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민일보 뉴스레터 한NU네 제110호
2026년 11월 6일(금)
  좋은 선생님의 기준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유난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두 부류의 선생님이 있습니다. 나이가 지긋했던 저학년 시절의 담임 선생님들과 갓 교단에 선 젊은 고학년 담임 선생님입니다.


 저학년 때 담임 선생님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으셨습니다. 어린 눈에는 부모님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그야말로 어려운 어른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면 떠들썩하던 아이들이 금세 조용해졌습니다. 이름이라도 불리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교실에서 배운 것은 국어와 산수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른에게 인사하는 법, 친구를 배려하는 태도,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까지. 당시에는 무섭고 잔소리처럼 들렸지만 삶의 경험이 묻어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고학년이 되자 교실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습니다. 새로 임용된 젊은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셨습니다. 우리와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아서인지 친구들과 다툰 이야기, 어린 마음에 억울했던 일까지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서툰 말에도 귀를 기울였고, 때로는 함께 웃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즐거움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최근 강원지역 기간제 교원의 임용 상한연령을 만 68세로 높이면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농어촌 학교의 교사 구인난을 해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주장과 청년 예비교사들의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는 우려가 맞서고 있습니다.


 오랜 교직 경험은 분명 귀중한 교육 자산입니다. 학생의 마음을 읽고 갈등을 조정하는 지혜는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습니다. 반면 젊은 교사들은 학생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교육방식을 시도하는 활력을 지녔습니다. 어느 한쪽의 가치가 다른 쪽보다 크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논의가 세대 간 일자리 경쟁으로 흐르는 것입니다. 강원 농어촌 학교의 교원 부족을 해소하면서 청년 교사들의 진입 기회도 보장해야 합니다. 퇴직 교원의 경험을 활용하되 실제 인력난이 심각한 지역과 과목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물론 나이가 많다고 모두 훌륭한 스승이 되는 것도, 젊다고 모두 학생들과 잘 소통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와 가르침에 대한 책임감입니다. 68세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좋은 교육은 어쩌면 경험의 깊이와 젊음의 열정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김영희 디지털콘텐츠부장>

평창 고랭지김장축제 개막...풍성한 겨울 준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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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우대지수 불이익 방지조항 신설

  인제군을 ‘지방우대지수 4권역’에 포함해 정부 지원 역차별을 막아달라는 군민들의 호소(본지 3일자 15면 등)가 행정안전부 확정 고시에 일부 반영됐다. 행안부는...
 주간 일기 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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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식탁 예보 🍚
꼬막비빔밥 꼬막은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맛이 좋은 겨울철 대표 수산물로, 쫄깃한 식감과 짭조름한 감칠맛이 매력이다. 양질의 단백질과 철분, 아연, 비타민 B12 등이 들어 있어 영양을 보충하기에도 좋다. 꼬막비빔밥은 밥 위에 삶은 꼬막살과 각종 채소를 올리고 매콤한 양념장을 곁들여 비벼 먹는 음식이다. 만드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꼬막을 소금물에 담가 해감한 뒤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충분히 익히고 살을 발라낸다. 여기에 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참기름, 깨를 섞어 만든 양념장을 넣고 부추나 쪽파를 곁들여 밥과 함께 비비면 완성이다. 제철 꼬막의 쫄깃한 맛과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진 한 그릇으로 겨울의 별미를 만나보자.

유언호(兪彦鎬)의 내면 기행

 

 여기 한 사람의 자기 성찰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외부 평가가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들여다보는 내 삶이 있고, 남들이 옆에서 바라보는 내 삶도 있습니다. 닮은 듯 다르기도 하고 다른 듯 닮아 있기도 합니다.

 불면의 새벽에 만난 한 인간의 내면 세계와 당대 평가를 보겠습니다.

 ‘올해 내 나이가 예순하나이니 어느새 일흔을 바라보게 되었구나. 생각해 보면 옛날 어릴 적에는 이 정도 나이의 사람을 보면 바싹 마르고 검버섯이 핀 늙은이라 생각했건마는 세월이 흘러 내가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돌이켜보면 세상에 나온 이래로 서른 해 동안 세파에 부침하고 고락을 겪은 일들이 번개같이 순식간에 지나쳐 버려 몽롱하게 꾸는 봄날의 꿈보다도 못하다.

