하는 게 더 더럽지 않나요?


 이끼   여성 연예인이 자살하면 그 사람들의 존재를 낭만화하기도 해요. “성녀였던 ㅇㅇㅇ의 안타까운 죽음” 같은 헤드라인이 언론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등장할 때마다 정말 불쾌해요. 그들이 살아있을 때는 ‘미친년’, ‘나쁜년’ 취급하던 사람들이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잖아요.


 구월   최근 한 여성 연예인이 자살하자 이전에 자살을 선택한 다른 연예인들이 다시 가볍게 언급되기 시작했어요. 한 렉카 유튜버 쇼츠를 우연히 보았는데 “그들에게 정신과 의사를 추천한 사람이 ㅇㅇㅇ고, ㅇㅇㅇ가 사이코패스”라는 이야기였어요. 한 사람의 자살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태도에 눈살이 찌푸려졌어요. 조회수와 돈에 눈이 먼 이들이 또 누군가의 죽음을 만들 것 같아 무서웠어요.


 이끼   자살은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사회적 영향을 배제할 수 없잖아요. 자살 피해자가 여성이라면 분명 여성 차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를 다루는 건 불편하니 다른 원인을 찾는 것 같아요. 코로나 시기여성 자살률이 늘었던 원인은 여성이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많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정폭력에 노출되는 수가 늘었기 때문이었어요. 이러한 원인을 지적하지 않고 “여성이 정신력이 약해서" 그렇다며 진실을 회피하는 모습이 답답했어요.


 구월   여성의 높은 자살률을 분석하려면 본질을 봐야하는데 불편하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여성의 죽음은 가볍게 다뤄져요. 이런 경향 때문에 여성 자살률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요.


 이끼   한때 외신에서 ‘왜 한국 여성들은 자살하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다고 해요. 왜 그냥 여성이 아니라 ‘한국 여성’을 주목했는지 한국과 여성의 자살을 연결해서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구월   겉에 있는 흉터만 없애려고 하다보면 안은 계속 곪아가고, 결국 더 큰 상처로 번지잖아요. 충격적일 수 있지만 모두가 문제의 진실과 핵심을 봤으면 해요.


 이끼   오늘 나눈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는 한 마디가 생각나요. Ni Una Menos.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


이 기후는 당신을 아프게 해요

-오늘의 콘텐츠 |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
위드,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성과중심주의와 능력주의, 노동 불안정과 고용구조의 유리천장 아래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조차 벅차다고 느끼지는 않나요? 모든 것이 다 노력도 능력도 부족했던 내 탓이라는 자기혐오에 사로잡히게 되지는 않나요? 항상 내 편일 것만 같았던 페미니즘조차 때로는 '네가 잘해야 한다'며 목을 죄어오죠. 아무것도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불안과 우울, 자살 사고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여성 청년들의 현실을 직시해 보아요. '나'는 '우리'일 수밖에 없으며 이 모든 구조 속에서 아플 수밖에 없는 우리가 죽기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예요.
©오월의봄

영감의 실마리

하나, 성과중심주의와 능력주의

오늘날 2030세대의 부모세대는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고 계급 상승도 가능하다’는 비전을 공유하며 살아왔어요. 이런 믿음은 반드시 학벌 및 학력자본을 획득해야 한다는 압박과 통제로 이어지기 쉽죠. 자녀가 이를 성취하지 못할 경우 부모는 자녀의 삶을 실패로 규정하고 비난에서 심하게는 폭력까지 정당화할 수 있어요. 실제로 저자는 자살 사고를 경험한 많은 여성들이 성과중심주의적인 부모님, 특히 아버지 아래에서 성장해왔음을 밝히고 있어요.

다른 한편에는 ‘능력만 있으면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더라도 성공하고 인정받을 수 있다’라는 능력주의의 맹신이 있어요. 능력주의는 성별고정관념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지우고 모든 성패를 능력의 유무로 치환해버려요. 결국 모든 걸 자기 관리 및 개선이라는 자기 책임으로 돌리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와 맞닿아 있죠. 능력주의적인 평가 기준 아래 여성들은 더더욱 많은 압박을 받게 돼요. 유리 천장과 같은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실패마저도 자신의 무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Woman's Health
둘, 돌봄 부담과 고용불안정 사이에서

K-장녀라는 말을 들어봤을 거예요. 가족의 대소사에 막중한 책임을 느끼면서 오히려 자기돌봄은 뒷전인 장녀들의 애환을 우스개로 포장한 유행어였죠. 실제로 한국의 많은 딸들이 가정 내 돌봄과 부모 부양의 부담을 짊어지고 있어요. 특히나 가부장적인 가정 내에서라면 여성 청년은 남자 형제들에게는 요구되지 않는 돌봄을 제공할 대상으로 낙점돼요. 조부모의 무료 간병인이자 훗날의 살림 밑천, 시간 맞춰 아버지와 남자 형제에게 밥 차려주는 식모 노릇을 하게 되는 거죠. 

