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흥미롭다 느낀 이야기를 떠올려 볼까요. 그것이 읽은 것이든, 본 것이든, 누군가에게서 들은 것이든 말이에요. 저도 눈을 감고 한번 떠올려 보려 했습니다만, 세상에나! 머릿속에 정리할 것투성이네요. 무언가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너무도 많은 정보를 먼저 청소해 주어야 해요. 그리고 그게 무엇이었더라, 하고 깨끗해진 선반 위에 ‘최근 가장’인 것을 다시금 떠올리려 하면… 이미 늦었습니다. 다른 업무나 일상 속 다음 루틴으로 넘어가야 할 때가 되고 말죠. 흥미로웠을 이야기를 떠올리는 순간은 지나고 다음을 기약해야 합니다. 무책임하고도 또 다른 여지를 담은 ‘다음’이란 알 수 없는 그 무엇에게로.

바로 이야기를 떠올리지 못한 분을 위해 이번 레터에서는  《쿨라 링: 이야기 군도》 속 작가가 직접 코멘트한 작품 소개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 이야기에 오랫동안 귀 기울이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놓은 온 민정화 작가의 이야기도요. 지난 추분에  《쿨라 링: 이야기 군도》 오프닝 리셉션을 가지며 우리는 전시를 기획하고, 참여 작가의 이야기에 마음 모으며, 하나의 공간에 담는 과정에서 함께 한 이들이 서로를 환기하고 호혜하는 순간을 여럿 마주했습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인 듯하지만 내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 타래가 만들어지는 것을 경험했지요. 그 마법과도 같은 그 순간이 지금 이 편지를 읽는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전해지길 바라며.

✉️ 전시  《쿨라 링: 이야기 군도》 작품 이야기
디자인. 모조산업(도한결)

다큐멘터리 장면 하나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도나 해러웨이가 시종일관 호쾌한 목소리로 지구에서 계속해서 살아 나가기 위해서는 함께 짓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지구생존가이드”다. 예쁜 나바호족 바구니를 손에 든 미국인 도나 해러웨이는 자신이 이 사물을 차지한 것은 약간 부끄러운 일이라 말한다. 바구니에 담긴 역사 전체를 물려받지 않고 바구니만을 손에 넣은 정복자의 딸이므로. 이 이야기에서 바구니는 아메리카 이주민과 원주민의 관계에서 발생한 침략의 상징이자, 탄생의 이야기를 상실한 사물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물과 관계 맺는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마치 사방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 미로에 빠진 것처럼, 사물의 소유를 통해 자신의 필요와 취향을 강화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강화하고, 사물은 탄생 이야기를 잃는다. 나르시시스트들과 망각에 빠진 사물들이라니. 오. 모두가 외로운 세상.

《쿨라 링: 이야기 군도》는 거울 미로에서 빠져나와 세계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여정이다. 팩토리2와 오랜 시간 관계를 이어온 작가들과 두 명의 기획자, 팩토리 2의 사람들이 모여 실뜨기 놀이하듯 턴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면서 전시를 꾸렸다. 따로 또 같이 모여 숱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작가들에게서 몇 가지 공통적인 모티프가 드러났다. 우연한 만남과 채집, 타자와의 접촉, 균형과 공존의 상태,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의 유희. 이 키워드들은 외로운 세상을 빠져나가는 새로운 이야기의 재료가 될 수 있을까?

('기획의 글' 중에서)

◌ 수소 suso  

어린 시절 한 계단을 여러 세대가 사용하는 오래된 집에 머물던 때 일이다. 계단 입구 문에는 “Fermez la porte, s'il vous plaît(문을 닫아주세요).”라는 흔히 보는 문구가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누군가의 무심함으로 문이 열려 문구는 빗물에 얼룩졌다. 그 문구는 종이 표면에서 떨어져 나와 공기 중에 사방으로 퍼져 거주자들의 기억으로 스며들어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오랫동안 얼룩은 문구를 본 자들에게는 충분한 역할을 하였고, 기억 없는 자들에겐 그저 얼룩일 뿐이었다. 이 경험은 현재까지 오래도록 내 작업의 중요한 내용과 형식이 되었다.