 남들 눈으로 보면 나이가 60을 넘겼고 지위가 정승에 올랐으므로, 나이도 벼슬도 아쉬울 것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지만 내 스스로 겪어 온 일들을 점검해 보면 엉성하고 거칠기가 이보다 심할 수가 없구나. 평생토록 궁색하고 비천하게 지내다가 생을 마친 자들과 견주어 낫고 못하며, 좋고 나쁘고를 구분할 것이 무어 있겠느냐?

 지금처럼 섬에 갇힌 몸으로 곤경과 괴로운 처지를 당하지 않고서 일백 세까지 살면서 편안하게 영화로운 복록을 누린다고 쳐 보자. 그렇다고 강물처럼 흘러가고 저녁볕처럼 가라앉는 시간이 또 얼마나 되겠느냐?

 신숙주 어른이 임종을 앞두고 “인생이란 모름지기 이처럼 그치고 마는 것을….”이라며 탄식했다고 전한다. 그분의 말에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잘못을 후회하고 죽음을 앞두고서 선량해지려고 했던 마음이 엿보인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몸에 아무 일이 없고 마음에 아무 걱정이 없어 하늘로부터 받은 수명을 온전하게 마치는 것은 그 이상 가는 것이 없는 복력(福力)이다.

 그렇지만 굶주림과 추위에 떠밀려서 과거를 치르고 벼슬에 오르기 위해 바쁘게 나다니지 않을 수 없다. 형편상 그렇게 사는 것이므로 한 사람 한 사람 그 잘못을 꾸짖기도 어렵다.

 지금 나는 선친께서 남겨 주신 논밭과 집이 있어서 죽거리를 장만하고 비바람을 막기에 충분하다. 그렇거늘 본분을 편안히 지키려 들지 않고 다른 것을 찾아서 바삐 돌아다니다가 명예를 실추하고 자신에게 재앙을 끼치는 처지에 이른다면, 이야말로 이로움과 해로움,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전혀 분간할 줄 모르는 것이다.

 내가 지어야 할 농사를 내가 지어서 내 삶을 보살피고, 내가 가진 책을 내가 읽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하며 내 인생을 마치려 한다.

 이것이 바로 옛 시에서 말한 ‘만약 70년을 산다면 140세를 산 셈’이라는 격이니 어찌 넉넉하고 편안치 않으랴?

 나도 그런 삶을 살지 못하고서 네게 깊이 바라는 연유는 방덕공(龐德公)이 자손에게 편안함을 물려주려 한 고심과 다르지 않다.’

 영정조 시대를 살았던 즉지헌(則止軒) 유언호(兪彦鎬·1730~1796년) 선생이 1790년 제주 유배중 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선생은 이 글을 남기고 6년후 숨졌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는 선생에 대한 사후 평가를 보겠습니다.

 ‘1796년 3월19일. 고(故) 영돈녕부사 유언호가 숨졌다.

 언호는 자가 사경(士京)이며 영의정 유척기(兪拓基)의 조카뻘 후손이다. 젊어서부터 문학으로 이름이 알려졌고, 영조 신사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김종수(金鍾秀)와 함께 임금 앞에서 진행되는 경전 강론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상(정조)이 즉위한 뒤 그에 대한 총애와 발탁이 다른 신하들과 아주 달라서 몇 년 동안 화려한 요직을 두루 거쳐 정 2품 벼슬에 뛰어 올랐고 정미년에 정승이 됐다. 무신년 조덕린(趙德隣)을 복관(復官)시킬 때 이에 반대하자 상의 큰 노여움을 샀다. 그러나 뜻을 크게 지키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로 인해 외진 섬으로 유배되는 엄한 견책을 입었으나 오래지 않아 사면을 받아 다시 정승에 임명됐고 임금의 지극한 대우가 더욱 융숭했다. 이때 이르러 죽자 묘정(廟庭)에 배향됐다.’

