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에너지 문제

 

 

 


손화철 (한동대학교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KP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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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1월 ChatGPT 3.5의 출시와 함께 인공지능 열풍이 불기 시작할 때부터 인공지능이 소비하는 전력 문제가 이미 예견되었다. 이후 인공지능 서비스의 폭발적인 사용 증가 때문에 이 문제가 더 심각해졌으나 아직도 관련 논의는 미진하다. 신기술에 대한 기대에 치중한 나머지, 자명한 문제를 애써 축소하고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도 심각한 문제지만, 우리 시대가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기술에 대해 보이는 전형적인 태도를 잘 보여준다.


1. 인공지능과 에너지 문제의 현황

  정확한 자료가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공지능과 관련된 에너지 문제의 현황과 미래를 종합적으로 개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의 깊은 관찰자의 눈으로 산발적인 자료를 파악한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하다. 우선 인공지능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는데, 그 정확한 수요는 알려지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파악하고 있는 주체도 없다. 그러나 향후 에너지 수요가 급증할 것이 분명하고, 이미 인공지능 연구에 필요한 에너지를 원활하게 공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나아가 이 문제를 해결할 단기적인 대책은 없고, 장기적 해결책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희망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추정을 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미국 AI 연구기관 Epoch AI의 보고서를 인용한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GPT-4o의 일반적인 쿼리는 0.3와트시(Wh)로 일반 가전제품보다 더 적은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한다.1) 이는 종전 추정치의 1/10 수준으로, 반도체와 소프트웨어의 성능이 시시각각으로 좋아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전체 문제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선 인공지능의 사용에 드는 에너지뿐 아니라 여러 관련 기업이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데 쓰는 엄청난 에너지를 고려해야 한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더 잦은 빈도로 인공지능을 사용하고 그래픽과 같이 처리하는 작업의 내용이 복잡해지므로, 인공지능 사용으로 생겨나는 에너지 수요의 총량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2023년 3월 산업통산자원부는 2029년까지 국내 신규 데이터센터 수요는 732개이며 이에 따른 소요 전력 용량은 49,397MW라고 발표했다. 이를 근거로 2024년 5월 입법조사처는 데이터센터가 요청한 대로 지어진다면 1000MW(1GW)급 발전기를 53기(소내 소비 및 손실 7% 고려)를 추가 건설해야 한다고 추정했다.2) 데이터센터에 대한 수요가 10배 과장되었다고 해도 (혹은 에너지 효율이 10배로 좋아진다 해도) 원자력 발전소를 약 5기나 지어야 하는 셈인데, 이 정도의 전력을 단기간에 추가로 공급하는 것은 별로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최근 서울의 주요 대학들이 전력난 때문에 인공지능 연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 5년 동안 전력 소비량 증가가 서울대는 28.4%, 연세대는 16.5%, 고려대는 14% 가까이 증가했지만, 추가 전력 공급이 용이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한 경우, 연구자들이 시간대별로 나누어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3)

  직접적인 에너지 문제는 아니지만, 데이터 센터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필요한 물 소비량도 엄청나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UC리버사이드 전기컴퓨터공학부 샤오레이 렌 교수의 ‘AI 모델의 비밀스러운 물 발자국 발견 및 해결’ 논문에 따르면,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데 쓰는 전력 발전용 물과 냉각용 물을 합쳐서 생각할 때 챗GPT가 질문 하나에 답할 때마다 필요한 물은 7.6~29.9mL라고 한다.4)


