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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다시, 시작

사람들은 매년 새해가 되면 새로 태어나는 것 같다. 다시,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내년도의 다이어리를 사고, 올해 미뤄두었던 목표 같은 것을 끄적여본다. 그리고 남은 올해는 그냥 지금 그대로 살기로 한다. 새해가 되면 다시 태어나 모든 게 달라질 것처럼 말이다.


다이어리를 사는 그 순간만큼은 꽤 설렘 가득한 순간이다. 문구전문점이나 잡화점, 혹은 서점에 가서 다이어리의 디자인을 보고 1년을 함께할 동반자인 다이어리를 심혈을 기울여 고른다. 작년과 같이 꽃무늬를 고를까, 올해는 심플하게 갈까, 귀여운 캐릭터 다이어리를 고를까. 다이어리를 고르는 것은 새해를 맞이하는 연례행사였다. 디지털로 다이어리를 써볼까도 싶었지만, 적응에 실패하고 이내 다시 종이 다이어리로 돌아왔다. 이후 다이어리만큼은 종이로 된 것을 사용하고 있다.


내가 지난 5년간 살았던 도쿄는 문구의 천국이다. 로프트나 핸즈에 가면 무궁무진하게 다이어리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약간의 돈을 주고 새로운 1년을 산다니,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9월이 되면 새로운 다이어리가 나오곤 했다. 해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조금 더 빨리 내년을 시작하고 싶을 때면 9월 시작 다이어리를 샀고, 내년이 다가오는 기대감을 좀 더 미루고 싶을 땐 12월 시작 다이어리를 샀다. 그렇게 나는 매년 다이어리를 사며 ‘다시’ 시작할 권리를 얻었다.


올해는 작년 도쿄 출장 시 샀던 호보니치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3년째 호보니치 다이어리를 쓰고 있는데 내년에도 같은 다이어리를 살 지 새로운 다이어리를 살 지 고민 중에 있다. 호보니치 다이어리에 벌써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표지는 바뀌었지만 3년간 같은 레이아웃의 다이어리를 쓰다 보니 ‘다시’ 시작하려면 좀 더 차별화가 필요해 보인다. ‘다시’ 제대로 시작하려면 내년에는 호보니치가 아닌 다른 다이어리를 사야 할까?


매년 다이어리를 사면 으레 내년에 하고 싶은 리스트 100가지 같은 리스트를 ‘다시’ 작성하곤 한다. 그중 매년 반드시 ‘다시’ 세우는 목표는 ‘영어공부’다. 2025년도, 2026년의 목표 중 하나도 영어공부였다. 2007년에 쓴 VISION 2010 같은 것에도 늘 영어는 포함되어 있었다. 언젠가부터 영어는 나의 평생 숙제가 되었다.


학창 시절 친구이자 도쿄에 살면서 다시 자주 만나게 된 민아와도 영어공부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우리는 함께 다시 영어공부를 해 보자고 독려했다. 친구의 응원에도, 나는 영어를 꾸준히 하지 못했다. 결국 영어는 내게 어째서인지 늘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작년 생일 때 호기롭게 3달 안에 완독 하겠다고 마음먹고 산 ‘총, 균, 쇠’가 늘 서문에서 도돌이표 되는 것처럼, 영어도 늘 ‘다시’ 시작했다.


매년 연말이 되어 새로 다이어리를 살 때면 늘 이렇게 마음먹고는 한다. 올해는 매일매일 일기를 써야지. 그리고 다짐한 목표를 다 이뤄야지. 그러나 오늘도 일기와 올 초 다짐한 목표는 유튜브에 밀리고, 쓰레드에 밀리고, 인스타에 밀리고 만다. 언제쯤 되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으려나.


벌써 10월이다. 얼마 전에는 오늘부터 시작하면 12월 31일까지 100일간 루틴을 만들 수 있어요! 같은 릴스를 SNS에서 보곤 했다. 이젠 그 100일조차 지나버렸다. 아, 정말로 이제 연말이 다가오는구나.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을 지나 겨울을 향해 가고 있다. 내년에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아직 2027년도에 쓸 다이어리를 사지 않았다. 아직 내년을 멋지게 다시 시작할 기회가 남아있는 셈이다. 매년 루틴처럼 반복되는 다이어리 쇼핑과 다시 시작하는 영어. 이대로 있다간 올해의 리스트가 내년으로 이월될 참이다. 어느덧 연말이 다가와 내년의 다이어리를 고민하는 시간이 왔지만 사실 남은 2026년의 호보니치 다이어리를 펼치고 영어 공부는 언제든 ‘다시’할 수 있는데 말이다.


한 해를 마무리할 때, 새 학기가 시작될 때, 새로운 환경에 놓여질 때와 같은 특별한 시즌은 무언가 ‘다시’ 시작하기 참 좋은 때다. 사실 사람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시즌은 늘 특별하다. 그런 의미에서 연말연시가 다가오는 지금은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기 좋은 시기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를 잘 보내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해. 오늘 할 수 있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2027년 다이어리를 사러 가야겠다. 어쩐지 느낌에 무언가 ‘다시‘ 반복되는 것 같지만.

글. 하영 @ddolyoung
시즌 6 첫 번째 주제: 다시
다함께글쓰계에서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주제는 ‘다시’입니다. 한동안 글쓰계 멤버들이 '다시'에 대해서 쓴 글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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