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간호사로 10년 넘게 일하고 계시는 분께 치매환자 어르신들이 어떤 활동을 좋아하시는지 여쭤봤습니다. 망설임 없이 어르신들은 오래전부터 해오던 '간단한 소일거리'를 좋아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몸을 움직이는 레크레이션 활동도 좋지만 수건 접기나 풀 뽑기, 야채 다듬기 등 간단한 일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에 행복감을 느끼신다고 합니다.

보통 우리는 연로한 어르신들을 보면 "쉬세요"라고 말하지만 어르신들은 사실 "함께해요"라는 말을 더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에이지랩 자문에 참여한 어르신 중에는 장기간 자산을 모아 형편이 여유 있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 조차도 한 달에 몇 만원 주는 소정의 일거리에 참여하는 것으로도 큰 만족감을 표하셨습니다. "무엇이든 일을 하니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저희가 만난 어르신들의 공통점이었습니다.

소속감, 참여, 인정에 대한 욕구는 나이가 들어도 살아지지 않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에이지랩 자문단 인터뷰에서 내적 갈망과 관련된 부분을 공유해 드리고 자 합니다. 아래 내용은 <시니어>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글 
김병수 미션잇 대표
강성혜 미션잇 리서쳐
인터뷰
미션잇 에이지랩 자문단
나이에 따른 고정관념
© joyce huis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 능력이 저하되고 삶의 활력이 떨어져 외출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고정관념이다. 그러나 실제로 인터뷰한 많은 어르신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활발하고 즐거운 삶을 살고자 희망했고, 사회의 여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콜럼 로우는 65세 이상의 사람들 중 4분의 3은 심각한 장애나 신체적 손상이 전혀 없으며, 삶을 즐기고, 손자를 보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고연령 세대를 나이가 아닌 라이프스타일로 구분해야 하는 이유이다.

“요즘 사회에서 ‘당신 정도 나이 되면 이런 게 다 불편하지 않아?’라고 미루어 짐작하는 부분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재교육 시장은 자기 전문 분야에서 여러 가지 작업을 하다가 은퇴한 사람들이라든지, 경력을 바탕으로 또 다른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제2의 삶을 설계하고 개척할 수 있다면 나이에 따른 구분은 불필요하다는 거죠.”
- 신충식 님 (60대)
“면접하러 갔는데 손사래를 치면서 그 나이에 이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제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나이 들어 보이는구나 싶었죠. 그 편견을 깨기 위해서 어디 가도 ‘30대, 40대에도 안 뒤집니다’ 큰소리는 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구나 느꼈습니다.”
- 신용도 님 (60대)
“지금 마라톤을 뛴지 한 25년 됐습니다. 우리 고등학교 동창 600명 중에 이렇게 뛰는 사람은 저 한 명입니다. 달리기한다고 하면 후배들이 ‘아직도 뛰어요?’라고 물어요. 친구들 중에 병원 가는 애들이 더 많으니까요.”
- 김영덕 님 (70대)

소속과 참여, 인정에 대한 욕구

© Alexander Fife

소속감이란 내가 어느 집단에 속해 있고 그곳에 내 자리가 있다는 느낌, 믿음, 기대를 말하며, 집단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는 의지까지도 포함된다. 고령자는 은퇴 후 소속되었던 직장을 떠나면서 사회관계망이 축소되고 결과적으로 소속감이 저하되는 시점을 마주하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고령자가 사회적 소속감이 낮아질수록 우울감과 자살 생각을 경험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특히 은퇴 후 내가 더 이상 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우울감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자아실현의 욕구는 인간의 기본 욕구이며, 나이가 든다고 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고령자가 은퇴 후에도 사회 참여를 활발하게 이어가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방안이 필요한 이유다.