 정조는 이날 신하들에게 비통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재능을 인정받아 높은 대우를 받음이 동료들 가운데 가장 앞섰고 칭찬을 받은 것도 끝내 변함이 없었으니 이같은 사람을 어디서 다시 찾아오겠는가. 이제는 죽었는지라 다시 볼 수 없게 되어 애석하고 불쌍한 마음에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조정에서 그의 행적과 나를 정성으로 섬긴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 속일 수 없는 공의가 있다. 그러니 포장하는 것은 지나친 칭찬에 가깝고, 하지 않으면 또한 사실을 매몰시키게 되는데 어찌 명정(銘旌)을 쓸 때까지 늦추겠는가. 의당 사관으로 하여금 군신간 잘 만난 전말을 갖춰 기술하여 증거로 삼아야 한다. 시호를 내리는 은전은 시장(諡狀) 짓기를 기다려서 속히 거행할 것이요, 조문하고 자손을 녹용하는 일은 관례에 의해서 거행하라.”

 당시 유언호 상가는 고인의 가르침이 있다 하여 예장(禮葬)을 받지 않았습니다.

 정조는 “시호를 청하지 말고 묘비를 세우지 말라고 했더라도 조정의 명령이 있으면 으레 모두 받는 법인데 더구나 예장이겠는가? 상주 집에 유시하여 관례에 따라 받도록 하게 하라.”

 유언호는 1761년(영조37년) 정시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주로 사간원과 홍문관에서 일했습니다. 1771년 영조가 산림세력을 당론의 온상이라 공격하며 배척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남해에 유배됐습니다. 다음 해에는 척신정치 제거가 사림 정치의 이상이라는 청명류(淸名流) 사건에 연루되면서 흑산도로 귀양을 갔습니다.

 그러나 왕세손 정조를 보필하는 춘궁관(春宮官)으로 일한 뒤 정조 등극을 계기로 홍국영(洪國榮)·김종수와 함께 극진한 예우를 받았습니다. 이조 참의, 개성 유수, 규장각 직제학, 평안 감사를 거쳐 1787년(정조11년) 우의정에 올랐습니다.

 물론 부침도 있었습니다.

 이듬해 경종과 희빈 장씨(禧嬪 張氏)를 옹호하고 영조를 비판한 남인 조덕린(1658~1737년)이 복관되자 유언호는 ‘신임의리(辛壬義理)’에 위배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정조는 탕평을 부정한다는 죄목으로 그를 제주 대정현(大靜縣)으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3년 동안 섬 생활을 한 뒤 풀려나 1795년 좌의정에 임명됐지만 이듬해 숨졌던 것입니다. 조정은 충문(忠文)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습니다.

 내유외강의 인물로 평가를 받는 유언호 선생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년) 선생과 글을 주고 받으며 평생 교류했습니다. 연암이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변함없이 후원했습니다.

 자(子)를 사경(士京)으로, 호(號)를 즉지헌(則止軒)으로 정했던 선생은 연암보다 일곱 살이 많았지만 허물 없이 소통했습니다.

 1765년(영조41년) 가을 유언호는 박지원, 원발(元發) 신광온(申光蘊·1735년~?)과 함께 금강산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정조 집권후 홍국영(1748~1781년)이 득세하며 박지원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도모하자 선생은 연암을 개성으로 피신시켰습니다.

 이듬해인 1777년 개성 유수를 자청해 그해 10월 부임했고,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도왔습니다. 연암이 쓴 ‘금학동별서소집기(琴鶴洞別墅小集記)’에 전후 사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연암 골짜기에 있는 나의 거처는 개성에서 삼십 리 거리에 있으므로 나는 늘 개성으로 나가서 노닐곤 했다.

 금년 겨울에 규장각 직제학 유사경(兪士京)이 막 개성 유수로 부임했다. 이미 관아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즐겁게 옛일을 이야기하기를 빈천했던 선비 시절과 똑같이 했다. 세속에서 말하는 출세와 몰락 따위는 서로 마음 속에 두지 않은 때문이었으리라.

 하루는 사경이 하인들을 물리치고 그의 아들을 데리고서 금학동으로 나를 찾아주었다. 그때 나는 양씨(梁氏) 별장에 잠시 머물고 있었는데 빨리 술을 데워 오게 하였다. 우리 두 사람은 각자 지은 글들을 꺼내어 서로 평가해 보고는 마주 보며 웃었다. 내가 말했다.

