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1. 마지막 가족

안녕 결, 민경이야.


이른 오후부터 요가로 땀을 쭉 빼고, 샤워까지 한 후 책상 앞에 앉았어.

날이 좋아서, 방에 햇빛이 넉넉하게 들어와 주어 형광등도 켜지 않고 편지를 써.


조금 전, 함께 모임을 이어오던 분에게 연락이 왔어. 이제 모임에 참여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갑작스럽게 느껴졌지만,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동안 생각과 마음이 정리되더라.


답장에 아쉽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 울음 섞인 이모티콘도 넣지 않았어. 개운하고 날 좋은 지금 오후처럼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싶었어.

그렇게 보낼 땐 좋았는데, 지금은 좀 울 것 같아.


*


아마 처음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나는 공간을 다루는 회사에 다니고 있어.

직접 공간을 디자인하고, 짓는 부서 소속은 아니지만, 빈 도화지 같은 도면을 채워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을 옆에 두고 일하고 있어.


지난 금요일에는 자료 조사를 하다가, 부산에 생긴 한 공유하우스에 대해 알게 되었어.

이름은 ‘도란도란 하우스’. 노인을 위한 공공 셰어하우스야.

‘도란도란 하우스’를 소개하는 기사의 제목은 ‘마지막 가족’이었어.


어릴 적에는 대가족이 해체되고 이제 핵가족화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요즘에는 어딜 가나 1인 가구 이야기뿐이야. 1인 가구라고 하면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을 떠올리지만, 노년층 1인 가구수도 그에 못지않다고 해.

그리고 고령화, 초고령화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노인 1인 가구수는 더 빨리 늘어날 거라고 해.


많은 사람이 아주 오랜 시간 가족을 이루고 살았던 이유는 그것이 많은 것을 동시에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겠지.

매슬로우가 제시한 욕구 피라미드에서 1층은 생리적 욕구, 2층은 안전, 3층은 애정과 소속, 4층은 존경, 5층은 자아실현의 단계인데,

‘가족’을 통해서 충족할 수 있는 욕구 범위가 꽤 넓다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가족이 해체되고 있지. 그래서 가족이라는 제도에 기대어 충족해 왔던 욕구들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필요가 생겼어.

가족 아닌 사람에게 돌봄 노동을 제공받아야 하며, 가족 아닌 사람들과 애정을 쌓고 소속감을 느껴야 하게 되었지.


앞서 소개한 도란도란 하우스가 공유주택 형태로 만들어지게 된 이유도 노년 1인 가구의 외로움(3층 욕구가 좌절된 것)을 고려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마지막 가족’이라는 표현도 가족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형태의 주거를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났다고 생각하고.


고독은 인간의 실존적 조건이라지만, 고립은 고독과 다르다고 생각해. 나 아닌 존재와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고, 접촉하는 활동 없이 사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일 거야.  


*


가끔 노년의 내 모습을 생각해 봐.

얼굴은 어떨지, 몸은 어떨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지, 성격은 변했을지, 좀 무뎌졌을지.


그런 건 아무래도 그 시간까지 살아봐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그때도 나는 여러 모임을 만들고, 또 참가하고 있을 것 같아.

지금처럼 독서모임도 하고 싶고, 소리를 마음껏 낼 수 있는 노래모임도 가고 싶고, 글도 계속 쓰고 싶고, 또 산책하고 꽃 사진을 수집하는 모임도 괜찮을 것 같아.

그러려면 무엇보다 그때까지 건강해야 할 테니 다음 주부터는 아무래도 요가 난이도를 조금 높여야겠어. (웃음)


결, 너에게도 언젠가 하고 싶은, 또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모임이 있니?


*


전쟁도 끝나지 않고, 인터넷 댓글창은 매번 엉망이고, 비관적인 미래 예측들도 지겹고, 그래서 요즘은 자주 무서워하는 것 같아.

미래를,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을.


현실을 잘 모를 때는, 꼼꼼히 감각하지 않을 때는, 낙관과 희망이 참 쉬웠어.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삶의 동력으로 삼는 것에 익숙해졌지.

그래서 요즘 자주 힘이 빠져.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일이 매일 일어나.

마음속에서 많은 것들이 우글우글거리며 개념을 달리하고, 모양새를 바꾸는 요즘이야.

그게 오랫동안 버거웠는데, 이제는 조금씩 적응해 가는 것 같아.


