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 섹시 | male gaze | 섹스토피아 ‘언니 섹시해요!’를 외치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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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는 언제 자신이 섹시하다고 느끼나요? 자기를 ‘섹시하다’고 생각할 때 어딘지 뭔가 마음에 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나요? 이번 레터에는 남성적 시선과 여성의 선택, 그 사이에서 갈피를 잡으려 분투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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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련 산우, ‘주체적 섹시’라는 표현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산우 미디어에서 주로 재현되는 ‘쎈 언니’ 컨셉의 여성 가수들이요! 진한 화장에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고, 당당한 태도로 할 말을 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떠올라요.
러련 저도예요. 최근 몇 년 동안 한바탕 주목을 끌었던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에 나오는 댄서들도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출연자들의 멋진 모습에 홀려서 열심히 봤었는데, 마음 속 깊이 존재하는 페미니스트 자아가 뭔가를 자꾸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더라고요. ‘섹시함을 소비하는 건 가부장적 시선을 재생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을까요?
산우 그렇다고 <스우파> 출연자들이 ‘(육체적) 섹시함’만 내세운 건 아니잖아요. 그들의 섹시함은 직업적 전문성이라는 맥락이 있었기에 ‘주체적’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또 여성이자 댄서로 살면서 존재했던 장벽을 파워풀한 춤으로 깨 버리는 성취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쾌감을 안겨주기도 했고요. 말하자면 <스우파>는 주체성이 섹시함보다 더 돋보이는 경우였던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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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련 흠... 이걸 어떻게 정리해볼 수 있을까요? 섹시함과 주체성은 대척점에 있다? 아니면 주체적인 것이 진정 섹시한 것이다? 말할 수록 더 헷갈리는데요.
산우 페미니즘 안에서 ‘주체적 섹시’를 비판하는 시각에 관해 얘기해볼까요. 남성적 시선(male gaze)이라고 하죠. 시선의 주체가 어떤 성별을 가지고 있느냐와는 별개로, 남성적, 이성애중심주의적 시선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여 소비하는 시선이요. ‘주체적 섹시’가 존재할 수 없다고 보는 쪽에서는 ‘섹시함’이라는 미적 가치가 어떤 경우에서든 남성적 시선의 산물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여성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선택한 것처럼 보여도 결과적으로는 안티-페미니즘적이라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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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선언 이후 가슴 부위가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 화보를 찍은 배우 엠마 왓슨. 해당 화보를 두고 '페미니스트답지 못하다'는 거센 비난이 쏟아졌는데요. 이에 그는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지 다른 여성을 때리기 위한 막대기가 아니다"라고 말했어요. ©Associated P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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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련 그런데 어찌 보면 섹시함과 페미니즘은 공존할 수 없다는 건 굉장히 이분법적인 얘기로 들려요. 마치 ‘장발의 여성은 페미니스트일 수 없다’라는 문장처럼 모순적인 것 같기도 하고요.
산우 페미니즘의 본질은 여성이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선택을 억압하는 상황을 타파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여성에게 일반적으로 ‘섹시하다’거나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것은 다 버리라고 요구한다면, 그건 외려 가부장제의 기준을 누구보다 철저히 따르는 것과 다를 바 없죠. 무엇을 할지, 하지 않을지를 정하는 기준을 여성의 안이 아니라 가부장적 외부 세계에서 찾으니까요. 다양한 여성주의 운동의 가치와 취지를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그건 위험한 강요가 될 수 있어요.
러련 그런 면에서 ‘주체적 섹시’는 여성의 선택권을 넓힌다는 페미니즘적 입장에서는 과도기적인 개념인 것 같아요.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섹시해지고자 하는 선택이 과연 얼마나 주체적일 수 있으냐 하는 물음은 필요하지만, 어떤 선택 자체를 묵살해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산우 가부장제는 여성이 남성적 시선에 부합하기를 강요하고, 미디어는 그런 가부장적 인식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구조 속에서 여성의 선택이 100% ‘주체적’이라고 보는 건 지나치게 이상적일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페미니즘은 그런 여성을 비난하기보다는 여성의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가부장제를 전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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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해서 벗은 게 맞아?
