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배신
처음 에버노트(Evernote)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열광했다. 웹 클리퍼, 이메일 전송 등을 통해 세상의 모든 정보를 손쉽게 저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많은 이들은 깨닫는다. 그렇게 저장한 정보들조차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는 사실을.
인터넷의 시대 이후, 정보는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미 저장해 둔 자료를 채 읽기도 전에 새로운 정보가 넘쳐나면서 ‘나중에 읽기(Read it later)’ 폴더는 영원히 열어볼 수 없는 장독대가 되어버렸다. 결국 열심히 기록하고 정리해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기록의 배신'에 빠지고 말았다.
CODE와 PARA
티아고 포르테는 『세컨드 브레인』에서 CODE라는 방법론을 제안한다. CODE는 Collect(수집), Organize(정리), Distill(추출), Express(표현)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바로 폴더다. 앱이나 도구에 따라 페이지, 노트북, 스페이스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이 폴더들은 상위 계층의 구조인 PARA 안에서 관리된다.
PARA는 Project(프로젝트), Area(영역), Resource(리소스), Archive(아카이브)의 네 가지 상위 공간이다. 나의 잘못된 이해는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나는 ‘프로젝트’는 현재 집중하는 일, ‘영역’은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관심사, ‘아카이브’는 완료된 작업으로 정확히 이해했지만, '리소스'를 나만의 레퍼런스 도서관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 결과, 리소스 공간을 꾸준히 정리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되고 말았다.
공명하는 것을 수집하라,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티아고 포르테는 “공명하는 것을 수집하라”고 말한다. 이는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메시지와 비슷한 느낌이다. 나는 다시 한번 내가 수집한 자료들을 돌아봤다. 과연 나는 공명하는 자료를 수집했는가? 아니면 언젠가 쓸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무작정 저장만 해둔 것은 아닌가? 후자에 가까웠던 나는 자료들을 리소스 공간에 무리하게 정리하려 애썼던 것이다.
PARA에서의 폴더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설레지 않거나 공명하지 않는 자료는 결국 다시 쓰일 수 없다. 그래서 이제 나는 새 폴더를 만들 때마다 설렘과 관심을 기준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내가 하고 있는 목표가 명확한 일들만 폴더로 남기고, 나머지 설레지 않는 폴더들은 아카이브로 이동시켰다.
폴더 정리 기준은 매우 간단했다.
- 이 일이 나에게 책임이 있는가, 아니면 단지 관심사인가?
- 이 일에 책임이 있고 데드라인이 있는가, 없는가?
- 데드라인이 있다면 프로젝트, 없다면 영역으로 이동.
이 기준대로 폴더를 재정리했더니 도서관식의 분류법이 사라졌다. 예를 들어 『디자인 심리학』이라는 책을 과거엔 책 관련 폴더에 저장했지만, 이제는 ‘제품 기획’ 폴더에 넣어서 제품 기획을 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내가 읽은 책들만 따로 보고 싶다면, #내가읽은책 이라는 태그만 달면된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폴더와 태그를 반대로 사용하고 있었던것 같다.) 또 책임 없이 관심만 있던 영역을 모두 리소스로 이동시켰더니, 진짜 집중해야 할 프로젝트들이 명확히 드러났다.
이렇게 정리하자 폴더 하나하나가 설렘과 명확한 목표를 가진 공간으로 변했다. 그 안의 정보들이 서로 어우러져 인사이트를 만들어냈고, 비로소 나만의 진정한 PARA 공간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