“나이 든 당신들이 뭘 알아’ 이런 분위기가 아니라 어딘가에 소속돼서 활동도 할 수 있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죠. 그래야만 내가 보내는 ‘오늘의 삶은 참 즐겁다’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 이정연 님 (70대)
“문턱이 낮아져야 해요. 노인들에게도 동기를 유발하고, 자꾸 나가서 어딘가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줘야죠. 사회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과도 섞이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말이에요.”
- 박선덕 님 (70대)
“은퇴했지만 지금도 고등학교 동문회, 지역 동문회 회장도 하고 있어요. 대학교 동문회와 마라톤 동호회도 참가합니다. 함께 회사 생활했던 사람들, 후배들도 지금 계속 만나고 있습니다. 카톡으로 계속 소식을 전하고 옛날하고 똑같이 모여서 한 잔 하고요. 그래서 저는 낮보다 밤에 바쁩니다. 이런 모임이 없으면 갈 데도 없고, 부르는 사람도 없고 결국 잊혀집니다.”
- 김영덕 님 (70대)

끊임없는 일에 대한 욕구

© Dobrinoiu Denis

아프니까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아프니까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치매 어르신들이 요양 병원에서도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은 '일'이다. 빨래를 개고, 식물을 가꾸고 하는 등 오랜기간 익숙했던 일들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싱가포르 공과대학교 노인연구소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간단한 집안일 등의 규칙적인 신체 활동은 고령자의 타인 의존성을 낮춰 정신적 건강을 개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만성 질환과 낙상의 위험, 사망률까지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본 연구의 공동 저자인 시우량 박사Dr. Shiou-Liang Wee는 활동적으로 나이 드는 일은 레크리에이션 활동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집안일처럼 일상의 일부로서 수행하는 ‘목적 있는 활동’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지력이 있는 분들은 뭔가를 계속하고 싶어 해요. 일상 생활하면서 집에서 살림하듯이 말이죠. 저는 어르신들이 넘어질 수도 있지만 계속 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 한 분도 안 걷고 싶으신 분이 없어요. 모두 걷고, 활동하고 싶어 하시죠.”
- 조완순 님 (70대)
“아파도 일을 하면 안 아파요.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집에 혼자 가만히 누워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다가도 약속이 있어서 나가거나 어디 허드렛일이라도 도와주면 아프지 않더라고요. 어떤 일이라도 활동하는 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좋아요.”
- 박선복 님 (70대)
“서울시 안전 보안관 일을 하고 있어요. 동네에 보도블록 등 파손된 시설의 사진을 찍어서 몇 건 올리면 한 달에 3만 원 받아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보람되죠.”
- 김명숙 님 (60대)

사람이 그리워지는 시대

© Joshua Hoehne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통한 비대면 서비스는 효율성과 편의성 측면에서는 매력적이지만 때로는 사람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그리움을 유발한다. 표정, 목소리, 제스처 등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얻게 되는 이해와 공감, 친밀감은 로봇이나 기계와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성에 대한 그리움은 고연령 세대가 살아왔던 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편지로, 쪽지로 소통하고 서로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인간 형태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제조하는 핸슨 로보틱스Hanson Robotics의 창립자 데이비드 핸슨은 인공지능이 사람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려면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디지털 기술의 간편함과 접근성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감수성을 적절하게 접목한 서비스가 필요한 이유이다.

“사람이 그리워지는 시대예요. 호텔 서비스도 AI가 그릇을 치워주는 것보다 사람이 와서 인사하고 ‘맛있게 드셨어요?’ 하면서 그릇을 가져가는 것을 사람들이 훨씬 더 선호한다고 생각해요. 챗봇도 필요하지만, 사람이 직접 응대하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한재덕 님 (60대)
“저희 세대는 걸어서라도, 줄 서서 기다리더라도 은행에 가서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며 업무를 보고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런 향수가 남아 있죠. 고령자들이 잘 가는 병원도 의사 선생님이 주거니 받거니 쓸데없는 얘기도 들어주는 곳입니다. 디지털은 빠르고 편리하지만 아무래도 좀 차갑죠. 사람들과 얼굴을 대하던 때가 좀 더 그립기도 합니다.”
- 신용도 님 (60대)
MSV<시니어> 호 정식 출간 안내  
MSV 시니어 호가 정식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과, 인터뷰에 참여하신 어르신들의 지혜와 선견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MSV 시니어 호를 통해 사회 혁신을 꿈꾸는 분들에게 소중한 영감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미션잇은 신체, 감각, 인지 활동 지원이 필요한 사용자 누구나 더 안전하고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 포용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합니다.
MSV 임팩트레터 발행 안내

사회적 가치를 만나는 MSV 임팩트레터에서는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전달드립니다. 핵심적인 키워드는 ‘디자인의 사회적 가치’와 ‘포용적인 디자인’ 그리고 ‘접근성’ 입니다. 매주 1회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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