 “금강산 마하연(摩訶衍)에서 하룻밤을 묵던 때에 비하면 어떠한가? 백화암(白華庵)에서 참선하던 비구승 준(俊)이 없을 뿐 조촐하게 모인 것은 관천(灌泉)의 모임과 비슷한데 우리는 어느새 다 같이 머리가 허옇게 되었네그려!”

 관천은 한양 서소문 밖 나의 옛집이 있던 곳인데 금강산에서 돌아와 그곳에서 조촐한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나이 스물아홉 살로 사경보다 일곱 살이 적었는데도 양쪽 귀밑머리에 벌써 대여섯 가닥의 흰머리가 생겼으므로, 시(詩)의 재료를 얻었다고 스스로 기뻐했었다.

 지금 이미 십삼 년이 지나고 보니 이른바 시의 재료는 주체할 수 없이 어지럽게 늘어났다. 그리고 사경은 문권(文權)을 겸대(兼帶)하면서 병권(兵權)을 쥐고 큰 부성(府城)을 진무(鎭撫)하다보니, 이제 그의 수염도 이처럼 다 희어지고 말았다.

 사경은 스스로 귀밑머리 뒤의 금관자를 어루만지면서 “스스로 보기에도 겸연쩍은데 하물며 귀밑머리 뒤는 스스로 보지도 못함에랴!”라고 말했다.

 얼마 전 나는 연암 골짜기에서 성안으로 들어가다가 마침 군사훈련을 마치고 부중(府中)으로 돌아가던 개성 유수와 노상에서 마주치게 됐다. 날이 어둑어둑 저물어 갈 무렵이었다.

 나는 말에서 내려 남녀들 틈에 끼어 길 왼쪽에 엎드렸는데 횃불들이 휘황하고 깃발들이 펄럭였다. 내가 그때 군대의 위용을 구경했던 일을 말하니 사경은 크게 웃으며 물었다.

 “왜, 내 자(子)를 부르지 않았는가?”

 “도성 사람들이 놀랄까 두려웠네.” 그리고는 서로 크게 웃었다. 사경이 물었다.

 “군대 위용이 어떻던가?”

 “한창 의기양양하여 더욱 씩씩하더군.” 사경이 다시 물었다.

 “나는 어떻던가?”

 “나는 장군(將軍·유언호를 지칭)의 초상화만 보았지 장군은 보지 못했네.” 사경이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물었다.

 “내가 전에 화공(畵工)을 불러 초상 그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잠자코 정색을 하고 있어 대체로 평상시 태도와는 다르더군. 장군도 행군 때 틀림없이 기침과 재채기를 참았을 테고 가려워도 감히 긁지 못했을 걸세.”

 사경이 크게 웃으며 “과연 또 하나의 나를 길가에서 관찰했구먼!” 나도 크게 웃었다. 서로 웃고 문밖으로 나가니 달이 한창 둥글어 달빛이 가득했다. 내가 문에서 전송하며 말했다.

 “내일 밤에는 달이 더욱 밝을 터이니 나는 장차 남쪽 문루에서 달을 구경할 생각이네. 장군은 다시 걸어서 와 줄 수 있겠는가?”

 “그러세.” 사경이 답했다.

 예전에 서울 관천에서 조촐히 모였을 적에 ‘관천소집기(灌泉小集記)’를 지었다. 이번에 사경이 먼저 ‘중경소집기(中京小集記)’를 지어 보여 주었기에 이번에 이 기를 지어서 화답한다.’

 유언호 선생이 숨지고 1년이 넘도록 못잊고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1797년(정조21년) 3월 17일. 정조는 규장각 각신(閣臣)에게 제물과 제문을 마련해 유언호의 집을 찾아 제사를 지내도록 했습니다. 왕은 신하의 소상(小祥)을 맞아 치제문(致祭文)을 직접 썼습니다.

 “어느 곳에서 얻었던가? 강직한 충문공(忠文公)이여! 옛적 세손 시절부터 경은 나와 의기가 투합하였네. 규장각 직책이 빛나고 재상의 반열에서 도왔으니 무엇으로 주었던가. 패옥(佩玉)이 아름다웠네. 하늘이 어찌 남겨 두지 않았던가. 어느덧 한 해가 돌아왔네. 슬퍼하며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니, 지난 날의 공로에 보답하기 어렵다네. 대궐에서 촛불을 높이고 깊은 술잔에 뜻을 기울이네. 강직한 충문공이여! 어느 곳에서 얻을 것인가?” 

