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루 작가의 신작 에세이 <우리가 모르는 낙원: 무루의 이로운 그림책 읽기>를 [월간소묘: 레터]를 통해 사전 공개합니다. 5월 1일부터 15일까지 매주 목요일, 세 통의 편지를 띄워요.
    전작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에서 그림책을 통해 세계의 가장자리를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했던 무루 작가가 더욱 깊어지고 넓어져 돌아왔습니다. 그림책 속 이상하고 자유로운 세계를 무루의 시선으로 함께 읽으며 우리가 바라는 낙원을 그려보는 시간. 혼자 나이들어 가는 일, 그 고독 속에서 우정으로 연결되는 일, 바라는 세계를 꿈꾸며 현실의 삶 속에서 이뤄내는 일을, 그가 사랑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만나보아요.
무루

밤은 요리하기 좋은 시간이다. 일과를 모두 마치고 쫓기는 마음 하나 없이 어둑한 부엌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감자, 당근, 호박 같은 색색의 채소를 먹기 좋게 손질하거나 단맛이 뭉근하게 올라오도록 채 썬 양파를 볶거나 수프, 카레, 국 따위를 커다란 냄비 가득 끓이다 보면 마음이 나긋해진다. 밤의 요리가 주는 즐거움은 위장의 포만감이나 미각의 충족이 아니라 정서적 충만감에서 온다. 며칠 먹을 끼니를 준비해 두었다는 든든함, 갖가지 식재료를 아직 싱싱할 때 먹을 만하게 조리했다는 안도, 내 손으로 나를 잘 거둬 먹이고 돌본다는 자족감, 일상을 건강히 꾸려나가고 있다는 안정감으로 속이 든든히 차오른다. 바꿔 말해 요리하기 가장 좋은 밤이란 어쩐지 속이 좀 헛헛한 밤이라고도 하겠다.

    에바 린드스트룀의 이야기 속에는 종종 먹을 것이 등장한다. 스콘을 곁들인 커피, 냄비 가득 삶은 파스타, 눈물에 설탕을 넣고 졸인 마멀레이드. 몸이 아닌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지는 이 음식들이 외로운 이들 곁에 놓인다. 때로는 타인이지만 주로는 자기 자신이라서, 나는 린드스트룀 역시 한밤의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리라 생각한다.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 《모두 가 버리고》를 읽을 때면 더욱 그렇다.
    소년의 이름은 프랑크다. 프랑크는 외롭다. 친구들은 모두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자기만 혼자라서. 슬퍼진 아이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와 빈 냄비를 꺼낸다. 그리고 운다. 굵은 눈물이 냄비 위로 뚝뚝 떨어진다. 냄비가 차면 설탕을 넣고 끓인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뻑뻑해지면 조금 더 울어 농도를 맞춰가면서.
    대체 이 귀여운 레시피는 뭐란 말인가. 힌트는 부엌 곳곳에 놓인 책 제목에 있다. 《가장 맛있는 마멀레이드》, 《세계의 모든 마멀레이드》, 《마멀레이드 소백과》. 그렇다. 소년은 지금 자신이 흘린 눈물로 마멀레이드를 만드는 중이다. 원하는 만큼 시간이 흐르고 알맞게 눈물이 졸아들고 나면, 이제 창문을 열고 식힌 뒤 유리병에 담는다. 눈물로 만든 마멀레이드가 완성된다.
에바 린드스트룀, 《모두 가 버리고》, 이유진 옮김, 단추, 2021.
    이야기는 슬픔을 회복하는 과정의 알레고리다. 소년은 마멀레이드를 만드는 행위로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직면하고 표출하고 해소한다. 그러고 나서 유용한 형태로 바꾼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 속에 가해자나 피해자가 없다는 것이다.
    마멀레이드가 완성되었을 때 프랑크는 친구들을 불러 빵과 차를 함께 대접한다. 자신을 소외시켰던 바로 그 친구들 말이다. 이게 무슨 속없는 짓인가 싶겠지만 프랑크의 외로움은 딱히 친구들의 잘못이 아니다. 물론 프랑크의 잘못도 아니다.
    책 속에서 시차를 두고 반복되는 문장 "모든 게 여느 때와 같아"에 그 답이 있다. 처음 이 문장이 쓰일 때 프랑크는 친구들로부터 소외된 채 혼자다. 그러나 다시 쓰일 때는 소년의 곁에 친구들이 함께 있다. 어딘지 장난기가 가득해 보이는 세 친구는 익살스러운 포즈로 창문 너머에 서서 혼자 마멀레이드를 만드는 프랑크를 훔쳐보는 중이다. 상반된 두 상황에서 반복된 하나의 문장. "모든 게 여느 때와 같아."
    혼자인 것도 함께인 것도 실은 그저 여느 때와 같은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프랑크의 외로움에는 특별한 사건도 인과도 없다. 세상 모든 관계가 그렇듯 어쩌다 잠시 혼자가 된 아이와, 언제든 겹쳐지고 어긋날 수 있는 평범한 우정이 있을 뿐이다. 린드스트룀의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이 외로운 이유는 세상에 내가 오직 나 하나뿐인 탓이다. 외로운 프랑크가 혼자 눈물로 만드는 마멀레이드는 존재의 고독을  견디고 다스리는 그만의 귀여운 레시피인 셈이다.