이미지 작업으로 내용을 만들고 결과는 관객 시간의 자율성에 두고자 했다. 작업의 내용은 주로 일상의 경험을 기억하며 다시 조합하고 분해하는 것이다. 재료는 백색의 종이와 종이를 투명하게 만드는 촛농, 그리고 연필이다. 백색의 역할은 얇은 종이의 한 면에 그렸을 때 창가에 비추어 보면 아침에는 역광으로 빛이 투과되어 회색으로 보이다가 저녁에 자연 빛이 사라지면 비로소 반짝이는 백색 이미지가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경험을 이분법적으로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촛농은 종이에 투명하게 스며들어 아침에는 빛이 투과되어 백색을 띠다가 밤이 되면 어둠을 먹은 듯 검정이 된다. 그리고 종이 뒷면에 연필로 기억된 또는 기억될 이미지를 그린다. 아침에 빛이 투과되면 반대 면 이미지와 결합하여 특정기억(souvenir)이 전체 기억(mémoire)이 된다. 이런 의도에서 나의 작업물은 창에 두는 것이 적합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상대적 시간’은 관람객이 빛에 따라 관람할 순간에 대한 것이다.

◌ 아사코 시로키 Asako Shiroki

<Follow Your Sun - On the midsummer day>(Video, 1h 8min 26sec, 2022)는 덴마크 아트 워크숍이 공동 진행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계기로 촬영한 것이다. 어느 한여름 낮, 나는 일 년 중 가장 높고 가장 긴 태양을 그림에 담고자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림자를 연필로 계속 따라가다 보니 빛의 속도와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겨울이 긴 스칸디나비아에 사는 사람들이 짧은 여름에 태양을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을 통해 태양의 존재와 스칸디나비아 고유의 환경이 그들의 관습, 문화, 개인의 정신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물리적으로 재현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유럽에 살면서 일상생활에서 항상 7시간 먼저 해가 뜨는 고국 일본의 시간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먼 곳에 있는 누군가를 상상한다. 이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시간과 공간을 추적하는 동시에 다른 장소에 있는 다른 존재를 상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 조성연 Seongyeon Jo

작업의 과정은 나에게 기쁨이자 조용한 싸움이다. 나는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놓은 흔적들과 교감하고 곧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시간들을 사진으로 담아낸다. 최근작 <우연한 때에 예기치 않았던>(2021) 시리즈는 그동안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시간들을 보내면서 느끼는 삶의 감정들을 시각화 한 것이다. 현재의 시간들이 만들어내는 불안과 불편함 사이의 미묘하고 불완전한 감정들이 나의 일상을 민감하게 바라보게 했고 주변의 별것 아니었던 풍경들과 별것 아닌 사물들을 조금 더 예민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예민하게 바라보던 나는 그것들을 매만지고 모으고 쌓으며 나의 불안한 감정들을 토닥토닥 다스렸다. 여기에는 평온함에 대한 기원과 점점 복잡하고 위태로워지는 세계 그리고 그 안에 취약한 존재들의 흔적들이 쌓여 있다.

나는 나의 삶 안에 우연하게 찾아오는 것들을 마음으로 맞아 교감하고 관찰과 이해 그리고 상상을 더해 사진 작업으로 고정한다. 나는 그동안 주로 정물사진 이라는 프레임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해 왔다. 설정된 공간 안에서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다소 닫힌 감각의 표현으로 보여 질 수 있으나 사진 프레임 속 세계를 만들기 위해 평범한 길을 걷다가 만나는 애매하고 불완전한 상태의 것들을 수집하고 새롭게 생성될 이미지를 상상한다. 또한 미미하고 시시해 보이는 것들, 쓸모를 다해 버려진 것들 곧 버려질 위기의 사물들에 돕고 싶은 마음이 더해져 서로 이질적인 사물들과의 조합을 실행하고 적당한 배경과 조명을 설치하여 다시 생명을 얻은 듯 생동감과 동시에 고요함이 공존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행위들은 보는 이들에게 그동안 익숙해져 있던 기억의 사슬을 끊어내고 새로운 시감각으로 다가와 감각의 환기를 일으키길 바래본다.