2. 제시되는 대안과 그 한계

  2025년 6월 들어선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 분야에 10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하고, 새로 생긴 AI 미래기획 수석은 전국민에게 AI 바우처를 지급하자고 하는 등 인공지능의 개발과 사용에 대한 논의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정작 거기 소요되는 에너지를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별로 구체적이지 않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역시 원자력 발전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인공지능 때문에 생겨난 수요를 감당할 방법은 원자력밖에 없다며 환호하고 있다. 특히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대한 기대가 크다. 큰 규모의 원자력발전소를 지어 먼 곳에서 에너지를 공급하는 대신 모든 부품과 연료가 한꺼번에 들어가 있는 소형모듈원자로를 개발하면 사용처와 가까운 곳에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 근처에 설치하면 효율적일 것이므로 합리적인 해결책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소형모듈원자로 특별법도 발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형모듈원자로가 인공지능의 에너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되기까지는 따져봐야 할 부분이 많다. 환경단체가 이 기술의 안정성이 아직 실증되지 않았고, 핵폐기물의 처리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다고 하는 것은 최소한의 지적일 뿐이다. 여기에 더해 소형모듈원자로를 공장에서 설치 장소까지 이동하는 과정과 여러 곳의 설치 장소가 군사적 공격의 대상이 되는 문제가 있다. 이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밀집하여 거주하는 우리나라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심각한 이슈다. 미국처럼 땅이 넓고 외국의 침략이 어려운 나라에서 좋은 방안이라 해서 어디서나 좋은 것은 아닌 것이다. 나아가, 당장 소형모듈형원자로를 생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직은 장기적인 대안일 뿐이다.

  태양광, 풍력, 지열 등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안이 대안이라 주장하기도 어렵다. 인공지능이 소모하는 에너지의 양은 엄청난 속도로 늘고 있는데, 재생 에너지의 특성상 많은 에너지를 한꺼번에 생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규모의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려면 얼마나 많은 풍력발전기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지금 생각하는 규모의 인공지능 발전을 전제로 할 때, 그나마 가장 설득력이 있는 대안은 인공지능의 개발과 구동에 사용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전력효율성을 높이는 설계와 관련 소프트웨어의 개선을 통해 에너지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과거에 반도체의 집적 회로의 성능이 24개월마다 두 배로 좋아진다는 소위 ‘무어의 법칙’이 한동안 현실화된 적이 있으니 이런 기대가 비현실적이지는 않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전력은 적게 소모하면서 기존보다 더 잘 작동하는 반도체나 기술적 방안의 개발 분야에서도 엄청난 진보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기술 발전에 대한 낙관론에 기대는 방식이다. 앞서 언급한 데로 인공지능의 사용자와 사용 영역이 많아질 것까지 고려한다면, 낙관론에 의거해 섣불리 안심할 수도 없다.

 

3. 당위가 된 기술 발전

  지금 논의되고 있는 속도와 규모의 인공지능 개발은 에너지 문제의 해결을 전제한다. 그러나 그 문제 해결을 위한 뚜렷한 대책은 없는 상황에서도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다. 그 이유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예측이 아닌 당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발전할 뿐 아니라 발전해야 하므로, 에너지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에너지 문제가 너무 크다면 인공지능 개발의 방향과 속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이단적이다. 인공지능이 미래의 살 길이라 믿는 여러 전문가는 “과연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에 짜증을 내거나 점잖게 논의를 회피한다.

  기술 발전이 당위가 되면, 그 외의 다른 문제는 사소한 것이 되거나 잊혀진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때문에 생긴 엄청난 에너지 수요는 지난 몇 년 동안 세계가 함께 해온 온실가스 저감의 노력을 부차적인 일로 만들어 버렸다. 비용이 들더라도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식으로 산업화와 개발을 추진하자는 합의는 인공지능 개발 경쟁 앞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또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사안을 연결짓는 논의가 드물기 때문에, 개인의 차원에서는 인공지능과 환경보호 사이의 모순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환경을 생각해서 분리수거를 하고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며 물을 아끼려 노력하지만, 인공지능을 이용해 ‘지브리풍 그림’을 만들 때 소비되는 에너지와 물의 문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전기조차 확보하지 못한 사람이 많은데, 인공지능을 재미로 사용하기 위해 엄청난 자원을 사용하는 미래를 과연 정당화할 수 있을까?