    홀로 산에서 느낀 고요를 재료 삼아 만들어진 화집 《요즘 산 그리고 있습니다》에서 박활민 작가는 고독이 '다루기 어려운 손님' 같다고 했다. 제 안에 고독이 자라나지 않도록 부러 좋아하는 것들을 정성껏 해주며 공을 들이건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고독은 마지막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작가는 묻는다. "도대체 이토록 작고 시시한 고독은 왜 자꾸 오는가?"(박활민, 《요즘 산 그리고 있습니다 》, 안그라픽스, 2017.)
    그는 해소될 수 없는 고독이 어쩌면 하나의 조건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른다. 자신이 고독의 독려를 받으며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는 홀로 있을 때 그 자신이 해야만 하는 바로 그 일을 하기 위해 고독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더불어 각각의 고독은 '각자의 알 수 없는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저마다가 고독을 다룰 레시피는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만일 그런 것이라면, 고독이 내게 홀로 무언가를 하게 하고 나를 보다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하나의 조건이라면, 외로움은 한결 견딜 만한 것이 될 수도 있겠다. 결핍이나 미숙함, 불운이나 갈등의 결과로 외롭게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라면 해낼 수 없는 어떤 특별한 일을 해내기 위해 우리가 저마다 외로운 것이라면, 외로움은 오히려 독려할 만한 상태인 것은 아닐까.
    그렇게 여긴다 한들 쓸쓸한 날들은 또 어김없이 찾아와 속을 헛헛하게 할 것이다. 그러니 그런 날을 위한 레시피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겠다. 혼자 청승맞게 냄비를 쥐고 마멀레이드가 될 만큼의 눈물을 흘릴 자신은 없으니 나는 또 한밤의 부엌에 서서 라디오를 들으며 양파를 달게 볶고 색색의 채소를 먹기 좋게 썰어 커다란 냄비 가득 수프나 카레를 끓일 것이다. 그렇게 끓인 것들로 며칠 속을 든든히 채울 것이다. 혼자인 시간이 있어서 해낼 수 있는 것들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지내는 동안 가끔은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오해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마음이 포개지거나 어긋나기도 하면서 시간이 흐를 것이다. 모든 건 그저 여느 때와 같을 것이다.
무루
어른들과 그림책을 읽고 문장을 쓴다. 어느 한구석 이상한 데가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유를 아직 알 수 없는 이야기들 앞에서 오래 서성이고 응시한다. 그곳에 끝까지 알 수 없는 아름다움, 틈새의 발견, 나를 한 칸 더 넓히는 기쁨이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다. 
에세이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썼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그림책을 동료 번역가와 함께 옮기고 있다.
📨 답장을 보내주세요. 고독을 위한 나만의 레시피가 있다면 공유해 주셔도 기쁠 거예요.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 출간 후 저자 사인본을 보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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