◌ 최해리 Haeri Choi

<그랜드 아무르 푸 Grand Amour Fou>는 19세기 프랑스 문학 사조에서 파생해 현대 영화의 컨셉에 이르기까지 '아무르 푸(Amour Fou)'라는 문화적 유희의 개념을 차용해 테이블 위의 정물들을 통해 보는 이의 위치와 보이는 대상들의 시선 사이의 관계를 강박적으로 질문하고 관찰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회화의 화면에는 눈이 오는 실외인지 실내인지 모를 경계가 흐릿한 상황에 놓인 큰 테이블 위로 정물들이 빼곡히 놓여 있다. 시간과 계절을 포함한 꽃과 과일, 글씨가 잘 안보이거나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편지, 아래로 미끄러지듯 정지된 테이블 천, 세잔의 회화에서 발췌한 구겨진 천, 다종의 기법으로 제작된 도자기들의 모습은 근대 미술사의 정물화(靜物畫, nature morte)의 계보들을 환기시킨다. 회화 안의 특정 도자기들의 일부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소장품에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아카이브 열망(Archive Fever)’의 징표들이기도 하다.

프랑스 작가 쥘 클라레티(Jules Claretie)의 문학 작품에서 처음 정의된 ‘아무르 푸(Amour fou)’는 애정의 강도 때문에 다소 통제할 수 없이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강렬한 사랑의 형태를 일컫는다. <그랜드 아무르 푸>(2022)는 서구 근대 미술 사조의 다양한 정물화 장르들을 재방문한 뒤 동서양 미술사에서의 차별된 시각성에 첨언하기 위해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예: 부감시俯瞰視)과 미묘하게 어긋난 테이블 지평선 등을 더해 보는 이의 위태로운 관점과 스스로를 사방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물인 테이블의 위계 관계를 재배치하며 주체적 시각성에 대한 입체성을 다루고자 하였다.


<엠브로이더리 툰 Embroidery toon #1, #2>은 물질(자수)+이미지(고딕 성당)+언어(윌리엄 블레이크 인용문)가 결합된 시리즈 형태의 콜라주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랜드 아무르 푸>(2022)의 제작 시기를 선행하거나 후행해 얻게 된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엠브로이더리 툰>은 <그랜드 아무르 푸>의 제작을 예고하는 실제물질(real material)과 작품을 추동하도록 돕는 타인에 의한 이미지와 언어라는 세 영역을 교차시키며 마치 고딕 성당의 문 안으로 인도하는 문지기 역할을 도맡는다.

작품은 2019년 일본의 골동품 시장에서 구입한 자수 조각, 현재가 아닌 프랑스 소도시의 고딕 양식의 성당을 찍은 사진 수비니어(souvenir: 여행지에서 사는 기념품),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총 2점의 시리즈 작업이다.

Embroidery toon _ William Blake 인용문
#1    Imagination is the real and eternal world of which this vegetable universe is but a faint shadow.
#2    The imagination is all one continuous version of this world.
◌ 허정은 Jeongeun Heo
길 위에 떨어진 어떤 조각을 줍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른 길 위에서 또 다른 조각을 줍는다. 그렇게 내게 온, 출처도 역사도 모습도 다른 조각들을 이어 제법 근사한 것을 만들게 되면, 나는 접붙이기에 성공한 농부의 마음이 되고, 이상한 문법으로 세상 멋진 시를 쓴 시인의 기분이 된다. 오직 우연에 의지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필연인 것처럼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버려진 나무 서랍 위에, 화집에서 오려 낸 인물들과 주워 모은 마른 식물들로 그렇게 연극의 장면들을 만들었다. 작은 미술품 콜라주를 모르는 언어로 쓰인 미학책 위에 얹어 두고 우연이 만든 새로운 의미를 상상한다. 출처도 역사도 모습도 다른 세상의 온갖 조각을 이어 또 무언가를 만들며, 이것은 새로운 맛이 나는 새로운 품종의 작물이라고, 새로운 멋이 있는 새로운 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이 이룬 장면은 관객을 만나 또 다른 새로운 맛, 새로운 멋의 이야기로 전개되리라는 믿음을 갖는다.
✉️  리뷰  빛 드로잉 _  《쿨라 링: 이야기 군도》 연계 워크숍

본 전시에는 참여 작가 두 분의 워크숍을 마련했습니다. 그 첫 시간으로 수소 작가의 <빛 드로잉>이 지난 9월 23일 열렸습니다. 작가님이 준비한 재료는 앞뒤의 질감이 다른 하얀 종이(식품지), 연필, 풀, 자, 가위, 그리고 동그란 노루지 스티커와같이 그리 특별한 게 없어 보이는 것이었음에도, 작업 중간 과정에서 각자의 작업을 창가로 가져와 빛이 투과한 모습에 ‘와아….!’하며 마치 고요한 음악처럼 연속해 나오는 감탄사는 저마다의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았을 겁니다. 어두운 밤을 지나 달빛이 투과하며 보일 또 다른 모습을 상상하며, 참여자들은 저마다의 드로잉을 품에 안고 자리를 떠났지요.

