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선 2호 (2026.6월호)

이 감정에 무슨 이름을 붙일까?   

 

 

오늘 뭐 하지?

6월의 어느 아침, 하루의 일정을 체크해 보았다. 세탁소에 들렀다 마트에 가 장을 보고 도서관에 가야 한다. 첫 번째 장소인 세탁소에 가기 위해 차에 탄다. 서울에 살 때는 주차 때문에 운전은 꿈도 꾸지 않았었는데, 신도시라 좋은 건 운전하는 재미. 가끔 벚꽃잎 날리는 아라뱃길 운전할 때,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혼자 욕도 한다.

 

첫 번째 장소인 세탁소에 갔다. 지난주 어떤 워크숍에 갔을 때 숙소에서 앉았다 일어났는데 바지의 엉덩이 부분 20cm 가량이 일직선으로 찢어졌던 것이다. 바지를 살피던 사장님이 한 마디 건넨다.

“많이 당황했겠어요.”

장보고 오면 작업해 놓으시겠다 했다. 얼마 전 생긴 마트에서 장을 봤다. 오픈 할인을 해서 모든 야채가 턱없이 싸다. 아보카도가 10개에 8천 원이다. 지난주 그림책 모임에서 만난 동네 친구가 선재 스님 책을 읽고 감명받아서 요리 짓는 프로그램을 열어보고 싶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나도 아보카도 요리를 검색하다가 닫는다. 언젠가는 꼭 도전해 보리라 다짐하면서, 요리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게 어디냐면서. 다시 세탁소에 갔다. 사장님은 어느새 깔끔하게 박음질해 놓으셨다.


“얼마예요?”

“그냥 가져가세요.“

“네?”

“그냥 가져가시라고요.”

“왜요?”

“...... 그냥 가져가세요.”

“....... 그럼 자주 올게요, 사장님. 감사합니다.”

어리둥절한 채 차를 타고 도서관에 간다. 새로 생긴 도서관의 서가에서는 아직 나무 냄새가 난다. 나무 냄새를 맡으며 나는 책을 고른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까부터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계속 나를 붙들고 있다.

 

이 이상한 마음의 정체는 뭐지?

 

나는 인천에 오기 전 살던 성북동을 출생지 다음의 제2의 고향이라 여겼다. 내가 성북동을 고향처럼 느끼는 이유는, 성북동에서 많은 분들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마을활동을 하며 알게 된 카페, 부동산, 공방 사장님, 그리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언니, 동생들이 생기면서, 1킬로미터의 거리를 걷는데 보통 대여섯 명의 지인을 만나 안부를 묻곤 했다. 그분들을 만나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거나 맛있는 밥을 얻어먹거나 같이 뭔가를 만들고 돌아오는 길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기분이 좋지? 이런 게 이웃이란 건가? 정이란 건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느낀 마음의 정체는 ‘안정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사람들과 함께 동네에서 살아 간다는 안도. 그런데 내가 세탁소 아저씨의 덤을 선물로 받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그 '안도감'을 느껴버렸다! 굳이 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내가 연고 하나 없이 낯선 이 동네에 음료수 사갈 사람이 생겼구나.

 

책도 서가도 새것인 도서관에서 널찍한 창 아래 책을 볼 수 있고, 거기서 읽은 책 이야기를 나눌 카페 사장님이 있고, 그 카페에 가면 같이 이야기 나눌 이웃이 적어도 한 명은 있고, 그리고 음료수 사드릴 세탁소 사장님이 있고, 아직은 어색하긴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만나 작업 이야기를 나눌 창작자 친구들도 있다.

