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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의 이름은, 조진주
   저는 꽤 오랜 시간 여성의 '이름'에 침잠해왔습니다. 너무 뻔한 소리 같지만,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제일 먼저 이름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우리가 사회에서 법적인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출생신고서에 적을 이름이 필요하고, 학교와 회사에서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우리의 이름이 필요하니까요. 생각해보면 삶의 구석구석이 우리의 이름 없이는 채워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일군 모든 것은, 어쩌면 우리의 이름이 존재하기 때문에 뒤따를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고요. (물론 여성의 이름은 역사 속에서 철저히 조직적으로 지워져버리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어서 해볼게요.)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삶이 시작될 땐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붙여진 이름으로 불렸지만, 삶의 마지막에 불리게 될 이름은 어쩌면 우리가 직접 만들고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그리곤 곧 우리가 마주하게 될 삶의 끝에서 불릴 바로 그 이름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조금 어려운 문제처럼 느껴졌어요. 여성들이 자주 불리는, 이를테면 아가씨라든가 아줌마, 이 년, 저 년 같은 혐오와 부정의 의미가 담긴 호칭들을 들을 때엔 그것이 제 마지막이 될까 두렵기도 했고, 제 인터넷 정체성인 '구구'로 남는 것은 어쩐지 멋없게 느껴졌으니까요.
   '이런 고민은 살아가는 내내 계속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약간의 피곤함을 느꼈을 무렵, 조진주 작가의 「다시 나의 이름은」 을 만났습니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나의 이름은』 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합니다.

"나를 무엇으로 부를지 고민해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껏 내가 가졌던 이름 중 그 어느 것도 내 뜻대로 정한 이름은 없었습니다. 이제껏 왜 직접 이름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인지. (중략) 그러다 문득, 지금 당장 또 다른 이름을 지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 겁니다. 이곳에서 나를 불러줄 사람은 나뿐인데, 나는 굳이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내 존재를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당분간은 이름을 붙이지 않은 채로 지내볼 계획입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제 나는 어떤 이름이든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가벼워진 존재는 전보다 자유롭습니다." (p.148)

   '나'는 주화영이면서 레나이자 낸시이고 연주황입니다. 또, 쪼깨난 지지바, 이기적인 년, 만땅 처자이기도 하죠. 내가 가진 모든 이름들에는 저마다의 끝이 있습니다. 삶은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어쩐지 불리는 이름에 따라 그 챕터가 다소 불합리하게 나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첫번째 챕터는 주화영, 그 다음 챕터는 레나.. '나'에게 삶의 연속성을 끊어내는 요소는 다름 아닌 이름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단절 기호로서 기능했던 이름들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제대로 된, 올바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나요? 한 번 생각해보세요. 잘못 불려진 이름 때문에 여러분의 삶이 뚝뚝, 부조리한 방식으로 끊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 책에 담긴 아홉 편의 이야기를 쓰는 동안,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수차례 불렀다. 그들은 때로 내 부름에 응답해주었고, 때로는 응답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답이 없을 때마다 내가 그들을 제대로 부르고 있는지 돌이켜보아야 했다. 그들은 올바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가." - 작가의 말에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이름은 아프다. 아이유가 부른 「이름에게」(위 영상)의 가사를 좋아한다. "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멈추지 않을게 몇 번이라도 외칠게." 누구도 불러주지 않아 사라지는 이름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꼭 기억해야 하는 이름들이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 사라져가는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몇 번이라도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 그렇게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덜 외로울 수 있을 것 같다. - 작가의 말에서
✋ 조진주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 모두 주목!  ✋
 - 조진주 작가가 속해있는 문학동인 '어' 인스타그램
 - 문학동인 '어' 인터뷰 : <느린 기린 큐레이션>

구 읽고 씀.

책 속 키워드 : '이름'
   17년 7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내 이름은 어디에?' (#WhereIsMyName?) 운동이 전개됐습니다. 이 운동은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그룹인 'Free Women Writers'가 중심이 되어 만든 플랫폼, '아프가니스탄의 굴지의 여성들'(Afghanistan's Women of Prominence)가 이끈 운동으로, 여자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아프가니스탄의 구습이 원인이 되어 SNS를 통해 활발히 전개되었다고 하는데요. 공문서 뿐만 아니라 무덤의 묘비에도 여성의 이름은 적힐 수 없었다고 하니 정말 끔찍한 관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이름은 어디에?' 운동은 3년 여간의 투쟁 끝에 결실을 보게 되었는데요. 20년 9월, 아프간 내각 법률위원회는 "인구등록법 개정안이 통과돼 여성들이 신분증과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기록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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