4. 기술발전에 대한 과학적인 사고

  인공지능의 개발과 사용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필요한 것은 이 기술이 누구에게 어떤 유익을 얼마만큼 주는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그에 따른 전략이다. 이 글에서 주로 다룬 에너지 문제는 인공지능의 개발과 사용을 둘러싼 여러 이슈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고용과 노동, 국가 자원의 분배, 경제적 양극화, 지적 양극화, 기술 종속, 정치적 편향의 문제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지만 미뤄진 사안이 많다. 그런데도 작금의 인공지능 열풍은 극심한 세계 경쟁에서 일등을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다는 정신 승리에 바탕한 듯하다. 그러나 좌고우면하면 경쟁에서 지고, 경쟁에서 지면 다 죽기 때문에 다른 문제는 모두 사소하다는 식의 극단적 사고는 별로 과학적이지 않다.

  인공지능 개발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려면 과학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먼저 계산 가능한 것은 계산해야 한다. 빅테크 기업이 자신들의 전력 사용량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 것은 점잖게 말하면 부도덕하고 정확하게는 범죄적 갑질이다. 세계 각국의 정부는 인공지능으로 인한 전력수요와 공급의 문제를 면밀하고 솔직하게 파악하여 대책을 수립할 책임이 있다. 기업과 연구자 역시 국가 지원의 부족을 불평하고 규제철폐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개발이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유익으로 이어질 것인지 제시해야 한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어떤 일과 영역에서, 어떤 용도와 방법으로, 어떤 인공지능을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브리풍’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에게 “고마워”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전력 소모가 생긴다면, 인공지능의 사용을 꼭 필요한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 나아가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인공지능의 개발과 사용이 빅테크 기업의 정치적·경제적 지배력을 높이고 양극화를 심화하는 것으로 이어지는지 감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여기에 더해 이런 기술이 과연 ‘모든 민족과 족속’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적어도 에너지의 영역에서는, 인공지능은 극단적인 양극화의 길을 열고 있다.

  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대학에 필요한 추가 전기를 뚝딱 제공해 주지 못하는 것일까. 전기를 추가 공급하려면 전력망을 증설해야 하고, 누군가에게 가던 전기를 공급하지 못하거나 추가 발전을 해야 한다. 누군가의 머리 위로 고압선이 더 지나가야 하고, 어떤 마을은 방사능 유출의 위험에 노출되어야 한다. 그래서 설득과 보상의 절차가 있고,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것이다. 그 시간과 노력에 인공지능의 개발을 맞추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기술 개발을 우선하여 얻은 유익이 있지만, 희생도 있었다. 인공지능 같은 첨단기술은 그 유익과 희생을 모두 극대화할 것인데, 불행하게도 현재의 접근 방식으로는 유익의 수혜자는 적고 희생자는 많을 공산이 크다.

  대책 없는 전진보다 계산에 따른 멈춤이 더 과학적일 수 있다.


1) “ChatGPT, 예상보다 적은 전력 소비… AI 에너지 효율성 논란 계속”, 《데브타임즈》 2025.2.12.

https://www.devtimes.co.kr/news/329822 (2025.6.23.확인)

2) 유재국, “AI 혁명에 부응한 선제적 전력공급ㆍ전력망 확충 긴요”, 《이슈와 논점》, 2024.5.21., 국회입법조사처. https://www.nars.go.kr/report/view.do?cmsCode=CM0018&brdSeq=44746

3) 박정훈, “연구 시간 나눠쓰기까지… AI發 전력난 허덕이는 대학들”, 《조선일보》 2025.6.10.

https://url.kr/w32x1o (2025.6.23.확인); 안정훈, “전력난에…서울대 첨단 AI연구 멈췄다”, 《한경》 2025.5.11. https://url.kr/sd7f4t (2025.6.23.확인)

4) 조성호, “물 한 컵 마셔야 질문 6개 답하는 챗GPT… AI가 지구 갈증 부른다” 《조선일보》 2025.4.6.

https://url.kr/xx4tcy (2025.6.23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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