여성 청년들의 홀로서기를 가로막는 불안정한 고용시장과 장기화되는 취업 준비는 그녀들이 가정 내 착취와 폭력에도 불구하고 집을 떠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아요. 과거에는 결혼으로 원가족을 ‘탈출’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더 이상 결혼이 유일한 선택지도, 낭만적인 대안도 아니라는 걸 깨우친 상황에서 원가족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여성 청년들이 늘어난 것이죠.
©경향신문
셋, 어디에도 내 편은 없고 나조차 내 편이 아닌

때로는 엄마도, 페미니즘도 여성의 편이 아닐 수 있어요. 저자가 인터뷰한 여성 청년들은 같은 여성으로서 어머니가 경험한 가정폭력과 어머니가 전담하는 가사노동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자살시도나 절연, 독립을 미루는 경향이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어머니들도 딸들의 이해자보다는 가부장의 아내 역할에 더 충실하기도 하죠. 아들에게는 기대하지 않는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을 딸에게만 요구하면서요. 가장 가까운 존재가 때로는 자살 생각을 유발한다는 건 참으로 슬픈 역설이에요.

페미니즘 또한 마찬가지예요. 1990년대 이후 출생한 한국 청년 여성들이 온라인으로 쉽게 접한 페미니즘은 성과중심주의와 능력주의에 대한 동의와 높은 위치까지 올라간 여성에 대한 강한 동경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능력주의와 결합한 페미니즘은 불평등에 대한 자각과 약자를 향한 연대 의식보다는 소외감과 자책감, 낙오감, 패배감을 느끼는 개인을 주로 양산해요. 쉽게 끊기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맴돌다가, 삶을 도저히 긍정할 수 없게 된 여성 청년들이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마는 것이죠.

☂️ 에디터 산우의 생각조각   

위드에게 고백하자면, 저 또한 죽지 못해 사는 여성 청년 중 하나였어요. 고립과 우울의 긴 터널을 지나왔고, 사실은 아직도 손에 잡히지 않는 빛을 따라 계속 걷는 중이에요.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나 혼자뿐인 것 같았고 죽음은 안식이므로 부러 앞당길 건 없어도 항상 빨리 쉬고 싶었죠. 하지만 위드, 저는 우리가 음표라고 생각해요. 단일한 음을 구성하지는 않아도 한데 모여 주선율을 합창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함께 큰 함성을 내지를 수도 있다고요. 몇 년 전에도, 몇 달 전에도 이 사실을 경험한 바 있으니 조금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자주 기억하려고요. 옆에 있는 우리를, 서로를, 음표처럼 다닥다닥 붙어있고 이어져 있는 우리를 계속해서 돌아봐야만 한다고.

그러니까 침묵하지 말아요, 가라앉지 말아요. 우선 좋아하는 노래를 들어봐요. 몸을 일으켜서 집 근처를 10분이라도 돌아봐요. 아무 노래라도 흥얼거려봐요. 노래가 화음이 되고 화음이 함성이 되고 함성이 지반을 울린다면, 어쩌면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바뀔지도 모르잖아요. 변화는 대단한 게 아니라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이 계속 살아갈 수 있을 만큼 강하고 뻔뻔한 자아가 있고, 맷집이 있고, 회복탄력성이 있고 실패에 대한 면역력도 있다고 믿게 되는 게 그 변화예요. 지금은 당연해도 모든 것들이 낯설었던 시공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것들을 흩뿌리고 사라져간 무수히 많은 그녀들이 있었고, 사라진 그녀들을 어떻게든 기억하고 기록하는 또 다른 그녀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봐요. 위드, 저는 당신이 우리가, 그리고 그녀들이 되기를 바라요.
사라진 그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wew)
지난 ‘여성과 트랜스젠더’ 레터에 위드가 보내주신 피드백을 살펴보았어요.
  •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아 최근의 트랜스젠더 배제적 정치와 과거에도 항상 존재해왔던 트랜스젠더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오늘 이야기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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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오늘도 위유 뉴스레터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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