 국민 배우 최불암(1940~2026년) 선생이 돌아가셨습니다.

 수사반장(1971~1989년)과 전원일기(1980~2002년) 그리고 한국인의 밥상(2011~2025년)까지 고인의 작품을 보며 반백 년을 같이 했던 어른이었습니다.

 국민들이 고인에게 보내는 존경과 사랑을 보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남궁창성 원주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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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어리석은 자는 용서하지도 잊지도 않는다.
순진한 자는 용서하고 잊는다.
현명한 자는 용서하나 잊지는 않는다.

- 토머스 사즈


<가로 낱말 풀이>

(1) 흰빛을 내는 가스등이나 전등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3) 연기를 잘하여 이름난 배우

(5)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잠깐 들르는 곳

(8) 음식에 대하여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성미

(9)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을 받을 만한 뜻밖의 일

(10) 인위적인 요인에 의하여 자연 수자원이 오염되어 이용가치가 떨어지거나 생활에 피해를 주는 현상

(11) 두부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

(12) 짠맛이 나는 백색의 결정체

(13) 주문을 받음

(15) 외부의 침략이나 공격을 막아 지킴

(16) 객쩍게 부리는 혈기나 용기

(18) 어떤 일정한 종교를 믿는 사람

(19) 잘게 썬 고기에 양념․채소․버섯․해물 따위를 섞어 전골틀에 담고 국물을 조금 부어 끓인 음식

(21)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함

(23)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절대적 존재에게 빎

(25) 일을 하여 나가면서 부딪치는 어려운 고비

(26)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간섭하거나 거들지 않고 그대로 버려둠을 이르는 말

(28)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걺

(29) 공공단체가 직권으로 어떤 사실을 공적으로 증명하는 일

(30) 영사가 주재하는 곳에서 사무를 보는 공관

(32) 두 개의 악기로 합주하는 연주

(33) 물건을 담아 들거나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그릇, 주로 가는 새끼로 엮거나 그물처럼 떠서 성기게 만듦


<세로 낱말 풀이>

(1) 학문‧예술‧문화‧사회‧경제 등 자연 및 인간의 활동에 관련된 모든 지식을 압축하여 풀이한 책

(2) 국가기관이 법정 절차에 따라 등기부에 부동산에 관한 일정한 권리관계를 적는 일, 또는 적어 놓은 것

(3) 세상에 널리 퍼져 평판 높은 이름

(4) 범죄가 자주 일어나거나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

(6)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먼저 내는 돈

(7) 지각을 이루는 여러 가지 암석이나 지층의 성질 또는 상태

(8) 소금물

(12) 생산보다 소비를 주로 하는 도시

(14) 주인과 손의 위치가 서로 뒤바뀐다는 뜻으로, 사물의 경중‧선후‧완급 따위가 서로 뒤바뀜을 이르는 말

(15) 전신이나 전화‧방송 따위의 신호를 받음, 또는 그런 일

(17) 남다른 기풍이 있어 보이는 골격, 또는 그런 골격을 지닌 사람

(20) 재난을 피하여 가서 하는 살림살이

(22) 돈이나 물품 따위를 받은 사실을 표시하는 증서

(23) 일정한 자격을 갖추어 열차나 지하철‧배‧항공기 따위의 기관을 다루거나 조종하는 사람

(24)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난다는 뜻으로, 여러 번 실패해도 굴하지 아니하고 꾸준히 노력함을 이르는 말

(27) 텔레비전으로 방송을 하는 일

(29) 정실 왕비가 낳은 임금의 딸

(31) 한발 물러나서 어떤 일이 되어 가는 형편을 바라봄


* 출제 : 한림대학교 / 김기우 소설가

♣ 지난주 정답 : 

현모양처 賢母良妻

(賢 현명할 현 母 어미 모 良 선량할 량 妻 아내 처)

 어진 어머니이면서 착한 아내.


사례문장:

.강원도의 현모양처 표본인 심사임당은 시와 그림에 뛰어난 예술가다.

.현모양처라는 이상은 오랫동안 여성의 자아실현보다 가정 내 역할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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