작가님에게 이번 워크숍이 특히 의미 있었던 것은, 참여자들이 던진 질문들이 작가님이 오랜 시간 고민했던 것과 신기하리만치 비슷했고, 빛에 작업을 비추어 보는 순간 작가님이 과거 감탄하고 놀랐던 자신만의 그 ‘첫 순간’을 그들도 포착하는 듯해 모종의 공감대를 이루어서 이러한 부분이 매우 뭉클했다고 합니다. 이 자리를 마련한 이와 참여한 이 모두에게 선물과도 같았던 <빛 드로잉>은 정량적으로 셈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와 궤를 같이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  프리뷰  이야기 콜라주 《쿨라 링: 이야기 군도》 연계 워크숍

개인의 서사를 이루는 주변의 맥락을 다양한 방향으로 실뜨기하듯 연결해 본 전시 《쿨라 링: 이야기 군도 Kula Ring: Archipelago of Stories》는 예술의 궁극적인 힘이 다양한 상상을 끌어내는 이야기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작은 이야기를 구축하는 데는 열린 서사성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국내외 작가 다섯 분, 수소, 아사코 시로키, 조성연, 최해리, 허정은을 초대했습니다. 전시에 참여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허정은 작가님의 연계 워크숍 〈이야기 콜라주〉를 준비했습니다.

이야기 콜라주

이미지 조각과 텍스트 조각을 재료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콜라주 워크숍. 우리는 모여 앉아 어떤 구상의 단계도, 특별한 의도도 없이 즐겁게 가위질할 것입니다. 다만 우연이 만들어 주는 이야기를 내가 포착할 수 있어요. 콜라주는 그런 방식으로 의외의 시를 선사하고, 유머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작은 콜라주 책을 완성한 다음, 어쩌면 우스꽝스럽고 제법 전위적일 서로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봅니다. 


"허정은은 이미지와 사물을 콜라주해 이야기를 짓는다. 작가의 작업실은 만물의 요람이다. 화집에서 발견한 그림들, 산책 중에 발견한 마른 식물들, 낡고 미스테리한 사물과 부품들이 그녀의 작업실로 모인다. 수술대 위의 재봉틀과 우산처럼, 작가의 테이블 위에 오른 사물들은 알 수 없는 조합으로 결합된 입체 콜라주가 되어 전시 공간으로 출현한다. 한편, 작가가 길에서 발견한 버려진 나무 서랍, 어느 날 지인에게서 얻은 헤겔 미학원서는 근사한 이야기의 무대가 된다. 서랍을 연극 무대 삼고 미학 원서의 낱장을 지면 삼아 펼치는 작가의 이미지 콜라주는 관객에게 무한하게 증식하는 이야기의 재료가 된다." (전시 소개글 중)

워크숍 개요

워크숍명 이야기 콜라주
진행 허정은
일시 2023.10.20 (금) 15:00-17:30 (소요시간 약 150분)
장소 팩토리2 2층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15)

* 본 워크숍은 신청이 마감되었습니다.

✉️  팩토리 친구들  우아름 객원 큐레이터
미술의 자장 안에서 글 쓰고 연구하며 일합니다. 미술 비평도 문학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비평과 창작의 경계에서 작가와 작업의 조형 언어를 찾아주는 글을 씁니다. 선순환하는 창작 생태계 설계에 관한 관심으로 미술 잡지사, 극장, 레지던시, 기업의 혁신센터 등 다수의 기관에서 일했고, 미디어리터러시에 관한 전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기후 위기 시대에 미래의 뉴노멀을 제안하는 〈뉴보통 프로젝트〉를 즐겁게 기획했어요. 현재는 작업실 보라보라에서 프리랜서로 글과 말을 사용해 일합니다. 관심사는 지면 위 큐레토리얼, 스스로 부여한 역할은 편집자. 최근의 편저에 『밤이 낮으로 변할 때』(2020), 『Yangachi Says』(2020), 2022 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워크숍 기록집 『우리가 되는 방법들』(2022), 『아카이브의 영토들』(출간 예정)이 있습니다.
✉️  전시  움직이는 마음들: 머무는 시간

2022년 <움직이는 마음들>로 팩토리2에서 선반 위 여러 모습과 이야기의 마음을 전했던 민정화 작가의 작품이 현재 강북삼성병원에서 다양한 매체로 새롭게 전시 중입니다. 