 

이런 감각이 내게 생각 못 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갑자기 내가 가졌던 낯선 동네에서의 고립감, 외로움에 아주 작은 균열이 난 느낌. 이 감정의 정체는 또 뭘까. 이 감정에 무슨 이름을 붙여야 할까. 안심? 충족? 충만? 하여튼 나는 당분간 이 감정을 누리고 싶다.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아서, 조금은 더 붙잡아 두고 싶어서, 일단은 뉴스레터에 기록해둔다*

 


늙은 신도시에서   

김소소


동생의 사원 아파트는 검단에 있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자취하던 서울 집에서 동생의 아파트가 있는 검단을 자주 오가며 지냈는데, 올해 결혼해서 신혼집을 검단에 마련하면서부터 이제는 진짜 검단 사람이 되었다.


신도시 쪽은 이제 막 생긴 아파트들과 상가들이 즐비해 편리하고, 외형적으로 멋지고, 쾌적하다. 그렇지만 어쩐지 그 새 건물들이 하늘 높이 솟아있는 느낌이 어색하고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반짝반짝 빛나는 신도시 옆에는 약 20여 년 전 먼저 개발된 원도심이 있다. 검단 신도시가 2,30년 쯤 지나면 딱 이런 모습일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늙은, 오래된 신도시다. 다들 비슷한 시기에 지어져 비슷하게 나이 든 건물들이 있다.


하지만 늙었다는 게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이미 수많은 가게들이 이 구도심에서 흥망성쇠를 겪었기 때문에 오래된, 그러니까 그 세월을 겪고 살아남은 식당들은 맛집 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또, 오래된 세탁소, 수선집, 네일숍, 미용실들도 각자 단골들이 없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겠지. 정돈된 느낌의 화려한 신도시와 늙었지만 정겨운 구도심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동네, 검단.


나는 검단에 살며, 검단 이야기들을 검단에 살고 있는 예술가들과 함께 나누고자 공중선에 합류했다. 지금까지는 혼자서 작업한 기간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도모하는 건 내게 익숙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네트워크 모임들을 통해 ‘모이는 것’의 즐거움을 점점 깨달아가고 있다. 각자 다른 분야에서 배우로서 연기를 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작업 방식, 작업물에 얽힌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자리는 흔치않아 이 네트워크 모임이 더 귀하다.

 

앞으로는 검단에 있는 곳곳을 탐방하고 연구하며 무언가 재미난 것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 결과물이 소설이 될지, 시나리오가 될지, 에세이가 될지 알 수 없지만, 현재 검단에 살고 있는 주민들부터 시작해, 검단의 유서 깊은 장소들, 검단 내의 소외된 공간들에서 새로운 작업의 영감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리서치를 하면서 느꼈던 것들, 알게 된 소소한 것들을 네트워크 모임에서, 이 뉴스레터에서 함께 나누려고 한다. 어쩐지 재미난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아 기대 중!*

우리동네 야시장
아파트 안 볼거리가 된 야시장  

도움을 주는 사람

공중선 두 번째 네트워크 모임 후기

 


장면 하나.

두 번째 모임에서 미지의 인물을 초대했다. 멕시코에서 3년 살다가 귀국한 작가였다.(이하 ‘O작가’) O작가는 멕시코 살이의 즐거움과 고단함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무엇보다 스페인어를 구사할수 있을때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하여 들려 주었다.


(왜 아직도 그 이야기가 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 오래 전 대학에서 글쓰기 수업을 받을 때, 유명 감독이던 모교수님이 한 말이 있다. 유럽에서 태어난 사람은 인물을 만들 때 국경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테면, 프랑스 출신이어도 폴란드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든다. 그만큼 유럽인은 국경을 초월하여 상상을 한다. 반면 한국사람은 한반도 위에서만 인물을 창조한다. 죽으나 사나 한국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든다. 창작하는 한국 학생들에게 그 점이 아쉽다고.


이번에 O작가님을 만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한국을 벗어나 스페인어를 쓰는 미지의 섬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을 주인공으로 작품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아마도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에 푹 빠져 K팝에 입문했을 것이고, 줌을 통해 한국어 수업을 받을 것이다. 한국어 선생님과 사랑에 빠져 서울에 오지만 비자 문제로 곤란을 겪고, 그 고난을 끝내 이겨낸 뒤 자신의 나라에 가서 한국어로 낭만시를 쓰는 최초의 섬나라 외국인이 된다.