풀리고 있는 날씨처럼. 지금 마음속에 들어찬 감정들도 조금씩 긴장을 풀고, 원하는 방식으로 바깥으로 나아가길 바라고 있어.

어떤 마음을 마주하더라도, 만나서 반갑다는 말을 첫인사로 건네고 싶어.


*


늘 평안하길 바라며, 2023.02.26. 민경

답장은 여기로 보내주면 돼,
보내준 답장은 우리 모두 볼 수 있다는 점 기억해줘.
모두들 너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있으니까.
#48-2. 지난주에 받은 답장을 나눌게. 나에서 빼고 싶은 '나'에 대해 물었어. 
"대체로 나에게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아"

민경아! 지난 한 주간 안녕히 잘 지내었니? 나는 뭔가 어수선하게 보낸 것 같아. 아마 봄이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기 때문일거야. 봄의 따뜻한 측면엔 꽃이 피지만 사실 알고 보면 봄은 변덕쟁이야. 바람이 불고 갑자기 추워졌다가 어느 해엔 봄의 한가운데서 눈을 만나기도 하잖아. 어쨌든 봄!

나는 아침 잠이 많은 편이라 일출을 본다든지 동녁하늘을 보는 일은 거의 없지만 요즈음엔 서쪽 하늘 노을을 볼 일이 많아. 주황빛으로 살포시 물들었다가 점점 빛이 짙어지고 해를 등진 건물을 새까맣게 만들고 그 뒤에서 더 화려한 배경을 뽐내다가 사라지지. 요즈음 보아온 노을이 인상적이어서 한마디 얹어보았어. 고명처럼,

나는 요즈음 대체로 나에게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아. 요즈음 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나 자신을 비판하지는 않는 것 같아. 그다지 예민하지도 않고, 쉽게 흥분하지도 않고, 남을 의심한다든지 폭력적이지도 않고, 질투하지도 않고, 쉽게 삐치지도 않고, 음.. 그 밖에 어떤 유형의 성격이 있을까? 내가 나 자신을 더 자세히 관찰해보면 드러날 수도 있겠지만 대충 보아서는 표시가 잘 안 나네. 모난 구석이 없지는 않았지만 살면서 이런 저런 풍파를 겪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면서 다소 동글 동글 해 졌다고 믿고 싶어. 다만 한 가지 '분노'의 감정이 정리가 잘 되지 않아. 어렸을 때 부터 그러했다는 사실을 일기장을 보고 알게 되었을 때 적잖이 놀랐어. 예를 들어, 청소 시간에 나는 열심히 청소하는데 농땡이 치는 녀석들 때문에 화가 났었다든지 신경질을 내는 언니가 너무 싫다든지 하는 대목을 읽으며 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분노'라는 감정을 네가 너의 예민함을 관찰하듯 알아차렸다면 그리고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면 단언컨데 나의 인생이 달라졌을 것 같아.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런 의미에서 너의 지금의 고민은 긍정으로 나아가는 중 아닐까? 지금은 나도 많이 수그러졌다고 느끼지만 아직도 여전히 분노하고 있지. 특히, 자전거를 자주 이용하는 나는 자전거 도로에 주차해 놓은 자동차라든지, 길게 늘어뜨린 개줄, 인도를 달리는 오토바이, 자전거가 뒤에 따라오든 말든 길을 내어주지 않는 보행자 등에 여전히 뚜껑이 확 열리도록 분노한다.

분노의 감정이라는 것은 확실히 도려내어 버려야 할 감정인 것 같아. 하지만 섣불리 터트리지 말아야 할 감정도 있는 것 같아. 곪을대로 곪도록 기다려 터트려야 하지. 물이 차 넘치듯이,

나 자신을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 보는 한 주를 만들어 가 볼까 한다. 안녕!
*
어디선가에서 보았었는데, 분노 감정은 꼭 표출되어야 한다고 해. 사회생활을 하려면 분노를 참아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 그럴 때마다 상대에게 화를 내진 못하더라도, 노래방에서 노래를 시원하게 부르거나, 달리기를 하거나, 스케치북에 낙서를 마구하고 찢어버리거나 글을 쓰는 등의 방법을 사용해서 분노 감정을 해소시켜주는 게 좋대.

네 마음이 평안해 보여서, 자신의 많은 부분을 비난하지 않고 수용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답장을 읽으며 나도 덩달아 마음이 편해지고, 나에게 세워둔 기준들을 조금 정리할 수 있었어.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다가올 봄도 맞이할 수 있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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