-오늘의 콘텐츠 | 다큐멘터리 섹스토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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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착각했다, 너의 요구를 나의 욕구로.’ 위드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봐요. TV에선 여성 가수의 섹시한 무대가 나오고, 유명 잡지에는 ‘섹시해지는 법’, ‘남자를 유혹하는 법’ 같은 이야기가 실렸죠. 어쩌면 우리는 <네모의 꿈> 말고 <섹시의 꿈>을 들으며 자랐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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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토피아
젊은 세대의 성 문화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학생들의 방학을 함께하면서 이들의 섹스, 성폭력에 대한 인식, 그리고 미디어가 만들어낸 왜곡된 성 역할과 개념을 알아본다.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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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실마리
하나, 섹시와 함께 자라다
다큐멘터리 <섹스토피아>는 여성이 얼마나 성적 매력을 가졌는지가 곧 그의 가치가 되는 세상을 파헤쳐요. 우리는 왜 이런 믿음을 공유하게 되었을까요? 사춘기를 겪는 여성의 삶으로 함께 들어가 봅시다. 열쇠는 ‘미디어’예요. 성(性)에 관심 두게 된 여성이 우연히 TV를 틀어요. 그곳에선 과감히 신체 노출을 드러낸 여성 가수들이 환호받고 자신의 섹스 경험담을 털어놓는 여성 스타가 쿨(Cool)하다고 말해요. 시선을 돌려 잡지나 뉴스를 봐도 똑같죠. ‘남자가 싫어하는 잠자리 차림’, ‘그를 꼴리게 할 78가지 단어’ 같은 제목만 가득하니까요.
그가 보고 자란 수많은 이미지가 모여 하나의 명제를 만들게 되죠. “아, 섹시한 것이 좋은 거구나!” 하지만 이 명제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섹시함’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요? ‘성적 매력’은 누구의 관점에서 평가되나요? 섹시한 것은 정말 여성에게 ‘좋은 것’인가요? 다큐멘터리 <섹스토피아>는 친구와 놀러 간 해변에서 우연히 비키니 댄스 경연에 참여한 한 여성의 경험담을 들려줘요.
둘, 원한다면 더 벗어도 돼
캘리포니아에서 온 키미는 봄 방학을 맞아 해변에 놀러 왔어요. 하고 싶은 게 많은 키미, 그는 뜨거운 밤을 꿈꿔요. 오늘 밤엔 친구랑 같이 비키니 댄스 경연에 나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시작부터 당황스럽네요. 남자 직원이 말도 없이 키미의 몸에 오일 스프레이를 뿌리더니 마구 문지르라고 하네요. 10초 안에 춤을 추고 승자를 가릴 거라는데, 그의 마지막 말이 걸려요. “원한다면 더 벗어도 돼. 하의는 벗지 마. 상의는 벗어도 돼.”
일단 무대에 올라가 마음껏 춤을 췄어요. 그 순간, 갑자기 사회자가 키미를 붙잡더니 ‘내가 본 걸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라’며 뒷모습을 보인 채 스쿼트를 해보라고 시켰어요. 그건 키미의 선택이 아니었어요. 그가 원한 것이었죠. 키미는 힘을 뺏긴 거 같았어요. 거기 서서 끊임없이 평가당했거든요. 문제는 이게 낯설지 않다는 거예요.
키미는 어렸을 때부터 미디어 속 섹시한 여성들과 자신을 비교했거든요. 또래 남자애들은 그들을 보고 ‘진짜 섹시하다’고 말했고, 키미 또한 그들처럼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섹시하게’ 스쿼트를 하는 지금, 왜 기쁘지 않을까요?
셋, 내 선택인데 뭐가 문제야?