 


장면 둘.

네트워크 모임에 두 번째 참석한 이들끼리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했다. 우리 모임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에게 초대장을 쓰는 활동이었다.

 

  • A는 노산을 앞둔 임산부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마흔이 넘어 출산을 준비하고 있는 그녀는 출산을 앞두고 가지게 된 자신의 고민을 덤덤히 적어 주었다.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을 만나 위로하고 연대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 B는 멕시코에서 왔다. 그는 인천이라는 도시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했다. 인천이 서구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지역일 것이기에,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양식집 사장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 C는 검단에서 함께 이야기 나눌 예술가들을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아직 우리가 준비하는 모임이 소소하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빛나는 지점을 감지한 것 같았다.

 

  • D는 검단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인으로서, 새로 당선된 검단구청장님에게 안정적인 창작환경조성에 대하여 제안하는 초청장이었다. 검단구청장님도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리라 믿는다.

 

  • E는 검단사거리 근처에 있는 네팔/인도 식당 사장님을 초대했다. 언젠가 네팔에 자원봉사활동을 갔을 때 네팔 사람들에게 받았던 환대를 돌려주고 싶다는 말을 썼다.
  

완성한 초대장을 읽으니, ‘초대할 사람’보다, ‘초대하는 사람’이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깨알 같은 글자들을 보며, 여기 모인 우리들을 더 읽고 싶어졌다.

 

 

장면 셋.

우리는 지금 도서관에서 진행할 장애인 대상의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한 분이, 수업을 하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은 뒤에서 서로 봐주자는 제안을 했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 주자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 서로의 쓸모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알아서 서로를 살피고, 돌아보고,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 되자. 앗, 이건 낯선 관계 설정인데. 두 번째 모임에서 만나게 된 강력한 문장. 주문처럼 다시 중얼거려본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

서점을 하는 그 상태

청라 '서점 안착' 김미정 대표 인터뷰



공중선의 첫번째 인터뷰는 오랜 기간 청라지역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던 <서점 안착>의 대표님으로 정했다. 대표님은 동네 언니처럼 다정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 이야기를 듣느라 서원안길 빵을 조금밖에 먹지 못했지만, 그럼 좀 어떤가. 부풀어 오른 빵처럼 마음이 한껏 부풀어오르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중략)


서점을 시작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글을 쓰던 사람도 아니고, 출판사 경력도 없을뿐더러 사서 일을 해본 적도 없잖아요. 그저 이런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죠. 그럼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을 시작해 보자 했죠. 

아는 게 없으니 무작정 용산의 유명한 책방 '스토리지 북앤필름' 대표님이 진행하는 두시간짜리 서점 워크숍을 들으러 성수동까지 찾아갔어요. 끝나고 일대일 무료 상담소까지 신청해서 조언을 들었죠. 그때 얻은 확신은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찾아오게 만들면 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우선 무조건 예쁜 공간을 만들기로 했죠. 그래야 사람들이 찾아오니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 있었는데, "서점으로는 돈을 못 번다"는 걸 아예 100% 인정하고 기대 없이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코로나를 뚫고 계속 이어 오신 거잖아요. 그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러니까 그게 조금 웃긴 이야긴데, 그냥 '내가 서점을 하는 그 상태'가 너무 좋았어요. 말로 설명하기 힘든데, 어떻게 보면 허황되어 보이는 말일 수도 있는데,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서점 안으로는 흔히 말하는 '진상 손님'이 단 한 명도 안 들어옵니다. 책이라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진상 손님들은 못 넘어오더라고요 :)


정말요?


진짜 한명도 만나보지 못했어요.......

공중선
space.gjs@gmail.com
수신거부

😀 이 뉴스레터는 인천광역시·인천문화재단 「2026 인천형 문화예술교육 거점 지원」 사업과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