이번 <움직이는 마음들: 머무는 시간>은 작가 내면에 존재하지만 잊었거나, 숨겨져 있거나, 혹은 스스로 방치해 놓았던 마음들을 수집하고 기록한 연작입니다. 열두 가지 마음의 이야기들은 2022년과 이듬해 각각 한국어와 독일어 각기 동명의 책으로 출간된 바 있으며, 아직 다 이름 붙이지 못한 마음들을 포함해 이 ‘움직이는 마음들’ 시리즈는 서울의 팩토리2(2022년)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이후 베를린의 아인부흐 하우스(2023년)를 거쳐 강북삼성병원에 다다랐습니다.

사진. 김다인
본 연작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운 그림으로 제작한 것은 물론, 애니메이터 한윤지와의 협업으로 기존의 페인팅 기법을 너머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매체로도 선보입니다. 또한 프린팅 에이전시 SAA(Screen Art Agency)와의 협업을 거쳐 흙을 안료로 하여 제작한 실크스크린 프린트 에디션을 통해 하나의 마음에 담긴 다양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움직이는 마음들: 머무는 시간>을 통해 다양한 매체를 거쳐 전하는 민정화 작가의 '마음들'이 작품을 마주하는 관객 여러분의 내면과 조용하게 나누는 대화에 귀 기울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다음 레터에서는 시월 중 공개 예정인 민정화 작가와의 영상 인터뷰(촬영. 김다움)에서 또 한번 작가의 작품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마련할 예정입니다.
사진. 김다인

민정화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일러스트레이터 민정화는 회화, 그림책, 프린팅 그리고 도자기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작업합니다. 2006년부터 독일에 기반을 둔 작가는 베를린에서 가까운 시골 동네에 살며 작업하고 서울에 오가며 활동합니다. 가내 수공업 형태의 리소 인쇄로 만들어온 그림책과 프린팅을 주로 작업하던 작가는 2018년부터 <관상식물> 회화 시리즈로 베를린과 서울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2020년부터 회화, 그림책, 도자기 오브제들로 작업해 온 <움직이는 마음들>로 서울의 팩토리2(2022년), 베를린의 아인부흐하우스(2023년)에서 전시를 열었습니다.

전시 개요

전시명  움직이는 마음들: 머무는 시간

작가  민정화

장소  강북삼성병원 C관 1층, 3층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기간  2023. 10. 05.(목) -10. 30.(월)

관람 시간  월-토요일, 8:00-18:00 (일요일 휴무)

기획  팩토리2 (factory2

진행  김다은, 김다인, 김보경, 김채리

그래픽 디자인  프론트도어

설치도움  손정민

주최  팩토리2 (factory2)

후원 예술경영지원센터, 강북삼성병원

손을 내밀어보세요. 갓 뽑아 마치 방금 감은 머리카락처럼 하늘거리는 향모 한 다발을 올려드릴게요. 윗부분은 황금빛 감도는 반짝거리는 초록이고, 땅과 만나는 줄기는 자주색과 흰색 띠를 둘렀어요. 향모다발을 코에 대보세요. 강물과 검은 흙의 내음에 얹힌 꿀 바른 바닐라향을 맡아보세요. 그러면 향모의 학명이 왜 Hierochloe odorata(향기롭고 성스러운 풀)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저희 말로는 윙가슈크 wiingaashk 라고해요. 감미로운 향기가 나는 어머니 대지님의 머리카락이라는 뜻이에요. 향모에 코를 대고 숨을 들이마시면, 잊은 줄도 몰랐던 것들이 기억나기 시작하죠.” (<향모를 땋으며>, 로빈 월 키머러, 10쪽 중에서)


팩토리2에서의  《쿨라 링: 이야기 군도》와 강북삼성병원에서 한창 진행 중인 《움직이는 마음들: 머무는 시간》 전시는 각각 10월 29일과 30일까지 열려 있습니다. 짧지 않은 이번 레터를 끝까지 읽은 시간이, 혹은 전시장에서 직접 작품을 마주했던 순간이 여러분에게 향모의 향을 맡은 것과 같은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기획 팩토리2, 우아름, 이경희
진행 김다은, 김다인, 김보경, 김채리
디자인 김보경
에디터 뫄리아
디렉터 홍보라 
팩토리2 드림
팩토리2
factory2.seoul@gmail.com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15 02-733-4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