비키니 경연 대회에 나간 건 키미의 선택이었죠. ‘누가 칼 들고 협박’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키미의 선택은 온전히 자발적이었던 걸까요? 그렇게 말하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어요. 섹시함에 대한 강박은 키미가 스스로 자기 마음속에 심은 게 아니니까요. 나의 욕구와 사회의 압박 사이에서, 지금까지 내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건 무엇이었을까요? 여성이 내린 선택이 진정으로 여성을 강하게 만드는지 고민이 깊어갑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선택지를 늘리기 위한 움직임이에요. 그런 동시에 여성이 살아가는 차별적인 세상도 뒤집어야 하죠. 그렇다면 만일 여성의 앞에 놓인 선택지 중 ‘주체성을 가장한 타자성’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위드, 당신의 욕구를 들여다봐요. 진짜로 당신이 원하는 것만 들어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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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생각 조각
TV에서 시상식을 중계할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했어요. 단정한 슈트 차림인 남성과 달리, 여성은 하나 같이 노출이 드러난 의상을 입은 채 불편한 걸음으로 입장했죠. 남성이 여성의 허리에 팔을 두른 채 여유로운 포즈를 취하면 찜찜함은 두 배! 그럴 땐 여성의 신체를 형상화한 시상식 트로피만 애꿎게 째려봤어요.
요즘의 무대 풍경은 완전히 다르죠. 한데 이게 180도 바뀌었다고 해야 할지, 360도 바뀌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과거보다 훨씬 과감한, 때로는 당혹스럽기까지 한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당당한 포즈를 취하니까요. 팬티를 노출한 의상을 입고 여성의 당당함을 노래하는 K-POP 스타나 전사 역할을 연기한 배우가 엉덩이가 드러난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할 때 혼란은 세 배! 그들은 분명 당당한데 그걸 지켜보는 우리는 왜 움츠러들게 될까요?
다시, 키미의 이야기로 돌아가요. 사람들 앞에서 자유롭게 춤추는 키미는 분명 멋있었어요. 단지 그가 올랐던 무대가 ‘비키니 경연 대회’였고, 뒤태를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스쿼트를 했다는 점만 빼면요.. 그래도 난 여전히 키미가 멋있어요. 그는 헤매고 있거든요. 섹시함을 향한 나와 타자의 시선 사이에서 다음 세대의 여성들은 진짜 자기 힘을 찾기를 바라면서요.
페미니즘은 욕망하는 여성을 사랑합니다. 동시에 페미니즘은 사회가 그의 요구를 여성의 욕망으로 둔갑시키는 것을 걱정하지요. ‘섹시한 여성은 주체적이다.’ ‘섹시한 여성은 주체적일 수 있다.’ 두 문장은 한 끗 차이지만, 사실 정반대의 세상을 향해요.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필터예요. 여성의 욕망을 분류할, 정교한 그물망이요. 이 촘촘한 그물망을 엮는 일, 위드도 함께 해줄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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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나의/타인의 섹시함을
어디에서 발견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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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성과 독립’ 레터에 위드가 보내주신 피드백을 살펴보았어요.
- 요즘처럼 1인 가구가 많아진 시대에 적절한 주제 같아요. 주제가 생활과 밀접해서 많은 분이 일상에 감춰진 성차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좋았습니다.
- 여성의 '정서적 독립'도 다루어 주셔서 좋았습니다. 한 사람으로서 성숙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서적 독립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 '에디터의 생각 조각'이 특히 좋았어요. '크리스틴'에는 제 예전 이름을, '레이디 버드'에는 제 현재 이름을 넣어서 읽어 봤어요. 저도 빡빡 지워버리고 싶었던 흑역사를 받아들이면서 온전해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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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터를 함께 만든 사람들 👪
꾸물🐛 라노🦖러련 🪁 리사🤿 산우☂️
서머☀️ 올린🎻 이끼🌿 장소조🐭 짱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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